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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6 23:56:41

산타 로사 히치하이커 연쇄 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피해자
2.1. 1차 사건: 모린 스털링과 이본 웨버2.2. 2차 사건: 킴 웬디 앨런2.3. 3차 사건: 로리 리 쿠르사2.4. 4차 사건: 캐롤린 데이비스2.5. 5차 사건: 테레사 월시2.6. 6차 사건: 칼리스토가 제인 도
3. 의심되는 피해자
3.1. 리사 미셸 스미스3.2. 지네트 카마헬레3.3. 케리 그레이엄과 프랜신 트림블3.4. 이외 의심되는 희생자
4. 용의자
4.1. 조디악 킬러4.2. 테드 번디4.3. 잭 보킨4.4. 짐 모르드개

1. 개요

1972년과 1973년에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와 노스 베이 지역의 산타 로사에서 여성 히치하이커를 대상으로 발생한 미해결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는 모두 가파른 곳 근처의 시골 지역 제방이나 도로 근처의 개울 바닥에서 나체로 발견되었다.

2. 피해자

2.1. 1차 사건: 모린 스털링과 이본 웨버

모린 루이스 스털링(12, Maureen Louise Sterling)과 이본 리사 웨버(13, Yvonne Lisa Weber)는 같은 중학교 학생으로, 1972년 2월 4일 오후 9시쯤 레드우드 엠파이어 아이스 아레나(Redwood Empire Ice Arena)를 방문한 후 산타로사 북서쪽 게르네빌 로드(Guerneville Road)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그날 저녁 실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한 지인은 2019년 인터뷰에서 스털링과 웨버에게 "검은 머리를 가진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키가 크고 날씬한 남자가 마리화나를 피우자고 요청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인터뷰한 지인은 마리화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행을 거부했다. 목격자는 돌이켜 봤을 때 그 남자가 미국의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와 많이 비슷했다고 증언했다. 그 친구는 2024년 HBO Max 다큐멘터리 짐에 관한 진실(The Truth About Jim)에서도 인터뷰를 했으며 로비에 서서 빙판 위의 스케이터들을 지켜보는 남자의 옆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남자가 백인이었고 키가 약 5피트 10인치(177cm)인 날씬한 체격에 짧은 검은 머리와 튀어나온 코를 갖고 있으며 데님 재킷을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시대에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남자는 보통 긴 머리였으나 이 남자는 머리가 짧아서 선생님처럼 보였다고 한다. 당시 다른 보도에 따르면 소녀들이 이전에 러시아 강 근처에 사는 남자와 접촉했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경찰도 그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소녀들의 동급생들은 다음 주에 학교에서 이들의 행방에 대해 심문을 받았지만 경찰이 받은 단서 중 어느 것도 유익한 것으로 판명되지 않았기에 경찰은 그 소녀들이 가출한 것으로 믿었다.

그들의 시신은 1972년 12월 28일 프란츠 밸리 로드(Franz Valley Road)의 포터 크릭 로드(Porter Creek Road)에서 북쪽으로 3.5km(2.2마일) 떨어진 도로 동쪽에서 약 20m(66피트) 떨어진 가파른 제방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현장에서는 귀걸이 1개[1], 주황색 구슬, 십자가가 달린 14캐럿 금 목걸이가 발견됐으며 옷이나 기타 물품은 없었다. 10개월이 지나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사망 원인은 유골로 확인할 수 없었다. 스털링의 어머니는 십자가 목걸이와 귀걸이를 통해 딸의 신원을 확인했다. 현장의 수풀에서 두 소녀가 살인자 또는 살인자에 의해 제지되었음을 암시하는 끌린 흔적이 발견되었다.

2.2. 2차 사건: 킴 웬디 앨런

미술 학생 킴 웬디 앨런(19, Kim Wendy Allen)[2]는 젊은 여성 히치하이커에 대한 강간 및 살인 위험에 대해 어머니와 대학 교수로부터 주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히치하이킹을 했다.

사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히치하이킹이 거의 일상화된 수준이었고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다른 많은 젊은 여성들처럼 앨런도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믿지 않았으며 1972년 3월 4일에 두 남자의 차를 타고 락스펄 내추럴 푸드(Larkspur Natural Foods)에서 산 라파엘(San Rafael)까지 이동했다. 그녀에게 차를 태워 주었던 두 남자는 그녀가 북쪽으로 향하는 101번 고속도로 벨 애비뉴 입구 근처에서 학교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모습을 오후 5시 20분경에 마지막으로 보았고 이때 앨런은 빨간색 한자가 적힌 커다란 나무통을 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시신은 다음날 산타 로사의 엔터프라이즈 로드(Enterprise Road)에서 20피트(6.1m) 떨어진 개울 바닥 제방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앨런은 발목과 손목이 묶인 채 성폭행을 당하고 끈으로 천천히 목이 졸려 사망했으며 오른쪽 옆구리에는 기계 공장에서 사용하는 기름과 유사한 기름진 물질이 남아 있었다. 현장에서는 금고리 귀걸이 한 개가 발견됐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던 그녀를 태워준 두 남자는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고 용의자에서 제외되었다. 그녀의 수표장은 그녀가 살해된 지 20일 후인 1972년 3월 24일 아침 캘리포니아주 켄트필드 우체국 건너편의 우편함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은 수표책에 있는 두 개의 지문이 범인의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당시의 기술로는 정확한 범인을 찾기 어려웠다.

2.3. 3차 사건: 로리 리 쿠르사

중학교 학생인 로리 리 쿠르사(13, Lori Lee Kursa)는 쇼핑을 하던 중 가출해 산타 로사의 친구에게 향했으며 1972년 11월 11일 어머니에 의해 실종 신고를 받았다. 쿠르사의 가정생활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주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상습적인 가출을 했다.

쿠르사의 얼어붙은 유해는 1972년 12월 14일 산타로사의 린콘 밸리(Rincon Valley) 북동쪽에 있는 칼리스토가 로드(Calistoga Road)에서 약 15m 떨어진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범인은 시체를 제방 위로 최소 9.1m(30피트) 떨어진 곳에 던져서 유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하고 있던 와이어 귀걸이가 하나 없어져 발견되지 않았다.

쿠르사의 사망 원인은 척수 압박과 출혈로 인한 경추 골절이었다. 강간을 당하지 않았으며 발견되기 1~2주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어졌다. 나중에 두 명이 쿠르사를 목격한 것 같다며 경찰에 제보했는데 첫 번째 목격자는 칼리스토가 로드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목격했다고 증언했고 두 번째 목격자는 나중에 쿠르사가 사망한 채 발견된 현장 근처에 주차된 픽업 트럭에서 덥수룩한 머리를 가진 백인 남성과 함께 있는 소녀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나중에 납치 장면에 대한 목격자가 나왔는데, 1972년 12월 3일에서 9일 사이 어느 날 저녁 파크허스트 드라이브(Parkhurst Drive)에서 두 남자가 어린 소녀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두 남자가 소녀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소녀는 신체적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 소녀의 전체적 생김새는 쿠르사와 유사했다. 목격자는 남자들이 소녀와 함께 길을 가로질러 달려가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의 뒤쪽으로 소녀를 밀어 넣는 것을 목격했다. 그 후 차량은 칼리스토가 로드 북쪽으로 속도를 내서 사라졌다고 한다.

당국은 쿠르사가 납치되어 강제로 밴에 탑승되었고, 옷이 벗겨졌으며, 납치범들로부터 탈출하려고 과속으로 달리던 차량의 조수석 문을 열어서 뛰어내려서 목이 부러진 것으로 추측했다. 쿠르사를 납치한 사람들은 그녀를 길가에 버렸고, 부러진 목 때문에 쿠르사는 움직일 수 없었지만 부상으로 죽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을 것이기에 쿠르사는 천천히 죽어갔을 것이라고 추측되었다.

2.4. 4차 사건: 캐롤린 데이비스

캐롤린 나딘 데이비스(15, Carolyn Nadine Davis)는 1973년 2월 6일에 캘리포니아주 북부 샤스타 카운티의 앤더슨 외곽에 있는 집에서 도망친 후 5개월 동안 여행을 했다.[3] 데이비스는 이 사이에 여동생에게 샤스타 카운티에서 살인을 목격했으며 너무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녀의 여동생은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지만 데이비스는 너무 두려워서 그녀의 여동생 침실에 있는 옷장 바닥에서 자겠다고 고집하기도 했다. 아마 데이비스 여동생의 남자 친구가 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장소를 그나마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여동생은 데이비스를 성숙하지만 길을 잃은 "착한 소녀"라고 묘사했다.

결국 데이비스는 살인 사건과 관련된 누군가에게 발견될 수도 있다는 편집증에 빠져 여동생의 아파트를 떠나 히치하이킹하여 일리노이로 향했는데 여동생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1973년 여름에 가버빌로 돌아왔다. 데이비스의 여동생에 따르면 데이비스는 1973년 7월 초 가버빌에서 언니와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할머니의 집에 약 2주 동안 머물렀다가 일리노이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데이비스는 일리노이로 돌아가기 전에 친구를 방문하기 위해 먼저 가버빌 남쪽에서 히치하이킹을 할 계획이었다. 데이비스는 보통 길에 있을 때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었지만, 그녀의 여동생은 데이비스가 1973년 7월 15일 가버빌을 떠난 후 다시는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의 할머니는 1973년 7월 15일 데이비스를 가버빌 시내로 데려가 101번 고속도로에서 두 블록 떨어진 우체국 앞에 내려줬고 데이비스는 그날 오후 가버빌 남쪽 방향 고속도로 101 램프 근처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캐롤린 데이비스의 시신은 1973년 7월 31일 산타로사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곳은 7개월 전 스털링과 웨버의 유해가 발견된 곳에서 불과 3피트(0.91m) 떨어진 곳이었다. 그녀의 사망 원인은 발견되기 10~14일 전에 스트리크닌에 중독된 것이었다. 스트리크닌이 데이비스에게 어떤 식으로 투여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며 스트리키닌은 다른 약물과 혼합되어 사용되지만 부검 결과 체내에서 헤로인이나 암페타민 같은 다른 약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병리학자는 그녀의 사망 추정 날짜가 할머니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지 5일 후인 1973년 7월 20일이라고 판단했다. 강간은 당하지 않았으며 언덕의 수풀이 눌린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또는 다수의 살인범에 의해 도로에서 던져졌다고 가정되었다. 한 수사관이 데이비스가 발견된 장소 위의 도로에서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영혼의 운반자"를 의미하는 마법 문양을 발견했는데 이는 조디악 킬러와의 연관성이 있었다.

2.5. 5차 사건: 테레사 월시

테레사 다이앤 스미스 월시(23세, Theresa Diane Smith Walsh)는 1973년 겨울에 남편, 어린 아들과 떨어져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녀는 히치하이킹으로 캘리포니아를 횡단했으며 종종 101번 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얻어 탔다. 다른 여성들이 그랬듯 그녀는 히치하이킹하는 동안 어떤 어려움도 겪어본 적이 없었고 자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1973년 12월 말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 말리부에 있었지만 크리스마스에 어머니와 아들을 만나러 집에 가기 위해 12월 22일 말리부의 주마 해변에서 가버빌까지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던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부분적으로 물에 잠긴 월시의 시신은 6일 후 마크 웨스트 크릭(Mark West Creek) 에서 카약을 타던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녀는 빨랫줄에 묶인 채 성폭행을 당하고 목이 졸려 숨진 지 일주일 정도 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이 지역에 폭우가 있었고 그로인해 유속도 빠른데다 수위가 높아 시체가 수 마일을 표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2.6. 6차 사건: 칼리스토가 제인 도

1979년 7월 2일, 7년 전 로리 리 쿠르사(Lori Lee Kursa)의 시체가 회수된 곳에서 약 91m(100야드) 떨어진 칼리스토가 로드(Calistoga Road) 계곡에서 젊은 백인 여성 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유해의 나이로 인해 당국은 처음 후술할 지네트 카마헬레(Jeannette Kamahele)의 것이라고 추정했으나 나중에 치과 기록을 비교한 결과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피해자는 살해 당시 족쇄에 묶여 팔이 골절되었으며 시체를 더플백에 담아 계곡에 버려둔 상태였다. 그러나 사망 원인을 밝힐 만한 다른 증거는 없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는 대략 16~21세였으며 체리 그림이 그려진 금속 사탕 통에 보관되는 하드 콘택트렌즈[4]를 착용했으며 빨간색, 적갈색 또는 갈색 머리를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키는 3인치(1.60m)에 달했고 한때 갈비뼈가 부러진 적이 있었으나 살인 당시에는 이미 나은 상태였다. 몸무게와 눈 색깔은 확인할 수 없었고 옷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 전문가는 피해자가 1972년에서 1974년 사이에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대략 19세라고 판단했다. 묶인 방식은 테레사 월시의 방식과 같았다.

3. 의심되는 피해자

3.1. 리사 미셸 스미스

리사 미셸 스미스(17, Lisa Michele Smith)는 캘리포니아주 소노마 카운티 산타 로사의 헌 애비뉴(Hearn Avenue)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던 중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으며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다. 1971년 3월 16일 오후 7시쯤 집에서 가까운 헌 애비뉴를 따라 히치하이킹을 하던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입고 있던 러플이 달린 흰색 블라우스, 짙은 색의 피코트, 녹색 나팔바지 청바지, 카우보이 부츠와 함께 사라졌다.

1971년 3월 26일 통칭 '리사 스미스'라는 젊은 여성이 히치하이킹을 하던 중 남성 운전자에게 태워졌다. 그는 총을 휘두르며 그녀를 강간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캘리포니아주 노바토 남쪽으로 시속 55마일로 달리고 있던 픽업 트럭에서 뛰어내렸고 두개골 골절과 여러 개의 심한 상처 및 타박상으로 노바토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때 병원의 한 간호사는 그녀가 21세쯤 되어 보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971년 4월 1일 산타로사 프레스 민주당(Santa Rosa Press Democrat)에 게재된 기사에서는 노바토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리사 스미스"가 실종된 17세 소녀 리사 미셸 스미스와 동일인이라고 보도했다. 스미스라고 추정되는 사람은 당국이 그녀를 조사하기 전에 병원을 떠나 히치하이킹을해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실종된 17세 소녀 리사 미셸 스미스가 실제로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도했기 때문에 두 명의 리사 스미스가 실제로 같은 여성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병원 및 법 집행 기록은 2011년에 사라졌으며 당국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종된 리사 미셸 스미스 또는 병원에서 치료받은 리사 스미스를 알고 있던 사람을 찾는 중이다. 당국은 그녀가 살인 피해자였을 가능성이 있거나 그녀의 사건이 같은 기간 동안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다른 공격과 관련되었을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3.2. 지네트 카마헬레

하와이 출신의 산타 로사 주니어 칼리지 학생인 지네트 카마헬레(20, Jeannette Kamahele)는 1972년 4월 25일 101번 고속도로의 진입로 근처에서 히치하이킹하던 중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한 친구는 그녀가 20~30세 백인 남성이 운전하는 빛바랜 갈색 쉐보레 픽업 트럭에 탔다고 제보했다. 카마헬레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1979년 7월 2일에 발견된 신원 미상 시신이 카마헬레가 아니냐며 거론되었지만 치과 기록 조회 결과 아니라고 밝혀졌다.

3.3. 케리 그레이엄과 프랜신 트림블

케리 앤 그레이엄(15, Kerry Ann Graham)과 프랜신 마리 트림블(14, Francine Marie Trimble)은 1978년 12월 중순 고등학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사라졌다. 1979년 7월 멘도시노 카운티에서 유골이 발견되었으나 당시에는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고 DNA 분석 덕분에 2015년에서야 그레이엄과 트림블 임이 밝혀졌다.

소녀들은 친구에게 히치하이킹을 해서 산타 로사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 친구는 다른 누군가가 포레스트빌의 쉐브론 주유소에서 소녀들이 히치하이킹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해줬다며 이를 경찰에 제보했다. 다만 이 일이 소녀들이 실종된 날에 일어났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트림블은 또한 어머니에게 산타 로사의 몰에서 크리스마스 쇼핑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트림블의 어머니는 1978년 12월 15일에 집에서 소녀들을 보았고 그레이엄의 여동생은 1978년 12월 15일 또는 16일에 그녀의 부모님 집에서 그들을 본 것을 기억했다. 이들은 그레이엄의 여동생에게는 파티에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레이엄은 맹장염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지만 복용하고 있던 항생제를 챙기지 않은 상태였다.

트림블의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자 며칠 이내에 그녀가 실종되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다만 그레이엄은 그녀의 언니들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함께 있기 위해 가출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레이엄의 부모는 그녀가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았고 몇 년 이 지날때 까지 여동생의 실종 사실을 그녀의 오빠에게 말하지 않았다. 경찰은 소녀들의 동급생 중 누구도 심문하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실종된 것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두 소녀가 평소 불량한 아이였다며 단순 가출로 생각하며 수사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신원 확인도 수십년이 지나서야 그레이엄의 여동생의 요청으로 DNA 검사를 진행해 겨우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국은 1979년에 발견된 희생자들의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없었지만 현장에서 덕테이프를 통해 두 소녀가 결박된 것으로 추정했다. 현장에서 그레이엄의 여동생이 그레이엄에게 준 새 모양의 귀걸이 하나가 발견되었다. 역시 귀걸이의 다른 한 쪽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옷이나 기타 물품이 발견되지 않았다.

3.4. 이외 의심되는 희생자

4. 용의자

4.1. 조디악 킬러

체포되지 않은 조디악 킬러는 1974년 1월 29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보낸 "엑소시스트 편지"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기호와 37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고 주장하는 글 사이의 유사성으로 인해 용의자에 올랐다. 1969년 11월 9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작업 방식을 변경한다며 "더 이상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인을 저지를 때, 그들은 일상적인 강도, 분노에 찬 살인, + 몇 가지 가짜 사고 등으로 보일 것이다."라며 살해 방식을 바꾸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법 집행 기관은 이 연쇄 범죄에 성폭행이 포함된 것으로 보았지만 조디악의 범행은 성범죄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조디악을 배제했다.

4.2. 테드 번디

워싱턴주, 콜로라도주, 유타주, 아이다호주 에서 유사한 범죄로 체포된 후 테드 번디는 살인 혐의를 받았다. 번디는 이 기간 동안 인근 마린 카운티에 있었지만 1970년대와 1989년 조사 당시 자세한 신용카드 기록에 의해 그가 일부 실종 날짜에 워싱턴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소노마 카운티 형사에 의해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2011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기사에서는 신용카드 영수증 날짜를 보면 번디가 캘리포니아로 운전하여 범죄를 저지른 다음 워싱턴으로 돌아갈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테드 번디는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수백 마일을 운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수사관은 범인이 아마 산타 로사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우편배달부나 공공 시설 직원으로 일했던 현지 남성만이 외딴 시골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번디를 용의자에서 배제했다고 말했다.

4.3. 잭 보킨

2021년 12월 78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사망한 폭력적인 연쇄강간범 잭 알렉산더 보킨(Jack Alexander Bokin)이 법 집행 기관에 의해 또 다른 유력 용의자로 거론되었다.

DNA 검사 결과 그는 2022년에 1996년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지에서 발생한 32세 미셸 빌(Michelle Veal)의 미제 살인사건과 연관되어 있었는데 수사관들은 빌 살인과 이 사건 사이의 유사점을 지적했다. 피해자 미셸 빌은 구타를 당하고 소노마 카운티의 한 길가에 누드로 남겨져 있었는데 이는 산타 로사 사건의 피해자들이 당한 방식과 같았다. 그는 한 피해자를 몇 시간 동안 묶고 강간하고 신체적 폭행을 한 뒤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남겨두고 기절한 그녀를 버려두고 떠났지만 그 여자는 살아 남았고 그의 재판에서 그에 대해 증언하면서 체포되었다. 살인 미수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강간 피해자의 대부분은 성노동자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폭력적인 성폭행을 포함해 범죄 행위와 반사회적 행동을 저질렀으며 폭력적인 성폭행에 대한 그의 첫 형사 유죄 판결은 21세였던 1964년에 30세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1970년과 1990년 사이에 서로 다른 시기에 절도죄로 5번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었다.

4.4. 짐 모르드개

2024년 Max 다큐멘터리 The Truth About Jim은 197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에 살았던 고등학교 농업 교사이자 시간제 조경 디자이너인 짐 모르드개(Jim Mordecai)가 산타 로사 히치하이커 살인자였을지 여부를 탐구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2008년 66세 또는 67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한 모르드개는 알려진 범죄 기록이 없었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종종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사람들을 결박하겠다고 말하며 10대 소녀들을 연쇄적으로 강간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모르드개의 가족은 1970년대 초반에 고립된 목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산타 로사 주변의 뒷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죽음 이후 가족들은 그의 소지품 중에서 보석 상자를 발견했는데 모르드개의 가족 중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그 보석은 1970년대 10대 소녀들이 착용했던 종류의 것이었다. 특히 주황색 구슬이 달린 후프 귀걸이로 묘사된 한 품목은 피해자 중 첫 번째 희생자 모린 스털링이 착용한 것과 일치했다.

모르드개에 대한 DNA 프로필과 그에 관한 기타 정보는 2022년 8월 소노마 카운티 보안관부에 넘겨졌고 용의자의 DNA는 살인 피해자 두 명에게서 채취되어 용의자의 DNA 프로필과 비교 중이다.


[1] 귀걸이의 다른 한 짝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2] 이름이 김(Kim)일 뿐 한국인 또는 한국계 미국인은 아니다. 킴 카다시안과 비슷한 경우다.[3] 일부 기록에 따르면, 가출 직전 데이비스는 어머니에게 “엄마. 나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할 유일한 일은 나 자신을 살리는 것뿐입니다. 사랑해요, 캐롤린.” 이라는 내용의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얼마나 집에 가기를 싫어했는지 데이비스는 어머니가 편지를 보낸 위치를 알고 찾아와 집에 가게 할까봐 두려워서 남쪽으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친구들에게 다른 마을의 소인이 찍힌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4] 소프트 콘택트렌즈가 출시된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하드 콘택트렌즈가 잘 판매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