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교황 비오 7세의 세디아 제스타토리아 | |
교황 성 요한 23세 |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
운반하는(gestatoria) 의자(sedia). 직역하면 가마라는 뜻이다.
과거에 '운좌'(雲座)라고 번역했다.[1]
2. 역사
교황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 등에 입당할 때 타는 의전용 가마다. 교황이 이것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다른 성직자들이 하는 장엄행진을 대신하는 것이며 교황 삼층관 등과 함께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품 중 하나이다. 요한 바오로 1세가 마지막으로 사용했다. 교황 외에는 리스본과 베네치아 총대주교가 교황에 비해 작은 사이즈의 마이너 버전을 사용 가능하다.몸체는 보통 붉은색 벨벳 천을 기본으로 하여 금박이나 금자수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금사로 만든 술장식이 달린 팔걸이가 있는 의자 모양으로, 의자의 기단부에 달린 고리를 통해 도금하거나 붉은 천을 씌운 나무막대를 끼우는 방식이다. 이 가마를 운반하는 인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를 상징하는 12명이고, 교황이 가마를 타고 행진할 때면 양쪽 뒷편에서는 공작 깃털로 만들어진 성선(聖扇; 부채)을 든 사람이 뒤따른다. 주변에도 가대복(歌臺服)등을 입은 몬시뇰이나 추기경 등의 성직자들이 따르며 주위를 기사단이나 스위스 근위대가 호위하므로 장관을 이룬다. 성 베드로 대성당처럼 넓은 곳이 아니면 제대로 운용하기가 어려워서, 다른 곳에서는 약식으로 운용했다. 기원은 동로마 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고대 로마 제국 시대에 새로 선출된 집정관을 의자에 싣고 도시를 돌아다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도 주장한다.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는 의자이다. 그러니까 교황을 운반해 와서 내려놓고 막대기를 빼면 그냥 그대로 의자로 사용된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트리엔트 미사를 보았기 때문에 입당하는 방향과 미사 드리는 제대의 방향이 같은 경우가 많았다.[2]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는 종류불문하고 전체적인 디자인이 대부분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하나의 동일한 물건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원래는 교황관처럼 교황들이 자신의 것을 만들고 본인의 문장을 새겨넣는다. 그래서 의자 등받이 양쪽 장식은 각 교황들의 문장이 금박된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다.
다만 모든 교황이 다 만든 것은 아니고, 비오 12세나 바오로 6세 등 근·현대의 교황들은 이전 교황들이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썼는데, 레오 13세의 것이 애용되었다. 마지막으로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를 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경우에도 즉위식에서는 이전부터 물려 내려오던 레오 13세의 것을 탔다.(비오 7세의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비오 9세의 것/레오 13세의 것을 탄 요한 바오로 1세) 대부분의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는 등받이가 원형이고 잎사귀 모양의 자수로 장식되어 있으나, 등받이가 사각형이고 조촐하게 생긴 것도 있는데 이것은 그레고리오 16세의 것이다. 이것은 다소 격식을 덜 차릴 때 간편하게 많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운용하는 인원도 12명이 아니라 8명이다.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에도 이야기가 전해졌는지, 철종~고종 대 문신인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치의와 푸른 두모에 일산 받치고 깃발 꽂네 / 緇衣靑斗盖旛張, 승추는 그를 호위하고 남녀는 꿇어앉으며 / 僧雛扈衛婦男跪>라고 묘사되기도 했다.
3. 사용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는 교황이 라테라노 궁전이나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입당할 때 주로 사용되며 신임 교황의 대관식에도 자주 사용되었다. 신임 교황이 가마에 타면 주례사제는 그 앞에서 삼 조각을 3번씩 태우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Pater Sancte, sic transit gloria mundi.
교황 성하, 세상의 영광이 이렇게 지나갑니다.
교황 성하, 세상의 영광이 이렇게 지나갑니다.
이 말은 가톨릭 영성 서적인 준주성범에 나오는 것으로서, 교황직이 겉보기에는 화려해도 세속의 어느 지위와 마찬가지로 덧없이 지나감을 상기시키는 것이다.[3]
4. 역사의 뒤안길로: 간소화
교황 베네딕토 16세 |
본격적으로 사용이 줄어든 것은 교황 바오로 6세 때다. 바오로 6세는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폐회한 이후엔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봉건 시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교황관을 비롯한 여러 상징들의 사용을 거부하였다. 그 후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는 다음 교황인 요한 바오로 1세의 즉위식에 잠깐 모습을 비추었지만, 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 즉위식 때부터는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들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실 요한 바오로 1세 역시 너무 권위적이라며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군중들이 교황을 보다 잘 볼 수 있도록 타셔야 한다는 실용적인 이유를 붙인 주장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이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실제로 성 베드로 대성당 등 넓고 사람들이 많이 밀집하는 곳에서는 교황이 입당하거나 행진할 때 높은 기단이 있다면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4]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편의적 부분도 해결하고 권위적이지도 않은 방법으로, 수레처럼 간소화된 것을 사용했다.
외국에서는 이것도 그냥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라고 표현하기는 하는데, 애초에 바퀴로 바꾸었을 뿐 가마는 가마니까... 요한 바오로 2세는 큰 집회나 연로하여 걷기가 불편했을 때부턴 이것을 가끔 사용했었고, 베네딕토 16세 역시 재임 말년에 들어서 기력이 쇠약해지자 이를 사용했다. 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 무릎의 건강 상태가 악화 되었음에도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이동시에는 일반 휠체어를 이용하며 제대 위에 올라가야 하는 성찬전례의 경우 다른 추기경에게 맡긴다.
4.1. 교황 전용차
Papamobile자동차가 발명된 이후, 교황 역시 다른 곳에 출타할 때는 예전부터 전용의 의전 차량을 사용했다. 그러나 세디아 제스타토리아를 사용하지 않게 된 이후, 야외에서 일반에 모습을 드러내는 용도로 확장 변형된 교황의 주요 이동수단이 바로 파파모빌(Papamobile)이 '교황 전용차'이다. 이것은 집회에서 퍼레이드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수하게 만들어진 차량이기 때문에 업무차 이동할 때 쓰는 일반적인 관용차와는 별개이며, 전면 유리는 전부 방탄[5] 차체 밑에는 철판을 깔았다.
2012년 9월 5일, 교황 전용차도 친환경을 생각하여 프랑스의 르노 사에 의해 전기자동차로 만들어져, 여름 별장 카스텔 간돌포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기증되었다. 모델명은 '캉구 Z.E.'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빠져 있어서 별장 내에서만 쓸 수 있다고 한다. 베네딕토 16세 이전까지의 교황 전용차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의전차를 타고 다니긴 하지만, 그 의전차가 전부 구형 모델 소형차이면서 방탄 개조가 전혀 되지 않은 차를 타고 다닌다. 위와 같은 유리로 둘러싸인 특별 개조된 모양세를 한 차는 일체 타지도 않으며, 자동차 창문을 열어 손을 내미거나, 선루프를 열고 그 위로 인사를 한다. 테러 위험지역을 방문할 때도 이는 마찬가지이며, 국내를 방문했을 때도 평범한 소형차를 사용하여 화제가 되었다.
2014년 8월 16일 한국 시복식 때는 기아자동차의 쏘울, 기아 카니발, 현대 싼타페 등이 사용되었다.[6]
2024년. 벤츠 전기차로 교체되었다.#
[1] 〈조선 치명자 시복일 저녁 예절에 교황폐하께옵서 운좌를 타시고 베드로 대성당에 임하시는 광경" - 경향잡지 573호, 1925년 9월 15일[2] 성 베드로 대성당의 경우에는 교황제대(발타키노) 주변을 한바퀴 돌고 제자리로 복귀해서 교황을 내려놓는다.[3] 고대 로마시대에 개선 장군을 위한 개선식에서 '메멘토 모리'를 상기시켰던 관습과도 일맥상통한다.[4] 주교는 입당하면서 신자들에게 축복을 주는데 이것도 미사의 일부이다. 당연히 신자들도 이렇게 입당하는 주교나 사제단을 보면서 축복을 받는데 보통 성 베드로 대성당 같은 곳에서는 주변의 경호인력이나 인파 때문에 교황이 아예 보이지도 않게 된다.[5]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미수 사건 이후에 방탄 유리로 설치했다고 한다.[6] 사진을 보면 쏘울은 별다른 개조를 거치지 않은 듯하고, 싼타페나 카니발은 개조를 거쳐 운전석 뒷부분 루프가 잘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