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KIA 타이거즈 소속 내야수 서건창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2. 아마추어 시절
어린 시절에도 동네 야구를 하며 놀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다가, 이후에 아버지와 함께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에 놀러갔다가 그대로 해당 학교의 야구부의 감독의 눈에 띄어 야구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1] 그 이후 충장중을 거쳐 광주에서 프로야구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광주제일고로 진학했다.
광주일고 시절에는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고교 시절의 평가는 공, 수, 주를 두루 갖춘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였으나 어깨 부상 이후 2루수로 전향한다. 2학년이던 2006년에는 부상으로 거의 출장하지 못했으나 1학년 때부터 테이블세터를 맡았고 3학년 때는 주로 3번 타순에 출장했다. 광주일고 1학년이던 2005년에 팀이 우승한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2번 타순에 출장하며 당시 1학년 타자 중에는 유일하게 두각을 드러냈다.[2] 상기 사진의 주무대인 200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서울고등학교 야구부와의 대혈전 끝에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3]
괜찮은 평가를 받던 선수라서 한때 연고팀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감으로도 꼽혔지만, 2008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4] 야구선수로서는 작은 176cm의 키와 어깨 부상 전력 때문으로 추정.
3. LG 트윈스 1기
3.1. 2008 시즌
<colcolor=#ffffff> LG 트윈스 No.68 |
서건창 徐建昌 | Seo Geonchang |
대학교 진학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5] 때문에 애초부터 대학 진학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고려대학교 야구부 감독이었던 양승호 감독이 스카우트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홀어머니 혼자 또 4년을 벌게 할 수 없다고 프로로 바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고교 시절에 발목을 잡았던 어깨 부상 때문에 이렇다 할 활약없이 2008년에 단 1경기에[6][7] 나왔다.
3.2. 2009 시즌
1군 출전 없이 부상으로 방출당하고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결국 프로 선수로서의 생활을 접는가 싶었다.4. 넥센-키움 히어로즈
<colbgcolor=#820024><colcolor=#fff> 넥센 히어로즈 No.14 |
키움 히어로즈 No.14 |
서건창 徐建昌 | Seo Geonchang |
자세한 내용은 서건창/선수 경력/넥센-키움 히어로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
5. LG 트윈스 2기
<colcolor=#ffffff> LG 트윈스 No.14 |
서건창 徐建昌 | Seo Geonchang |
그렇게 2009년 이후 12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방출당했던 12년 전과는 반대로 LG가 필요해서 모셔온, 그야말로 금의환향. 또한 이번에 트레이드 상대가 된 정찬헌은 과거 서건창이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던 2008년 당시 LG에 서건창을 강력 추천해 신고선수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었던 절친 사이라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
먼저 많이 놀라셨을텐데 팬분들께 마지막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10년 넘게 제가 히어로즈라는 팀에 있으면서 제가 잘할 때나,못할 때나,기쁠 때나,슬플 때나 함께 호흡하고 저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저를 아껴주시고,사랑해 주셨던 그런 마음들을 어딜 가서 나 잊지 않고 마음 한편에 담아두겠습니다. 어딜 가서 잊지 않고 마음 한편에 담아두겠습니다. 야구선수의 본분을 잊지 않고,야구를 열심히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팀에 가서도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고 팬분들이 항상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건창 -
키움 히어로즈 공식 유튜브
- 서건창 -
키움 히어로즈 공식 유튜브
2021년 KBO 리그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겪으면서 바닥을 치던 키움 팬층이 동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한국 야구팬들은 필요하다면 프랜차이즈고 MVP출신이고 재깍재깍 팔아버리는 MLB식 운영에 거부감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팬들이 페이롤이나 구단의 재정상황에는 관심이 별로 없기도 하고, 소위 '성골'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집착도 MLB보다 큰 편이라 팬들의 성향에 따라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크다.
그래도 사실 서건창이 프랜차이즈만 아니었다면 트레이드 자체는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락세가 완연하고, 잔여 서비스타임이 적으며, 팀내 고연봉자고, 포지션 활용도도 애매한 데다, 팀을 떠나겠다는 의지까지 보인 선수를 그대로 끌고가기도 쉽지 않기 때문.
5.1. 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서건창/선수 경력/2021년 문서 참고하십시오.본격적인 커리어의 하락세의 시작. 트레이드 이전부터 조짐이 보였으며 트레이드 이후 평균 하락이 완연해졌다.
5.2. 2022 시즌
자세한 내용은 서건창/선수 경력/2022년 문서 참고하십시오.끔찍하게 부진했던 2021년을 능가하는 시즌. 통산 타율 3할도 이 해 무너졌다.
5.3. 2023 시즌
자세한 내용은 서건창/선수 경력/202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2022년을 능가하는 개인 최악의 커리어로우 시즌. 2루수 경쟁에서 김민성과 신민재에게 완전히 밀려났다. 연봉을 무려 2억 원이나 받으면서도 지명타자로 나와 2할밖에 못 치며 비호감만 잔뜩 적립해 LG팬들에게 조롱거리를 넘어 아예 팀 선수로 취급도 못 받는 비참한 신세가 된 시즌이었다.[8] 시즌 후 2차 드래프트에서도 아무 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고 결국 방출되었다.
6. KIA 타이거즈
2024년 1월 15일에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와 연봉 보장액 5천만원으로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나왔다.#[9] KIA 관계자는 경험이 풍부한 서건창 선수가 팀 내 젊고 유망한 내야수들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이번 영입을 결정했다고 영입 배경에 대해 밝혔다. 이어서 김선빈[10] 선수와 함께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길 바라며, 고향팀에서 부활해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게다가 KIA엔 서건창의 키움 시절 코치였던 심재학 단장과 조재영 주루코치가 있고, 동료였던 손승락도 퓨처스 감독으로 있고 고종욱, 주효상도 있기 때문에 팀 적응에도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당초에는 친정팀인 키움 히어로즈에서 먼저 서건창에게 접근했으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나 활용 계획 등을 언급하진 않았기 때문에[11][12] 서건창 본인도 입단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워서 고민하던 중에 KIA에서 손을 뻗었다고 한다.#
일단 KIA 팬들의 반응은 썩 나쁘진 않은데 김선빈과의 재계약을 성공해서 주전 역할이 아닌 김선빈 백업 역할 정도만 맡을 것임이 분명한 상황인 데다[13] 연봉도 5천만원으로 나름 저렴하고 거기다 광주 출신이라는 점도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6.1. 2024 시즌
서교수님의 재개강[14] |
자세한 내용은 서건창/선수 경력/202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7. 국가대표 경력
7.1. 2017 WBC
<rowcolor=#fff> 출전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도루 | 삼진 | 볼넷 | 상세 |
3 | 14 | 4 | 1 | 0 | 0 | 3 | 1 | 0.286 | 0.333 | 0.357 | 0.690 | 1 | 2 | 1 | - |
네덜란드전 2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대만전 9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전해 6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8. 수상 경력
8.1. KBO
서건창의 KBO 수상 경력 | |
2012 | KBO 신인왕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웨스턴 올스타(감독 추천) |
2014 | KBO MVP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웨스턴 올스타(베스트 11) 타격왕 안타 1위[15] 득점 1위[16] |
2016 |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
2024 | 한국시리즈 우승 |
8.2. 기타
서건창의 기타 수상 경력 | |
2012 | 일구상 신인상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신인상 프로야구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올해의 신인상 카스포인트 어워즈 최우수신인상 카스포인트 어워즈 가성비 플레이어 타자 부문 |
2014 |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대상 프로야구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 올해의 선수상 프로야구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 올해의 기록상 넷마블 마구마구 일구상 최고타자상 카스포인트 어워즈 올해의 카스모멘트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골든포토상 |
9. 연도별 성적
서건창의 역대 KBO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2008 | LG | 1 | 1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000 | .000 | .000 | - | -0.03 |
2009 | 1군 기록 없음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2012 | 넥센-키움 | 127 | 501 | 115 | 21 | 10 (1위) | 1 | 70 | 40 | 39 (2위) | 45 | 43 | .266 | .342 | .367 | .709 | 107.8 | 4.78 |
2013 | 86 | 372 | 84 | 13 | 2 | 0 | 53 | 18 | 26 | 33 | 29 | .266 | .352 | .320 | .671 | 87.8 | 1.98 | |
2014 | 128 (1위) | 616 (1위) | 201 (1위) | 41 (1위) | 17 (1위) | 7 | 135 (1위) | 67 | 48 (3위) | 59 | 47 | .370 (1위) | .438 (4위) | .547 | .985 | 148.4 | 6.65 (2위) | |
2015 | 85 | 368 | 93 | 24 | 4 | 3 | 52 | 37 | 9 | 42 | 24 | .298 | .381 | .429 | .810 | 106.4 | 1.69 | |
2016 | 140 | 646 | 182 (5위) | 30 | 7 (4위) | 7 | 111 (5위) | 63 | 26 | 69 | 58 | .325 | .406 | .441 | .847 | 117.8 | 4.45 | |
2017 | 139 | 615 | 179 (3위) | 28 | 3 | 6 | 87 | 76 | 15 | 67 | 68 | .332 | .403 | .429 | .832 | 117.9 | 3.94 | |
2018 | 37 | 160 | 48 | 12 | 0 | 0 | 28 | 15 | 2 | 12 | 19 | .340 | .399 | .426 | .824 | 113.9 | 0.49 | |
2019 | 113 | 486 | 128 | 23 | 3 | 2 | 67 | 41 | 17 | 49 | 50 | .300 | .373 | .383 | .755 | 117.0 | 2.36 | |
2020 | 135 | 595 | 134 | 28 | 5 | 5 | 79 | 52 | 24 | 91 (1위) | 58 | .277 | .390 | .386 | .776 | 117.3 | 2.78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2021 | 키움/LG | 144[17] (1위) | 600 | 130 | 24 | 2 | 6 | 78 | 52 | 12 | 69 | 77 | .254 | .350 | .344 | .694 | 97.6 | 3.11 |
2022 | LG | 77 | 247 | 49 | 10 | 1 | 2 | 39 | 18 | 8 | 20 | 44 | .224 | .299 | .306 | .605 | 72.7 | -0.12 |
2023 | 44 | 126 | 22 | 5 | 2 | 0 | 14 | 12 | 3 | 10 | 14 | .200 | .260 | .282 | .542 | 46.1 | -0.90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2024 | KIA | 94 | 248 | 63 | 14 | 1 | 1 | 40 | 26 | 3 | 36 | 31 | .310 | .416 | .404 | .820 | 124.5 | 1.51 |
<rowcolor=#373A3C> KBO 통산 (14시즌) | 1350 | 5581 | 1428 | 273 | 57 | 40 | 853 | 517 | 232 | 602 | 564 | .298 | .380 | .403 | .783 | 110.8 | 32.66 |
[1] 스스로가 말하길,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일부러 외야쪽의 눈에띄는 장소에서 캐치볼을 하며 감독의 눈에 띄게 의도한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2] 참고로 광주일고가 2005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할 당시 3학년 멤버로는 강정호(우수투수상 및 최다타점상), 나승현(MVP), 김성현(최다안타상 및 최다득점상), 2학년 멤버로는 김남석, 김강(수훈상 및 타격상)이 있다. 강정호와 서건창 이 둘은 넥센에서 키스톤 콤비를 이루며 다시 만났으며, 2012시즌 나란히 골든 글러브를 받고 2014시즌 신기록을 쏟아내며 리그를 평정했다.[3] 정찬헌, 서건창, 허경민, 장민제, 윤여운, 이형종, 안치홍, 유민상, 박건우, 안성무 등 훗날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던 결승전 경기다.[4] 당시 KIA는 2008년 1차 지명으로 군산상고 전우엽을 지명했다. 그리고 훗날 서건창은 진짜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된다.[5]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을 다니며 야구 선수의 꿈을 꾸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서건창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6] 7월 23일 잠실 히어로즈전에 대타로 나와 송신영에게 삼구삼진을 당했다. 그리고 4년 후 서건창이 넥센으로 입단하고 송신영이 NC에서 트레이드되어 친정으로 복귀하면서 둘은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7] 하지만 서건창의 이 역사적인 LG 1군경기는 자료영상이 없다. 이 경기 중계권을 가진 MBC ESPN이 원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던 이승엽의 경기를 중계하려다가 이승엽이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자 급하게 설기현의 풀럼 방한 친선경기를 편성해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날 경기 중계가 안된 것으로 양팀 팬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정말 기적적으로 저 1군 경기 촬영된 모습이 발굴된 건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깝다.[8] 어느 정도 였냐면 서건창이 선발로 출전하는 것도 아니고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는 사실만으로도 LG 팬들이 경기를 일으켰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제외되자 후반기 부진으로 인해 같이 제외된 박명근, 이지강과는 달리 아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환호하는 상황까지 펼쳐졌다.[9] 옵션으로 7천만원이 있어 총액은 1억 2천만원이다.[10] 서건창과 동갑으로, 2명 다 KIA 내야진의 최고참 선수들이다.[11] 게다가 키움은 시즌 종료 후 진행됐던 2차 드래프트에서 서건창과 같은 2루수가 주 포지션인 최주환을 영입했기 때문에 서건창 영입이 우선 순위에서 멀어진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12] 다만 키움 구단에서는 서건창이 답을 주었을 경우 이용규나 임창민 수준의 조건을 준비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기사[13] 당장 KIA 단장인 심재학도 대놓고 경기 후반에 쓸 백업 용도로 영입했다고 강조를 했다. 사실 KIA의 백업 2루수 문제가 심각하기도 한 것이 김선빈이 부상으로 빠지면 그 자리에 김규성이나 최정용이 들어가는데 둘 다 김선빈에는 한참 못 미치기 때문. 그래도 서건창은 이름값에선 저 둘엔 앞선다.[14] 9월 5일 10회말 타석에서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는 서건창의 모습[15] KBO 리그 최초 단일시즌 200안타[16] KBO 리그 역대 득점 2위[17] 144경기를 나갔지만 전 경기 출장은 아닌 특이한 기록을 세웠는데, 트레이드 당시 키움이 LG보다 많은 경기를 치른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때문에 트레이드 당시 '이론상 국내 최초 145경기 출장도 할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그건 실패. 참고로 서울 SK 나이츠 감독 전희철은 선수 시절 팀 경기수가 54게임인데 트레이드 과정에서 SK가 경기수가 적어 KBL 최초로 개인 선수 55경기를 뛴 사례가 있었고 결국 KBL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