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고르부노프(Владимир Петрович Горбунов : 1903~1945)
1. 개요
전간기와 독소전 기간 동안 활동한 소련의 항공 엔지니어로 LaGG-1과 LaGG-3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를 이끈 관리자이며 1939년부터 제301실험설계국의 국장 겸 수석 설계주임을 겸임했었다. 그의 형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고르부노프(Сергей Петрович Горбунов : 1902~1933)도 항공산업계에 종사했으며 모스크바 필리(Фили)에 있는 유럽 최대의 항공기 생산처인 제22호 공장(завода № 22)[1]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했었다.2. 청년 시절
블라디미르 고르부노프는 제정 러시아 시대인 1903년에 모스크바주의 작은 시골 마을인 스파스-추라브나(Спас-Журавна)에 살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인문계가 아닌 실업학교(реальное училище)를 졸업했다. 공산당원 양성단체인 공산당 청년동맹에 가입한 그는 노농적군 항공함대(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ий Красный воздушный флот (РККВФ)[2]에 입대했고, 얼마 후 레닌그라드 군사이론학교(Ленинградскую военно-теоретическую)에 보내졌다. 고르부노프는 이 기간 동안 보리소글렙스크(Борисоглебск)에 있는 제2군사학교에서 조종 면허를 따고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1931년 5월에 졸업했다.병역과 학업을 마친 그는 투폴레프 설계국(КБ А. Н. Туполев)에 들어가 근무했으며, 이곳에서 선임 엔지니어인 빅토르 F. 볼코비티노프(Виктор Фёдорович Болховитинов : 1899~1970)와 함께 중폭격기 TB-3(ТБ-3)와 ANT-7(АНТ-7) 뇌격기, 그리고 고속 폭격기 SB(СБ)의 대량 생산에 필요한 도면 작성과 제작 관리를 맡았다. 이 과업을 잘 수행해낸 그는 1937년부터는 소비에트연방 인민방위산업국(Народного комиссариата оборонн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СССР)의 산하 기관인 제1항공총국장에 앉혀졌다. 1939년 1월에 제1항공총국을 바탕으로 항공인민병참국(NCAP)이 설립되었지만, 고르부노프는 계속 유임하게 된다.
3. 신형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
1939년 4월 말부터 고르부노프와 제4부서장을 맡고 있던 세묜 라보치킨, 그리고 미하일 구드코프는 항공병참국장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여 비행기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게 된다. 그것은 종래의 두랄루민 같은 값비싼 재료가 아니라 당시 건축자재로 개발된 일종의 집성목으로, 델타 목재(дельта-древесины)라고 불리는 재료였다. 이 청원은 그 무렵 전력 생산량이 부족해 알루미늄 같은 경금속을 제련하는데 곤란을 겪던 소련 당국으로서는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것이어서, 곧바로 이에 필요한 인력 집단을 끌어모았다. 5월 말에 블라디미르 고르부노프와 세묜 라보츠킨, 그리고 구드코프가 모여 제301실험설계국(ОКБ-301)이 모스크바주 힘키(Химки)에 세워졌다. 이 싱크 탱크의 목적은 단 하나, 나무 같은 대체 재료를 이용해 일선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선 전투기의 시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같은 해 7월 15일에 블라디미르 고르부노프는 항공인민병참국장의 지시로 제301실험설계국의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8월 29일에 고르부노프는 나무로 만든 전투기 I-301(И-301)의 생산을 허가하는 정식 명령인 제243호 결의안을 받아쥐게 된다. 9월 1일에는 제249호 결의안에 의해 고르부노프는 힘키 항공창의 작업 책임자도 겸임하게 된다. 이 작업은 고르부노프와 라보츠킨, 구드코프 외에도 세묜 M. 알렉세예프(Семён Михайлович Алексеев : 1909~1993)와 유리 B. 스트루첼(Юрий Б. Струцель)도 개발을 돕고 있었다. 고르부노프는 1940년 12월 14일까지 LaGG-1과 LaGG-3를 설계하고 시제기를 제작하는 작업을 이끌었다. 신형 전투기의 양산이 다급했던 항공병참국은 12월 14일부터는 미하일 구드코프를 301설계국장으로 임명하고 고르부노프는 생산 현장에서 직접 작업을 재촉하고 관리하게끔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000km 이상 떨어진 타간로크(Таганрог)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4. 독소전
1940년 10월 10일에 제430호 결의안에 따라 고르부노프는 타간로크에 제31호 공장(завод № 31)이 딸린 제31실험설계국(OKB-31)의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941년 6월 22일에 독소전이 터졌다. 루프트바페를 앞세운 독일군이 파죽지세로 동쪽으로 침공해오면서 소련 공군이 보유한 항공기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해 공업지대까지 점령당하면 항공기 생산력이 딸리는 사태가 올 것을 우려한 소련군 최고사령부는 7월 3일에 실험설계국이던 OKB-31을 항공기 생산공장으로 운영하라는 지침을 내렸다.10월에 31호 공장과 KB-31은 소개령을 받아 트빌리시(Тбилиси)로 대피했다. 공장 설비와 직원들 모두 고르부노프가 인솔하여 동쪽으로 철수되었고, 그 동안에도 고르부노프는 열차 안에 제도판을 놓고 LaGG-3 전투기의 개량 작업을 계속했다. 1944년이 되면서 전선이 한숨 돌리게 되자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LaGG-3의 생산이 중단되었다. 고르부노프는 11월 13일에 제657호 지령에 따라 트빌리시에 있던 KB-31(КБ-31) 설계국은 볼가 강변의 두브나(Дубна)에 있는 제458호 실험 해군기 공장[3](опытный завод морского самолётостроения № 458)으로 다시 이전되었다.
고르부노프 국장은 이곳에서 새로운 항공 엔진인 터보제트 엔진을 이용한 신형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단발 제트엔진을 갖춘 급강하폭격기 설계안인 PB-301(ПБ-301)을 다듬어냈지만, 타간로크 일대가 무장친위대와 아인자츠그루펜에 의해 격전지로 변하자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게 된다. 고르부노프의 폭격기 대신 투폴레프 Tu-2 폭격기가 동부전선에 대량으로 배치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중지되었다.
5. 불의의 사고
전쟁이 끝난 후에 고르부노프는 모스크바로 돌아와 살게 된다. 홀가분해진 블라디미르 고르부노프는 전쟁 전부터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이반코보 저수지(Иваньковском водохранилище)로 가서 휴가를 즐겼다. 1945년 7월 29일 일요일에 손수 모터 보트를 몰며 망중한을 보내던 그는 조향 실수로 보트에서 떨어졌고, 수영을 못하던 그는 그 자리에서 익사하고 만다. 스탈린상에 빛나던 그는 한참 더 능력을 펼쳐 보일 42세의 나이에 모스크바의 돈스코이 묘지(Новое Донское кладбище)에 묻히고 말았다.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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