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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5 20:10:47

무명(육룡이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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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없는 자 영원히 있으리니, 이름이 없는 자 사라지지 않으리 (初無者 無盡 無名者 不消)- 서로 조직원임을 확인하는 암어[1]

1. 개요2. 극중 행보 요약
2.1. 무명이 일으킨 주요 사건
3. 무명 조직원
3.1. 지휘부3.2. 지재부3.3. 무사3.4. 조직원

1. 개요

無名

고려의 비밀 결사 조직. 전작인 뿌리깊은 나무의 주적인 밀본의 포지션에 해당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작에선 주역인 밀본과 대립하게 된다.[2] 고려사회를 암중 조종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한 조직이다. 철저한 점조직의 형태를 띄고 있어서[3] 조직원 본인들 역시 직속상관이나 업무상 동료 몇 명을 제외하곤 얼굴을 모르며 조직원들 양성하는 사관학교(?) 같은것도 있던데, 점조직이라니?[4] 상위층은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활동한다. 이 가명은 주역의 육십사괘로 간부급은 최대 64명까지 있을 것으로 추정. 수장은 '무극'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듯.

독특한 문양을 상징으로 하고 있으며, 조직원들이 이를 몸 어딘가에 새기고 있다. 정작 서로 조직원임을 확인하는 건 암구호로 하는 모양. 만약에 잡히면 자살하는 것이 규칙인 듯 싶다. 포로로 잡혀서 자살을 못하게 된 무명 조직원이 끝까지 비밀을 지키면 그분이 구출해 줄 것이라 믿었지만 결국 살인멸구로 입을 막아버리려 했다.

38화에서 나온 내용에 따르면 주요 세력은 상단 조직인 듯하나 육산, 적룡, 궐지 등 기존 고려의 권력층도 있으며, 연향이나 초영같은 전쟁고아 출신도 있다. 특히 이 두 사람은 조직의 수장 후보로 키워져[5] 각각 조직의 수장인 무극과 고위 간부인 지천태가 되었는데, 이를 보면 신분이 아닌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하는 나름 평등한 조직이다.

작중에서 개성의 양대 정보 조직인 비국사와 화사단을 움켜쥐어 잘 이용하고 있었으나, 화사단은 정도전에게 넘어가 버렸다.[6] 조선 건국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화도객방이라는 미지의 조직을 이용하려 한다. 화도객방을 이용한다는걸 치욕처럼 얘기하는만큼 일종의 최후의 비책인듯. 화도객방이란 염종의 부하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꾸린 상단으로 어찌보면 무명 중에서도 직계라 할 수 있을듯.

육산이 공양왕에게는 고려 건국 때, 태조 왕건이 궁예를 몰아낼 때의 밀약으로 고려왕조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고 했으니 고려 이전시대부터 존재해왔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방원에게 신라 선덕여왕 때의 염종이 조직의 창시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작가의 전작 선덕여왕에 흑막 포지션을 가지고 있던 비담의 낭도가 무명지도라는 점에서 작가들이 주장하는 세계관 공유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32화에서 창시자가 선덕여왕에서 등장한 염종으로 밝혀지면서 같은 세계관의 작품임이 확정되었다.[7]

37회, 연향정도전이 주막에서 벌인 설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연향의 주장을 통해 조직이 추구하는 철학적 이념이 표면화 되었다...라고 하지만 공리주의에 더 가깝다. 허나 결국 이 조직이 그리는 세상에 전제되어 있는 바는 천하 만민의 행복과 만족에 대한 추구논리가 아닌, 천하 만민간의 경쟁에 대한 추구논리다. 천하의 온당한 질서와 각개의 행복 모두, 결국 그 경쟁을 통해서만 배태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 해당 회에서 연향이 토로한 주장의 가장 큰 대요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조직이 추구하는 관념은, 근대식 개념에 가탁하여 설명될 시, 고전적 자유주의에 가장 가깝다고 정의되어지는 것이 비교적 합당할 듯 하다. 오히려 공리주의와 상응할만한 가치를 추구하는 쪽은, 무명이라기 보단 공전(公田)제도사무역 규제를 골자로 한 경제체제를 확립하여, 국가의 주관하에 경제적 강자의 욕망을 억누르고 부를 균등히 분배해, 최대 다수에게 일정한 정도의 항산(恒産)을 보장코자 했던 정도전쪽이라 보는 편이 더 옳다.

사실 행보가 좀 막장이라 그렇지 정도전 사망 이후 바로 가장 중요한 민본이란걸 망각해버린 밀본에 비해선 굉장히 탄탄한 조직이다. 조직원들의 출신 성분도 굉장히 다양한 것으로 보이며 성별/나이에 상관없이 오직 능력으로만 직급이 매겨지고 직급을 제외하면 평등한 대우를 받는 등 그야말로 그 시대상을 생각하면 거의 말이 안될 정도로 진취적인 조직. 하지만 긍정적인 면은 거기까지고, 결국 이놈들도 신라 시절부터 고려 말기까지 자기들 이권을 위해서 온갖 범죄를 저질러온 스펙터나 다름 없는 범죄조직일 뿐이라 결국 밀본이나 무명이나 조직 말기에 이르러서는 둘 다 행보가 막장이다.

2. 극중 행보 요약

신라 선덕여왕 시절, 염종에 의해 처음 설립되었으며 염종이 비담의 난 당시 비담에 의해 목숨을 잃고 난이 진압되자 남은 잔당들은 태종무열왕 휘하로 들어가 왕 직속 정보조직으로서 활약했다.[8] 하지만 이후 문무왕은 무명을 적대했고 지하로 숨어들었다.[9][10][11] 이후 본인들의 말에 따르면 고려 건국 때, 태조 왕건궁예를 몰아낸 후, 서로 동맹을 맺은 후에 왕실과 깊은 인연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본래 조직명은 없었지만 왕실에서 무명(無名)[12]이란 이름으로 부르자 자신들에게 알맞다 생각하여 그대로 자칭하고 있다.

공민왕 치세, 공민왕은 노국공주가 난산 끝에 아이를 낳고 사망한 일을 무명이 꾀했다고 주장하며 궁인들을 쥐 잡듯 잡았지만, 당시 공민왕은 이미 광증이 있던터라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공민왕이 계속해서 무명에 대한 적대 노선을 걷자, 홍륜을 부추겨서 공민왕을 시해했다. 그 후, 김내평을 이인겸에게 보내 궁에 변이 일어났음을 알림으로서 이인겸을 고려의 최고 권력자로 만들었다. 또한 도당 삼인방의 전횡에 화가 난 이성계가 개경으로 내려오려고 하자, 초주지가의 비밀을 이인겸에게 알려 이성계의 도당 입성을 막았다.

그 후, 도당 삼인방이 차례로 몰락하자 적룡은 이인겸에게 바람을 넣어 이성계와 최영의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결국 위화도 회군을 통해 최영은 몰락하고 이성계가 전권을 장악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성계와 정도전이 조준과 함께 토지 제도를 개혁하려고 하자, 이를 일찍부터 알아채어 조준의 관련 자료를 빼앗아오려고 시도하여 탈취하는데 성공하나, 분이, 이방지무휼, 그리고 이방원의 활약으로 실패한다.

토지 제도 문제로 인해 조민수는 도화전에서 이성계 일파의 암살을 꾀하고, 이를 은밀하게 접한 무명은 김내평을 보내 이성계를 비롯한 그 일파를 죽이려고 하나 이 또한 실패하였다.[13] 이 과정에서 이성계 일파는 무명의 존재를 알아챘다. 한편, 이성계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자, 정몽주를 이용해 새로운 수를 꾸민다. 조준의 필체를 똑같이 배껴 써 정도전과 이방원, 그리고 분이에게 보낸 후 그 뒤를 밟아 비밀 기지의 위치를 확인한 뒤, 그 곳으로 정몽주를 보낸다. 그리고 정몽주는 벽에 걸려있던 신조선의 지도를 보게 된다.

이후에도 토지측량을 위해 파견될 관리를 암살하기도 하며, 우왕을 이용해서 이성계의 암살을 시도하는 등 이성계 일파를 방해하고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고려 왕실과 동맹을 맺었지만 말이 동맹이지 무명은 고려왕을 대대로 꼭두각시로 만들려고 암중 손을 썼다. 심지어 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특정인물을 '칼'로 정하고 충동질해서 죽여버리는 차도살인지계를 쓰기도 했다. 공민왕을 시해한 홍륜이 대표적인 예. 공양왕을 치울 칼로써 이방원을 염두에 두고 그를 포섭하고 있으며 이방원이 표면적으로나마 호응하고 있기 때문에 칼로 쓰든 아님 더한 관계가 되든 손을 잡는걸 염두에 두고있다.정작 이방원은 무명을 완전히 갈아버릴 생각을 하고있다. 하지만 정몽주가 예상외로 상당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자 이방원보단 정몽주에게 더 집중한다. 우연의 연속으로 이성계 일파가 몰락하는건 이제 확정되었다며 흡족해지만 이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반전은...

본인들의 말로는 조직의 목적은 나라가 안정화되는 것이다. 토지개혁에 반대하는거 역시 한바탕 소란스러워지기 때문. 단 여기서 안정화란 부패와 비리, 혼란을 바로잡는 안정화라기보단 '정체'에 가깝다. 이인겸이 권좌에 있을땐 지금처럼 권력자들끼리 다투지도 않았고 왕이 갈려나가지도 않았으니 안정적이다라고 평하는걸 보면 알 수 있다. 의외로 자신들은 이런 안정화된 시기엔 별다른 계책을 안쓰고 그냥 은거하거나 생업에 종사하는 모양.[14] 따라서 이방원의 손에 토사구팽 당하지 않는다면 아마 왕자의 난이 끝나고 나라가 어느정도 안정화되며 다시 어둠으로 숨을 가능성이 있다.[15]

과거[16]에 내부 싸움이 있었던 듯 하지만, 최근 정리가 된 모양이다.[17]

무인정사가 끝나고 이방원이 무명을 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아마 아예 토벌되거나 밀본과 합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방원을 암살하려다가 분이, 윤랑의 난입과 무휼의 귀환으로 실패하고 길선미와 육산이 사망하는 등 큰 타격을 입지만, 적룡이 살아남아 전 조직원이었던 하륜을 협박하여 비국사를 보부상단[18]으로 개편하면서 명맥을 유지한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아직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거나 세종 치세가 안정적이라서 세상에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혹은 다음 작품 떡밥이라거나. 남은건 정조나 아니면 한명회시긴가. 조선후기에 혼란해질때 다시 설친다던가? 참고로 보부상 조직은 구한말에 황국협회라는 이름으로 독립협회와 대립하며 근대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데...

여담으로 육산이 공양왕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독에 중독되어 가는 그를 협박하면서 고려를 버리고 다른 나라를 알아보겠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의 의미를 고려해보자면 무명은 고려를 얼마든지 버리고 다른 나라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방원과의 충돌로 핵심 세력들이 갈려나가면서 워낙 타격을 많이 입은 탓에 적룡과 연향 정도만 남은 시점에서 이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2.1. 무명이 일으킨 주요 사건

끝내 킬방원은 이기지 못했다

3. 무명 조직원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517694_700.jpg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길선미, 연향, 육산, 적룡, 초영, 정야.

3.1. 지휘부

3.2. 지재부

3.3. 무사

3.4. 조직원





[1] 앞은 한자 그대로 '초무자는 무진이라'라고 읽으며 뒤는 풀어서 '이름이 없는 자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말한다.[2] 밀본은 엄연히 정도전의 조직이며 최소한 조선 건국 이전까지는 선역을 맡고 있는 조직이다.[3] 라고 하지만 38화에서 간부들이 복면 그런것도 없이 전부 모이는 회합을 가지는거 보면 간부급은 서로 안면을 트고있는듯 하다.[4] 교육이 끝난 후에야 정체를 알게 했거나 과정을 끝낸 인원 중 능력이 뛰어난 소수만 차출해서 뽑았을 가능성도 있으며 애초에 초영이나 연향과 같이 그 자리에 필요한 인물들을 극소수만 교육시켰을 수도 있다.[5] 극중에선 무극품이라 말했다.[6] 실제로 화사단을 정도전에게 넘어간 후 육산이 초영에게 이건 죽어서도 갚을 수 없다고 꾸짖고 연향 또한 무너진 정보체계를 표현을 했다.[7] 단 무명지도가 사실상 비담 외엔 인원이 없는 거나 다름없는 화랑도인지라(비담의 전투씬에 비담편으로 나오는 인원들은 거의 다 이해관계인 염종의 수하들이라 보면 될 것이다. 비담의 무명지도라기엔 낭도복장 자체를 하고 있지 않다.)선덕여왕 작품 상 비담을 보충해주는 것 외엔 비중있지 않아서 무명지도라는 단어 자체를 선덕여왕 34화 풍월주 비재 때 외엔 사용하지 않아 시청자들이 기억하기 힘들 수 있다. 선덕여왕에선 무명지도보단 흑명단 이라고 불린 듯 하다.[8] 이 세계관에선 월야의 복야회도 김춘추 휘하로 들어갔으니 두 조직이 합쳐진 게 무명일 수도 있다.[9] 최소 문무왕 ~ 신문왕 시기에는 철저히 은둔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신문왕은 부왕인 문무왕보다 한 술 더 떠 자신의 장인이었던 김흠돌이 난을 일으키자 곧바로 그를 처형하고 자신의 부인마저 폐출시켜버렸을 정도였으니.[10] 언급은 안 되었지만 신라 하대엔 숱한 반란과 왕위찬탈, 암살이 있었던 만큼 여기에 무명이 관여하다가 최종적으로 왕건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니, 작가가 추후 신라 후기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집필할 경우 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11] 실제 역사를 완전히 뒤집지 않는 한 고려 초기에도 한동안은 지하로 숨거나 숨 죽여야 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문무왕도 적대적이었는데 광종이 이런 조직에 우호적이었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므로. 심지어 광종의 형인 선왕 정종 역시 자신의 정적들을 가차 없이 숙청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최소 정종 ~ 광종 시기에는 사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12] 이름이 없다.[13] 정확히는 도화전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이긴 쪽을 죽이려고했다. 즉, 조민수는 암살에 성공했어도 무명에 의해 죽음을 맞았을 것이며 살아남은 것이 이성계 일파였을 뿐.[14] 실제 역사에 대입해 보자면 고려 현종귀주 대첩 이후 부터 선종에 이르는 명군들이 줄잇던 시절에도 별다른 정변이 없었으니 성군이건 권신이건 일단 나라만 안정되면 오케이인 모양.[15]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무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만큼 정도전이나 이방원에 의해 궤멸당하거나 나라가 안정되어 어둠으로 숨어드는 게 예정된 결말이긴 하다.[16] 무오년에 있었다고 하는걸로 보아, 1378년 경이다. 대략 이방지가 길선미를 만난 시점과 비슷.[17] 점조직 형태를 취하고있어서 소속감이 떨어질텐데 무극의 명령엔 복종하는진 불명. 단 전쟁 고아인데 무명에게 거둬져 키워졌다는 초영의 말을 보면 철들 때부터 소속된 조직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18] 보부상은 구한말 보수단체화(극우보수단체화 되었다고 하나, 이들의 활동이 극우로 봐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다. 당장에 이들이 독립협회 해산시에 반대파들에 의하여 전위조직화 되었다는 점에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이들이 지방 5일장들을 연결하던 부보상/보부상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경제적 침탈을 하던 외국, 특히 일본에 대한 반발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였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독립협회가 조직될 때부터 일본의 영향을 일부 받았음 또한 잊지말아야 한다. 당장에 독립협회 해산을 소수의 치안조직과 부보상조직인 황국협회가 할 수 있었다는 것만봐도 그 의미가 가진 백성들에 대의기구로써의 위상이 강했다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되기도 한다. 그걸 모티브 삼아 보부상단으로 한 듯.[19] 다만 실제 역사 속 숙종의 성향을 감안하면 그들을 이용한 뒤 왕권 강화를 시도하면서 등을 돌렸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숙종은 재위 기간 내내 왕권 강화에 주력하면서 강성 군주가 되었다.[20] 이는 장보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21] 바로 이방원을 밀지 않은건 이미 이성계에게 이방원이란 선택지가 없단걸 알았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공도 없고 어린, 그야말로 세자가 되면 세상이 뒤집어질 이방석을 대신 선택하고 이후 힘으로 뒤집는 계획을 짠 것이다. 무인정사가 상당한 명분이 있던 것도 이방석이 세자로 책정되었다는 이변때문이었으니 합당한 이유. 극중 정도전 역시 뭔가 터질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든 군권과 대군들에 대한 처우 등 강력한 권한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도전에게 강력한 권력이 집중되는 것 또한 무명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22] 이 장면에서 무명의 힘이 드러나는데 정도전은 주체와 건문제의 내전이 오래갈것이라 예상하고 요동정벌후 안정화 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무명은 주체가 속전속결로 결판낼 것이고 그 후 요동을 빈집털이한 조선을 가만두지 않을것이라 판단했다. 실제 역사를 따저보면 무명의 판단이 더 정확했던 셈이다.[23] 무인정사가 실패할 경우 출병을 막기 위해 한양의 곡식창고를 모조리 태워버릴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24]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둘에게 감히 그분의 뜻을 헤아리려 하느냐며 역정을 냈다.[25] 화사단은 정보조직으로서 정치인들과 결탁하지만 절대 정치판에 주역으로 끼어들진 않는다는 게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후일 이 말을 했던 연희 본인도 화사단을 이끌고 왕권파와 신권파의 정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사실상 유명무실한 규칙...[26] 화사단에서 키워놓은 묘적단이 이방원의 필체를 이용하여 편지를 보냈다.[27] 무명이 엮인 누명이 끔찍히 싫다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초영과 협력해주는거 같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무명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무명과의 연결을 증명하게 된다.[28] 대방인 초영은 죽었지만 초영의 직속 조직인 화사단은 신권파인 연희와 정도전에게 넘어가 그의 심복이 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다.고도의 고인드립[29] 이 때 그리 실력자도 아닌 것 같은데 날아오는 독침을 알아챘냐며 척사광에게 굴욕을 당한다.[30] 불에 타서 알아보지 못하는 어린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시체를 가져왔다고 초영과의 대화에서 언급한적이 있다.[31] 이때 상황을 보면 뛰어난 무사이니 쓰라고 하는식으로 이성계에게 하사하고 척가가 돌연 돌변해서 이성계를 공격하는 형식으로 암살을 계획하는 듯 하다.[32] 삼한제일검이 된 이방지가 '만약 1대 1로 붙었으면...' 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당시에 무휼보다 더 강할 확률이 높다.[33]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무명 조직에 들어갔다기 보다는 무명 조직원 중 누군가가 먼저 척가한테 접근해 조직에 들어오라고 회유한 듯.[34] 무술감독 겸 영화배우. 루시(영화)에서 최민식의 심복으로 마지막에 멋지게 바주카포를 쏘는 그 사람이다. 뿌나에서도 소소하게 무사나 계급있는 군졸로 3,4회 정도 출연했었다.[35] 이는 육산의 명령대로 따른 것이며, 만일 일이 잘못될 경우 모든 책임을 우왕에게 떠넘길 흉계를 꾸몄던 것이다.[36] 실제로는 우왕이 김저, 정득후 등과 직접 모의한 게 맞고, 이전 자신을 섬기던 곽충보에게 이성계 암살의 밀명을 내렸지만 믿었던 곽충보의 밀고로 실패한다.[37] 이방석이 왕이 되지 않으면 단명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단, 실제로도 이방석은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인해 왕이 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살해당했으므로 결과적으론 옳은 점괘가 되었다.[38] 조선 건국 전에도 공양왕이 궐지를 왕사로 임명하려 하는 등 대외적인 명망이 상당하다.[39] 연향과의 대화를 통하여 파악해낸 무명이 사방팔방에 세력을 뻗칠 수 있었던 근원이 되는 궁인 조직, 사찰, 상단을 모조리 뿌리뽑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