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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05:48:16

사라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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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지리4. 정치5. 분리주의6. 사회
6.1. 종교
7. 교통8. 출신 인물

1. 개요

말레이어: Sarawak,Sarawak Bumi Kenyalang
말레이어 자위 문자: سراوق بومي کڽالڠ
중국어/타밀어: 砂拉越/சரவாக்
파일:사라왁 주기.svg 파일:사라왁 문장.svg
주기 주 문장
파일:external/kuchingtravelagency.com/maps-of-Sarawak1.jpg
사라왁 주의 지도
Bersatu, Berusaha, Berbakti/
(단결, 노력, 충성)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말레이시아의 12번째 주이자 가장 큰 주. 별칭은 "Bumi Kenyalang"으로 의미는 "코뿔새의 땅"이다.

'사라왁'이란 이름의 연원에는 두 개의 설이 있다. 안티모니를 뜻하는 현지 말레이어 방언 serawak에서 왔다는 설이 첫 번째이며, 다른 하나는 1841년 영국제임스 브룩이 이곳의 왕이된 이후 원래 주인이었던 브루나이의 술탄이 "그대에게 바친다"는 뜻의 "Saya serah pada awak"에서 왔다는 설이다. 첫 번째 설이 유력하고, 두 번째 설은 거의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awak이란 단어는 서말레이시아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동말레이시아에서는 전혀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루나이에서는 "awda"나 "kau"를 사용했고 사라왁인들은 "kitak"을 사용한다. 현대에는 서부 방언을 사용하는 매체의 영향으로 "awak"의 사용 비중이 다소 높아지고 있으나 반감 때문에 잘 받아들여지는 편이 아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awak"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한 적이 없어 두 번째 설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면적은 124,450㎢로 북한 전체와 비슷하다. 제주도와 비슷한 면이 많아 종종 서로 비교되기도 하며, 현지 방언은 제주 방언만큼이나 어려워서 아예 다른 언어로 봐도 무관할 정도다.

2. 역사

[1]

고대에는 여러 왕국이 있었다. 그중 사리바스라는 왕국이 사라왁의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고 하지만 아닐 확률이 높다고 한다.

사라왁은 전통적으로 브루나이 술탄국의 영토였다. 바다에 인접한 쿠칭 일대만이 16세기 포르투갈에 의해 발견되어 "Cerava"로 알려졌다.[2] 그러던 1830년대 후반 영국제임스 브룩이 지리적 이점을 노리고 이 지역에 상륙했다. 그리고 브루나이 술탄의 의뢰를 받아 이곳에 창궐하던 해적들을 물리쳤고, 이후 술탄국 내에서 벌어진 반란을 진압했다. 1841년 브루나이 술탄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사라왁의 왕으로 봉하면서 사라왁 왕국이 건국되었다. 사라왁 왕국은 당시 아시아에서 유례없는 백인 왕조였는데 어떻게 보면 영국의 괴뢰국에 가까웠다. 이후 브룩은 점진적으로 브루나이 술탄국의 영역을 잠식해나갔고, 림방 지역을 마지막으로 지금의 영역을 확립하였다. 이로 인해 브루나이의 영토는 두개로 나뉘게 되었다.[3]

영국은 1880년대부터 지금의 동말레이시아 지역과 브루나이를 영국령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사라왁도 예외는 아니라서 1888년 완전히 영국령 식민지에 편입되었다. 영국 치하에서 영국의 문물과 시스템이 도입되었지만 홍콩, 싱가포르처럼 국제적인 무역지대로 변모하는데 실패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이 점령하고, 백인 왕실은 호주로 망명했다. 1945년 일제의 패배과 함께 독립했으나 이듬해 영국이 다시 점령했다.

1946년 백인 군주가 통치권을 본국에 양도하면서 왕국은 소멸하고, 본국에서 파견한 총독이 다스리는 사라왁 식민지가 설치되었다. 1946년 설립된 말라야 연합과 1948년 새로 신설된 말라야 연방에도 편입되지 않았다. 1963년 7월 22일 독립했으나 연방편입을 위한 임시 독립으로 남은 2개월 동안 사실상 영국의 괴뢰정권으로 기능했다. 8월 31일 말라야의 독립 기념일에 맞춰 말레이시아이 신설되었으나 사라왁의 연방 합류는 9월 16일에 성사되었다. 그러자 영국은 완전히 철수하였다.

일본나리타시 일대와 마찬가지로 사라왁에서도 비슷한 시기 공산주의 운동이 횡행하였다. 1970년 취임한 총리 압둘 라흐만 야쿱은 공산주의 척결을 시도했는데 문제는 이를 빌미로 이슬람화를 종용하고,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독재정치를 펼쳤다. 그리고 본토의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진입과 일당독재를 구축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 충돌을 빚어 다소 안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

1981년 야쿱은 11년의 통치를 마치고 조카인 압둘 타입 마흐무드에게 총리직을 물려줬다. 그리고 33년 장기독재의 시기가 열렸지만 상대적으로 삼촌에 비해 주민들의 자치를 존중하였다. 그러나 독립요구를 받아주거나 자치확대를 승인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평가가 다소 엇갈린다.

1990년 공산주의자들과의 평화협정이 있었지만 소련의 붕괴로 좌익들은 꼼짝없이 발언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타입은 이를 빌미로 정권을 연장하였는데 말레이시아의 자치단체장으로서는 유례없는 33년의 장기집권을 실현하였다. 그러나 2014년 총독으로 임명되어 직위는 소멸되었고, 아데난 사템이 새 총리가 되면서 장기집권은 종식을 맞이했다.

3. 지리

우림 기후가 대부분인 말레이시아 전체에서도 비가 특히 많이 오는 지역이다. 서말레이시아에서 다우지에 속하는 쿠알라트렝가누의 연 강수량이 3,000mm 정도인데, 사라왁은 거의 전역이 3,000mm 이상의 강수량을 보이고 주 면적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지역은 강수량이 3,500mm 이상이다. 주도 쿠칭은 4,200mm 정도의 연 강수량을 보인다.

4. 정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Timeline_of_evolution_of_political_parties_in_Sarawak.svg.png

시대별로 변한 사라왁 원내정당들의 변화를 보여준 그림. 보면 알겠지만 정작 본토의 여당이 없는데 다소 주민들의 반감이 걸려 문제가 된 것 같다. 천하의 개쌍놈 압둘 라흐만 야쿱이 집권하던 시기 UMNO의 진입이 계획되었으나 결국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고 하지만 언제 또 전투종족이 되어 난리필 지 모르기 때문에 못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본토의 정당들 중 진입한 정당들은 민주행동당(DAP)이나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과 같은 야당들.[4] 이들은 1978년부터 진입하기 시작했는데 다소 현지 주민들을 배려하는 쪽이긴 해서 그런지 반발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주민들을 대변하는 지역 정당들은 죄다 본토의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 소속이거나 아니면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5]인데 때문에 독립이란 희망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1970년대 전후로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면서 지금은 많이 수그러든 상태. 게다가 인도네시아와의 분쟁 등으로 안보 문제가 다소 결여되어 있어 여당에 대한 지지가 갈수록 세지고 있는 상황.

물론 옛 술루왕국의 고토를 주장하는 술루족이 있는 사바에 비하면 다소 안전하지만 일단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관계가 얼마나 안 좋은지를 보면 그래도 맘 편하지는 못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중국러시아와 같은 위치이기 때문에 좀 불안한 건 마찬가지.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안보 문제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고, 본토에 비해서는 그래도 훨씬 심한 편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여당을 지지하는 게 안전하다는 입장.

5. 분리주의

말레이시아에서 사바와 더불어 분리주의가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6]

사라왁과 사바, 소위 동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 본토인 서말레이시아와 큰 관련이 없는 동네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독립 열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반군들이 결성되고 몇 차례 독립을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죄다 실패했다.

1957년 말라야 연방은 먼저 독립을 쟁취했으나 이후 싱가포르들의 가입이 계획되며 말레이시아로의 개편이 논의된다. 말라야의 우파 계열 정치인들은 싱가포르가 중국계 다수 도시이며 좌익 인민행동당[7]을 지지하는 싱가포르의 가입을 탐탁잖아 했으며 특히 싱가포르 단독 가입 시 말레이시아에 중국계가 말레이계가 더 많았을 지경이니 말 다했다. 따라서 말라야의 정치인들은 말레이계가 많은 북보르네오로 영토 확장을 시도한다.

기존에 영국의 계획 상으로, 그리고 보르네오의 3개주/국 사라왁 브루나이와 북보르네오(오늘날의 사바)의 의견도 이 3개주가 통일하여 따로 독립을 할 예정이었으나 브루나이 국왕은 이 통일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 약화시키고 브루나이의 오일머니를 타 2개주에 나눠주게 될 것이라 여겨 이 통일 계획에 반대한다. 북보르네오 통일 독립 계획이 엎어지고 독립 열기가 고조되자 사라왁 독립의 지도자였던 스테픈 칼롱 닝칸은 "일단 그쪽 동네에 몸 좀 맡겨두자"며 말라야로의 편입을 결정하고 주민투표 결과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입이 확정된다. 그 결과로 사라왁과 사바는 말레이시아 가입, 브루나이 또한 말레이시아 가입을 검토했지만 후술할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전쟁 및 북보르네오 공산반란 중 브루나이 인민당 봉기 이후 취소, 1984년에 독립한다.

하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극단적 독립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도네시아가 심심찮게 노리다가 1964년 침공하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전쟁을 일으키는 등 안보 문제에서 최접전 지역이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1965년 싱가포르가 말라야 연방에서 쫓겨난 뒤로 불거졌다. 사실 사라왁은 싱가포르의 권유로 가입했는데 정작 주동자가 탈퇴했으니(...) 본인들도 탈퇴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화교 위주의 인구 구성 때문에 이미 연방 경제를 화교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싱가포르까지 포용하면 싱가포르의 화교계에게 연방의 주도권이 넘어갈 것을 두려워한 연방정부가 강제로 축출해 독립했지, 사라왁은 같은 말레이계에 풍부한 자원 때문인지 독립이 허락되지 않았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의 침공 등 안보 문제가 걸렸고 본인들도 자력강생이 쉽다고 판단하지 못했으니 연방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흑역사가 시작되는데, 1973년 동말레이시아에서도 연방정부 주도의 "말레이화"가 진행되었고 기독교를 믿는 다수 주민들은 말레이 본토의 이슬람으로의 개종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개종했으나 후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혼혈을 강요하고 주민들을 협박 탄압했다는 얘기 등이 나와, 강간 살인이 난무하는 등 일종의 국가폭력이 시행되었다. 게다가 주민 정서 자체가 본토(말라야)와는 맞지가 않아 심심찮게 충돌이 빚어졌는데 이미 자치는 소멸되었다.

그래도 보면 연방정부에서 그나마 특별대우를 가장 많이 해주는 곳이 사라왁이고, 중국홍콩처럼 본토의 간섭이 가장 덜한 곳이 바로 사라왁이다. 물론 자치가 완전 시행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치를 가장 많이 보장받으니 굳이 독립을 외쳤다가 코로 사라왁 콜로 국수를 흡입할 짓을 할 필요가 없다. 헌법도 본토의 연방헌법과 별도로 주 헌법이 따로 존재하며, 본토와 오갈 때는 입출경 심사를 거쳐야 할 뿐더러 본토인이라도 이 지역에서 깽판을 치면 영구적으로 추방시킬 수 있는 등 나름 서말레이시아와 별개로 돌아가는 부분이 꽤 있다.[8] 일례로 야당 정치인 테오니칭이 사라왁으로의 입경이 금지된 바가 있다. 그리고 본토인도 사실상 외국인으로 취급받으며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입국 시 90일 무비자가 찍힌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영주권이 있으며 5년 이상 거주하면 주어지는데 사라왁 주민들은 말레이시아 국적과 함께 영주권이 있다. 만약에 본토인이 사라왁에서 영원히 살고 싶거든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

이웃한 사바 주와는 독립/자치 문제로 다소 친한 편이지만 사라왁이 유독 고집이 센 편이라 그런지[9] 이민 문제는 사바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라왁인에게는 특별히 영주권을 자동적으로 주는 사바 주와는 천지차이. 그렇지만 사라왁에서도 사바인은 본토인과는 다르게 보긴 하고, 본토인에 비하면 좀 더 잘 해주는 편.

사라왁은 샤리아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주이다. 무슬림이라고 별도의 종교법을 적용하지 않고, 배교자 처벌도 없다. 이러한 점들을 모아볼 때는 그래도 연방정부가 특별히 대해주는 지역이긴 하니 굳이 독립을 외칠 필요도 없는 듯. 이웃한 사바는 이미 자치가 많이 소멸되어 UMNO가 통치하고 샤리아가 무슬림들을 관리하는 사회가 되었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는 사라왁이 유독 특별하긴 하다.

6. 사회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본토나 사바와는 다르게 한국인들이 그렇게 찾는 지역은 아니다. 그렇지만 유학으로 오게된다면 권장할만한 곳이다. 실제 2020년대 코로나 이후 국내 자녀의 조기유학을 고민하는 30~40대 부모들이 싼 가격에 가려고 가는 데가 사라왁이다. 돈이 매우 많이 드는 싱가폴 홍콩의 대체제로 여기를 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또한 그 필리핀보다도 치안은 훨씬 좋아서 어학연수 수요가 늘 확률이 높다. 영어공용어로 사용하는 유일한 주이기 때문.[10] 사라왁인들은 말레이어보다 영어 사용을 더 선호하며[11], 1973년 이전까지는 영어가 공용어였다. 그 후 말레이화의 일원으로 공용어 지위를 박탈당했으나, 2015년 다시 공용어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라왁에 거주하는 말레이인은 약 20% 정도로 사바에 비해서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 별 존재감이 없다. 참고로 이쪽 말레이인은 본토와는 다르게 브루나이칼리만탄 계열인데 '쿠칭'에서 '시부' 일대는 칼리만탄계, '빈툴루'에서 '라와스'까지는 브루나이계가 주를 이룬다. 그 중 브루나이 사이에 끼어있는 '림방'은 또 하나의 브루나이라 봐도 무관하다.

주민의 약 28%는 중국인으로, 원주민인 이반족(31%)에 비해 수적으로는 적지만 이들이 사라왁에 끼친 문화적 영향은 엄청나다. 대표적인 예가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사라왁 콜로 국수. 그리고 소수 불교도와 중국계 종교들 신도들의 수를 합할 경우 약 20% 정도인데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12]

현대에 와서 고유의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는 것은 원주민이다. 가장 큰 집단은 이반족으로 전체 인구의 31%를 차지고 있으며, 그외에도 소수민족으로 떨어진 믈라나우족과 비다유족, 오랑울루족 등이 존재한다. 원래 이들은 각각 고유어를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져가는 상황이다.[13]

자원이 많기 때문에 독립분자들은 "만약에 우리가 독립국가였으면 세계적인 장소가 되었을 것"이라고 운운하나, 설상 독립국가였더라도 그러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일단 사라왁 영토의 대부분은 밀림에다가 은근히 산지가 많다. 물론 쿠알라룸푸르와 그 위성도시들 역시 정글투성이의 허허벌판에 지어졌었지만 그래도 강이 끼어있어 지리적으로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곳은 내륙에 있으면서 바로 옆에 인도네시아가 접해 있어 경쟁력에 있어서 불리한 편이다. 또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면 본토에서 가장 부유한 주인 슬랑오르나 그 외 본토의 타 지역들보다도 더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본토인들의 반감을 불러올 수도 있고, 본토인들을 가장 예뻐하는 연방정부가 이 곳의 급격한 성장을 바랄 리가 없다. 최근에는 사라왁 출신들도 많이 본토 내각에 진출하는 등 위상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이렇게 발전할 경우 홍콩이나 카탈루냐처럼 독립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민주화 요구나 독립 요구와 같은 반정부 운동은 사회가 발전할 때 더 심하게 나타나는 법이라, 이를 모를 리가 없는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사라왁이 슬랑오르나 조호르 등 본토의 주요지역을 제치고 뜨는 것을 다소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환경보호"를 핑계로 개발을 막고 있긴 하지만...그렇다면 쿠알라룸푸르는?[14] 이미 본토는 정글투성이의 허허벌판들을 다 밀어내고 만든 것이라 원래 서식하고 있던 동식물들이 어마어마하게 멸종되거나 쫓겨났는데,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야말로 모순적 논리라고 할 수 있다.

사라왁 주 최대 도시인 쿠칭에는 호주의 스윈번(Swinburne) 대학교 분교가 있으며, 국립대학인 University of Malaysia, Sarawak가 있어서 가성비 좋은 유학을 원한다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브루나이와 인접한 미리에는 호주의 대학교인 커틴 대학교의 분교가 있고, 시부에는 비록 주정부 차원이지만 사립 대학교인 사라왁기술대학교(UCTS)가 생기면서 대표적인 유학의 장소로 뜨고 있다. [15]

여담으로 북한의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고. 조선로동당과 사라왁 주 정부가 일종의 협약을 맺어서, 사라왁의 탄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줬다. 단,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으니 다름아닌 사상전파를 하지는 마라(...) 물론 이것도 오래전 얘기고 전세계적으로 북한에 대한 재제가 한창인 현재에 와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다. 거기에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연방 정부는 북한과 단교했으니 사라왁도 굳이 북한하고 친하게 지낼 이유는 없다.

6.1. 종교

또한 주민들의 42.6%가 기독교인으로 유일하게 기독교인이 다수를 점하는 주이다. 사실 기독교를 상대적으로 더 믿는 중국인들의 비중은 풀라우피낭 주에 더 많지만 이 쪽은 중국인이 60%인 것 치고는 무슬림이 다수라고 한다. 그렇지만 무슬림도 32.2%로 무시할 수는 없다. 유일하게 샤리아를 적용받지는 않지만 무슬림들의 신앙심은 나름 철저하다.

헌데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인이 대다수인 주이고, 기독교 박해를 오랫동안 당해왔고 샤리아가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주이며, 정부의 악질적 강제개종정책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의 반이슬람감정들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언론이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다 보니, 샤를리 엡도처럼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일 등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라왁의 지역언론 '사라왁 트리뷴'이 한 번 무함마드를 풍자했다가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한번은 어느 기독교인 학생이 공립학교에 돼지고기 볶음밥을 들고 갔다가 교감에게 회초리를 맞았고, 사건에 대한 논의가 말레이 국회까지 번졌다.# 비무슬림에게는 돼지고기 금지가 적용되지 않고, 학생 어머니가 항의하자 교감이 사과했다고 한다.

7. 교통

말레이시아에서 공항이 가장 많은 주이다. 사실상 공항 천국인데 주도인 쿠칭에 최대 공항인 쿠칭 국제공항이 있고 인근의 시부빈툴루, 미리, 림방 등 지방공항들도 많다. 그것도 군용 비행장이 아닌 국제공항이나 민간공항이라는 점.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공항이 그만큼 많이 필요할 수밖에.[16]

물론 그 어떠한 공항도 한국에서 바로 가는 직항은 아직 없기 때문에,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등을 거쳐서 가야 한다. 하지만 국내선이 싼 법이기 때문에 쿠알라룸푸르나 코타키나발루를 거쳐서 가는 것을 추천. 물론 이 것도 쿠칭을 말하는 것이고, 지방을 가려면 쿠칭에서 또 갈아타야 하니 참으로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참자. 몇 번 갈아타는 게 싫으면 쿠칭에서 나와서 차를 타고 갈 수는 있는데 그러나 림방은 가는 게 좀 그렇다. 왜냐하면 브루나이가 걸쳐져 있어, 아예 산길로 죽기 살기로 갈 게 아니면 차를 타고 가는 건 권하지 않는다. 만약에 브루나이를 거치게 된다면 되려 브루나이 당국에서 안 좋아 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경로를 적자면 쿠칭이나 사마라한 일대를 갈 거라면 인천국제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이나 코타키나발루 국제공항을 거쳐 쿠칭 국제공항으로 들어가면 된다. 림방의 경우는 쿠칭 국제공항에서 림방 국제공항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8. 출신 인물


[1] 영문 위키백과 사라왁의 역사 문서[2] 어쩌면 이 "Cerava"가 "Sarawak"의 어원일 지도 모른다.[3] 림방이 사라왁으로 넘어간 후 틈부롱 지역이 월경지가 되었다. 브루나이가 독립한 이후 두 지역을 오가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제가 생겼고, 림방 지역의 영유권 분쟁이 일어났으나 브루나이가 졌다. 결국 21세기에 들어 틈부롱과 본토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을 예정이다.[4] 사실 PAS는 한때 여당의 일원이었지만 지금은 여당에서 쫓겨나 야당으로 전락.[5] 원래는 BN에 가입하려 했는데 거절당했다.[6] 이를 사라왁 사바 독립운동, 일명 동말레이시아 분리주의라고 불른다.[7] 오늘날에는 우파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지만 과거에는 1955년과 1961년 사이에만 554차례의 파업을 주도한 확연한 좌익정당이었다.[8] 말레이시아 여행시 서부에서 동부로 갈 때 국내선 편일 지라도 여권을 챙겨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심지어 사바에서 사라왁 갈 때도 필요하다. 마치 홍콩 ~ 마카오 ~ 중국 들어갈 때와 같다.[9] 사실 사라왁과 사바 간 경제력 차이가 너무 큰 게 진짜 이유다. 사바는 말레이시아 내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이기 때문. 즉 이민 규제를 풀었다간 사바인들이 그나마 개발되어 있는 사라왁으로 몰려들 게 뻔한데, 사라왁은 이런 사바인들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10] 다른 말레이시아 주들은 말레이어가 공용어이며 영어는 타 민족간 소통 시 쓰지 같은 민족 끼리는 마인어,타밀어,중국어(방언)을 쓴다.[11] 타 지방 사람들은 영어나 마인어 또는 자기들 민족언어를 섞어쓰는 반면 여기 사람들은 집안이나 같은 민족 아니면 영어 쓴다.[12] 중국계 기독교도도 많다.[13] 젊은 원주민들은 대부분 마인어나 영어를 쓴다.[14] 사실 말레이시아의 전통적인 수도는 믈라카시조호르바루이다. 쿠알라룸푸르는 그냥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이었는데 과 같은 자원이 발견된 뒤 중국인 광부들이 대규모로 몰려들어와 탄광촌으로 뜨기 시작하면서 발전된 것. 그러다가 지리적 이점 등이 뜨면서 단순한 탄광촌에서 대도시이자 최대 도시로 떴다.[15] 사라왁의 최대 대학교이자 주립 대학교인 사라왁 말레이시아 대학교가 있는데 정작 쿠칭에 없고 대신 인근의 위성도시인 사마라한에 있다. 물론 여기에도 스다야국제대학교(UCSI)의 분교가 있지만 지방의 두 대학들만큼이나 뜰 수 있을 지는 미지수.[16] 본토에서 공항이 가장 많은 주는 슬랑오르크다이다. 그것도 각각 겨우 2개. 슬랑오르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수방 국제공항 2개, 크다에는 술탄 압둘 할림 공항랑카위 국제공항 2개. 하지만 사실상 슬랑오르는 1개, 아니면 없다 봐도 무관해서, 사실상은 크다 주라고 봐야 한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이나 수방 국제공항이나 둘 다 사실은 쿠알라룸푸르에 중점을 둔 관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쿠알라룸푸르 내에도 하나 있는데 지금은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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