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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고지 | 서울특별시 | ||
| 구단 | FC 서울 | ||
| 유소년 | 오산고등학교|오산중학교 | ||
| 주요 인물 | 현재 | 김기동 감독 (김기동호)|선수단|선수단(간략) | |
| 역대 | 감독|주장|등번호별 주요 선수|프랜차이즈 선수 | ||
| 시설 관련 문서 | 홈구장 | 서울월드컵경기장 | |
| 클럽 하우스 | GS챔피언스파크 | ||
| 팬 존 | FC 서울 팬파크 | ||
| 역사 | 시기별 | 럭키금성, LG 시절|안양 LG 치타스 시절|AFC 챔피언스 리그 기록|구단 기록 | |
| 시즌별 | 역대 시즌|역대 유니폼 | ||
| K리그1 | 1985|1990|2000|2010|2012|2016 | ||
| 코리아컵 | 1998|2015 | ||
| 슈퍼컵 | 2001 | ||
| 현재 시즌 | 2026 | ||
| 팬덤 관련 | 팬덤 | 규모와 인기|서포터즈 수호신|응원단|네임드 팬 | |
| 응원 | 응원가 (간략)|서현숙|박기량 | ||
| 팬 사이트 | FCSEOULITE|FC 서울 갤러리 | ||
| 관전 정보 | 경기장 관련|매표 관련|좌석 관련|응원 관련 | ||
| 라이벌전 | |||
| 논란 및 사건 사고 | 사건 사고|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북패|Here is another Old Trafford|물병 투척 피해 사건|원두재-이태석 트레이드 논란 | ||
| 마스코트 | 씨드 | ||
| 기타 | 히칼도의 저주|세 골 차를 뒤집는 서울|데몰리션 듀오|전주의 기적|개매패|5eou1|쓰리고 | ||
1. 개요
'북쪽의 패륜', 혹은 '북쪽 패륜아'라는 뜻으로, K리그1 소속 프로축구단 FC 서울에 붙은 멸칭. FC 서울이 과거 안양 LG 치타스 시절 연고지를 안양에서 서울로 옮긴[1]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이를 두고 팬을 버리고 떠난 구단은 부모를 버린 자식, 즉 패륜과 같다고 하여 이러한 멸칭이 붙었다. 연고지의 구단을 잃은 안양 축구 팬들에 의해 처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2]
연고지 이전은 K리그는 물론 국내외 타 종목 프로 스포츠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지만, 모기업 GS와 일부 지지자들의 행태, 그리고 팀을 억울하게 빼앗겨버린 K리그 최고 강성 중의 하나인 안양 팬들의 강한 반발과 타 구단 팬들의 안양 동정이 어우러지면서 이 용어는 축구판 전체로 퍼졌다.
안양 LG 치타스는 당시 안양 서포터즈의 열기가 K리그에서 알아주는 구단이었기 때문에[3] 안양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매우 컸다. 또한 자신들의 팀도 언제 이렇게 야반도주할지 모른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단 안양 팬들뿐만 아니라 타 구단 팬들도 충격을 상당히 많이 받았으며, 연고지 이전 사태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살아있고 흔히 쓰이는 단어다.
처음에는 그냥 패륜이라고 불리다가 2년 뒤인 2006년, 부천시를 버리고 제주특별자치도로 연고지를 이전[4]한 제주 SK FC도 패륜이라 불리기 시작하면서 이와 구별하기 위해 '북쪽의 패륜'이라는 의미에서 접두어 '북'을 붙여 북패라고 부른다.[5] 하지만 제주 팬들은 부천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걸개를 내걸고 응원과 지지에 나섰으며,[6] 만일 사전에 서울 서포터들이 제주처럼만 했어도 북패라는 단어는 안 그래도 유별났는데 연고를 한순간에 빼앗겨 버린 안양 지지자들과 K리그 올드비들이 추억하는 단어로 남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FC 서울 경기에서는 패륜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7] 타 구단 지지자들도 유독 제주와의 경기에선 남패라는 말을 절대 안 꺼내고 경기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북패는 구단들을 안 가리고 사용되며, 특히 과거에 지지대 더비라는 K리그에서 손꼽히는 더비를 치렀고, 연고 이전 당시 안양 팬들과 함께 가장 극렬한 반대를 표명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서포터들은 FC 서울과의 경기를 북벌(北伐)[8]이라고 부른다.[9] 수원 구단도 슈퍼매치 때 북벌로 홍보했으나, 서울 측이 항의해 구단 차원에서는 공식적으로 북벌이라는 용어를 꺼내지 않는다.
과거에는 야반도주라고도 불렀다. 원래는 '한밤중에 몰래 도망치는 행위'를 의미하는 사자성어인데, 연고지를 안양에서 서울로 이전한 것을 두고 야반도주라고 부른 것이다. 과거 안양 팬들과 수원 팬들이 주로 사용했으며, 수원의 그랑블루 시절 응원가에도 수록된 유서 깊은 표현이다. 또한 FC GS(FC 서울의 모기업)라고도 불린다. '서울'이란 이름을 75억에 날로 먹은 구단에게 내줄 수 없다는 생각도 있고, 해당 구단이 서울 연고 프랜차이즈 구단이 아닌 기업 GS의 프랜차이즈 구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연고 이전 직후인 2004년엔 서울 연고를 사용하던 시절에도 말이 많았고, 때문에 황금 시장 서울을 연고로 했는데도 지지부진한 관중 수와 인기를 기록했다. 허나 이후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등의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을 마케팅으로 활용함으로써 꾸준히 관중 수와 인기가 나날이 늘게 되고, 그와 함께 엄연한 리그 흥행의 주축으로서 거듭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축빠들 중 서울 이랜드 FC는 물론[10] 수도권의 다른 구단[11] 지지자들도 많은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HD FC, 포항 스틸러스 등 지방 상위권 구단 팬들도 많다. 비수도권 출신 서울 거주자 또는 비수도권에서 올라온 서울 이주자 2~3세대 야빠들이 KIA 타이거즈나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등 비수도권 인기 연고 구단들을 응원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 물론 개인적 연고가 없어도 해외 구단을 응원하듯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거나 뛰어난 선수가 뛰는 타 지역 구단을 응원하는 경우도 많다.
여담으로 과거 안양이 사용하던 공식 홈페이지 주소인 lgfootball.com은 현재도 그 도메인이 살아 있는데, 해당 도메인은 무려 현재 이 문서로 포워딩된다(...)
2. 양 측의 주장
단순히 연고지 이전을 했다는 이유로 북패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다. 성남 FC나 제주 유나이티드도 중패, 남패라는 호칭이 있지만, 북패의 경우만 사용 빈도가 매우 높다. 이는 안양 팬 측의 규모가 다른 팀들에 비해 상당하다는 점과, 연고이전을 부정하고 사과하지 않은 점, 서울 구단 본인들은 나름 억울한 점이 있다는 주장 때문이다.2.1. 연고 이전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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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안양 LG 치타스 구단의 홍보 포스터.# |
LG 구단이 배포한 위 홍보 포스터를 보면 "안양LG치타스는 자랑스런 안양시민구단입니다!"라고 적혀 있으며, 아래에는 "우리고장팀 안양LG치타스 유니폼입기"라고도 적혀 있다. 참고로 안양 LG는 이 포스터가 나온 다음 해에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2003년 안양 LG의 안양 홈 경기 일정이 나와 있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에서 안양으로 연고지를 옮길 당시만 하더라도 "임시 이전"이라며 선을 그었던 것은 맞으나, 막상 안양에서 홈 경기를 시작한 이후에는 스탠스를 급변해 "안양 LG 치타스는 자랑스런 안양시민구단입니다!" 등의 문구를 사용하며 우리 고장 팀, 안양의 축구팀의 이미지를 이용해 안양시 내에서 매우 큰 팬덤을 구축했다. 이렇게 안양에 영원히 정착할 것처럼 홍보하면서 안양에서 큰 팬덤을 구축해 놓고, 갑자기 원래 연고지는 서울이라며 안양에서의 팬들을 버리고 연고 이전을 단행하였으니 팬들의 분노가 커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1996년 안양에 온 이후 4차례나 연고이전을 시도한 점,# 유소년 팀을 공중분해시킨 뒤 서울로 옮겨간 점 등 안양 시민들이 FC 서울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매우 많다. 이렇게 상습적인 연고 이전 시도와 연고 이전할 때 지역의 축구 기반을 모두 서울로 옮기는 등의 행태에서 구단은 처음부터 안양에 정체성을 둘 생각이 없었다는 것인가?와 같은 안양 축구 팬들의 배신감이 큰 것이다. 상술했듯 "안양 LG 치타스는 자랑스런 안양시민구단입니다!"와 같이 우리 고장 팀의 이미지를 이용해 안양에서 큰 팬덤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갔다.
2.2. 연고 복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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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C 서울 구단의 입장문. 서울 연고 복귀 결정이라고 명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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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이 서울 복귀를 위한 임시 연고지였음을 보여주는 신문 기사 |
더 정확히 알아보자면, 당시 연맹은 서울 연고를 유지하려면 구단 돈으로 축구장부터 짓고 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LG는 서울 연고를 사수하기 위해 뚝섬 돔 경기장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도봉구의 부지를 알아보는 등 전용 구장을 짓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국 서울로의 복귀 의지가 있었기에 서울 근교 안양으로의 한시적 이전을 택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안양으로의 연고 이전 이후에도, 당시 안양 LG의 단장은 서울 연고복귀 5년 전이라는 의사를 내비쳤고 당시 안양 국장이었던 이재하 국장이 K리그 구단들 중 유일하게 서울 연고지 가치평가 설명회에 참여해 서울 연고지에 관심을 표명했다.
이후 FC 안양이 창단되어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려고 할 때, 서울은 안양에서 축구단을 새로 만든다면 GS스포츠 측에서 금전적 지원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FC 안양에서는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GS의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12] 재정적으로 어려운 신생팀의 특성상, 이후 FC 안양은 이 결정을 후회했던 것으로 보인다.[13]
2.3. 그 외 주장
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본디 2004년을 중시하는 팬들[14]을 타팀 팬들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고 이전의 역사는 그다지 일체감을 느끼지 않거나 아예 관심 없는 팬들이 다수였다.다만, 안양 LG 치타스 시절에도 동대문 시절 우승횟수를 들고와 우승 3회라는 머플러를 흔들었던 기록이 남아 있어(기사) 2004년을 중시하는 팬들이 대다수라는 의견은 일부 소모임의 의견을 마치 지지자 전체의 의견인 양 오해한 성급한 일반화의 소지가 있다. 그만큼 안양에서부터 구단을 쭉 응원한 팬들부터 이 주제 자체에 별 관심없는 팬들, 제주처럼 사과해야 한다는 팬들 등등 내부에서도 결론이 안 나는 사안이다.
한편 서울 팬들은 안양시가 LG 구단을 홀대하였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링크에 나와있듯이 안양시는 구단에게 전용구장 부지 제공을 약속하였으며, 안양시의 시비로 경기장 조명탑을 설치해주었다는 공문서를 올린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안양시는 전용구장 부지를 제공하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안양종합운동장의 전용구장 개조를 약속하였으나 간담회만 개최한 채 이석용 당시 안양시장이 물러났고, 후임 시장인 신중대가 취임한 뒤로는 차일피일 미루어지며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진척되지 않았다. 즉 약속을 받기만 했을 뿐이지 실제로 제공받지 못한 공수표였던 것. 또한 조명탑은 축구단 뿐만 아니라 안양시의 인프라 확충을 위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15] 설치비용 45억원을 구단이 안양시와 함께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신중대 시장의 주장에서 보이듯이, 1996년에 안양에 연고를 둔 이후 LG가 꾸준히 서울로의 재이전을 시도해 매몰 비용 발생을 우려한 안양시가 적극적인 지원을 하기 어려웠다는 전제가 빠져 있는 주장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LG는 안양에 연고를 둔 이후 무려 네 차례나 연고지 이전을 시도했다. #
3. 현황
이런저런 논란이 많지만 FC 서울은 인구 천만의 거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군림하고 있다. 2005년 스타로 떠오른 박주영을 영입해 전면에 내세우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팬들이 늘기 시작한 이래 서울 이랜드 FC라는 제2 구단이 창단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창단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K리그2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구단인 만큼 현실적 위협으로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결과 1000만 인구의 시장을 20년 동안 독차지할 수 있었고 FC 서울은 어느 정도 서울에 다시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
FC 서울의 성적이 2010년대 후반부터 곤두박질치면서 K리그의 평범한 중위권 구단으로 전락한 만큼 이전만큼의 절대악 이미지는 많이 희석된 편이다. 또한 시간이 오래 흐르고 양 측의 입장이 모두 공론화된 지금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잘못된 정책과 안양시의 홀대, 그리고 안양시와 안양에 남은 팬들을 설득할 의지도 없던 LG 구단 모두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벌어진 사태라는 게 중론이다.[17] 물론 2000년대에 사실상 혼자 욕을 먹는 포지션을 담당했던 팀이었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고, 연고 복귀 과정에서의 과오도 명백한 만큼 여전히 FC 서울의 이미지가 다른 팀들에게 긍정적이지는 못하다.
북패라는 멸칭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가 희석되고 마치 흑인들끼리 N-Word를 즐겨 쓰는 것처럼 서울 팬들이 이 멸칭을 즐겨쓰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이는 FC 서울 갤러리부터 시작되어 FCSEOULITE로 이어진 서울 팬 커뮤니티 역사에 겹쳐 에펨코리아 국내축구 게시판 같은 커뮤니티가 한국 축구 팬덤 사이에서 대세로 떠오른 점이 큰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FCSEOULITE는 북패라는 단어만 쓰지 못할 뿐 사실상 '북두어'라고 일컫는 수많은 파생된 북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즐겨 쓴다. 예를 들어 FC 서울의 프런트는 북런트, 추천 버튼은 북념추, 포인트 이름이 북뽕, 맛집 추천하는 글쓰기 탭 이름이 북슐랭가이드 같은 것들이다. 2022년 출시한 FC 서울 맥주는 아예 팬들끼리도 북맥이라고 호칭을 정해서 부른다. 심지어 서울 프런트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사람들의 모임을 자기들끼리 탈북자라고 부를 정도로 북패라는 멸칭은 서울팬들을 넘어서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사실상 보편화된 수준이다.[18]
4. 해당 용어 사용에 대한 비판
패륜이라는 용어를 빗대서 표현하는 것은 너무 과격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축구나 서포터즈 문화 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서포터즈나 K리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렇게 과격하게 팬들이 구는 만큼 이런 사람들을 떠나 연고지 이전을 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생기는 등 연고지 이전을 비판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하며 성숙한 응원 문화 조성을 위해 연고 이전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해당 용어 같이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특히 어느 순간부터 사실상 다른 팀보다 패륜이라는 단어가 FC 서울한테만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면서 사실상 연고 이전보다는 FC 서울 구단 그 자체를 욕하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 버렸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용어가 정당화된다면 김천 상무 같은 군경팀을 비롯한 축구 외의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 연고지를 이전한 모든 구단에 패륜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된다는 말이 성립하기에 더욱 신중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연고지 이전이 잦은 KBL이나 V-리그는 연고지 정착 의사가 없다고 욕을 먹지만, 이들에게 패륜이라는 과격한 단어를 써도 되느냐의 문제는 별개이다.
5. 정식 맞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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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연고지 더비#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연고지 더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6. 여담
- 안양은 연고 이전의 피해를 입은 지역 중 가장 늦게 성인 수준의 축구팀이 창단된 지역이다. 성남의 옛 연고지 천안에는 K3리그의 천안시 축구단과 챌린저스리그의 천안 FC가 각각 2007년과 2008년에 창단, 제주의 옛 연고지 부천에는 챌린저스리그 부천 FC 1995가 2007년 창단되었고 이후 2013년부터 K리그 챌린지에 가입한 데 반해 안양은 유독 늦게 축구팀이 창단되었다. 다만 천안시 축구단은 K3리그에 있다가, 2023년 천안 시티 FC로 팀명을 바꾸고, 제일 늦게 K리그에 합류했다. 천안 FC는 청주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청주 FC와 통합하여 충북 청주 FC로 재창단했다.
- FC 안양의 창단식이 열린 2월 2일은 바로 FC 서울의 연고 이전이 최종 발표된 날이다.
7. 관련 문서
- FC 서울, FC 서울/사건사고
- 연고지 더비
- 남패/제주 SK FC: 여기도 제주특별자치도 연고지 이전 당시의 행위들만 놓고 보면 똑같이 가루가 되도록 까여도 할 말이 없지만, 제주 팬들은 연고지 이전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 부천시 팬들에게 지속적으로 "부천 팬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사과의 표현도 했기 때문에 적어도 FC 서울보다는 이미지가 나은 편이다. 그래서 부천 FC 1995의 응원가에서도 "SK 떠나가도 철새들 떠나가도 내 여자 떠나가도 나는 변치 않아"라고 부른다.
- 중패/성남 FC: 이쪽은 상대적으로 덜 까이는데, 구단이 천안시에 적극적으로 남겠다는 의사를 나타냈지만 천안시가 대놓고 홀대하고 방치한 비협조스러운 태도 때문에 반쯤 쫓겨나듯 연고지 이전을 해서 동정받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본 문서에 기재된 비판점인 성남시에서의 역사뿐만 아닌 천안시 시절의 역사도 자신들의 역사라고 기록했기 때문에[19] 어쨌든 까임은 피해갈 수는 없다. 성남 시절 리그 우승은 4번이고 다른 3번은 동대문운동장 시절에 달성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구단은 김천시에게 뺏기고 말았다.
- 흡패/FC 안양
- 패륜(연고지)
- 연고지 이전
-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 GS칼텍스 서울 KIXX - FC 서울과 같은 GS스포츠에 속하는 배구단도 같은 이유로 연고지를 서울로 변경했다. 이쪽은 원래 연고지가 인천광역시였다.
-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역사, 현대 유니콘스/연고 이전 - 타 종목 리그도 당연히 연고지 이전 사례가 많지만, 각 리그 타 팀 팬들이 FC 서울급으로 적대감을 가지는 대표적인 연고지 이전 사례다. FC 서울은 연고지를 강제로 이주당한 적이 있어 연고 복귀라는 명분이라도 있지 그런 것도 없었던 저 두 사례는 더 심하며, 이후 고양시는 안산시에서 갑툭튀하여 연고를 이전해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온 고양 자이크로 FC의 막장 운영[20] 파문에 더해 고양 데이원 점퍼스, 고양 히어로즈[21] 등 후신 구단들이 운영 측면에서 대형사고를 치는 바람에 마가 끼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1] 연고 이전이냐 연고 복귀냐에 대한 논쟁은 아래 단락을 참고[2] 서울이 안양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길 당시 가장 극렬히 반대했던 수원 팬들이 가장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추정도 있다.[3] 심지어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지지대 더비 홈 매치가 있는 날엔 안양 택시 기사들이 수원 서포터즈인 그랑블루를 상대로는 승차 거부까지 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지금은 라이벌 팀 팬이라는 이유로 승차 거부를 하는 건 불법이다.[4] 제주 SK의 경우는 논쟁 없는 연고 이전이 맞다.[5] 제주 SK는 반대로 남쪽의 패륜, 즉 남패라고 불린다.[6] 이 과정에서 SK가 부천 FC 1995의 창립에 일부나마 힘을 보탠 것과 달리 GS는 무시했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GS도 FC 안양 측에 도움을 제안했으나 FC 안양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GS의 돈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후술하겠지만 FC 안양이 창단될 때 화환도 보냈다.[7] 대표적으로는 FC서울의 최대 라이벌인 수원 서포터즈 프렌테 트리콜로의 패륜송과 눕패송[8] 슈퍼매치에서 수원의 주장은 '북벌'이라는 한자가 적힌 완장을 찬다. 이른바 '북벌 완장'. 물론 구단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팬들은 다 북패 정벌의 약자로 알고 있다.[9] 서울로의 연고 이전 초기에 수원 서포터즈는 아예 FC서울을 라이벌로 인정하지 않았고, 구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이런 모습은 FC서울 팬들의 반감을 더욱 자극하여 두 팀의 라이벌리는 슈퍼매치로 이어지게 되었다.[10] 이 팀은 FC 서울에서 오래 활약한 오스마르가 소속된 팀이기 때문에 적대보다는 우호에 더 가깝다.[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 FC, 인천 유나이티드 FC, FC 안양, 부천 FC 1995, 안산 그리너스 FC, 성남 FC, 김포 FC, 용인 FC, 파주 프런티어 FC. 예외로 화성 FC는 FC 서울에서 활동한 차두리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서울 내에 지지층이 생긴 경우이기에 꼭 FC 서울에 부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12] 실제로 FC 서울은 FC 안양 창단식에 축하 화환을 보내기도 했으나, 안양 팬들은 서울이 보낸 화환을 짓밟았다.[13] 이후 부천 FC 1995 측에게는 SK의 후원을 받으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부천 FC 1995 창단 태스크포스팀 관계자 발언에 나와 있다. 관련 내용의 기사 전문[14] 대표적으로 2024년 12월 이전의 타나토스가 있었다. # 다만 과거 2004년을 중시했던 타나토스의 경우 2024년 12월 12일부로 1983년 창단 지지를 선언하였다. #[15] 이는 안양시의회 회의록에서 확인되었다.#[16] 그러나 이 발간 당시 연맹의 부총재는 연고이전 당시 서울의 단장이었던 한웅수 부총재라는 점에서 논란이 있다.[17] 실제로 원로 안양 팬들 중에서는 당시 LG 측이 구단의 연고지 이전과 관련하여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이에 대해 안양 서포터즈 측에서도 합의의 의사를 표명했다면, 안양에 남아있는 기존 팬들도 연고지 이전으로 인한 싸움이 없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는 팬들도 있다. 이 경우 기존 팬들도 그대로 FC 서울의 서포터즈로 전환하면서 오늘날 FC 안양의 연고 권역에까지 FC 서울의 영향력을 넓혀 기존 팬들은 새로운 역사를 이어갈 팀을 응원하고, 새 구단의 자체적인 이득도 더욱 커질 수 있었다는 것. 만약 이렇게만 흘러갔다면, 구단과 서포터즈 양 측 모두 잃을 것 없이 이득만 챙기게 되어 지금처럼 안양시에서 FC 서울의 이미지가 나빠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18]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롯데 자이언츠인데 이쪽도 꼴데가 멸칭으로 시작된 단어였지만 이제는 아예 롯데 팬들이 야구를 너무 못하는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한 건지 꼴데라는 말을 즐겨쓰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프런트를 꼴런트라고 부르고 선수 이름 앞에 꼴을 붙이는 등 셀프 디스를 즐기고 있다. 여기에 샤다라빠의 롯데 자이언츠 만화는 아예 제목부터 대놓고 꼴데툰. 문제는 여기는 야구단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롯데리아, 롯데마트, 롯데월드 등까지도 꼴데리아, 꼴데마트, 꼴데월드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기업 이미지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19] 이 주장을 아예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해체 후 재창단이 아닌 이상 엄연히 타 연고지 시절 역사도 팀의 역사니 주장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런 주장을 안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문제는 문제다.[20] 고양 자이크로는 고양시민들이 차라리 FC 서울을 응원하겠다고 할 정도로 막장 운영을 펼쳤다.[21] 이쪽은 엄밀히 따지면 고양시의 잘못이 더 크다.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은 고양시에서 시설 개선 협조를 안 하기로 악명이 높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