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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7:57:07

트리아농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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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tablealign=center><bgcolor=#000> 제1차 세계 대전 평화 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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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튀르키예 독립 전쟁을 통해 재협상
ii : 협상국의 일원이었으나 단독 평화 협정을 맺음
같이 보기: 파리 강화 회의, 베르사유 조약, 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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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ustria_hungary_1911_and_post_war_borders.jpg
트리아농 조약과 생제르맹 조약에 따라 분할된 오헝 제국의 영토.
붉은 선과 붉은 글씨가 분할 이후의 국경이다.[1]
파일:external/muzeumantikvarium.hu/19340.jpg
트리아농 조약을 비난하는 헝가리 우표[2]
빨강색은 헝가리인이 다수인 지역, 분홍색은 독일인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1. 개요2. 조약 내용3. 조약 이후와 빈 중재(Wienner Schidsspruch)4. 현재

[clearfix]

1. 개요

파일:트리아농조약.jpg
컨트리볼 만평[3]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협상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헝가리 왕국이 체결한 조약. 협상국은 각각의 조약을 통해 패전한 동맹국의 영토를 분할했다.

트리아종은 조약이 체결된 장소의 지명이 아닌 건물 이름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으로, 프랑스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있는 별궁을 말한다.

2. 조약 내용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분할되면서 헝가리도 대규모 영토 손실이 있었다. 헝가리는 조약의 체결로 인해 72%의 영토를 잃어 전쟁 전 325,441km2에 달하던 헝가리의 영토는 93,073km2가 되었으며,[4] 64%의 인구를 잃어 2,090만 명에서 760만 명이 되었다.

그리고 국경의 변화로 1,070만 명의 헝가리인 중 31%인 330만 명이 헝가리 국경 외부에서 살게 되었는데, 헝가리 고유의 영토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민족 구성을 핑계로 루마니아 왕국이나 체코슬로바키아, 세르비아 왕국 등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5] 특히 에르데이(Erdély)의 헝가리계 민족들은 루마니아인들 사이에 포위당한 형국이 되었고, 같은 패전국인 오스트리아에게도 쇼프론을 제외한 외르비데크(Őrvidék)를 빼앗겨야 했다. 헝가리 밖의 헝가리인들 중 1921년까지 헝가리 영내로 이주하지 않은 사람은 트리아농 조약에 따라 헝가리 국적이 박탈되고 거주 국가의 국적이 부여되었다.[6]

또한 철도에 있어서도 타격이 매우 컸는데, 국토 여기저기로 뻗어 있던 철도망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고 부더페슈트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나가는 노선만 남게 되었다. 또한 복선 철도의 부설도 조약으로 금지되어 물류 수송에도 상당한 지장을 주었다.

3. 조약 이후와 빈 중재(Wienner Schidsspruch)

당연히 헝가리는 트리아농 조약에 대해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분노했으며 전쟁을 일으킨 건 오스트리아인데 왜 헝가리까지 희생양이 되어야 하느냐고 주장하였다. 사실 이렇게 생각한 것도 당연한 게 전쟁 발발 직전 오헝 제국 내에서 헝가리는 전쟁을 반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헝가리도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는데, 제위/왕위 계승자의 죽음으로 인해 무조건 반대를 외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헝가리는 세르비아와 싸워서 이기더라도 세르비아의 주권과 영토는 유지할 것이라는 조건을 걸었고 오스트리아가 이를 수용하면서 헝가리도 전쟁을 지지하게 된 것이었다. 헝가리도 역시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받아들인 후에는 적극적으로 전쟁수행에 동참하였다. 문제는 헝가리가 내건 조건을 오스트리아가 국가의 위신을 이유로 비밀로 해버렸다는 것. 당시 독일 제국과 전쟁에 대해서 상의한 오헝 제국은 빌헬름 2세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을 수 있었고, 이런 백지 수표를 받은 오스트리아는 전쟁 준비에 돌입했으며 세르비아가 받아들이지 못할 조건을 내세워 최후통첩을 전달했기에 전쟁을 하고자 했던 오헝 제국이 이를 공표할 이유는 적었다.

한편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독립하여 세워진 신생 헝가리 제1공화국은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채 무너지고 공산주의 정권인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이 들어섰는데 국내 상황도 제대로 수습 못한 상태에서 세계 혁명을 외치면서 루마니아와 체코슬로바키아와 세르비아 등 공산화의 공포에 떠는 주변 국가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결국 공산 정권 제압 겸 트란실바니아 영유권 확보를 위해 루마니아가 직접 나섰다. 그리고 백군과 협상국을 모두 물리치는데 성공한 소련과 달리 협상국의 지원을 얻은 루마니아군, 그리고 공산정권 수립 저지를 위해 루마니아군과 연합한 헝가리 보수파에게 오합지졸 헝가리 적군은 완패했고 수도 부더페슈트까지 함락당하고 만다.

루마니아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헝가리는 빼도 박도 못 하는 패전국이 되었고 보수파에 의해 재건된 헝가리 왕국은 트리아농 조약의 모든 내용을 수용해야 했다. 하지만 헝가리 내부에서는 억지로 수용해야 했던 조약을 인정하지 않아 "Nem, nem, soha! (안돼, 안돼, 절대로!)"나 "Mindent vissza! (모두 반환해라!)"라는 슬로건이 유행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ungary_in_1941_with_territories_annexed_in_1938-1941.png
나중에 추축국이 주요 세력으로 등장하자 헝가리 왕국은 고토 회복을 위해 추축국에 가담, 뮌헨 협정과 빈 중재, 유고슬라비아 침공 등으로 제1차 세계 대전 때 빼앗긴 땅을 조금이나마 되찾았다.[7]


당시 극장 상영용 뉴스 인트로(Magyar Világhíradó, 헝가리 국제 뉴스). 잃어버린 영토와 '되찾은' 영토를 꼬박꼬박 표시하여 '언젠가는 다 되찾겠다'는 의지를 담아냈다. 한편 1944년 3월부로는 더이상 영토가 표출되지 않는데, 이는 독일의 마가레타 작전으로 인하여 헝가리 전역이 사실상 점령 상태에 놓여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축국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했고, 헝가리는 또다시 패전국이 되어 회복한 영토를 다시 반환했다. 따라서 현대 헝가리의 면적은 대한민국보다 약간 작은 정도다.

4. 현재

헝가리는 이 조약에 대해 지금도 큰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각종 행사와 기념물을 통해 잊지 말자고 기리고 있다. 특히 재외 헝가리인이 160만 명 가량으로 제일 많이 거주하고 있는 루마니아와의 국민감정이 매우 나쁘다. 반대로 루마니아는 2020년부터 트리아농 조약의 날이라는 공휴일을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현재 헝가리 총리 오르반 빅토르와 그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대헝가리주의' 역시 이 조약 이전의 헝가리 왕국 영토를 회복하자는 주장으로, 최근에 급조된 이념이 아니라 100년 전 트리아농 조약 체결 직후부터 있어왔던 유서깊은 실지회복주의다.

다만 불만이 큰 것과는 별개로 실제로 실지를 회복할 가능성은 낮다. 땅을 달란다고 이웃국들이 넙죽 내줄 리도 없고, 이를 현실화하기에는 헝가리의 국력과 군사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상황에서[8] 동유럽 전반의 인구 유출로 더 이상의 획기적인 국력 증진을 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단지 실지 회복을 외치면서 주변국의 신경을 건드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헝가리의 현 주소이다. 반대로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등 헝가리 왕국의 영토를 흡수한 이웃국가들도 이런 헝가리의 주장이 불쾌하면서도 이를 멈추게 할 만한 압도적인 국력은 없기 때문에[9] 현재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헝가리 정부 차원에서 국외에 잔존한 헝가리인에 대한 지원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크라이나 자카르파탸주인데, 베레호베[10] 같은 헝가리인 다수 거주지역은 피데스의 지원금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이렇게 헝가리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외 유민들은 헝가리 문화와 언어를 보존하며 살아가지만, 반대로 해당 거주국가의 언어를 전혀 배우지 않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슬로바키아 남부 헝가리인 다수 거주지역만 하더라도 슬로바키아어는 전혀 배우지 않고 헝가리어만 사용하며 작은 사회를 이루고 살기 때문에, 슬로바키아와 헝가리의 관계를 긴장 상태에 빠뜨리고 있다.

그나마 21세기 초반 즈음하여 헝가리를 비롯한 중부유럽 국가들이 대체로 유럽연합-솅겐 협정으로 묶이면서 헝가리 국경을 사이에 두고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2023~) 내 헝가리인들과의 인적 교류는 아주 편리해졌다.[11] 인적 교류의 편리함과 민족적 영토에 대한 아쉬움은 별개지만 같은 민족끼리 완전히 적국으로 나뉜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유럽연합이긴 하지만 솅겐 협정 가입국은 아닌 루마니아,[12] 유럽연합 가입이 아직 요원한 세르비아, 우크라이나와는 인적 교류가 여전히 불편하다.


[1] 갈리치아폴란드, 트란실바니아/부코비나는 루마니아,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보이보디나는 유고슬라비아, 이스트리아/쥐트티롤은 이탈리아에 할양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분리되었다.[2] 우표 속 사람은 마차시 1세이며, 조약으로 줄어든 헝가리 영토에는 조약 전후의 영토 변화와 조약을 비난하는 문구인 Nem! Nem! Soha! (헝가리어안돼! 안돼! 절대로!라는 뜻)를 넣었다.[3] 저 컨트리볼은 현대 국가들이라 당대 국가들에 할양된 모습과는 다르다. 오늘날 크로아티아 영토인 지역은 세르비아에게, 오늘날 우크라이나 영토인 지역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할양된 지역이다.[4] 즉, 한반도보다 컸었던 나라가 남한보다도 작아진 것이다.[5] 물론 이 3국은 헝가리의 영토를 받는 대가로 헝가리가 내야 할 전쟁 배상금 일부를 대신 내야 했다.[6] 1918년부터 1924년까지 헝가리의 새 국경 안으로 35만 명이 이주했다.[7] 아이러니하게도 루마니아 역시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추축국에 가담하면서 헝가리와 루마니아는 소련군의 진군으로 연합국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전장에서 함께 싸웠다. 물론 루마니아가 소련에 항복하고 연합국으로 전향하면서 이 동맹은 다시금 깨지게 되고 독일은 헝가리군을 루마니아에 투입시켜 재점령을 꾀하고, 실패로 돌아가자 반대로 소련이 루마니아군을 헝가리 점령에 투입하는 등 다시 서로 싸웠다.[8] 2020년대를 기준으로 이런 것이 가능하고 실제로 시도하는 나라는 러시아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그렇듯이 완벽한 자기 편을 제외한 전세계를 적으로 돌릴 각오를 해야 한다.[9] 그나마 2020년대에 유럽 전역에 반러 기류가 강해지면서 반러 공조를 깨뜨리는 헝가리에 대해 유럽연합 측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10] Берегове, 헝가리어: Beregszász[11] 비슷한 이유로 독일오스트리아는 통일이 금지되어 있지만 이제 와서는 굳이 통일을 하나 안 하나 별 차이는 없어졌다.[12] 위에서 보듯 재외 헝가리인은 루마니아에 제일 많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