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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8-18 20:10:01

박범집


파일:대한민국 공군 마크.svg
대한민국 공군 창설 간부 7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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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 ~ 7대 : 소장, 8대 ~ 현임 : 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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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친일

1. 개요

朴範集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소장이다. 일본식 이름은 히가시바야시 마스노리 / 토바야시 마스노리(東林益範).

2. 생애

1917년 9월 7일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출생했다. 1936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939년부터 일본 육군 항공대에서 해방 때까지 복무하였다.

공군 창설간부 중 유일하게 조종사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육군 항공기지부대 작전처장을 역임하면서 조종술을 배워 전투 조종사가 된 입지전적인 군인이다. 1948년 4월에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한 뒤 대한민국 국군의 항공부대 창설을 최용덕, 김정렬, 장덕창, 이근석 등과 함께 주도하였다 1949년 국방부 항공국장을 역임하여 공군 창설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공군 창설 당시 공군 마크를 고안하였다. 초대 대한민국 공군참모차장[1]을 역임하였다.

6.25 전쟁 중이었던 1950년 11월 12일, 함흥 지역 지휘비행 중 비행기 사고로 순직하였다.

사후 1957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장성급 장교 중 최초로 유해가 안장되었다.

3. 친일

일본군에서 복무하다 최종 계급 소좌로 해방을 맞았는데, 그 이전 1943년 9월 20일, 매일신보와의 인터뷰가 문제가 되었다.

박범집은 당시 인터뷰에서 일본군 항공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조선인들을 추모하면서, 패배는 동양인종이 미국과 영국의 노예가 되는 길이니, 승리를 위해 일본군에 입대할 것을 권유했다.

이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고 말았다.
[1] 당시에는 참모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