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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09:08:23

만물일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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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특징4. 현황5. 사례

1. 개요

현대 한국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일부 언어, 문화 등의 영역이나 현재 한반도에 남은 유물 등이 사실은 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가 한민족을 말살하고 민족정기를 훼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음모론.

2. 배경

일제강점기일본 제국이 조선에서 동화정책을 펼친 것 자체는 사실이며 1930년대부터는 민족말살정책을 펴며 한국어의 사용을 금하고 일본어의 사용을 강제하는 등 동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 결과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대 들어 일본어가 한국어에 상당 부분 침투하기도 했다.

8.15 광복 이후에도 쓰레빠, 즈봉 같이 일본어로부터 전래된 단어들이 일상 생활에 여전히 쓰여왔지만 일제의 잔재를 없애로는 노력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8.15 광복 이후 일제가 시행한 것들을 바꾸는 과정에서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일제가 바꾸지 않았던 엉뚱한 것들이 일제의 만행으로 지목 받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식민지 시절부터 일제로부터 억압받으면서 생긴 반일 감정으로 인해 일제가 시행한 정책은 무조건 나쁘게 보려고 하다 보니 일부 극단적인 반일주의자들은 일제가 행한 건 모두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행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역사 왜곡을 하게 되었다.

3. 특징

이들의 주된 오류는 "어? 이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으니 일제가 한 짓 하니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일제가 바꾼 것도 있지만 문제는 일제가 한 짓이 아닌데도 일제가 한 짓으로 둔갑한 경우다.

만물일본유래설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으나 만물일본유래설은 단순히 일본의 문화로부터 전래되었다는 설이고 만물일제설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조선의 민족문화를 말살하려고 고의적으로 자행했다는 설이다. 아무래도 일제가 민족문화 말살에 목적을 두고 한 짓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생활에 정착한 언어나 문화, 유물 등의 것들이 일제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오해를 하기 쉽다.

4. 현황

워낙 광범위하게 민간에 퍼진 설이라 교사들도 이걸 정설로 믿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현재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어서 엉뚱한 걸 되돌린답시고 바꾸는 사례도 있는데 닭볶음탕이나 의왕시의 한자 표기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대부터는 인터넷이 보급되며 잘못된 정보들이 정정되고는 있지만 현재에도 바로잡히지 않는 것이 많으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5. 사례

그러나 경희궁은 구한말에 경복궁 복원을 위한 건축 자재로 사용되며 해체되어 이미 90% 이상이 훼손되었다. 이미 19세기 말에 잔여 전각 5채만 남은 상황이며 그마저 문짝이 모두 철거되어 건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프랑스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상으로 경희궁 궁터는 이미 구한말에 잡초가 무성하게 황폐화된 상태였다. 일제시대 때 잡초가 무성한 공터로 방치되고 있던 해당 부지 일부에 서울고등학교의 전신인 경성중학교를 세웠고 잔여 전각 5개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매각하여 동국대, 성균관대, 신라호텔 등의 부지로 이건되었다. 그리고 그 일부가 현재까지 남아 경희궁 복원에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