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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6-20 16:01:32

박물학


1. 개요2. 설명3. 기타

1. 개요

Natural history

박물학(博物學, 영어: Natural history)은 식물동물의 과학 연구로, 사실상 현대 생물학지질학, 고고학의 조상 격 학문이다.

2. 설명

실험적인 연구 방법이 아닌 관측적인 방법으로 연구해나가는 것으로, 과학 저널보다는 잡지 위주로 실린다. 자연사(自然史), 곧 박물사(博物史)를 연구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박물학 자체는 르네상스 시기부터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함께 처음 발달하기 시작했다. 물론 고대 그리스 시대나 고대 로마 시기에도 귀족이나 유력 정치인, 군주들의 개인 컬렉션으로서 박물관이 있었으니 그 시절에도 박물학의 시초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논의는 있었으나, 본격적인 발전은 대항해시대 이후 유라시아 각국의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유럽 각국의 탐험가와 상인들이 아메리카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진귀한 동식물이나 유물, 광물들을 입수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소개하거나 당대의 학술 수준에서 나름의 분석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위한 학술적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이것이 박물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본격적으로 자연과학고고학이 발달하기 전이었으므로, 아직은 단순히 이런 물품들을 소개하거나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의 분석을 하는 것에 그쳤다. 그래도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고래어류가 아닌 포유류임을 입증하거나,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각종 광물중앙아메리카 문명의 유적유물에 대한 발굴 성과를 내고, 카를 폰 린네가 현대적인 생물분류학의 기초를 닦거나,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입수한 로제타 석토머스 영이 분석하여 이집트 상형문자를 처음으로 해독하는 성과를 내는 등, 박물학자들의 연구 성과는 상당했다. 다만, 당시에는 고고학생물학, 지질학, 인류학, 언어학 등이 그렇게 세분화되어있던 시절이 아니라서, 당대의 박물학자들은 이런 학문들을 포괄하여 연구하는 경우가 흔했다. 카를 폰 린네의 경우, 식물학을 연구하던 와중에 사미족언어와 풍습에 대해 기록을 남긴 바 있으며,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남아메리카를 탐험하면서 아즈텍 제국유적을 발굴하고 그 유물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는, 안데스산맥의 지질 조사와 현지의 기상관측을 병행하기도 했으며, 토머스 영은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의 파동성을 입증한 물리학자이기도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자신이 과학자이기 이전에 철학자이기도 했다[1]. 그래서 서로 관련이 없어보이는 학문들을 학자들이 두루두루 연구하고 성과를 내곤 한 것이다.

이러한 기조를 뒤집은 것은 자연과학의 발전에 의해서이다. 물리학 부문에서는 아이작 뉴턴뉴턴의 운동법칙을 발표하면서 최초로 물리학 전반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이 이루어졌고, 화학에서는 앙투안 라부아지에존 돌턴을 필두로 현대 화학의 기초가 정립되었으며, 지질학에서는 찰스 라이엘니콜라스 스테노에 의해 지층의 생성 원리가 규명되는 등의 성과가 쌓이면서 하나씩 박물학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물학찰스 다윈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현대 진화생물학의 기반인 자연선택설을 발견하고, 이를 그레고어 멘델멘델 유전 법칙을 발견하고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와 빌헬름 바인베르크가 각자 독립적으로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을 발표하면서, 박물학에서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이후의 루돌프 피르호 등에 의해 인류학고고학이 정립되고, 페르디낭 드 소쉬르윌리엄 존스, 그림 형제에 의해 언어학의 기초가 만들어지면서, 박물학은 여러 학문으로 분화되었다. 이후 에르빈 슈뢰딩거[2]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생물학 전반에 대해 물리학적, 화학적 분석을 시도하면서, 박물학의 학문으로서의 생명이 다하고 그 후속 학문들로 그 주도권을 넘기게 된다.

3. 기타

박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을 박물학자(博物學者)라고 부른다. 상술했듯이 과거에는 학제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주된 연구 주제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박물학자라고 하면 생물학자언어학자, 고고학자, 지질학자 등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물학의 마지막을 알린 찰스 다윈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도 사실상 박물학자에 가까웠는데, 다윈은 지질학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환초 등의 산호섬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을 발표하였고, 월리스는 지리학문화인류학에 관심이 많아서 생물지리학의 기초를 닦거나 남아메리카 탐험 당시에 현지 원주민들의 언어와 풍습을 조사하기도 했다. 이들 박물학의 하위 학문들이 각자 기반이 되는 이론들을 정립하고, 이들 이론들에 대한 수학화와 공리화가 이루어지면서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한 것이다.
[1] 애초에 이 시기의 자연과학은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의 하위 분과로 분류되었다.[2]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유명한 물리학자에르빈 슈뢰딩거가 맞다. 이때까지도 학제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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