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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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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년기2. 브랜드 디자이너3.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
3.1. 셀프디스 캠페인3.2. 현수막 홍보3.3. 당 공식 팟캐스트 <진짜가 나타났다> 출연3.4. 당명 개정과 더불어민주당 홍보3.5. 정치인이 되다3.6. 문재인 대선 캠프 홍보 부위원장
4. 열린민주당 시절5.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

1. 청년기

서울시 중구 명동에서 4남 2녀 중 넷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숙명여중-숙명여고를 졸업했으며 문재인의 아내 김정숙과는 여중 - 여고 6년 동창으로 절친한 사이이다. 원래는 건축과를 가고자 했으나 고3 때 진로를 바꾸어 1973년 홍익대 응용미술학과(현재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유복했던 집안이었으나 대학교 시절에 집안이 어려워져서 과외 및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고 한다.[1]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손혜원 특집

1977년 대학 졸업 후 현대양행[2] 기획실에 취업했다. 그 뒤 판 디자인, 디자인포커스를 거쳐 1986년 11월 크로스포인트를 공동 창업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로고 및 포스터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90년 크로스포인트를 완전 인수하면서 시각 디자이너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직종을 전환했다.

2. 브랜드 디자이너

파일:external/www.donga.com/200511040024_54.jpg 파일:external/img.insight.co.kr/GJH0Y3YN47G9K10T914V.jpg

브랜드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은 그야말로 업계의 전설급이다. 아래 목록에서 보다시피, 정말 대한민국에 살면서 아래 이름들을 하나도 못들어본 사람은 찾기가 힘들 정도다. 물론 그 제품이 단종되거나 해서 좀 생소한 게 있을수는 있지만 그런 것들도 거의 대부분 그 제품 분야에서 인지도 1, 2위를 다투었던 것들이다. 이것들을 모두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에 놀라는 경우도 많다.

이 외에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로고, 티 스테이션 로고, 두산 베어스 구(舊) 반달곰 로고[5] 역시 손혜원의 작품이다.

처음처럼참이슬 같이 소주 시장의 치열한 라이벌이 제품 네이밍을 같은 인물에게 맡겼다는 이유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보통은 경쟁 업체의 브랜드를 동시에 맡지 않는 것이 관례이지만, 그 관례를 깰 정도로 브랜드 기획자 손혜원의 신뢰도는 높았고, 결과적으로 두 브랜드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처럼의 경우, 두산[6]이 원래 내정한 이름은 '아하'였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손혜원 대표에게 작명을 의뢰하여 처음처럼이 되었고 그게 대박이 난 것이라고 한다.[7]

정치권 입문 전에도 김근태 후원회 책자 및 홍보물, 노무현재단 로고,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의 담쟁이 로고 등을 디자인했으며 2013년 7월 5일 백지연의 피플 INSIDE에 출연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 철학에 대해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브랜드 디자이너 손혜원 방송출연영상

이런 화려한 광고 홍보계 커리어 덕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청문회에서 차은택을 호되게 몰아세우기도 하였다. 차은택에게 광고업계의 특정인을 아냐고 물었는데 차은택이 모른다고 하자 손혜원이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내가 그쪽 업계에 있던 사람인데!"라고 꾸짖은 것. 그때 차은택이 순간 당황하여 말을 바로 잇지 못했을 정도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8][9]

파일:external/www.bucheontimes.com/30899_94035_185.jpg

또한 김종덕문체부 장관에게 프랑스의 국가브랜드를 표절한 것으로 논란이 된 Creative Korea 슬로건에 대해서도 국가적 망신이라며 디스했다. 손혜원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는 표절"… 국가적 망신

3.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

2012년 대선 정국과 그 이후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조동원 홍보본부장의 홍보 등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이기는 경우가 잦자, 당내에서는 그에 준하는 외부 인사를 영입해서 당의 홍보를 맡겨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2015년 7월, 당시 공석이었던 홍보위원장에 손혜원 대표가 위촉되었다. 그 전까지 손 위원장은 정파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은 터라, 파격적인 인사라고 평가 받았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홍보의 구원 투수로 활약하였다.

당의 홍보위원장으로 초대되어 취임했음에도 2015년 12월 15일까지는 입당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덕분에 <진짜가 나타났다>에서도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 입장에서 질문이나 비판이 가능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온라인 정당 가입이 이뤄진 12월 1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온라인 입당 시스템을 소개하며 자신도 당원 가입을 하겠다고 밝혔고, 12월 말에 공식 팟캐스트 진짜가 나타났다에서 입당 사실을 밝혔다.

3.1. 셀프디스 캠페인

3.2. 현수막 홍보

3.3. 당 공식 팟캐스트 <진짜가 나타났다> 출연

3.4. 당명 개정과 더불어민주당 홍보

3.5. 정치인이 되다

3.6. 문재인 대선 캠프 홍보 부위원장

2016년 12월 31일 "내일로 더불어 민주당 홍보위원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 당직자 신분으로는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이유.

2015년 새정련 홍보위원장으로 취임 후 체질개선시킨 더불어민주당의 홍보팀을 총괄하며,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도 활동했다.

2017년 8월, "정권 교체까지가 제 역할"이라고 말하여 차기 총선인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4. 열린민주당 시절

2019년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뒤 열린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로고 디자인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열린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과 합당 직전 시점인 2022년 1월 14일에 탈당했다. 이때 하는 말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5.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

하지만 완전히 은퇴를 한 것은 아니었는지 제3지대론이 불거지면서 김남국 의원을 포함한 신당 창당 구상을 발표, 호남과 광주를 기반으로 20석 확보를 내세우며 신당 창당의 아이디어를 냈다. #

하지만 독자 신당 창당은 하지 않고, 송영길이 추진하던 세력에 소나무당이라는 이름을 작명해 주었다. 손혜원은 이전에 '민주소나무당'이라는 제안 당명에 전율을 느꼈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소나무라는 명칭을 좋아한다.[23][24] 소나무당의 선거대책본부장(선대위원장 격)을 맡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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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재산증식 과정을 보면 사실일지는 의문이다. "어릴 때 잠시 가난하여 고생했다"라는 것은 많은 유명인이나 정치인들이 흔히 제시하는 인생 역경의 사례인만큼.[2] 한라그룹의 뿌리로 이후 두산중공업이 되었다.[3]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린다."라는 광고 카피를 직접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광고 이후 '마법에 걸렸다'가 여성의 월경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용어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헌데 이것 때문에 월경에 대해 잘 모르는 남자들이 월경이 한 달에 단 하루만 걸리는 건 줄 아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보통 4~5일동안 하는 거고 광고에서도 분명 한 달에 '한 번'이랬지 '하루'라고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오해할 법 하긴 하다.[4] 브랜드명을 지은 게 아니라 한국에서 인수한 후 폰트를 다듬었다고 한다.[5] 1999년~2009년 사용한 로고. 1999년~2001년 V넥 박스형, 2002년~2009년 Y넥 버튼형 유니폼으로 제작했다. 특히 2002년~2009년 유니폼은 역대 KBO리그 유니폼 중에 최고의 디자인으로 손꼽히는 유니폼이다. 손 의원이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2017년 4월 30일 홍성흔의 은퇴식 때 1999년~2001년 홈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이야기하며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6] 처음에 두산주류였다가 두산이 KFC, 버거킹을 시작으로 식음료사업을 접는 바람에 롯데에 팔렸다... 두산 시절을 그리워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7] 사실 정확히는 '처음처럼'이라는 문구 자체는 손혜원 책상에 있던 달력에 신영복 교수가 쓴 '처음처럼' 서화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처음처럼 로고 글씨도 신영복 교수가 썼다.[8] 몇 초 뒤 차은택이 "어..(유명한 사람이라) 그 이름은 아는데 사적인 교분이 없다는 뜻입니다"라고 밝히고 넘어가긴 했다. 참고로 차은택이 은사로 알게 되어 장관으로 추천한 김종덕 홍대 교수가 손 의원의 가까운 후배 뻘.[9] 그러나 직후에 차은택의 탈모증상을 조롱하며 불쌍하다고 폄하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다.[10] 손혜원 홍보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매우 강하게 비판했던 것 중 하나가 이전까지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부실한 홍보였다. 이전 홍보위원장 시무룩[11] 교보문고의 캐치프라이즈가 바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12] 1995년 신한국당은 YS의 국정철학(신한국 창조)를 그대로 반영한 이름이고, 1997년 한나라당(조순이 작명)은 최초의 순우리말 이름, 2012년 새누리당도 비슷한 맥락이었다.[13] 이해찬 의원(당시 4선)이 직접 지은 이름이었다.[14] 하지만 정당굿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굉장히 흔한 상품이다. 특히,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각자를 상징하는 코끼리와 당나귀를 미국 성조기로 표현한 로고가 박힌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15] 김종인은 당시 셀프로 비례2번에 들어가는 대담함을 보였다.[16] 마켓쉐어 1%만 날아가도 제품 홍보방식을 바꿔야할 정도인데 과점시장에서 마켓쉐어가 이틀 동안 5.5%가 빠지면 브랜드를 갈아 엎어야할 정도의 심각함이다.[17] 사실 김종인은 정청래보다 손혜원과 정치계 입문전부터 더 친분이 있던 사이로, 김종인의 정치계 복귀 이전에도 학자로서의 김종인을 손혜원 본인이 존경했던 사이. 그러나 손혜원이 정청래와 친하다는 걸 김종인이 알게 되었기에 비대위원장이 된 이후는 조금씩 사이가 나빠지고 거리가 생겼던 상황이었다.[18] 만약 김종인과 손혜원이 정계 진출 이전에 원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게 어려운 요청이었으며, 김종인 스타일상 끝내 만나주지조차 않았겠으나, 두 사람은 정계 진출 전부터 학자와 성공한 사업인으로서 여러 사회단체에서 적지 않은 기간의 친분을 유지한 관계로 면담이나 호소가 먹혔다고 볼 수도 있다.[19] 물론 김용민과 손혜원은 정계 입문전 사회적 지위에서 큰 차이가 난다. 김용민은 언론방송인 겸 신학자로 나름의 재능과 경력을 갖췄지만 언론계냐 신학계 모두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던 편이었기에 정치계 입문시에도 비주류였고, 손혜원은 엘리트 출신에, 브랜드와 홍보 사업계의 레전드로 엄연한 사회 주류계층에 포함되던 저명인사였으며, 사회경력만으로 정당활동과 무관하게 웬만한 국회의원들 못지 않은 인맥을 이미 갖추고 있어서, 입당 후에도 많은 민주당 50대 국회의원들에게 누님소리를 들을만큼 대우받는 데서도 문제가 없었다. 문재인의 요청으로 들어온 친문인사이면서 정청래와도 친한 데다가 김종인계와도 정계 입문 전부터 친분이 있어, 선거 시기에도 양쪽 모두에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딱히 견제당할 여지가 거의 없어, 정치신인치고 생각보다 상당히 안정적으로 부드럽게 당내 선거세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좋은 요건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개인 능력도 뛰어난 편이긴 하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정치 행운아다[20] 다만 동문이었다는거지 학창 시절 단짝이나 이런건 아니었다고 한다. 정치 입문도 김정숙 여사와는 무관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영입으로 이뤄졌다. 때문에 언론에서 둘을 엮는 일명 동문 가설이 너무 과장되었다는 시각도 있다.[21] 민주당의 비대위 대표였던 김종인과도 예전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었다고 한다.[22] 한 예로 2018년 아시안 게임 당시 야구 대표팀에 선발된 일부 인원이 군 기피 의혹 등으로 자격 논란에 휩싸이자, 이후 이들을 선발한 선동열 감독이 선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국감에 증인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이때 선 감독을 거의 죄인 취급하며 모욕에 가까운 극딜을 시전했다. 오죽하면 선동열 감독이 이 것 때문에 빡쳐서 직후 감독을 사임했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 사실 손혜원만 저랬던 게 아니라, 김수민 의원도 전혀 다른 년도의 기록을 가져와서 극딜을 시전했고, 선동열 감독은 멘탈이 가루가 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감독으로 임명한 정운찬 당시 KBO 총재가 선동열 감독 때문이라고 남탓을 했기 때문에 빡쳐서 사임했다는 게 정설.[23] 이 때 민주소나무당 대신 채택된 당명이 더불어민주당이다.[24] 참고로 소나무는 2008년 민주당(구 통합민주당)의 상징이었다. 이 당의 로고도 그 당시의 소나무 로고를 그대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