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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8 21:59:04

브랜더 고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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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더 고개 전투
영어: Battle of the Pass of Brander
시기 1308년 8월 말
장소 스코틀랜드 왕국 론 지역 브랜더 고개
원인 로버트 1세와 맥두걸 가문의 갈등
교전국 파일:스코틀랜드 국장.svg 스코틀랜드 왕국 파일:Sr_Dargael,_Balliol_Roll.jpg 맥두걸 가문
지휘관 파일:Arms_of_Bruce.svg.png 로버트 1세 파일:Sr_Dargael,_Balliol_Roll.jpg 존 맥두걸
병력 미상 미상
피해 미상 미상
결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승리.
영향 로버트 1세의 아가일 재정복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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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시기인 1308년 8월 15일과 8월 23일 사이, 스코틀랜드 왕국 론 지방 브랜더 고개에서 로버트 1세가 정적인 존 맥두걸을 물리친 전투.

2. 상세

1306년 2월 로버트 1세와 추종자들이 덤프리스의 프란치스코회 교회에서 그를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받들길 거부한 바데녹 영주 존 코민 3세를 암살한 이래로, 스코틀랜드 중부 하이랜드의 강력한 씨족이었던 코민 가문은 로버트 1세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다. 아가일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갖춘 맥두걸 가문은 코민 가문과 인척 관계였기에, 역시 로버트 1세를 적대했다. 1306년 7월 또는 8월, 로버트 1세는 잉글랜드군의 추격을 회피하다가 달리그 전투에서 맥두걸 가문의 일원인 존 맥두걸에게 참패해 군대를 대부분 상실하고 오랫동안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헤브리디스 제도에서 은거했다.

1307년 4월 추종자들을 끌어모은 뒤 스코틀랜드의 갤러웨이로 돌아온 로버트 1세는 글렌 트룰 전투라우던 힐 전투에서 잉글랜드 왕국의 스코틀랜드 총독인 펨브로크 백작 에이머 드 발랑스를 잇달아 격파했다. 그 결과 그의 명성은 스코틀랜드 전역에 퍼졌고, 잉글랜드의 지배에 반감을 품었던 인사들이 대거 가담하면서 세력이 급격히 커졌다. 더구나 1307년 7월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사망한 뒤 집권한 에드워드 2세가 재정난과 귀족들과의 불화로 인해 스코틀랜드 문제에 개입하지 못했고, 로버트 1세는 이를 틈타 스코틀랜드 내 잉글랜드 세력을 연이어 물리치며 세력을 확장했다.

1308년 5월 22~23일, 로버트 1세는 인버루리 전투에서 최대 정적인 부컨 백작 존 코민을 물리치고 코민 가문을 굴복시켰다. 그 후 그는 지난 날 자신에게 굴욕을 안긴 맥두걸 가문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1308년 8월 말, 존 맥두걸은 로버트 1세의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로흐 호수를 발원지로 삼은 오 강이 벤 크루아찬 산을 지나면서 형성된 남쪽 경사면을 가로지르는 브랜더 고개에 주둔했다. 그는 이 고개에 숨어서 고개를 통과하는 좁은 길을 지나가는 로버트 1세를 습격하려 했다.

그러나 로버트 1세는 달리그 전투 때처럼 매복 공격을 순순히 당할 생각이 없었다. 로버트 1세의 심복인 제임스 더글러스가 지휘하는 스코틀랜드 궁수대는 벤 크루아찬 산을 훨씬 더 높이 올라가서 적의 후방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로버트 1세가 고개 아래에서 적을 향해 공세를 개시했고, 존 맥두걸이 이들을 요격했다. 그 때 제임스 더글러스의 명령을 받든 궁수대가 적의 후미를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화살 세례를 얻어맞은 존 맥두걸의 부하들은 동요하다가 이내 무너졌다. 그들은 서쪽의 로크 강을 건너 던스태프니지로 패주했고, 존은 갤리선을 타고 로크 강을 따라 도주했다가 부컨 백작처럼 잉글랜드로 망명했다.

브랜더 고개 전투에서 승리한 뒤, 로버트 1세는 던스태프니지로 진군해 그곳의 성채에 숨은 적군을 하루 동안 포위공격한 끝에 항복을 받아냈다. 아가일의 맥두걸 가문 수장 알렉산더 맥두걸은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닫고 귀순했다. 그는 이듬해에 잉글랜드 국왕에게 몰래 도움을 청했지만, 로버트 1세가 이를 눈치채고 1309년 8월에서 10월 사이에 제임스 더글러스와 함께 아가일로 재차 쳐들어오자 잉글랜드로 망명했다. 이리하여 로버트 1세는 맥두걸 가문을 축출하고 스코틀랜드 대부분의 주권을 손아귀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