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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 Großherzogtum Mecklenburg-Strelitz | ||
국기 | 국장 | |
위치 | ||
1815 ~ 1918 | ||
역사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국 | 바이마르 공화국 | |
지리 | ||
위치 |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 |
수도 | 노이슈트렐리츠 | |
인문환경 | ||
언어 | 독일어 | |
종교 | 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 |
민족 | 독일인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입헌군주제 | |
국가원수 | 대공 |
[clearfix]
1. 개요
북독일 연방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대공국.1905년 기준으로 면적 2,926 km², 인구 10만 3천 가량으로 대공국치고는 적은 편이었다. 수도는 노이슈트렐리츠(Neustrelitz)였고 그에 맞먹는 도시로 노이브란덴부르크(Neubrandenburg)가 있었는데 두 도시의 인구는 모두 1만 남짓이었다.
2. 약사
오늘날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동남부에 위치한다.메클렌부르크 가문[1]은 시조가 니클로트(Niklot, 1090~1160)라는 슬라브 계통의 인물로, 1130년부터 시작되었다. 1329년에 공국으로 승격되었고, 두세 분파로 이어져오다 통일되었다가 1701년 다시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국,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국 두 분파로 재편되었다. 1815년 빈 회의 결정에 따라 두 공국은 함께 대공국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한 주(Freistaat)로 바뀌었고, 1933년에 나치 치하에서 메클렌부르크로 합쳐질 때까지 지속되었다.
대공의 궁전인 노이슈트렐리츠 궁전은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날아갔다.
3. 왕사(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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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2세 | 게오르크 | 프리드리히 빌헬름 | 아돌프 프리드리히 5세 | |
아돌프 프리드리히 6세 | ||||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작 | }}}}}}}}} |
넘버링은 메클렌부르크슈베린과 마찬가지로 (분립 이전 포함) 공국 시절의 것을 이어서 썼다. 아래는 대공국 승격 이후.
- 카를 2세 (1815-1816)[2]
- 게오르크 (1816-1860)
- 프리드리히 빌헬름 (1860-1904)
- 아돌프 프리드리히 5세 (1904-1914)
- 아돌프 프리드리히 6세 (1914-1918)
-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 (1918년, 섭정)
아돌프 프리드리히 6세가 1918년 2월 23일 자살하였고, 슈베린의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가 섭정하게 된다. 유일한 계승자였던 아돌프 프리드리히 6세의 당숙 카를 미하엘은 오랫동안 러시아 제국에 있었고, 계승에 관심이 없어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에게 계승권을 포기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지만, 배달이 늦어져 편지가 도착한 건 독일 제국이 붕괴한 1919년이었고, 계승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이후 카를 미하엘은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조카 카를로프(Carlow) 백작 게오르크를 입양했다. 그는 1934년에 슈트렐리츠 대공가를 계승했고, 슈베린의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가 1950년에 이를 승인해 정식으로 슈트렐리츠 계통의 수장으로 인정했다.
3.1. 대공위 요구자
- 게오르크
2세(1950-1963): 1899~1963. 루터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 전쟁 말기 한때 나치에 체포되어 작센하우젠 수용소에 가기도 했다. 전처인 이리나 라예프스카야 여백작[3]으로부터 2남 1녀를 두었고, 후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의 차녀 샤를로테 여대공으로 자녀는 없다. - 카를 그레고르 (1963-1996): 1921~1996. 동독이 무너지자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갔다. 오스트리아의 일로나와 결혼해 3녀 1남을 두었으나 이혼.
- 보르빈 (1996- ): 1956~. 슈베린 계통이 2001년 단절되면서 유일하게 남은 메클렌부르크 계통이 되었다.
- 2남 1녀. 후계자 알렉산더는 2022년 6월 메클렌부르크의 미로(Mirow) 성에서 터키계 네덜란드인 Hande Macit와 결혼했다. 2023년 9월 장손 레오폴트가 태어났다.#
본가가 자리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지역에 동독이 들어서자 서독으로 망명했고, 현재 살아있는 대공가 구성원들은 대부분 남독일 프라이부르크가 고향이다.
대공가 홈페이지
[1] 오보드리텐(Obodriten) 가문이라고도 함. 1701년 이후 가계도 참조[2] 여동생이 조지 3세의 왕비 샬럿이며 딸들은 프로이센의 루이제 왕비와 하노버의 프리데리케 왕비다.[3] 톨스토이 가문에 시집가 1남 1녀를 두었다가 사별 후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