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열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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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열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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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 ||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 박남열 朴南烈 | Park Nam-yeol | |
출생 | 1970년 5월 4일 ([age(1970-05-04)]세) |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78cm | |
학력 | 경희중학교 (졸업) 경희고등학교 (졸업) 대구대학교 (학사)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 일화 천마/천안 일화 천마/성남 일화 천마 (1993~2003) → 상무 축구단 (1997~1998 / 군 복무)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4) |
감독 | 백양중학교 축구부 (2004~2008) 대교 캥거루스/경남 대교 캥거루스/고양 대교눈높이 (2009~2012)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2012) 성남 일화 천마 (2013 / 코치) 고양 대교눈높이/이천 대교 (2014~2016) 전남 드래곤즈 (2018 / 코치) 김해시청 축구단 (2019 / 수석 코치) 창원시청 축구단 (2021~2022 / 수석 코치) 천안 시티 FC (2023) | |
국가대표 | 19경기 1골 (대한민국 / 1993~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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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이전천안 시티 FC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였고 일화 천마 축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레전드다.은퇴 후 주로 여자 축구계에서 감독을 지냈으며 2012년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 2022년 11월 8일, K리그2에 새롭게 참가하는 천안시 축구단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2. 클럽 경력
2.1. 일화 천마/천안 일화 천마/성남 일화 천마
드래프트에 의해 1993년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된 박남열은 입단과 함께 주전 자리를 꿰찼는데, 프로 데뷔 첫 해에 27경기 출전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도왔고, 신인상 후보에도 오르기도 하였다.[1] 1994년 27경기 4골 2도움, 1995년 24경기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성남 왕조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1996년, 박종환 감독이 팀을 떠나면서 팀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고, 박남열은 1996년 시즌이 끝나자마자 상무에 입대한다. 박남열이 제대한 이후에도 천안 일화 천마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성남 일화 천마는 김대의, 김현수, 박강조, 김도훈 그리고 샤샤 등을 영입하며 2001, 2002, 2003 시즌 다시 3연패를 차지하였다.
박남열은 팀의 고참으로서 우승을 도왔다. 특히 신태용과 영혼의 단짝이자 황금 콤비로 유명했었고, 최다 어시스트-득점 17골 기록을 갖고 있었다.[2]
2003 시즌 중반 다쳐 독일에서 수술을 받고 온 오른쪽 무릎 연골을 다시 다치기도 했고, 그로 인해 구단과의 마찰을 빚기도 해서 박남열은 은퇴를 고려하기도 하였다.
2.2. 수원 삼성 블루윙즈
그러나 차범근 감독이 테스트 제의를 했다는 것을 이상윤에게 들은 박남열은 34세의 나이에 테스트를 보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6개월 단발성 계약을 맺었다. 6개월 간 단 3경기만 뛰고 우승컵을 얻게 되어 후배들에게 우승컵이 따라다닌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3. 국가대표 경력
프로 데뷔 첫 해, 김호 감독에 의해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데뷔전은 1993년 3월 9일,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였다. 이후 간간히 출전을 하다가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1차 예선에서의 바레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이자 마지막 골을 넣게 된다. 팀은 3 - 0으로 대승. 이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과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등의 팀과의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그리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8강전에서 한정국의 부상으로 인해 10분 정도 뛸 수 있게 되고, 팀은 3-2로 아주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과의 4강전에서 20-2[3]라는 엄청난 슈팅 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골을 내주며 0-1로 어이없게 탈락한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경기에 진 그 순간 모두 좌절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4. 지도자 경력
4.1. 백양중학교 축구부 감독
은퇴 후, 백양중학교 축구부에서 지도자로 첫발을 내디뎠다.학교 감독할 때는 ‘3무’ 정책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하는데, 선수 부모와 개별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며, 체벌도 안했고, 선수들이 수업 빼먹는 훈련이 안했다고 한다.
심판 판정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를 입을 때”가 가장 좋지 않은 기억이라고 그는 회상했고, ‘관리’(매니지먼트)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이 때 얻은 코칭 철학이라고 그는 밝혔다.#
4.2. 대교 캥거루스/경남 대교 캥거루스/고양 대교눈높이 감독
2009년에는 여자 축구단 대교 캥거루스의 감독직에 부임했다. 첫 해에 WK리그 우승을 했으며 2011, 2012시즌 WK리그 출범 이후 첫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전국체전에서도 2010, 2011년 대회 2연패를 거두며 여자 축구 무대 내에서 지도력을 입증했다.
4.3.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지도력을 인정받아 2012년에는 잠시 동안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중국 4개국 친선 대회 및 키프러스컵에 참가하였다.4.4. 성남 일화 천마 코치
2013년 과거 선수 시절 동료였던 안익수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권찬수 코치와 함께 친정팀 성남 일화 천마의 코치로 부임하였다.하지만 팀이 시민구단으로 재창단되는 과정에서 2013시즌 종료 후 감독, 코치진이 모두 교체되어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4.5. 고양 대교눈높이/이천 대교 감독
2014년, 고양 대교눈높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박남열이 없던 사이 팀 수비 쪽에서 많은 선수 이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다.
2015시즌에는 유럽 무대에서 활약한 박은선을 영입해 공격에 화력을 더했고, 2015년과 2016년 전국체전 우승을 차지했으나 WK리그에서는 최인철 감독의 지도아래 절대1강이 된 인천현대제철로부터 왕좌를 탈환하는데 실패했다.
4.6. 전남 드래곤즈 코치
2018 시즌 중반 전남 드래곤즈의 코치로 부임해 일화 시절 동료였던 김인완 감독 대행을 보좌하였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한채 김인완 감독 대행과 함께 팀을 떠났다.
4.7. 김해시청 축구단 수석 코치
2019년, 김해시청 축구단의 수석 코치로 부임해 윤성효 감독을 1년간 보좌하였다.4.8. 창원시청 축구단 수석 코치
2021년, 최경돈 감독의 부름을 받고 창원시청 축구단의 수석 코치로 부임, 2022 시즌 팀의 K3리그 우승을 이끌었다.지도력을 인정받아 2022 시즌 K3리그 최우수 지도자 코치 부문에 선정되었다.#
4.9. 천안 시티 FC 감독
2022년 11월 8일, 2023시즌부터 K리그2에 새롭게 참가하는 천안시 축구단의 감독이 되었다. 박남열 감독을 선임한 이유에 대해 천안시는 "박남열 감독의 여자 축구 커리어, K3리그 우승에 대해 좋은 평가를 얻었고 '공격적인 축구' 철학에 대해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답했다. 박남열 감독 역시 선임 인터뷰를 통해 "간결하고 효율적인 경기로 이기는 축구를 보여드리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2월 8일 제주도 동계훈련 중 미디어 캠프를 통해 '한 자릿수 순위', '포백을 통한 공격적인 축구' 등 열정적으로 각오를 밝혔다.
2월 22일 출정식에서도 "간결하고 화끈한 공격축구를 보여드려 재미있고 인상적인 경기를 하겠다"며 변함없이 각오를 밝혔다.
4.9.1. 2023 시즌
3월 1일 대망의 첫 경기인 부산 아이파크와의 첫 경기에서는 경기 시작 10분만에 두 골을 넣으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고 천안 시티 FC도 뒤따라 멀티골을 만들어 냈으나 경기는 2대3 부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에 박남열 감독은 초반 실점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면서 오늘의 패배가 자양분이 되길 기대했다.3월 5일 김포 FC와의 경기에서 4대0 대패를 했다. 박남열 감독은 부산전 때와 마찬가지로 선수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결과라며 빠른 적응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3월 12일 부천 FC 1995를 상대로 0대3 대패를 이어가게 되었다. 연이는 대량 실점에 박남열 감독은 "할 말이 없다. 팬들께 죄송하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고 연이은 후반전 막바지 실점에 대해 "실수 하나로 골을 먹은 후 대처 능력이 다소 부족했다. 선수들이 쉽게 포기하는 게 잠재적으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날 안병도 단장 독선 운영 논란에 대한 일부 팬들의 불만과 함께 천안시티의 성적에 대한 불만이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3월 18일 최초의 천안아산 더비에 1대0로 패배했지만 처음으로 대량실점을 피한 것만으로도 딱히 팬들의 불만이 터지진 않았다. 박남열 감독 역시 "공수 모든 면에서 좋아졌지만 공격에서의 마무리와 수비에서의 세밀함만 개선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경기를 앞두고 구단주인 박상돈 천안시장이 "꼴찌를 해도 좋다"며 성적에 대한 압박을 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말을 전한 것이 알려졌다.[4]
3월 30일 FA컵에서 양주시민축구단을 상대로 3대2 시즌 첫 승을 이루어 냈다. 박남열 감독은 기쁜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계속 되는 실점에 대해 수비 보완을 약속하였다.
4월 2일 전남 드래곤즈에 1대3 패배를 하며 또 한 번 대량 실점을 당한 동시에 5연패를 이루어 냈다. 이에 박남열 감독은 "후반전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모든 부분이 흐트러진 게 패인인 것 같다"면서도 이틀 전 FA컵 경기로 인한 선수들의 체력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며 다소 아쉬운 모습을 드러냈다.
4월 8일 김천 상무 FC전에서 0대2로 패배했다. 전술적으로 많은 변화를 보인 경기였지만 박남열 감독은 김천의 강함을 인정하면서 6연패 기록을 써내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수비 부분에서 긍정적인 면을 봤고 공격의 아쉬움은 다미르의 복귀로 풀릴 것을 기대했다.
4월 12일 FA컵에서 대구 FC와 연장전까지 가는 승부에서 2:1 패배를 하게 되었다. 이에 박남열 감독은 전력이 월등한 대구 FC를 상대로 천안시티 선수들이 끝까지 버티고 싸워준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며 이런 경기력이 리그로까지 이어져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4월 16일 성남 FC전에서 2대0 완패하며 7연패의 늪에 빠졌는데, 박남열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천안시 선수들이 기존 팀들의 ‘프로다움’에 대해 배워야 할 것 같다고 언급하 선수들의 프로 의식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면서 윤용호 선수에 대해 성의 없는 경기력이라며 태도를 지적했다.[5]
4월 19일 안산 그리너스 FC전에서 다미르의 선제골로 앞서며 드디어 1승을 기록하나 했지만, 결국 동점골을 먹히며 무승부를 기록하며 시즌 첫 승점을 가까스로 얻었다.
너희가 라이벌? ㅋ
우리는 승점자판기가 되기 싫다.
우리는 승점자판기가 되기 싫다.
5월 20일 충남 아산 FC와의 충남 더비에서는 1:0으로 패했는데, 이날 경기 아산 서포터즈들이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천안은 조롱하는 걸개를 내걸었고, 이에 천안 서포터즈들도 분발을 촉구하는 걸개를 내걸기도 하였다.
승리는 고사하고 7연패의 늪에 빠졌으며, 부천 FC 1995와의 17라운드에서 1:1 무승부로 시즌 두번째로 승점을 획득했다.
이렇듯 반 년이 다되도록 K리그2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사실상 승점자판기로 거듭나며 최악의 전반기를 보냈는데, 앞으로 4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2003년 부천 SK가 세운 21경기 ‘개막 후 최다 무승’이라는 치욕스러운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이에 분위기 반전을 위해 백기홍 전력강화실장을 코치진에 합류시켰으며, 공격수 파울리뇨와 정석화를 영입해 전력 보강에 나섰다.#
7월 8일 서울 이랜드 FC전은 0:0 무승부를 거두었으며, 연이은 7월 16일 충북 청주 FC전에서는 모처럼 두 골차로 앞서나가며 시즌 첫 승을 거두나 싶었지만 후반 막판 두골을 내주며 2:2 무승부를 거두며 시즌 첫 승에 실패하며 2경기 연속 무패에 만족해야만 했다.
7월 18일 FC 안양전도 1:1 무승부를 거두며 3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다.
7월 23일 성남 FC전에서는 파울리뇨의 2골 1어시스트에 힘입어 3:2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리그 첫 승을 거두었으며, 이날 경기 승리로 '개막 후 최다 무승’이라는 치욕스러운 기록은 가까스로 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 6경기 무승을 거두며 부진하며 좀처럼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9월 16일 서울 이랜드 FC 원정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55일 만에 짜릿한 승리를 따냈으며, 특히 전술과 선수기용에서의 변화를 주면서 시즌을 앞두고 약속했던 ‘공격적인 축구’가 이제야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이은 9월 20일 부천 FC 1995전도 1:0 승리하며 시즌 첫 연승을 기록하였다.
9월 23일 전남 드래곤즈 원정에서 선제 실점을 했지만 동점 골, 역전 골, 쐐기 골을 넣으며 3:1로 승리, 시즌 첫 3연승을 기록했다.
10월 21일 성남 FC를 잡은 이후 22일 안산 그리너스가 김천 상무 FC에 패하면서 꼴찌 탈출에 성공했다.
FC 안양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천안 감독직에서 물러난다는 단독 기사가 보도되며 팀을 떠나는 것이 점쳐졌으며, 안양전에서 패하며 K리그2 최하위로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전격 경질됐다.# 후임은 김태완이 선임됐다.
하지만 후술할 본인의 거취와 관련되어 여러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음을 밝히며 불쾌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내며 한동안 천안 구단간의 진실 공방전이 이어질 전망이다.[6]
4.10. 지도 스타일
무조건 포백이라고 외칠 만큼 포백을 애용하는 지도자다.#포백을 토대로 경기를 치러나가면서 전방부터 공간을 좁히는 압박, 점유율을 높이며 간결한 패스를 활용한 빌드업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뻔한 롱볼 전술로 돌아서버리는데 설령 하더라도 194cm 장신의 모따를 겨냥한 롱볼이 아닌 장신이 아닌 선수 최전방에 붙이고 롱볼을 시도하니 이것이 잘 될 리가 더더욱 앖다.
또한 교체, 용병술도 취약한데 특히 2023년 4월 19일 안산 그리너스전에서는 도움을 기록한 한석희를 27분 만에 재교체하며 모두를 의아하게 만들었다.[7]
당시 박남열은 한석희를 대신해 수비수를 넣으면서 세 명의 중앙 수비수를 활용한 스리백으로 전술 변화를 꾀하며 사실상 한 골 차 승부를 지키는 것에 초점을 두었는데, 문제는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실점을 해서 리드를 지키지 못했고 앞서 서술한 7월 16일 충북 청주 FC전에서는 2:0으로 주도하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팀 내에서 볼을 소유해 공격으로 전개할 수 있는 자원인 윤용호, 다미르, 오윤석을 모두 교체로 빼 버렸는데 이후 후반 막판 두골을 헌납하며 다 이긴 경기를 허무하기 비겨버렸다.
이기기라도 하면 모를까 막말로 굳이 잘하고 있는 선수를 왜 빼는지 의문이 드는 교체를 많이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여주며 상황 대처 능력이 상당히 미흡하다는 것을 그대로 증명했다.[8]
또한 팬들로부터 인터뷰 스킬도 최악이라고 비난 받고 있는데 특정 선수를 겨냥해 프로 의식이 없다, '프로다움'을 선수들이 배워야 하다고 말하는 등 강하게 비판하는 등의 인터뷰를 많이 하는데 이를 두고 너무 선수탓만 하니냐고 상당수의 팬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애초에 ‘프로다움’에 대해 배워야한다는 말은 이미 프로가 아니라는 말과 같기에 이건 한마디로 자신이 이끌고 있는 선수에 대한 비하이며 애초에 그런 선수를 영입하고 뽑은건 박남열 본인이기에 이 말은 즉슨 박남열이 지도자로서 선수를 보는 안목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2023년 박남열이 창원시청 코치직에서 물러나 천안의 감독이 된 이후 창원시청은 리그 우승 구단에서 바로 다음 해에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며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치르며 K4리그 강등 위기에까지 내몰렸고 천안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한 것을 보고 일부에서는 박남열이 프로 지도자로서의 성과나 결과 등을 놓고 봤을 때 코치 위치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만 감독으로서는 그렇지 못하는 유형인 것으로 평가 받는다.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천안 시티 FC 감독직 경질 관련 논란
자세한 내용은 천안 시티 FC/사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6. 여담
- 대학교로 진학을 할 때 경희대학교를 갈 수 있었지만 축구부 창단이 2년밖에 되지 않은 대구대학교를 택했다. 그 이유는 엄청나게 뛰어다니는 경희대의 스타일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들어간 대구대는 그때 당시 교문도 존재하지 않았고 심지어 학교 안에 사과밭과 포도밭이 있었다고 한다.
- 천안 시티 FC 감독을 맡으면서 첫 승을 좀처럼 거두지 못하자 집에서 가족들도 눈치 많이 보고 그동안 혼자서 따로 자며 그마저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하며 야식을 먹어도 제대로 소화를 못했다고 한다. 첫 승을 거두고는 기쁜 마음으로 야식을 먹고 편안하게 푹 자고 싶다고 밝혔었다.#
[1] 다만, 1993 시즌 신인상은 부산 대우 로얄즈의 정광석 선수가 수상했다.[2] 이는 2012년 서울에서 뛰던 데얀-몰리나의 데몰리션 듀오가 기록한 18번째 골로 갱신된 상태다.[3]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25-1이라는 기록도 있고, 28-2라는 기록도 있고. 어쨌든 일방적인 경기였음은 분명하다.[4] 아직 프로화한지 1년도 안된 만큼 당장 올해만의 성적가지고 거취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5] 허나 천안시티 팬들과 K리그 팬들은 리그 7연패는 감독의 탓이 더 커보이며, 선수 탓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천안 팬덤 내에선 경질하라는 여론도 적지 않은 편이다.#[6] 다만 본인 역시도 감독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던 전례가 있어서 구단의 어설픈 일처리와는 별개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7] 선수 교체에 있어서 선수에게 가장 치욕적인 건 부상이 아님에도 전반에 교체 아웃되는 것과 교체로 들어갔다가 또 다시 교체로 그라운드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는 선수에게 엄청난 질책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감독의 용병술이 떨어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8] 이를 두고 한석희가 인터뷰에서 화가 나는게 사실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