<colbgcolor=#FAE6FA><colcolor=#000000> 덴마크 프레데리크 9세의 왕비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Prinsessan Ingrid av Sverig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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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잉리드 빅토리아 소피아 루이세 마르가레타 (Ingrid Victoria Sofia Louise Margareta) |
출생 | 1910년 3월 28일 |
스웨덴 스톡홀름 스톡홀름 왕궁 | |
사망 | 2000년 11월 7일 (향년 90세) |
덴마크 프레덴스보르 프레덴스보르 궁전 | |
장례식 | 2000년 11월 14일 |
덴마크 로스킬레 로스킬레 대성당 | |
배우자 | 프레데리크 9세 (1935년 결혼 / 1972년 사망) |
자녀 | 마르그레테 2세, 베네딕테, 아네마리 |
아버지 | 구스타프 6세 아돌프 |
어머니 | 코넛의 마거릿 공녀 |
형제 | 구스타프 아돌프[1], 시그바르드, 베르틸, 칼 요한 |
종교 | 루터교회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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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코넛의 마거릿 공녀 사이의 자녀로, 덴마크 프레데리크 9세의 아내이자 전 덴마크 국왕인 마르그레테 2세의 어머니이며, 현 스웨덴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프의 고모이다.2. 작위
<rowcolor=#000> 문장 | 모노그램 |
-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Ingrid of Sweden (1910년 3월 28일 – 1935년 5월 24일)
-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왕세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Crown Princess of Denmark and Iceland (1935년 5월 24일 – 1944년 7월 17일)
- 덴마크의 왕세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Crown Princess of Denmark (1944년 7월 17일 – 1947년 4월 20일)
- 덴마크의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of Denmark (1947년 4월 20일 – 1972년 1월 14일)
- 덴마크의 왕대비 폐하 Her Majesty Queen Mother of Denmark (1972년 1월 14일 – 2000년 11월 7일)
3. 일생
3.1. 어린 시절
<colbgcolor=#FAE6FA,#191912><colcolor=#000,#fff> |
<colbgcolor=#FAE6FA><rowcolor=#000> 어머니 코넛의 마거릿 공녀와 잉리드 |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절대로요. 그리고 그건 아마도 내가 너무 빨리 어린 시절을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하루가 다르게요. 아니요, 나는 다시는 어린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어머니 마거릿이 사망한 3년 뒤, 아버지 아돌프 왕세자가 루이즈에게 청혼을 했다. 공교롭게도 루이즈는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였기 때문에 마거릿은 물론 잉리드와도 친척 지간이었다.[4] 문제는 아돌프가 자녀들에게 재혼에 대해 언질을 주지 않았고, 이에 어머니와 유달리 각별했던 잉리드는 큰 충격을 받아 루이즈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교육을 위해 외가인 영국으로 떠나게 되어 루이즈와의 사이는 계속 어색해지게 된다.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colbgcolor=#FAE6FA><rowcolor=#000> 외할아버지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와 잉리드 |
3.2. 왕세자비
잉리드는 영국에서 교육받으며 야외 스포츠를 즐겨 했는데 특히 승마와 스케이트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후에 자라면서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와 조지 왕자[5]와 혼담이 오갔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6]1935년 3월 15일 덴마크의 왕자인 프레데리크와의 약혼이 발표되었다.[7] 둘은 17년 전 여름 거주지였던 소피에로 성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프레데리크는 19세의 생도였고 잉리드는 8세였다. 프레데리크의 할머니는 스웨덴 출신의 공주(스웨덴의 로비사 공주)였기에 가까운 세대에서 혼맥으로 얽혀 있었고,[8] 이는 범 스칸디나비아적 동맹을 강화하는 좋은 계기였다. 1935년 5월 24일, 25살의 잉리드는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프레데리크와 결혼식을 올린다.
<colbgcolor=#FAE6FA><rowcolor=#000> 결혼 사진 |
3.3. 왕비
<colbgcolor=#FAE6FA,#191912><colcolor=#000,#fff> |
1968년에 장녀 마르그레테가 프레데리크를, 이듬해에 요아킴 왕자를 낳으면서 잉리드도 할머니가 되었다. [9]
3.4. 왕대비
<colbgcolor=#FAE6FA><rowcolor=#000> 세 딸들과 함께 찍은 사진[10] |
4. 평가
잉리드 왕비는 덴마크에서 국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는데[12], 그녀가 인기를 많이 얻은 이유는 가정적인 왕실의 이미지를 각인 시켰기 때문이었다. 덴마크 왕실은 상당히 가부장적이었고 시아버지 크리스티안 10세가 아내 알렉산드리네 왕비와 아들 프레데리크 왕세자에게 고압적으로 대했다. 잉리드는 시아버지와 남편 사이를 중재하며 가족간의 갈등을 줄였다.가장 중요하게 평가받는 것은 반 나치 행보였다. 1940년대의 덴마크는 나치의 점령[13]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 그녀는 저항의 의미로 마르그레테 공주의 방 문에 덴마크, 스웨덴, 영국의 국기를 달았다고 한다. 덴마크가 폭격을 당할 시에 위험을 무릅쓰고 장녀를 유모차에 실어 거리를 활보한 적도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할아버지인 구스타프 5세가 손녀를 매우 걱정하였으나 잉리드는 의연했고, 이러한 행보는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왕실에 대한 지지도를 높였다.
5. 여담
- 잉리드 본인과 새어머니인 루이즈 왕비, 올케언니인 지빌라는 모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다. 특히 새어머니 루이즈와는 항렬도 같은 육촌 자매지간이였다.[14]3남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 >> 코넛의 마거릿 공녀 >>> 잉리드 공주
- 잉리드의 사위들은 기이하게도 서열이 뒤로 갈수록 신분이 점점 높아진다. 첫째 사위 헨리크는 일반 귀족, 둘째 사위 리하르트는 슈탄데스헤어 가문 출신, 셋째 사위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의 왕이었다.
- 난독증이 있었다.
- 평생 아침마다 스웨덴 신문을 읽었다.
6. 가족관계
6.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Princess Ingrid of Sweden) | <colbgcolor=#FFF3E4,#331c00> 구스타프 6세 아돌프 (Gustaf VI Adolf) | <colbgcolor=#FFFFE4,#323300> 구스타프 5세 (Gustaf V) | |
<colbgcolor=#E4FFEC,#00330f> 오스카르 2세 (Oscar II) | |||
나사우의 조피아 공녀 (Princess Sophia of Nassau) | |||
바덴의 빅토리아 공녀 (Princess Victoria of Baden) | |||
바덴 대공 프리드리히 1세 (Frederick I, Grand Duke of Baden)[15] | |||
프로이센의 루이제 공주 (Princess Louise of Prussia)[16] | |||
코넛의 마거릿 공녀 (Princess Margaret of Connaught) | |||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 (Prince Arthur, Duke of Connaught and Strathearn) |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자 앨버트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 |||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 |||
프로이센의 루이제 마르가레테 공주 (Princess Louise Margaret of Prussia) | |||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카를 왕자 (Prince Friedrich Karl of Prussia)[17] | |||
안할트데사우의 마리아 안나 공녀 (Princess Maria Anna of Anhalt-Dessau) |
6.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배우자 / 자녀 |
1녀 | 마르그레테 2세 (Margrethe II) | 1940년 4월 16일 | 앙리 드 라보르드 드 몽페자 슬하 2남[18] |
2녀 | 베를레부르크 공비 베네딕테 (Benedikte, Princess of Berleburg) | 1944년 4월 29일 | 제6대 자인비트겐슈타인베를레부르크 공 리하르트 슬하 1남 2녀 |
3녀 | 그리스 왕비 아나마리아 (Anne-Marie, Queen of the Hellenes) | 1946년 8월 30일 | 콘스탄티노스 2세 슬하 3남 2녀[19] |
[1] 현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의 아버지[2] 오빠 2명과 남동생 2명을 두었다.[3] 발데마르와 망누스 3세의 할머니[4] 마거릿하고는 5촌, 잉리드 남매들하고는 6촌관계였다. 잉리드 입장에서는 6촌 큰 언니가 느닷없이 새어머니가 된 셈.[5] 조지 5세의 4남, 1902~1942. 훗날 그리스 왕국의 마리나 공주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낳지만 항공사고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6] 후에 조지 왕자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석한다.[7] 청혼을 두 번 받았는데 처음에는 어리다고 거절했다.[8]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1세 기준으로 하면 8촌이다. 또한 바덴 대공 레오폴트 기준으로도 8촌이며, 파벨 1세의 기준으로 하면 11촌 관계가 되기도 한다.[9] 단, 첫 손주는 그리스 왕국으로 시집간 막내딸 아나마리아의 장녀(첫째)인 알렉시아 공주(1965년생)이다. 그리고 1967년에 태어난 아나마리아의 장남(둘째) 파블로스 왕세자도 있다.[10] 가운데 있는 여성이 잉리드 왕대비다. 잉리드 왕비 위쪽에 있는 여성은 장녀 마르그레테 2세이다. 왼쪽에 있는 여성은 차녀 베네딕테 공주이고, 오른쪽에 있는 여성은 삼녀이자 그리스의 마지막 왕비 아네마리이다.[11] 잉리드 왕비가 생전에 본 증손주는 니콜라이 왕자 외에도 막내딸 아나마리아 전 그리스 왕비의 장남(둘째)인 파블로스 전 왕세자의 장녀(고명딸) 마리아올림피아 공주(1996년생), 장남 콘스탄틴-알렉시오스 왕자(1998년생), 차남 아킬레스안드레아스 왕자(2000년생, 타계 약 세 달 전인 8월 12일 출생), 둘째딸 베네딕테 공주의 장녀(둘째)인 알렉산드라 공주와 독일 옛 귀족(백작) 가문의 첫 남편(1998년 결혼, 2017년 이혼. 이후 알렉산드라 공주는 2019년에 다른 남자와 재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리처드(1999년생)가 있다.[12] 당시 왕실 지지도가 무려 90%였다.[13] 덴마크 보호령 항목 참고[14] 잉리드의 어머니 코넛의 마거릿 공녀와 루이즈의 어머니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가 사촌지간이였다.[15] 구스타브 4세 아돌프의 외손자이다.[16]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1세의 외동딸이다.[17]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손자이다.[18] 프레데리크 10세, 요아킴 왕자[19] 그리스의 왕세자 파블로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