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11-01 00:29:22

북패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if 문서명2 != null
, [[]]
#!if 문서명3 != null
, [[]]
#!if 문서명4 != null
, [[]]
#!if 문서명5 != null
, [[]]
#!if 문서명6 != null
, [[]]


파일:FC서울 엠블럼(검빨배경).svg
FC 서울 관련 문서
{{{#!wiki style="margin:0 -10px -5px"
{{{#a38848,#a38848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구단 기본 문서 <colbgcolor=#000> 모기업 GS스포츠
연고지 서울특별시
구단 FC 서울
유소년 오산고등학교 (축구부)|오산중학교
주요 인물 현재 김기동 감독 (김기동호)|선수단|선수단(간략)
역대 감독|주장|등번호별 주요 선수|프랜차이즈 선수|영구결번
시설 관련 문서 홈구장 서울월드컵경기장
클럽 하우스 GS챔피언스파크
팬 존 FC 서울 팬파크
역사 시기별 럭키금성, LG 시절|안양 LG 치타스 시절|AFC 챔피언스 리그 기록|구단 기록
시즌별 역대 시즌|역대 유니폼
K리그1
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파일:K리그 트로피 아이콘.svg
1985|1990|2000|2010|2012|2016 |2026
코리아컵
파일:대한민국 FA컵 트로피.svg파일:대한민국 FA컵 트로피.svg
1998|2015
슈퍼컵
파일:K리그 슈퍼컵 트로피.png
2001
현재 시즌 2026
팬덤 관련 팬덤 규모와 인기|서포터즈 수호신|응원단|네임드 팬
응원 응원가 (간략)|서현숙|박기량
팬 사이트 FCSEOULITE|FC 서울 갤러리
관전 정보 경기장 관련|매표 관련|좌석 관련|응원 관련
라이벌전 파일:수원 삼성 블루윙즈 로고.svg 슈퍼매치|파일:인천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경인 더비|파일: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svg 전설매치|파일:FC 안양 로고.svg 연고지 더비|파일:서울 이랜드 FC 로고.svg 서울 더비
논란 및 사건 사고 사건 사고|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북패|Here is another Old Trafford|물병 투척 피해 사건|원두재-이태석 트레이드 논란 | 인천 지역비하 사건
마스코트 씨드
기타 히칼도의 저주|세 골 차를 뒤집는 서울|데몰리션 듀오|전주의 환희|개매패|5eou1
}}}}}}}}}}}} ||


1. 개요2. 소개3. 양측의 주장
3.1. 연고 이전 주장3.2. 연고 복귀 주장3.3. 그 외 주장
4. 현황5. 해당 용어 사용에 대한 비판6. 정식 맞대결7. 여담8.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external/sports.chosun.com/43010204.jpg
[1]

'북쪽의 패륜', 혹은 '북쪽 패륜아'라는 뜻으로, K리그1 소속 프로축구단 FC 서울에 붙은 멸칭. FC 서울이 2004년 안양 LG 치타스 시절 연고지를 안양에서 서울로 옮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2]

2. 소개

당시 국내 축구계에서는 "팬을 버리고 떠난 구단은 부모를 버린 자식, 즉 패륜과 같다"고 하여 이러한 멸칭이 붙었다. LG의 서울 입성으로 자신들의 구단을 잃은 안양의 축구 팬들은 옛 연고지 구단에게 패륜아라는 수위 높은 멸칭을 붙였고 이것이 정착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가장 극렬히 반대했던 수원의 서포터즈가 가장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연고지 이전은 K리그는 물론 국내외 타 종목 프로 스포츠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모기업 GS와 일부 지지자들의 행태, 그리고 팀을 빼앗겨버린 K리그 최고 강성 중의 하나인 안양 팬들의 강한 반발과 타 구단 팬들의 안양 동정이 어우러지면서 이러한 멸칭은 축구판 전체로 퍼졌다.

당시 안양 서포터즈의 열기가 K리그에서 알아주는 구단이었기 때문에 안양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매우 컸다. 또한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떠날 수도 있겠다는 점에서 비단 안양 팬들뿐만 아니라 타 구단 팬들도 충격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그냥 패륜이라고 불리다가 2년 뒤인 2006년, 부천시를 버리고 제주특별자치도로 연고지를 이전[3]한 제주SK FC도 패륜이라 불리기 시작하면서 이와 구별하기 위해 '북쪽의 패륜'이라는 의미에서 접두어 '북'을 붙여 북패라고 부른다.[4] 하지만 제주 팬들은 부천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걸개를 내걸고 응원과 지지에 나섰으며,[5] 만일 사전에 서울 서포터들이 제주처럼만 했어도 북패라는 단어는 안 그래도 유별났는데 연고를 한순간에 빼앗겨 버린 안양 지지자들과 K리그 올드비들이 추억하는 단어로 남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FC 서울 경기에서는 패륜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6] 타 구단 지지자들도 유독 제주와의 경기에선 남패라는 말을 안 꺼내고 경기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북패는 구단들을 안 가리고 사용되며, 특히 과거에 지지대 더비라는 K리그에서 손꼽히는 더비를 치렀고, 연고 이전 당시 안양 팬들과 함께 가장 극렬한 반대를 표명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서포터들은 FC 서울과의 경기를 북벌(北伐)[7]이라고 부른다.[8] 수원 구단도 슈퍼매치 때 북벌로 홍보했으나, 서울 측이 항의해 구단 차원에서는 공식적으로 북벌이라는 용어를 꺼내지 않는다.

과거에는 야반도주라고도 불렀다. 원래는 '한밤중에 몰래 도망치는 행위'를 의미하는 사자성어인데, 연고지를 안양에서 서울로 이전한 것을 두고 야반도주라고 부른 것이다. 과거 안양 팬들과 수원 팬들이 주로 사용했으며, 수원의 그랑블루 시절 응원가에도 수록된 유서 깊은 표현이다. 하지만 안양 시절에도 꾸준히 서울로의 복귀 의사를 언론에 내보내 이러한 용어에 대해 논란이 있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초반에는 황금 시장 서울을 연고로 했는데도 지지부진한 관중 수와 인기를 기록했다. 허나 이후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등의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을 마케팅으로 활용함으로써 꾸준히 관중 수와 인기가 나날이 늘게 되고, 그와 함께 엄연한 리그 흥행의 주축으로서 거듭났다.

3. 양측의 주장

단순히 연고지 이전을 했다는 이유로 북패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다. 성남 FC나 제주 유나이티드도 중패, 남패라는 호칭이 있지만, 북패의 경우만 사용 빈도가 매우 높다. 이는 안양 팬 측의 규모가 다른 팀들에 비해 상당하다는 점과, 연고 이전을 부정하고 사과하지 않은 점[9], 서울 구단 본인들도 억울한 점이 있기에 이 논란은 끊임없는 평행선을 타며 흘러가고 있다.

3.1. 연고 이전 주장

파일:안양시민구단.jpg
당시 안양 LG 치타스 구단의 홍보 포스터.#
파일:연고이전2.png
LG스포츠가 서울로 연고이전을 선언할 당시 KBS 뉴스 보도.#
파일:연고이전1.png
당시 LG스포츠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제출한 공식 연고이전 의향서.#

LG 구단이 배포한 위 홍보 포스터를 보면 "안양LG치타스는 자랑스런 안양시민구단입니다!"라고 적혀 있으며, 아래에는 "우리고장팀 안양LG치타스 유니폼입기"라고도 적혀 있다. 참고로 안양 LG는 이 포스터가 나온 다음 해에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이러한 홍보는 당시 구단이 안양 시민을 대상으로 자신들을 단순히 잠시 머무는 구단이 아니라 안양을 대표하는 지역 축구팀으로 적극적으로 인식시키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게다가 1996년 안양에 온 이후 네 차례나 서울로 연고 이전을 시도한 점, 유소년 구단을 공중 분해시킨 뒤 서울로 옮겨 가는 것과 같이 지역의 축구 기반을 모두 서울로 옮기는 행태 등 안양 시민들이 FC 서울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매우 많다. '안양 LG 치타스는 처음부터 안양에 정체성을 둘 생각이 없었다는 것인가?'와 같은 안양 축구 팬들의 배신감이 큰 것이다.

서울에서 안양으로 연고지를 옮길 당시 구단이 향후 서울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언론을 통해 안양행을 '한시적 이전'이라고 설명했던 자료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96년 이후 안양이 정식·실질적인 연고지로 기능했다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실제로 FC 서울의 현재 공식 연혁도 1990년을 '서울 연고지 이전', 1996년을 '안양 연고지 이전' 및 구단 공식 명칭의 '안양 LG 치타스' 변경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면 2004년은 '서울 연고 복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현재의 FC 서울 스스로도 구단 역사에서 '연고지 이전'과 '연고 복귀'라는 표현을 역사적 상황에 따라 함께 사용하고 있다.

또한 당시 안양시와 LG 치타스가 체결한 협약 역시 안양과 구단 사이에 공식적인 연고 관계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제시된다. 따라서 서울 복귀 계획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안양을 아무런 연고 관계도 없는 단순한 임시 체류지 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막상 안양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구단은 "안양LG치타스는 자랑스런 안양시민구단입니다!", "우리고장팀 안양LG치타스" 등의 문구를 사용하며 안양의 축구팀이라는 지역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마케팅 했다. 구단이 스스로 안양 시민들에게 지역적 소속감과 애착을 형성하도록 홍보한 이상, 이후 안양 시민들이 구단을 자신들의 지역팀으로 받아들이고 팬층을 형성한 것을 단순한 오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안양 LG는 1996년 안양에 정착한 뒤에도 여러 차례 서울로의 이전을 추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양 시민을 대상으로 자신들을 '안양시민구단', '우리 고장 팀'이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에, 안양 팬들의 입장에서는 '구단이 처음부터 안양에 어느 정도까지 장기적인 지역 정체성을 둘 생각이 있었던 것인가'라는 의문과 배신감이 생길 수 있었다. 또한 서울 이전 과정에서 안양을 기반으로 구축된 유소년 체계와 지역 축구 기반 역시 해체·재편되었다는 점도 안양 팬들의 반발을 키운 요인으로 거론된다.

2004년 서울행 당시 실제 행정 절차 역시 이 논쟁에서 중요한 근거가 된다. LG스포츠는 상단에 있는 자료에서 보듯이 2004년 2월 서울시에 '연고지 이전 의향서'를 공식적으로 프로축구연맹에 제출했다. 당시 서울시는 신생구단 창단 기업 공모가 무산된 이후 기존 프로구단을 대상으로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 신청을 받고 있었으며, 안양 LG와 부산 아이콘스가 이에 참여했다.

이후 서울시 또한 이를 '연고지 이전 공모'라고 표현했고, 안양 LG를 서울 연고구단으로 선정하면서 프로연맹에 안양 구단의 서울 이전 승인을 요청했다. 서울행이 사실상 확정되는 과정에서도 안양 LG는 서울 연고 이전과 관련된 75억 원의 금액을 부담하는 조건에 합의했다. 따라서 1990~1995년의 서울 연고 경력을 근거로 2004년 서울행을 역사적인 의미의 '서울 연고 복귀'라고 부르는 것에는 근거가 어느정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 안양이라는 기존 연고지를 떠나 서울로 이동한 행위가 연고지 이전이 아니었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서울은 원래 우리의 연고지 였으므로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일 뿐'이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구단의 전체 역사를 기준으로 하면 럭키금성이 프로리그에 처음 참가한 1984년의 공식 연고지는 충청도였고, 현재 FC 서울 공식 연혁 역시 1990년이 되어서야 '서울 연고지 이전'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구단의 '연고 복귀'라는 의미에서 원 연고지를 따진다면 서울보다 충청권이 먼저였어야 한다.

럭키금성 황소는 1983년 말 창단한 뒤 1984년 프로리그에 참가했으며, FC 서울의 공식 연혁 역시 당시 연고지를 '충청도'라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1984~1986년 당시 프로축구는 오늘날처럼 모든 구단이 하나의 홈구장을 중심으로 홈 앤드 어웨이를 치르는 방식이 아니라 전국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개최하는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충청 연고를 현재와 완전히 동일한 의미의 지역연고 라고 볼 수는 없지만, 반대로 순회경기 시대였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공식 연고지가 아무 의미도 없는 명목상의 연고였다고 단정하는 것 역시 당시 제도를 현재의 기준으로 소급하여 보는 문제가 있다.

특히 1987년부터는 이러한 반론이 더욱 분명해진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데이터 포털에 따르면 1987년부터 광역지역연고지제도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 시행되었으며, 럭키금성의 연고권역은 명확하게 충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당시 경기 개최 집계에 따르면 1987~1989년 럭키금성의 홈경기 48경기 가운데 39경기, 약 81.3%가 청주(청주종합경기장)·천안(천안오룡경기장)·대전(한밭종합운동장) 등 충청권에서 개최되었다. 따라서 적어도 이 시기의 충청권은 단순히 서류에 이름만 올라 있던 연고지가 아니라 실제로도 홈경기 운영의 중심지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장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의사와 현재의 연고지가 실질적인 연고지로 기능하는 것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볼 수 있다. 럭키금성이 장기적으로 서울 진출을 희망했다는 사실 때문에 당시 충청 연고가 소급하여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듯, LG가 안양 시절 서울 복귀를 계속 희망했다는 사실만으로 1996~2003년 안양에서 실제 형성된 연고 관계 역시 없었던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1990~1995년의 직전 서울 연고 시절을 기준으로 하면 구단이 실제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곳은 동대문운동장이었다. 그러나 2004년 구단이 서울로 들어오며 새 홈으로 선택한 곳은 과거 사용하던 동대문운동장이 아니라 2002 한일 월드컵을 위해 건설된 서울월드컵경기장이었다.

동대문운동장 건물 자체는 2004년 당시 아직 철거되지 않은 상태였다. 실제 철거는 2007~2008년에 이루어졌다. 다만 축구장 기능은 이미 2003년 3월 폐쇄되었고 이후 풍물시장과 임시주차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단순히 LG스포츠와 서울시가 원하기만 했다면 즉시 동대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도, 실제 복귀를 위해서 경기장 기능의 복원과 서울시의 정책 변경, 행정적 지원 등을 통한다면 완전 철거 이전이라 동대문으로의 복귀 역시 가능하기도 했다.

당시 LG가 서울행을 선언하면서 직접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상암구장 활용'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4년 2월 2일 구단은 서울월드컵경기장 활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발전의 전환점을 모색하겠다며 서울행을 발표했다. 따라서 2004년의 이동을 '서울이라는 과거 연고 도시로의 복귀'라고 표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를 마치 1995년 이전의 연고 형태와 홈구장이 그대로 원상복구된 사건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구단은 안양이라는 당시 연고지를 떠나 과거 서울 시절에는 사용한 적이 없었던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았다.

물론 스포츠에서 연고지는 특정 경기장 하나가 아니라 도시나 지역을 의미하기 때문에, "동대문이 아니라 상암으로 갔으므로 서울 복귀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이 부분의 보다 정확한 반론은 '서울이라는 과거 연고 도시로 돌아간 것은 맞지만, 그것을 과거 연고 상태의 단순한 원상복구로 볼 수는 없다.' 정도가 된다.

결국 안양 팬들의 분노는 단순히 LG가 서울로 이동했다는 사실 하나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구단이 서울 복귀 가능성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별개로, LG는 1996년부터 안양을 공식 연고지로 두고 '안양 LG 치타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스스로를 '안양시민구단', '우리 고장 팀'이라고 홍보하여 안양 시민들에게 지역 구단으로서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적극적으로 형성했다. 그 상태에서 서울로의 이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결국 2004년 안양과의 연고 관계를 종료한 뒤 서울로 이동했다. 실제 당시 서울시·프로축구연맹 및 언론이 사용한 행정적 표현도 '연고지 이전'이었다.

따라서 안양 팬들이 2004년 사건을 단순히 '원래 서울 팀이 잠시 안양에 있다가 돌아간 것.' 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8년 동안 우리 지역을 정식 연고지로 삼고 우리 고장 팀이라고 홍보했던 구단이 안양을 떠난 연고 이전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당시 LG 구단의 실제 운영과 홍보 방식이라는 구체적인 배경의 문제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3.2. 연고 복귀 주장

파일:attachment/070139045.jpg
FC 서울 구단의 입장문. 서울 연고 복귀 결정이라고 명시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파일:1739981583.jpg
안양이 서울 복귀를 위한 임시 연고지였음을 보여주는 신문 기사
FC 서울은 1983년 창단하여 2004년에 서울로 복귀한 구단입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30주년 기념 발간.[10]

FC 서울 측은 1996년 동아일보에 "LG는 서울 연고 복귀를 목전에 두고 인근의 안양으로 '한시적 이전'을 하였다."는 기사를 내보냈던 사례 등을 들어 처음부터 안양시 측에 서울 연고 복귀 의사를 표명했음을 밝히고 있다. 애초에 서울에서 안양으로 연고지를 옮긴 것부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인해 강제로 이전당한 것이며 당시 LG는 안양시와 창원시 중 하나를 골라 강제로 연고지 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다시 서울로 복귀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서울과 인접한 위성 도시인 안양을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당시 창원에서도 LG를 지역에 들이기 위해 적극적인 오퍼가 있었으나, 이를 거절하고 안양을 선택한 것이다.

더 정확히 알아보자면, 당시 연맹은 서울 연고를 유지하려면 구단 돈으로 축구장부터 짓고 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LG는 서울 연고를 사수하기 위해 뚝섬 돔 경기장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도봉구의 부지를 알아보는 등 전용 구장을 짓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국 서울로의 복귀 의지가 있었기에 서울 근교 안양으로의 한시적 이전을 택하게 되었다.

안양으로의 연고 이전 이후에도, 당시 안양 LG의 단장은 서울 연고 복귀 5년 전이라는 의사를 내비쳤고 당시 안양 국장이었던 이재하 국장이 K리그 구단들 중 유일하게 서울 연고지 가치 평가 설명회에 참여해 서울 연고지에 관심을 표명했다.

공공연하니 서울 복귀 의지를 표명했던 당시 구단의 방침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당시 최종준 단장의 인터뷰를 꼽을 수 있다. 최종준 단장은 꾸준히 연맹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며 서울로 가겠다는 인터뷰를 남긴 것이 자료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야반도주라고 매도하기엔 관계자가 지나칠 정도로 언론에 서울로 가겠다는 의사를 퍼뜨리고 다닌 셈. 이러한 용어가 쓰이는 이유는 실제로 팬들 몰래 도망쳤기 때문 보다는 안양에 연고로 남아주기 바라는 팬들의 요구가 거부당한 것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3.3. 그 외 주장

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본디 2004년을 중시하는 팬들[11]이 있기도 하다.# 다만 과거 2004년 창단을 중시했던 타나토스의 경우 2024년 12월 12일부로 입장을 변경해 1983년 창단 지지를 선언하였다. # 또한 이러한 논쟁을 타팀 팬들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고, 이전의 역사는 그다지 일체감을 느끼지 않거나 아예 관심 없는 팬들이 다수였다.

다만, 안양 LG 치타스 시절에도 서울 연고 1기 시절 우승 횟수를 들고 와 우승 3회라는 머플러를 흔들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 그만큼 안양에서부터 구단을 쭉 응원한 팬들부터 서울 재입성 이후부터 구단을 응원한 팬들, 혹은 이 주제 자체에 별 관심없는 팬들, 아예 제주처럼 사과해야 한다는 팬들 등 내부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어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는 문제이다.

한편 서울 팬들은 안양시가 LG 구단을 홀대하였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링크에 나와있듯 안양시는 구단에 전용구장 부지 제공을 약속하였으며, 안양시의 시비로 경기장 조명탑을 설치해주었다는 공문서를 올린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안양시는 전용구장 부지를 제공하지 못했고, 차선책으로 안양종합운동장의 전용구장 개조를 약속하였으나 간담회만 개최한 채 이석용 당시 안양시장이 물러났다. 더욱이 후임 시장인 신중대가 취임한 뒤로는 진척되지 않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약속이 이행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시의록 전문을 보면 안양시의회 한 의원은 조명탑은 시민들을 위한 시설이 되어야 하다며, 안양 LG 구단만 혜택을 봄에도 30억을 전액 안양시에서 부담하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내며 LG 구단에서도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조명탑 설치 45억에 LG구단이 비용을 분담했으나 끝내 서울로 돌아가며 막상 LG구단은 혜택을 볼 일이 사라지고 말았다. # 이후 안양의 서포터즈인 A.S.U. RED의 현재 회장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파묘되어 이 주장에 힘을 더했다. #

그러나 신중대 시장의 주장에서 보이듯이, 1996년에 안양에 연고를 둔 이후 LG가 꾸준히 서울로의 복귀를 시도해 매몰 비용 발생을 우려한 안양시가 적극적인 지원을 하기 어려웠다는 전제가 빠져 있는 주장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LG는 안양에 연고를 둔 이후 무려 네 차례나 서울로의 복귀를 시도했다. #

한편 안양시는 서울특별시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위성 도시[12]로, 서울의 연고 권역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FC 서울 구단의 설득과 노력이 있었다면 연고 이전을 하면서도 안양의 팬들을 충분히 흡수해갈 수 있었지만 안양 축구 팬들의 배신감과 구단의 사후 대응 미비 등으로 결국 이는 FC 안양의 창단으로 이어지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갈등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4. 현황

이런저런 논란이 많지만 FC 서울은 인구 천만의 거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군림하고 있다. 2005년 스타로 떠오른 박주영을 영입해 전면에 내세우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면서 팬들이 늘기 시작한 이래 서울 이랜드 FC라는 제2 구단이 창단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창단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K리그2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구단인 만큼 현실적 위협으로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결과 1000만 인구의 시장을 20년 동안 독차지할 수 있었고 FC 서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서울을 대표하는 구단으로 다시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사실상 혼자 욕을 먹는 포지션을 담당했던 팀이었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고, 연고 이전 과정에서의 과오도 명백한 만큼 여전히 FC 서울의 이미지가 다른 팀들에게 긍정적이지는 못하다.

원로 안양 팬들 중에서는 당시 LG 측이 구단의 연고지 이전과 관련하여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이에 대해 안양 서포터즈 측에서도 합의의 의사를 표명했다면, 안양에 남아있는 기존 팬들도 연고지 이전으로 인한 싸움이 없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는 팬들도 있다. 이 경우 기존 팬들도 그대로 FC 서울의 서포터즈로 전환하면서 오늘날 FC 안양의 연고 권역에까지 FC 서울의 영향력을 넓혀 기존 팬들은 새로운 역사를 이어갈 팀을 응원하고, 새 구단의 자체적인 이득도 더욱 커질 수 있었다는 것. 만약 이렇게만 흘러갔다면, 구단과 서포터즈 양 측 모두 잃을 것 없이 이득만 챙기게 되어 지금처럼 안양시에서 FC 서울의 이미지가 나빠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북패라는 멸칭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가 희석되고 마치 흑인들끼리 N-Word를 즐겨 쓰는 것처럼 서울 팬들이 이 멸칭을 즐겨쓰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이는 FC 서울 갤러리부터 시작되어 FCSEOULITE로 이어진 서울 팬 커뮤니티 역사에 겹쳐 에펨코리아 국내축구 게시판 같은 커뮤니티가 한국 축구 팬덤 사이에서 대세로 떠오른 점이 큰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FCSEOULITE는 북패라는 단어만 쓰지 못할 뿐 사실상 '북두어'라고 일컫는 수많은 파생된 북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즐겨 쓴다. 예를 들어 FC 서울의 프런트는 북런트, 추천 버튼은 북념추, 포인트 이름이 북뽕, 맛집 추천하는 글쓰기 탭 이름이 북슐랭가이드 같은 것들이다. 2022년 출시한 FC 서울 맥주는 아예 팬들끼리도 북맥이라고 호칭을 정해서 부른다. 심지어 서울 프런트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사람들의 모임을 자기들끼리 탈북자라고 부를 정도로 북패라는 멸칭은 서울팬들을 넘어서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사실상 보편화된 수준이다.[13] 팬들끼리는 농담삼아 북패의 원래 뜻이 '북쪽의 패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5. 해당 용어 사용에 대한 비판

패륜이라는 용어를 빗대서 표현하는 것은 너무 과격하다는 비판도 존재하며, 비판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과격한 언행이 오히려 폭력적인 축구 응원 문화를 조장한다는 부분 역시 부정할 순 없다.

축구나 서포터즈 문화 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서포터즈나 K리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렇게 과격하게 팬들이 구는 만큼 이런 사람들을 떠나 연고지 이전을 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생기는 등 연고지 이전을 비판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하며 성숙한 응원 문화 조성을 위해 연고 이전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해당 용어 같이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특히 어느 순간부터 사실상 다른 팀보다 패륜이라는 단어가 FC 서울한테만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면서 사실상 연고 이전보다는 FC 서울 구단 그 자체를 욕하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 버렸다는 의견도 존재하며, 무엇보다도 당사자인 서울이나 제주, 성남 같은 구단의 경우 이미 해당 사건이 벌어진지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연고 이전 주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선수단과 프런트들을 향해 해당 발언으로 비난을 하고 책임을 돌리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리고 이 용어가 정당화된다면 김천 상무 FC 같은 군경 구단을 비롯한 축구 외의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 연고지를 이전한 모든 구단에 패륜이라는 딱지를 붙여도 된다는 말이 성립하기에 더욱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연고지 이전이 잦은 한국프로농구나 V-리그는 연고지 정착 의사가 없다고 욕을 먹지만 이들에게 패륜이라는 과격한 단어를 써도 되느냐의 문제는 별개다.

6. 정식 맞대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연고지 더비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연고지 더비#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연고지 더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여담

8. 관련 문서


[1] 사진의 왼쪽은 당시 서울특별시장 이명박, 오른쪽은 당시 FC 서울 구단주이자 LG건설 회장 허창수이다.[2] 연고 이전이냐 연고 복귀냐에 대한 논쟁은 후술.[3] 제주 SK의 경우는 논쟁 없는 연고 이전이 맞다.[4] 제주 SK는 반대로 남쪽의 패륜, 즉 남패라고 불린다.[5] 이 과정에서 SK가 부천 FC 1995의 창립에 일부나마 힘을 보탠 것과 달리 GS는 무시했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GS도 FC 안양 측에 도움을 제안했으나 FC 안양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GS의 돈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후술하겠지만 FC 안양이 창단될 때 화환도 보냈다.[6] 대표적으로는 FC서울의 최대 라이벌인 수원 서포터즈 프렌테 트리콜로의 패륜송과 눕패송[7] 슈퍼매치에서 수원의 주장은 '북벌'이라는 한자가 적힌 완장을 찬다. 이른바 '북벌 완장'. 물론 구단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팬들은 다 북패 정벌의 약자로 알고 있다.[8] 서울로의 연고 이전 초기에 수원 서포터즈는 아예 FC서울을 라이벌로 인정하지 않았고, 구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이후 두 팀의 라이벌리는 K리그 최고의 흥행 카드인 슈퍼매치로 이어지게 되었다.[9] 후에 GS스포츠 측에서 안양에서 신생 구단 창단에 지원을 보태주겠다는 방식으로 성의 표명했지만 거부한 건 안양이었다.[10] 이 당시 연맹의 부총재는 연고지를 옮길 당시 FC 서울의 단장이었던 한웅수 부총재이다.[11] 대표적으로 FC 서울의 소모임 타나토스가 있었다.[12] 애초에 안양시의 탄생은 서울의 배후 도시를 가정하고 시흥에서 분리된 것이 시초이다.[13]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롯데 자이언츠인데 이쪽도 꼴데가 멸칭으로 시작된 단어였지만 이제는 아예 롯데 팬들이 야구를 너무 못하는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한 건지 꼴데라는 말을 즐겨쓰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프런트를 꼴런트라고 부르고 선수 이름 앞에 꼴을 붙이는 등 셀프 디스를 즐기고 있다. 여기에 샤다라빠의 롯데 자이언츠 만화는 아예 제목부터 대놓고 꼴데툰. 문제는 여기는 야구단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롯데리아, 롯데마트, 롯데월드 등까지도 꼴데리아, 꼴데마트, 꼴데월드 등으로 불리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기업 이미지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