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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7:49

마정길/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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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선수 시절과 지명3. 프로 시절
3.1. 한화 이글스 시절
3.1.1. 2002 ~ 2007 시즌3.1.2. 2008 시즌3.1.3. 2009 시즌
3.2. 넥센 히어로즈 시절
3.2.1. 2010 시즌3.2.2. 2011 ~ 2012 시즌3.2.3. 2013 시즌3.2.4. 2014 시즌3.2.5. 2015 시즌3.2.6. 2016 시즌3.2.7. 2017 시즌

1. 개요

마정길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다.

2. 아마추어 선수 시절과 지명

내덕초등학교 때부터 언더핸드 스로 투수였다. 청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주기계공고로 진학해 1학년 때부터 고교야구대회에 등판하며 전국구 투수로 주목받았지만, 그 당시 괴물같았던 선수들이 많아 주목받지 못하였다.[1] (김병현, 봉중근, 최희섭 등)

활약이 컸던 선수들이 많았던 탓인지는 몰라도, 본인은 당연히 1998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가 자신을 뽑을 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2차 10순위라는 결과에 실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국대로 진학했고 11년 만에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전신 백호기)에서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받기도 했다.관련기사

졸업한 뒤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3. 프로 시절

3.1.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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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졸업 후 2002년 연고 팀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3.1.1. 2002 ~ 2007 시즌

2002년과 2003년 2년간은 마당쇠로 등판해 당시 불펜진이 약했던 한화 불펜에서 2년 연속 60이닝 이상을 찍어줬고, 선발 로테이션이 무너졌을 때에는 선발까지 출전했었다. 물론 선발 경기 결과는 참혹했다. 관련기사

당시 같은 팀에서 뛰었던 박정진과 함께 '마빡콤비' 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2004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부진에 빠졌고, 시즌 막판 이른바 프로야구 병풍 사건에 관여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 2년간 야구를 떠나야 했다.

2007년 초 소집 해제되었고, 복귀했을 당시 성적은 12이닝 1홀드 1패. 그다지 좋지 않은 성적이었고, 불펜으로서 좋은 활약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3.1.2. 2008 시즌

2008년, 마정길은 여전히 패전처리로 등판하게 되는데, 6월 4일, 한화와 기아가 벌인 수중전을 치를 때 패전처리로 나와 3이닝 동안 6삼진을 잡아내는 등 호투하게 된다.[2][3]

이후 올림픽 브레이크가 끝나고 그나마 불펜진에서 같이 버티던 윤규진이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돼 버리자, 그야말로 무섭게 굴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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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브레이크 이후로 마정길에게 쉬는 날은 단지 류현진의 등판일[4]과 우천취소 되는날 밖에 없었다. 후반기 26경기 중 무려 20경기에 등판. 위에 말한 월요일과 류현진 등판일을 제외한날을 제외하면 단 2경기밖에 쉬지 못했다.

심지어 류현진마저 부진하자 이때 당시 4일째 연속으로 등판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주 5일제를 채우고 만다. 2008.09.23 SK전 3⅓이닝을 던지며 호투를 발휘하는데 이때는 감기몸살에 걸렸음에도 정신력으로 던졌다고 한다. 영상참조
아무튼 2008 시즌은 그에게 있어서 커리어 하이. 이로 인해 덕분에 마노예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되었고, 삼성의 정현욱과 함께 노예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게 된다.

이와 같은 노예 생활 덕에 2008년의 성적은 64경기(최다출장 3위) 92이닝, 구원이닝 1위에 2승 1패 7홀드 평균자책점 2.91로 연봉도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100% 상승했다.

3.1.3. 2009 시즌

하지만 2009 시즌에는 2008년 혹사의 후유증으로 그다지 출장하는 경기가 많지 않았고 새로운 노예선수, 양훈황재규 둘이 자리를 메우나 했는데 여전히 굴림당한다.

2006년부터 보인 한화 이글스의 팀구성은, 선발투수진이 무너지면서 중간계투가 시즌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부상 중에 나와서 굴림당하다 손목 부상이 악화되어 일시적으로 2군으로 이동하였는데, 다행히도 한화가 가을 시즌 진출에 실패하여 재활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3.2. 넥센 히어로즈 시절

3.2.1. 2010 시즌

그러다가 2010 시즌 개막을 앞두고 넥센 히어로즈의 좌완 투수 마일영을 상대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5] 넥센 쪽에서는 언더 투수가 부족한 상태였고, 한화 쪽에서는 좌완이 부족한 터라 마일영은 선발 경험도 있었기에 현금 12.5억원[6]을 얹어 주는 조건으로 트레이드가 단행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식을 본인이 받은 날짜는 3월 12일 생일 전날이다. 배번도 마일영과 맞바꿨다. 트레이드 뒷얘기

아무튼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뒤, 셋업맨으로 1군 58경기에 출장하여 3승 2패 2홀드 56⅓이닝 43K 3.04의 평균자책점으로, 넥센의 일명 BOSS 라인(박준수, 오재영, 송신영, 손승락)과 함께, 넥센이 불펜 방어율 시즌 2위[7]라는 아성을 이룩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다만 분식회계 횟수가 어마어마했다. 58명[8]의 승계주자를 물려받아 그중에서 22명을 홈으로 불러들여 32.8 Rel%(물려받은 주자 득점율)에 달하는 분식회계율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붙은 별명이 '정길네 분식집 사장님'.

한편 반대 급부로 트레이드된 마일영은 불펜으로 47경기에 등판하여 1승 3패 2세이브 10홀드 43⅔이닝 26K 평균자책점 7.01을 기록했다. 게다가 이닝마저 트레이드된 마정길보다 적게 먹었다.

트레이드가 이뤄진지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마정길은 좋은 베테랑 불펜으로 잘 있다가 2017년에 은퇴하였고, 마일영은 부활에 실패하고 불만 지르다 2015년 7월말에 방출되었다.

3.2.2. 2011 ~ 2012 시즌

2011시즌에는 스프링캠프에서 제구가 안되던 체인지업과 싱커를 장착해 좋은 구위에 다양한 구질을 장착하였고 덕분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 2010년 분식회계 횟수 탓인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4월 14일 KIA전을 제외하고 올라온 주자 있는 상황에서는 그럭저럭 잘 막는 모습을 보였다.[9]

적은 점수차나 동점 상황 즉, 추격조로 뛰고 있지만 필승조로 등판할 때도 있었다. 쉬운 말로 해서 저런 거지, 넥센 히어로즈선발 투수들이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한화에서도 해왔던 노예 생활[10]을 이 곳에서도 충실히 수행해냈다.

8월 8일 롯데전을 앞두고 뜬금없이 부상 소식이 전해졌는데, 식당에서 미끄러져서 왼쪽 무릎을 다쳤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 정밀 검사를 받게 되었다.

8월 12일, 마정길의 시즌 아웃 기사가 떴다. 정밀검진 결과 치료에만 3개월이 걸린다고 하였다. 결국 그대로 시즌 아웃.

마정길의 복귀는 2012년 7월에야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2012년이 되어도 전혀 소식이 없다가 나오는 이야기로는 2013년에야 복귀한다고 하였다. 수술도 2번이나 했다고 하였다. 거의 1년 반을 통째로 날렸으니 엄청난 부상인 듯했다.

3.2.3. 2013 시즌

2013년 2월 13일, NC와의 연습경기에서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팬들은 노환수, 배힘찬에 이어 마정길까지 등판했다며 팀의 늘어난 투수자원에 환호하고 있다.

4월 10일, 부진했던 이보근과 교체되어 드디어 1군 로스터에 등록되었다. 무려 610일만의 1군 등록.

그리고 4월 12일 7회에 브랜든 나이트의 뒤를 이어 등판해서 1이닝동안 2삼진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훌륭하게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정길이 꾸준히 맹활약한다면 넥센의 약점인 불펜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기에 많은 기대를 받게 되었다.

4월 1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강윤구의 뒤를 이어 8회 등판, 2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다. 겸사겸사 10회에 팀이 역전에 성공하여 1승을 가져가게 되었다.

올 시즌에도 어김없이 이기고 있는 상황, 지고 있는 상황을 막론하고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예시절처럼 막 구르는 것은 아니고 휴식을 주고 있다. 일례로 6월 1일에는 말소로 나오지 않았다.

9월 1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1로 앞서는 8회 말, 강윤구가 몸에 맞는 공, 안타, 진루타로 2사 2, 3루를 만들어 세이브 상황을 충족시키자, 3연투를 한 손승락 대신 나와서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9월 19일 KIA전에서 땜빵 선발 이보근의 뒤를 이어 3회를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간신히 막았다. 승리 투수가 되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1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3.2.4. 2014 시즌

3월 30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 2연전 이틀째에 5회를 채우지 못하고 무너진 강윤구의 뒤를 이어 등판, 2:3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3탈삼진 1피안타 무실점 역투를 선보이며 SK의 타선을 틀어막고 7회에 송신영에게로 마운드를 넘겨주었다. 특히 SK의 외국인 4번 타자 루크 스캇을 상대로 삼진을 잡아내며 호투, 팀은 패배했지만 가장 빛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후 3경기 정도 더 등판하면서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는 한화 1군에서 자주 보기도 어려워진 마일영과는 달리 필승조에서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에는 박성훈, 2013년에는 이정훈, 2014년에는 마정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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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두산의 허경민의 몸을 맞췄는데, 타자-포수-주심까지 맞췄다.

조상우가 부상으로 이탈한 이후, 한현희와 함께 등판이 잦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강윤구, 김영민 등의 롱릴리프들이 제 역할을 못해주면서 노예질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단적인 예로 6월 8일 두산전에서 한현희와 함께 각각 2⅓이닝을 소화했다.

6월 17일 KIA전에서도 헨리 소사에 이어 등판한 강윤구, 김대우가 1이닝을 막아 주지 못한 탓에 7회 2아웃부터 등판했다.

젊은 투수들이 사람 구실을 못한 탓에 등판 간격이 좁아졌고 그로 인해 시즌 초반의 강력한 모습은 다소 잃어버렸다. 그 예로 6, 7월 동안 자책점이 크게 올라갔다. 곧잘 막다가도 점수를 내주기도 하는 등. 그래도 이정훈이 시즌아웃 된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불펜진 중 한명이다. 그리고 오재영과 문성현이 시즌 중 캠프를 마치고 1군에 복귀해서 어느정도 나아진 모습을 보여준지라 체력적으로 조금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8월에는 조상우가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 주고 있고 본인도 부담이 줄어들었는지 다시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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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8월 28일 한화전에서는 한 타자만 잡고 안타와 볼넷으로 1사 1, 2루를 만든 다음 내려갔고, 29일에는 아예 한 타자도 못 잡고 만루를 만들었다.

후반 들어서는 예전같은 언터쳐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시즌 내내 등판하면서 총 64이닝을 소화, 그럭저럭 괜찮은 추격조 불펜으로 활동했다.

201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합류하여,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였다. 김대우, 문성현 등과 함께 추격조로 등판했다.

시즌 후 8,800만원에서 5,200만원(인상률 59.1%)이 오른 1억4천만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 2009년 이후 6년만에 억대 연봉에 진입했다.

3.2.5. 2015 시즌

1월 8일 기사에서 벽두부터 노예 체질임을 본인 입으로 인증하였다. "띄엄띄엄 경기에 나서는 것보다 힘들더라도 날마다 등판해야 컨디션도 더 좋다"고.

4월 1일 마산 NC전에 3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등판해 6회말에는 안정적으로 이닝을 마무리하였으나, 7회말에 김태군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였다. 이후 9번 타자 지석훈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하고 김영민으로 교체되었다. 경기는 10:3으로 패배하였다.

4월 4일 목동 SK전에 등판, 5점차로 크게 지고 있는 동안 2이닝을 책임졌다. 8회 초 박정권, 이재원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1실점하였다.

4월 7일 잠실 두산전에서 7회말 피어밴드가 1사 2, 3루의 위기에 처하자 구원등판하여 첫 타자 양의지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으나, 이후 대타 최주환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완벽한 분식회계를 하였고, 김재환에게 우익수 앞 1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자신의 평균자책점도 높였다. 하지만 이날 넥센 히어로즈는 17:4로 승리하였다.

4월 11일 목동 KT전, 7회 초 1사 2, 3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박기혁의 땅볼로 1점을 허용하였으나, 이후 8회까지 실점 없이 마무리하였다. 경기는 6:4로 패배했다.

4월 16일 문학 SK전에 등판, 1이닝 1볼넷 2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10:0으로 완패했다.

4월 19일 광주 KIA전, 송신영이 7회말 최희섭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자 구원등판하였다. 볼넷 2개를 내주었으나 실점 없이 8회까지 마운드를 책임졌고, 팀은 15:4로 승리하였다.

4월 21일 목동 두산전에서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팀은 12:0으로 승리하였다.

4월 23일 목동 두산전, 9회 초 손승락이 역전 2점 홈런을 허용하자 등판하였고, 실점없이 9회 초를 마무리하였다. 팀은 5:7로 패배했다.

4월 26일 KT전에 등판, 팀이 크게 이기고 있는 동안 5타자 상대로 볼넷 2개를 내주었으나 실점 없이 2이닝을 막았고, 김동준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내려왔다.

5월 5일 목동 삼성전, 팀이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9회초에 등판하였고 이번 시즌 처음으로 삼자범퇴 처리하며 경기를 끝냈다.

7월 7일 KIA전에서 500경기 등판을 달성하였다.

7월 28일 목동 kt 1차전 경기에 앞서 500경기 출장 기념 특별 시상식이 열렸다. 프로야구 통산 31번째 기록이라고. [박동희의 야구인] '침묵의 노력' 마정길 이야기

8월 4일 목동 KIA전에서 정면으로 날아오는 타구에 엄지 손가락을 맞아 엄지 골절을 당해서 재활에 2개월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부상으로 넥센 팬들은 마정길의 진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본디라면 마정길이 나머지를 다 틀어막는 상황에서 손승락을 위시한 투수진들이 다 이겨놓은 KT전을 화끈하게 불을 질러 게임을 날려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모든 넥센 팬들이 그의 귀환을 바랬다.

다행히 재활을 마치고 10월 포스트시즌 일정 직전에 복귀했다.

시즌 후에 FA 자격을 얻었고 2년 계약에 계약금 2억 2천만원, 연봉 2억원 등 총 6억 2천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3.2.6. 2016 시즌

전에는 남은 이닝을 먹으러 나오는 일이 많았지만, 2016년 시즌을 앞두고 마무리 손승락의 FA 이적, 한현희조상우가 수술로 인해 시즌아웃되어 버리는 등 넥센의 불펜진이 죄다 박살나버려서 점수가 아슬아슬한 상황 + 선발이 5이닝 정도 밖에 못 먹어서 한두이닝 더 막아줘야 할 때도 자주 등판하게 되었다. 기존의 역할에서 선발과 필승계투진을 잇는 가교 역할이 추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5월 8일 고척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 와의 경기에서 팀이 1점 뒤진 9회초 등판해 상대의 클린업 트리오를 3연속 삼진으로 잡아내었고, 9회말 임병욱의 동점 솔로홈런과 박정음의 끝내기 적시타로 시즌 2승째를 올렸다.

5월 25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8:7로 뒤진 9회초에 올라와서 선두타자에게 2루타를 맞았지만 후속타자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팀이 9회말에 정우람을 상대로 끝내기 폭투를 얻어내며 승리를 따냈다.

보통 추격조로 등판하는 일이 대부분인데, 등판할 때마다 호투가 계속되자 6월 12일 kt전에 연투로 쉬어야만 했던 이보근을 대신해서 필승조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1이닝 무실점으로 팀의 기대에 부응했다.

6월 14일 혹독한 선발 신고식을 치른 최원태의 뒤를 이어 5회 초부터 마운드에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2루타를 맞았으나, 다음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하며 실점하지 않았고, 6회 초도 삼자범퇴로 막은 뒤 마운드를 금민철에게 넘겨주었다. 팀은 8회말 대거 8득점에 성공하여 역전승에 성공한다.

6월 17일~19일 주말 한화 3연전에서 3번 모두 등판했다. 17일은 버리는 경기라 추격조의 성격으로 등판했고, 18일은 5회 말 1사 이후 오재영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 아웃카운트 2개만 잡고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3루수 장영석의 실책으로 잡혔어야 할 아웃카운트 1개가 안 잡혀 1아웃만 잡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19일에도 5회 말에 등판했다. 3연투로 인해 제구가 흔들리며 2실점했으나 추가 실점은 하지 않고 5회 말을 막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코엘로의 이른 방출 때문에 생긴 선발의 공백이 이 3연전동안 마정길을 개고생 시킨 셈.

7월 12일 kt전에서는 8회말 김상수가 불을 질러 4:5로 역전당한 상황에서 등판해 두 타자를 공 5개로 잡아냈는데, 9회초에 팀이 다시 역전하는 덕분에 행운의 1승을 챙겼다. 그리고 다음날(13일) 5회말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은 박주현 다음 투수로 나와 두명의 주자를 분식하면서도 2이닝을 막아 이틀 연속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벌써 시즌 6승째로 팀내 다승 2위다. 그리고 그 다음날 9회에도 또 등판해 1이닝을 책임져주면서 왜 자신이 노예임을 보여주며 전반기를 마쳤다.

후반기 들어 김상수가 부진에 빠지고 이보근이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여서 마정길도 매우 자주 등판하게 되었다. 특히 8월엔 8월 3일, 8월 4일, 8월 6일, 8월 7일, 8월 9일, 8월 11일에 등판하였다. 3연투 자제, 1이닝 20구 미만을 지키는 선에서 정말 무지하게 굴려지고 있다.

어쨌든 2016년 마정길은 필승조인 한현희, 조상우, 손승락이 빠진 불안한 넥센 마운드의 든든한 허리가 되어주었다.

2017시즌엔 한현희조상우가 돌아올 예정이라 숨통이 트일듯하다.

3.2.7.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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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희와 조상우가 돌아오긴 했는데 선발로 갔기 때문에 다시 노예행이 예상되었으나, 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 때문인지 실점이 잦아지며 믿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5월 1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도 4:0 리드 상황에서 선발 제이크 브리검에 이어 구원 등판했지만 0.1 이닝만에 볼넷-안타-스리런 홈런을 허용하며 부진했다. 하필 이보근마저 9회에 실점하며 브리검의 데뷔전 선발승이 날아가고 말았다.

5월 23일 경기 후 기준 7게임 10.1이닝 14피안타(3피홈런) ERA 10.45를 기록 중. 그가 작년에 하던 역할은 대체로 금민철오주원이 나눠 맡고 있다. 분명 부진한 성적이지만 그간의 공헌도가 워낙 컸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도 비난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때가 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다.

그리고 6월 1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2일부터 마침 공석이었던 불펜코치에 취임하였다. 올해 말까지가 FA계약이었지만, 구단측의 제의로 연봉도 보장받고 지도자 생활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은퇴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두번째 2군행으로 생각이 많아졌다고 한다. 아쉬운 점으론 커리어 중 선발승을 올리지 못한 점을 뽑았다. 인터뷰 기사

이로써 그의 KBO리그 선수생활은 통산 13시즌 575경기 출장, 26승 21패 14세이브 60홀드, 638이닝 ERA 4.25의 기록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1] 청주중학교에서 원래 마정길을 자매 결연을 맺은 세광고로 진학시키려 했으나 마정길이 끝까지 청주기공을 고집하여 결국 청주중학교 교장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는 후문이 있다.[2] 사실 비꼬는 말. 당시 경기 상황은 이렇다. 기아가 경기 초반에 만루 홈런을 포함 6점을 낸 상황에서 비가 오자 기아는 경기 결과가 인정되는 5회말을 어떻게든 넘기려고 했고, 한화는 어떻게는 5회를 넘기지 않으려 했던 경기. 그 때 당시 올라온 투수가 마정길. 이 때 기아 타자들은 고의삼진까지 당해가며 5회를 넘기려고 하였다.[3] 그 외에 기아측 타자가 플라이볼을 쳤는데 한화 측 외야수는 그걸 일부러 놓치고, 기아측 타자가 아무리 봐도 안타성인 공에 마치 라면을 사러 가는 듯한 주루를 선보이면서 일부러 아웃되게 만들게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터무니없는 경기였다. 덕분에 두 팀 다 경기 진행 방해 주동으로 경고를 받았다.[4] 그나마 류현진이 나오는 날은 류현진 선발-토마스 마무리 조합이 가능해지므로. 하지만 류현진이 일찍 무너지기라도 하는 날엔 큰 일이 발생할 수 있다.[5] 야구계에서 보기 드문 마씨 성을 가진 선수끼리 맞바꿨다 해서 일명 "마-마 트레이드"라고 한다.[6] 원래는 3억으로 알려저 있었으나 이후 12.5억으로 알려졌다.[7] 1위는 당연히 안정권(안지만, 정현욱, 권혁) 라인의 삼성. 참고로 SK가 3위.[8] 그의 올해 출장경기수와 똑같다. 즉, 던지러 나오면 이미 주자 한명은 루상에 있는 꼴이다.[9] 4월 23일 투수 김성태가 만들어 놓은 무사 만루 상황에서 1실점 기록. 사실 이것도 3루수 김민우의 강습타구 처리 미스로 인한 실점이었다.[10] 출장순위 순위권에 안착되어 있다. 5월 17일 기준으로 현재 공동5위. 팀 내에서는 2위. 참고로 출장 순위 1위는 같은 팀인 오재영 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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