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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18:10:23

립슈타트 전역

립슈타트 전쟁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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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슈타트 전역
Lippstadt War · リップシュタット戦役
파일:립슈타트 전역 1.jpg
날짜
우주력 797년, 제국력 488년 표준력 4월 19일 ~ 9월 26일
장소
은하제국령 전역
교전 당사자파일:Goldenbaum-Dynasty.png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파일:Goldenbaum-Dynasty.png 립슈타트 귀족연합
지휘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오스카 폰 로이엔탈
볼프강 미터마이어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코르넬리우스 루츠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칼 구스타프 켐프
나이트하르트 뮐러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빌헬름 폰 리텐하임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슈타덴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오프레서
플레겔
히르데스하임
병력 은하제국군
함정 10만 척 이상, 병력 불명,(원작),
함정 약 9만 척, 장병 불명,(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립슈타트 귀족연합군
함정 약 15만 척 이상,[1] 장병 2560만 명, 군사거점 9곳
피해 규모 피해규모불명 귀족연합 수뇌부 사망
귀족연합군 궤멸
결과
은하제국군의 승리
로엔그람의 독재체제 구축
문벌귀족의 몰락

1. 개요2. 주요 인물3. 배경4. 전개
4.1. 문벌귀족들의 탈출, 내전의 시작4.2. 유혈의 우주4.3. 용기와 충성4.4. 베스터란트 학살사건과 문벌귀족들의 몰락4.5. 내전 종결, 그리고...4.6. 황금수는 쓰러졌다
5. 사후 처리6. 평가7. 둘러보기
은하영웅전설의 에피소드
동맹&제국 포로교환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립슈타트 전역 회랑의 조우전

1. 개요


은하영웅전설전쟁. 황제 프리드리히 4세 사후 은하제국의 제위 계승 문제를 놓고 벌어진 내전으로 소설 2권의 제국 파트 분량 전체에 해당한다. 실제 제위 계승 경쟁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즉위를 놓고 이를 지지하는 로엔그람 후작-리히텐라데 공작을 비롯한 '추축파' 귀족들과 이에 반발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리텐하임 후작을 비롯한 '연합파' 귀족들 간의 내전이다.

그 동안 립슈타트 전쟁으로 번역되어왔으나, 정식번역판인 이타카판에서 "립슈타트 전역[2]"으로 번역되었다.

2. 주요 인물

3. 배경

은하제국이 둘로 나누어 서로 죽고 죽이는 내전까지 벌이게 된 궁극적인 원인은 프리드리히 4세에게 확고한 후계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프리드리히 4세의 재위기간은 이미 30년을 넘겨 은하제국에서도 보기 드물게 재위기간이 긴 황제였지만, 자식 복은 없었는지 임신한 아이들 중 반 이상이 유산 혹은 사산되었으며 태어난 아이들도 거의 유년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3] 4명은 성인이 되었으나 황태자 루트비히를 포함한 2명도 요절하여 남은 자식은 딸 2명뿐이었는데, 루드비히가 죽기 전 아들을 남겨 이 시점에서 프리드리히 4세에는 딸 아말리에 폰 브라운슈바이크크리스티네 폰 리텐하임, 훗날 황제로 등극하게 되는 손자 에르빈 요제프 2세까지 3명이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말리에와 크리스티네는 각각 은하제국 최고의 대귀족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에게 시집갔고, 에르빈 요제프 2세는 어머니 쪽 가문이 좋지 않아 뒷배경이 될 귀족이 없었으며 나이도 어려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할 때 겨우 5살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프리드리히 4세의 장녀 아말리에와 결혼한 제국 최고의 대귀족인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차녀 크리스티네와 결혼한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이 크게 득세하였다. 남자 후손인 에르빈 요제프 2세와 달리 이 두 대귀족들도 부부 사이에서 딸을 보아 계승경쟁에서 불리할 듯도 싶었으나, 가문 배경이 워낙 강대하고 제국의 여러 귀족들도 사전에 포섭하고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4][5]

물론 황제가 살아있는 동안에 대놓고 계승경쟁을 벌이다가 자칫 황제의 진노를 사는 어리석은 행동을 나설 만용을 부리지는 않아, 은밀히 다른 귀족들과 접촉하여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황제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제국을 통치하던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 또한 두 대귀족에게 권력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견제를 시작했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던 중 우주력 796년, 제국령 침공작전 도중 프리드리히 4세가 끝끝내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급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였다. 이를 계기로 제국에서는 제위계승권을 놓고 정쟁의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하였다.[6]

3.1. 에르빈 요제프 2세 즉위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한 시점에서, 은하제국의 정계는 크게 다섯 파벌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들 중 리히텐라데는 정무에 관심이 없는 프리드리히 4세를 대신하여 오랫동안 제국을 큰 문제 없이 다스려왔으나, 막대한 재력, 권력, 무력을 가진 문벌귀족에 비해 궁정 내 영향력과 높은 권위를 제외하면 별다른 강점이 없었다. 라인하르트 원수부도 속으로는 제국을 찬탈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지만 암릿처 회전 이전까지는 별다른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개혁파는 끊임없이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했으나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초기 정세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가 옥좌를 두고 다투는 구도로 전개되었다. 두 대귀족은 섭정이 되어 어린 딸 대신 제국을 통치하는 실질적인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여러 유력 귀족들과 접촉하여 "내 여식이 제위에 오를 수 있게 도와주면 귀댁의 자제를 사위로 고려해보겠다"는 식의 떡밥을 던져 세력을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생전 정치에 관심이 전무하여 신하들이 결제를 올리면 그냥 도장 찍어주는 하루하루 도장 찍어주는 기계 역할만 수행한 프리드리히 4세 덕분에 국새를 틀어쥐고 제국을 운영해오던 리히텐라데에게는 저 두 머저리 대귀족에게 제위마저 쥐어주고 국정을 농단하게 할 마음이 없었고, 선제의 적손 에르빈 요제프를 황제로 옹립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반대파들의 강대한 세력을 감안하여 자신의 진영을 강화할 '경비견'이 필요했는데, 그 후보는 우주함대 부사령장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였다. 리히텐라데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제어하기 힘든 위험한 인물임을 알고 있었지만,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손을 내밀 만한 다른 선택지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편 라인하르트는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단 4년만에 제국원수에 서임될 정도로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든든한 빽이 사라지면서 승진은 커녕 가지고 있는 지위도 흔들릴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무력이 부족한 리히텐라데가 자신에게 손을 내미리라고 예견했고 자신의 몸값을 한껏 비싸게 불러 팔아치우려고 했다. 리히텐라데가 손을 내밀자 라인하르트는 그가 가진 권력과 궁정의 영향력을 보고 손을 잡았다.

비록 문벌귀족을 적으로 두고 손을 잡긴 했지만 리히텐라데는 골덴바움 왕조의 영속을 꾀하는 인물이었고, 반면 라인하르트는 골덴바움 왕조를 무너뜨릴 속내를 숨기고 있는 야심가라서 결코 오래 갈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리히텐라데도 로엔그람도 일단 제위계승 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상황에서 적대적으로 나온 두 대귀족을 두고 내분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여 갈등이 불거지지는 않았다.

우선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하자, 제국 정부의 정치와 군사를 각각 장악하고 있던 리히텐라데-로엔그람 추축은 곧바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고 중신들을 대표하여 충성을 맹세하였다. 사후처리 또한 완벽하여 리히텐라데는 제국재상과 섭정을 겸직하며 공작으로 승격되었고 라인하르트는 후작으로 승격되면서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취임했다. 그리고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는 라인하르트와 리히텐라데의 합의에 따라 상급대장으로 승진하고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에 취임했다.

3.2. 문벌귀족들의 반발

프리드리히 4세의 사망 후,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옹립과 그 사후처리는 모두 단기간에 완료되었다. 차기 황권을 노리던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은 리히텐라데와 로엔그람의 연합 사실을 알고 매우 분노하였다. 두 대귀족 입장에서는 리히텐라데 공작은 선제 프리드리히 4세의 은총을 받아 오랫동안 나랏일을 도맡았으니 이제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한 이상 국무상서 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에나 돌아갈 퇴물이었고 로엔그람 후작은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를 받아 벼락출세한 건방진 금발 애송이였는데 둘이 연합하여 차기 황제를 홀라당 옹립해버리자 두 귀족에게 있어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와 리텐하임 후작가는 그동안의 감정을 접어두고 라인하르트-리히텐라데 추축을 타도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제국 정계는 추축파와 연합파로 나뉘었으며, 나머지 귀족들은 험악해지는 정세 속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같은 문벌귀족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일당과 전쟁 천재 라인하르트 사이에서 귀족들은 없는 지혜를 짜내서 어디에 붙어야 유리할지 계산기를 두드렸다. 라인하르트도 어차피 한 차례 숙청해야할 귀족들을 최대한 많이 숙청하기 위해, 귀족들이 최대한 초조해하도록 부채질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브라운슈바이크 일행에 붙었지만 하인리히 폰 큄멜 남작이나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자작처럼 개인적인 사정으로 어느 쪽에 가담하지 않은 중립 귀족들도 있었고, 마린도르프 백작가는 상황을 통찰한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의 주도로 가장 먼저 라인하르트에 충성을 맹세했다.

제국력 488년 2월, 하나로 뭉친 귀족들은 명화감상과 야유회, 친목질친목도모 등을 빌미로[7] 오딘의 숲에 있는 립슈타트의 별장에 모여 "선택된 자의 사명으로 제국의 국정을 농단하는 리히텐라데와 로엔그람을 축출한다"는 선언과 함께 연판장에 훗날 '립슈타트 맹약'이라고 불릴 애국서명을 하였다. 이때 참여한 귀족의 수는 3,740명[8]이었으며 병력은 정규군과 사병을 모두 합쳐 2,560만 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맹주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부맹주로 리텐하임 후작을 추대하였으며 스스로를 '립슈타트 귀족연합', '정의파 제후군'이라 칭하였다.

귀족연합에 가담한 문벌귀족들 전부가 지도자인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처럼 사욕이나 명예욕을 챙기려거나, 라인하르트에 원한을 가진 것 때문에 가담한 것은 아니고, 진심으로 권신으로부터 제국을 지키기 위해 가담하거나 다른 귀족들의 협박이나 주위 분위기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일단 립슈타트 귀족연합 자체가 원래 정적인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이 손을 잡았고, 여기에 뭔가 떡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란 생각에 모여든 귀족들이 모인 집단이라 뭔가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체계화된 집단도 아니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와 맞서기 위해서는 귀족들이 가진 무력들을 하나로 재편성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통솔할 지휘관을 갖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원래는 브라운슈바이크가 총사령관이 되어 실전부대를 지휘하려 하였으나 브라운슈바이크가 무훈을 세우지 못하게 하려고 리텐하임이 "맹주가 전선에 나가는 건 말이 안 된다"란 이유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을 실전 총사령관으로 추천하였다. 여기에 다른 귀족들도 동조하고 나섰기에 결국 브라운슈바이크도 이를 수용하였다. 메르카츠는 원래 중립을 지키고 내전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으나, 맹주인 브라운슈바이크가 직접 찾아와 간청하고 가족들의 안전 문제까지 불거지자 지휘권의 전권 위임 및 지휘계통의 통일을 조건으로 제안을 수락하여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합류하였다.

한편 라인하르트는 3월이 되자 개혁파를 이끄는 칼 브라케오이겐 리히터를 불러 매우 진보적인 '사회 경제 재건계획'을 입안하라고 명령했다. 칼 브라케는 우리는 그저 라인하르트의 야망에 이용당하는 거라고 한탄했지만 오이겐 리히터는 라인하르트를 통해 우리의 이상이 실현되고, 역사를 되돌리려는 귀족 일당보다 라인하르트가 낫다며 기꺼이 협력하였다.

4. 전개

4.1. 문벌귀족들의 탈출, 내전의 시작

내전이 임박하자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실력도, 로엔그람의 실력도 잘 알고 있는 유능한 심복인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안톤 페르너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게 내전 대신 라인하르트를 암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력으로 로엔그람을 격파하고 당당하게 개선할 것이라는 브라운슈바이크의 헛소리를 받고면박만을 받고 묵살당했다. 포기한 슈트라이트와 달리 페르너는 독단으로 병사 300명을 모아 라인하르트가 있는 슈바르첸 관저를 습격했지만 키르히아이스가 5천 병력으로 관저를 철통경비하고 있어서 시도조차 못하고 해산해야 했다. 맨손으로 돌아온 부하들을 보고 사태를 파악한 브라운슈바이크는 안스바흐 준장의 계획에 따라 비밀리에 오딘을 떠나 자신의 영지로 도망쳤다.

라인하르트는 브라운슈바이크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쿠데타 계획을 발동시켰다. 통수본부와 군무성은 라인하르트파 제독들에게 점거당했고 군무상서 에렌베르크 원수와 통수본부총장 슈타인호프 원수는 실권을 잃고 구금당했다. 라인하르트파는 우주항을 점거하여 도망치려는 귀족들을 체포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오딘을 중심으로 몇 겹에 달하는 포위망을 구축하여 도망치는 귀족들을 족족 잡아들였다.

4월 6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조종하여 제국군 3대 장관을 겸직하는 '제국군 최고사령관' 칭호를 받아내 군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또한 브라운슈바이크과 그 일파를 사적인 도당을 결성하여 황제에 반역하는 역적무리로 규정하며 토벌을 명하는 칙명을 얻어냈다. 라인하르트가 칙명을 받을 때쯤 자유행성동맹에서도 라인하르트가 이전에[9] 꾸몄던 공작이[10] 성공하여 군 일부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했기에 라인하르트에게는 문벌귀족들을 쓸어버릴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라인하르트는 친우 키르히아이스에게 전 병력의 3분의 1을 떼어주어 별동대로 활동하게 하고, 자신은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등을 이끌고 문벌귀족연합과 정면대결을 하기 위해 오딘을 출정했다.

이때 막간 해프닝이 있었는데, 라인하르트가 칙령에 따라 출발하려는 찰나에 군무성의 서기관이 찾아와 적들의 공식 명칭을 정해달라는 요청[11]을 받았고 라인하르트는 잠깐 생각하다가 립슈타트 귀족연합군의 공식 명칭을 적군(賊軍, '도적의 군대'라는 의미)으로 정했다.[12]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귀족들에게 어그로를 끌었다. 당연히 "정의파 제후 연합군"을 자처하던 귀족들은 이에 크게 분노했다.(슈바르첸 관저 습격사건)

4.2. 유혈의 우주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집결한 립슈타트 귀족연합군은 라인하르트와의 일전을 앞두고 작전계획 수립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작전회의는 이름뿐이며 가진건 물려받은 재산과 작위뿐이고 군사작전의 전술, 전략의 개념조차 아는지 의심스러운 고귀한 귀족 나으리들은 금발 애송이를 타도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감상만 떠들며 겉돌고 있었다.[13]

그래도 맹주라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오딘에서 가이에스부르크 요새까지 9개의 장소에 군사거점을 튼튼하게 구축하여 라인하르트의 점차 병력을 소모시킨 후에 본진의 주력부대로 동원하여 한번의 결전으로 전쟁을 마무리시킨다는 나름 그럴듯해 보이는 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라인하르트가 모든 거점을 순차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가정한 계획이었고, 이에 메르카츠 상급대장은 상당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전략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조목조목 반박하였다.[14][15] 어디 하급귀족 나부랭이나 일개 준장, 소장급이면 모를까, 자신이 직접 영입한 백전노장 메르카츠 제독이 하는 말에 브라운슈바이크는 매우 불쾌해졌지만, 감히 화를 내지 못하고 되물었다.[16] 이에 메르카츠는 9개 거점은 정찰과 통신 역량에 집중시키고, 실전병력은 가이에스부르크에 집중시켜 라인하르트를 최대한 깊숙이 끌어들여서 지친 제국군에 총공세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분명 귀족연합군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최선의 전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불쑥 초를 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론지상주의자 슈타덴이었다. 슈타덴은 메르카츠의 전략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작전에 덧붙일 부분이 있다."며 라인하르트의 주력이 가이에스부르크에 붙들려 있는 동안 별동대를 조직하여 오딘을 공략하여 황제를 옹립하고 거꾸로 라인하르트를 역적으로 몰아야 된다고 주장하였다.[17] 이런 방법을 메르카츠가 모를리가 없었지만, 이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귀족연합군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제시하지 않았을 뿐이다. 슈타덴의 작전에 찬동하는 귀족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급기야 회의에 임석하고 있던 낭만주의자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이 극찬을 하고 나섰다. 열광적으로 슈타덴의 작전을 찬양하던 백작은 그렇다면 그 별동대의 지휘관은 누가 될 것이냐며 며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어버렸다.[18]

라인하르트와 맞붙어 시간을 끄는 역할은 완전 겉절이에 불과하다. 별동대를 지휘하여 오딘을 탈환, 황제를 옹립하는 자가 최고 권력을 틀어쥔다는 것은 당연지사. 슈타덴의 생각없는 발언과 란즈베르크 백작의 순수한 질문은 그저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 간 권력 욕심에 의해 탄생한 귀족연합의 결속력을 제대로 흔들어 버렸다. 메르카츠는 이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라인하르트가 오딘 수비대로 고작 3만 명을 남겨놓았다는 것을 알고도 그 작전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이다.[19]

결국 누가 별동대를 지휘할지는 결정도 못하고 논의가 보류되었다. 그런데 쓸곳없는 패기만 넘치는 젊은 귀족들과 뭔 자신감으로 그랬는지는 몰라도메르카츠를 경쟁자로 생각하던 슈타덴이 나서서 적의 역량을 가늠할 탐색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과하게 열오른 귀족들을 통제할 수가 없던 메르카츠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수락하고 본인이 그렇게 원하니 슈타덴을 선봉장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군사에 ㄱ도 모르는 귀족들은 군사작전에 있어 중요한 정보보안 따위는 엿 바꿔먹고 작전 내용을 마구 지껄이고 다니는 통에 라인하르트측에 출전 정보가 상세하게 입수되었고 이에 미터마이어를 출전시켜 슈타덴을 상대하도록 하였다. 미터마이어는 이론과 현실이 상충되는 상황에서도 이론을 더 중요시하는 슈타덴의 특성을 파악한 뒤, 핵기뢰를 뿌리고 고의로 정보를 흘리는 기만전술을 써서 선공을 유도한 다음[20] 좌우익으로 분산된 함대를 속공으로 각개격파했다. 이 전투에서 히르데스하임 백작이 전사하면서 대귀족 전사자 1호가 탄생했다. (알테너 회전)

알테너 성역에서 패배한 슈타덴은 라인하르트 본대의 추격을 피해 프레이야 성계에 위치한 렌텐베르크 요새로 도망쳤다. 고작 슈타덴 따위가 숨어들어갔으니 위협스럽지는 않으나 렌텐베르크 요새, 그 자체가 지니는 전략적인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어 라인하르트는 다른 거점과는 달리 이 요새는 반드시 점령할 것을 주문하였고 로이엔탈, 미터마이어의 주도로 공격이 시작되었다. 요새 밖에서 벌어진 함대전은 아주 간단하게 라인하르트측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고 무질서하게 도망쳐들어오는 아군 함대 뒤에 라인하르트측 함선들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팀킬을 두려워 한 요새의 대공망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요새포 사각으로 진입한 라인하르트의 병력은 요새 점령을 시도하였지만, 장갑척탄병 총감 오프레서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장갑척탄병 부대에게 8시간 동안 9번이나 격퇴당했다. 하지만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이 함정을 파 오프레서를 사로잡고 잔챙이들을 정리하면서 간신히 점령할 수 있었다. (렌텐베르크 요새 공방전)

사로잡힌 오프레서는 오베르슈타인의 공작에 따라 방면되었지만 다른 부하들은 모두 총살되었다. 이 사실을 공개방송을 통해 알고 있던 대귀족들은 오프레서가 라인하르트에게 협력하여 혼자 살아돌아온것이 아니냐 생각하여 오프레서의 귀환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황당해 한 오프레서의 오해를 풀려던 행동이 너무 과격하여[21] 결국 오프레서는 안스바흐가 쏜 블래스터에 머리를 맞고 최후를 맞이하였다.

4.3. 용기와 충성

라인하르트의 주력군이 립슈타트 귀족연합군 주력과 맞상대하는 사이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코르넬리우스 루츠가 이끄는 별동대는 변경지역을 돌면서 문벌귀족들의 세력을 소탕하고 그에 따른 사후정리를 담당하고 있었다.[22] 한편 독립부대를 이끌고 라인하르트 일파와 싸우겠다면서 브라운슈바이크와 대판 싸운 리텐하임 후작이 가르미슈 요새까지 진출하여 키르히아이스 함대 토벌에 나섰다. 하지만 키르히아이스의 전술에 완전히 농락당하고 황급히 도주하는 와중에 방해되는 아군의 수송함들을 격침하는 추태까지 부리면서 대패하였고, 결국 리텐하임은 분노한 라우디츠 중령의 테러로 살해당했으며 요새는 키르히아이스군에게 함락당했다. (키포이저 성역 회전)

한편 샨타우 성역을 놓고 벌어진 전투는 로이엔탈이 지휘하고 있었지만, 샨타우 성역이 별 가치가 있는 장소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상대가 메르카츠가 직접 지휘하는 함대였던지라 로이엔탈도 여기에는 열세를 인정하고 샨타우를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그 결과 립슈타트 동맹군이 첫 승리를 거두는 쾌거를 이루었다. 귀족들은 이 승리를 기뻐하면서 메르카츠에게 온갖 찬사를 늘어놓았지만, 메르카츠는 "우리가 강한 것이 아니라 적이 포기한 것"이니 과신은 금물이라며 멋쩍은 반응을 보였다. (샨타우 성역 회전)[23]

한편 주력부대를 이끌고 가이에스부르크 근처까지 진출한 라인하르트는 다음과 같은 도전장을 날려 어그로를 끌었다.
무지몽매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귀족들이여, 쥐새끼 꼬리 끄트머리 만큼의 용기라도 있거든 요새에서 나와 당당히 결전하라. 그럴 용기가 없다면 실속 없는 자존심 따위 내팽겨치고 투항하라.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물론 무능한 너희들이 먹고살기에 곤란하지 않을 만큼 만큼 재산도 남겨주마. 얼마 전 리텐하임 후작은 비열한 인품에 어울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똑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다면 없는 지혜를 쥐어짜내 더욱 나은 길을 선택하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233

단세포 귀족들은 당연히 이 어그로에 휘말려[24] 이성을 잃기 시작했고, 미터마이어가 이끄는 함대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주포의 사정거리 밖에서 얼쩡거리며 계속 도발하였다. 이 도발의 의도를 잘 알고 있던 메르카츠는 출격을 금지하였지만, 플레겔 남작을 비롯해 참을성이 부족했던 귀족들은 지휘부에 보고도 안하고 무질서하게 출격하여 미터마이어를 공격하였다. 그런데 의외의 기습에 당황한 듯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미터마이어 함대가 급기야 물자를 내팽개치고 도주하였고 청년귀족들은 더욱 사기가 올라 의기양양하게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귀환하였다. 사령관 명령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이 머저리 귀족놈들을 메르카츠는 그나마 자제하여 출격금지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이들을 군법회의에 회부하려 했지만 플레겔을 필두로 한 젊은 귀족들이 "용기와 자존심을 모르는 사령관에게 처단당하느니 콱 자살해버리겠다"며 난동을 부렸고, 이런 행동에 더욱 화를 내야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나서서 오히려 이들을 격려하는 막장 상황에 메르카츠는 실망하다못해 거의 절망하였다.[25]

이후 미터마이어가 다시 나타나 도발을 시작하자 귀족들은 이제는 지휘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었는지 메르카츠 따위 무시하고 무질서하게 출격하여 미터마이어를 쫓기 시작하였고 맹주인 브라운슈바이크도 함대를 이끌고 직접 출전하였다. 미터마이어는 도망가다가 공격하고, 도망가다가 공격하고를 반복하면서 귀족들을 깊숙히 유인하였다.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가 미터마이어에게 계책이 있음을 파악하고 다른 귀족들에게 경고했지만 미터마이어의 교묘한 유인작전 때문에 귀족들은 끝까지 추격했고, 결국 미터마이어 함대의 반전 공세를 신호로 매복해있던 라인하르트 휘하의 일급지휘관들의 함대가 순차적으로 퇴로를 차단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치명타를 입히려는 찰나, 메르카츠 함대가 기습적으로 나타나 라인하르트측 함대에 역공을 가했고 브라운슈바이크를 잡기위해 진영이 흐트러졌던 라인하르트측 함대는 더 큰 피해를 입기전에 황급히 철수하여 결국 브라운슈바이크 생포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겨우 요새로 살아돌아온 브라운슈바이크는 구원에 감사하기는커녕 왜 빨리 구하러 오지 않았냐고 메르카츠에게 역정을 부렸다. 제대로 인간말종 인증(…).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4.4. 베스터란트 학살사건과 문벌귀족들의 몰락

교전이 끝났을 무렵 베스터란트를 다스리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조카 샤이트 남작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도착하였다. 민중들이 일으킨 폭동을 피해 도망쳐 온 샤이트 남작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고 요새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천한 평민 놈들이 감히 자신의 조카를 죽였다"면서 성질이 뻗힌 브라운슈바이크는 "더러운 평민 놈들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리겠다"면서 베스타란트에 핵폭격을 지시하였다. 하지만 반격도 저항도 못하는 민간인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핵폭격을 가하는 미친 발상에는[26] 다른 귀족들조차 동의하지 않았고 심복인 안스바흐까지 나서서 뜯어말리려 하였으나[27] 결국 핵공격은 강행되었다.

한편 립슈타트 귀족연합군에서 탈주한 병사를 통해[28] 이 사실을 들은 라인하르트는 즉시 베스터란트를 구원하려 하였으나, 오베르슈타인이 이 정국을 조기 종결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하여 라인하르트가 베스타란트에 구원군을 보내지 않도록 충고했다. 그 결과 베스터란트의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당했으며 이 공격은 라인하르트군에 의해 촬영되어 전 우주에 중계되었다. 이와 같은 만행을 목도한 은하제국의 민중들은 분노하였으며, 심지어 귀족들조차도 브라운슈바이크에게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별동대를 지휘하던 키르히아이스는 귀족연합군에서 탈주한 병사를 통해 라인하르트가 적의 계획을 알고도 고의로 이를 방조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합류한 자리에서 이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라인하르트가 부인하지 않자 키르히아이스는 "그러시면 안 됩니다, 라인하르트님"이란 요지의 발언을 하였으나, 안그래도 베스터란트 학살사건과 오베르슈타인 때문에 기분이 안좋아진 라인하르트는 자존심과 오기가 복잡하게 섞여 되려 키르히아이스에게 역정을 부리고 입을 막아버렸다.(베스터란트 학살사건)

잇따른 패배와 브라운슈바이크의 만행으로 사태가 이미 글렀다고 판단한[29] 귀족들은 저마다 궁리를 하고 있었다. 전쟁은 사실상 끝장났는데 맹주라고 앉아있는 브라운슈바이크와 몇몇 정신나간 귀족들은 술로 파티를 벌이며 아직까지도 금발 애송이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겠다는 헛소리나 늘어놓고 있었고, 잡히면 목숨하나 건사할지 장담 못하는 귀족들은 더 험한 꼴을 보기전에 자결해 버렸으며, 어떻게하면 자신의 몸과 재산을 지키고 무사히 항복할 수 있는지 주판돌을 튕기는 귀족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브라운슈바이크의 목을 따서 바치면 대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자도 있었다.[30][31]

그냥 가만히 있어도 망할 판국에 플레겔을 비롯한 젊은 귀족들은 일전을 벌여 라인하르트의 목을 따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말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설득하여 결국 남은 병력을 긁어모아 출격을 결정했으나 지금까지 꾹 참아왔던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중장이 쌓인 불만을 터뜨리며 합류를 거부하였다. 브라운슈바이크는 대놓고 거부하는 파렌하이트를 어쩔 힘도 없으니 파렌하이트를 겁쟁이라 욕하며 그냥 가버렸다.

귀족들의 출격을 확인한 라인하르트는 즉각 함대를 투입하여 응전하였으며, 사기 충천한 귀족들이 거세게 몰아붙이자 그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린 다음 후방에 대기중이던 키르히아이스의 고속기동부대를 투입하여 측면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이는 계속되는 파상공세에 지친 귀족군에게 결정타가 되었고 제국군 다른 함대들이 가세하면서 귀족연합군은 패배했다.

이 과정에서 귀족군 내부에서는 비참하고 잔인한 생지옥이 연출되었다. 끝까지 싸우다가 전원 옥쇄할 것을 것을 주장하던 귀족 장성, 장교들과 이들과 운명을 같이 하길 거부한 평민 하급장교, 사병들이 유혈충돌한 것인데 그저 전부 죽을 때까지 싸우자는 귀족들에 비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전쟁터에 온 평민들은 이미 패배한 전투에 자기 목숨을 갈아넣을 이유가 없었던 것. 그리고 이런 갈등에 더해 베스터란트 사건으로 인해 평민 군인들의 귀족에 대한 불신감이 극한에 달했고 결국 이전에 곪아있던 모순까지 종합적으로 한꺼번에 터졌기 때문이다. 깨끗한 최후를 외치며 전원 자폭을 주장하는 귀족 함장을 휘하 평민 부하들이 살해하고[32] 함선을 장악, 항복하거나 방금까지 아군이었던 함선을 향해 복수의 포격을 시작하기도 했으며 자신들을 잔인하게 대한 귀족 장교 및 이들에게 빌붙어 앞잡이 노릇하던 몇몇 병사들이 평민 장교, 사병들에게 보복당했다. 당연히 숫자로는 평민 장병들이 압도적이니 이들이 등돌려 반격하자 귀족들을 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깔끔하게 살해당하면 그나마 다행, 산 채로 함선 밖으로 내던져지거나, 몇 시간 동안 집단 구타당하며 개처럼 목줄을 메고 함선 내부를 질질 끌려다니다가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으며 함선을 장악한 장병들은 강제로 대귀족 출신 고위장교 둘끼리 서로 맨주먹으로 싸움을 벌이게 하고 승자는 축하(?)와 같이 함선 밖으로 산 채로 내던진다든지, 그냥 간단하게 산 채로 함선 내의 에너지 융합로로 내던져 살해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보복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런 귀족들 앞잡이 노릇하여 장병들을 밀고하던 장병들도 덩달아 같이 끔살당했다. 심지어는 너무 복수에 열중하다가 미처 투항하지 못하고 격침당한 함선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4.5. 내전 종결, 그리고...

메르카츠도 브라운슈바이크를 구해보기위해 함대를 이끌고 출격했으나 이미 전세가 너무 기울어 메르카츠도 어쩔 수가 없었다. 패배가 확정되자 메르카츠는 권총자살을 하려 하였으나 부관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의 기지로 목숨을 건졌고, 슈나이더의 설득에 따라 자유행성동맹의 명장 양 웬리에게 신병을 위탁하기로 하고 망명의 길에 오른다. 슈나이더의 말대로 양 웬리는 메르카츠의 망명을 환영하였고, 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메르카츠는 '객원제독' 칭호를 부여받았으며 양 제독의 참모로써 양 웬리 함대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 메르카츠 뿐만 아니라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과 레오폴트 슈마허 대령 등 살아남은 사람들은 라인하르트를 피해 페잔 자치령으로 망명하였다.

한편 또다시 목숨만 건사하여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기어돌아온 브라운슈바이크는 대귀족들의 지지와 자신의 딸을 주는 것을 조건으로 강화를 꾀했지만, 이미 립슈타트 전역이 시작되기 전에도 받아들여 질까 말까 한 제안이[33] 다 패배하고 나서 통할 리가 없었다. 이를 심복 안스바흐가[34] "라인하르트가 어떤 식으로든 각하를 처단하려고 할 것"이라 이야기하자 결국 자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정작 독주를 쳐다보고는 "싫어, 죽기 싫어, 녀석한테 어떤 굴욕을 당하더라도 항복할 거야!"라면서 칭얼거리자 안스바흐는 브라운슈바이크 입에 독주를 들이부어 주군의 최후를 책임졌다.

패배도 확정되고, 맹주도 자살하였으니 남은 귀족들은 맹주를 따라 자결하거나 투항하였다. 사로잡힌 귀족들이 비굴한 미소를 띄면서 아부하는 걸 지나가며 보던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은 구역질을 느끼고 혐오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밖에,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 차린 몇몇 귀족 잔당들이 산발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이놈들을 따라주는 병사도 없었고 되려 부하들에게 사살당하거나 진압당해버리기도 했으니 얼마 못가서 모두 진압되어 요새는 라인하르트군에게 완전히 점령당했다.그 중 하나 예시가 원작에도 나오는데 한 귀족 대령이 무기를 찾으러 군수품 창고를 보니 병사들이 서로들 챙겨가는 통이었고 대령을 개무시하는 거였다. 대령은 군법에 의거하여 처벌하겠다고 소리쳤지만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담요 하나를 그 대령을 덮어버리고 블래스터로 벌집을 만들어 죽였다. 그럼에도 대령은 죽기 전까지도 귀족인 나에게 굴복하리라고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상황이 마무리된 후에는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메인 홀에서 전승기념식 및 포로에 대한 처분이 진행되었다. 파렌하이트의 경우에는 라인하르트가 귀순을 권유하자 이를 수락하면서 처벌은커녕 오히려 승진하여 라인하르트 휘하 지휘관들과 동일한 대접을 받았다.

이후 안스바흐가 귀족연합군의 완전 항복을 상징하는 브라운슈바이크의 유체를 운반해 들어왔다. 사정을 대강 알고 있던 라인하르트측 지휘관들, 특히 비텐펠트는 면전에서 대놓고 비난을 했다. 안스바흐가 브라운슈바이크의 시체를 정확하게 보여주려고 운반용 캡슐을 열었고 브라운슈바이크의 심복으로써 생애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였다.

안스바흐는 브라운슈바이크의 옷 속에 숨겨놓은 핸드 캐논을 꺼내 주군의 원한을 갚겠다며 라인하르트를 향해 발사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키르히아이스가 재빠르게 뛰어나가 안스바흐와 몸싸움을 시작하여 핸드캐논의 포탄이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갔다. 힘에서 압도적인 키르히아이스가 맨손으로 안스바흐를 제압하였으나 안스바흐가 반지로 위장해 숨겨둔 소형 블래스터를 쏴서 키르히아이스의 경동맥이 절단되어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안스바흐는 공작님의 마지막 당부를 수행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금발애송이가 지옥에 가려면 몇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저도 발할라로 가겠습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입속에 숨겨둔 독약을 삼켜 자살하였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1차 암살미수사건)

4.6. 황금수는 쓰러졌다

오랜 친우 키르히아이스가 자신의 실수로 죽자 라인하르트는 폐인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저온보존된 키르히아이스의 시신 곁에서만 있었다. 라인하르트의 부하들은 라인하르트가 폐인처럼 아무 것도 못하는 사이 제국재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이 자신들을 축출할까 두려워해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이때 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중장이 나타나 라인하르트의 재기를 위해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 연락을 넣자고 제안했고, 자신이 그 역할을 맡기로 하였다. 그리고 키르히아이스를 죽인 범인을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안스바흐가 키르히아이스를 살해하는 걸 본 로이엔탈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지만, 오베르슈타인은 라인하르트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부하에 불과했던 안스바흐에게 키르히아이스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리히텐라데 후작에게 라인하르트 암살미수 혐의를 뒤집어씌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의견을 들은 제독들은 모두 오베르슈타인의 책략에 동의했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는 오베르슈타인, 루츠, 메크링거 세 사람에게 맡기고 무려 2만 척에 달하는 고속순항함대를 이끌고 제도 오딘으로 향했다. 오딘에서 가이에스부르크까지 20일이 걸리지만 제국군은 부하들을 질타하여 무려 1만 7천 척이 낙오하는 대가로 14일 만에 발할라 성계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800척의 함대로 오딘의 위성궤도를 장악하고, 나머지 제독들은 대기권으로 돌입, 로이엔탈 대장은 리히텐라데 공작을 체포하고 미터마이어 대장은 재상부로 쳐들어가 국새를 탈취했다. 무방비상태로 있던 오딘은 순식간에 제압당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리히텐라데는 하루아침에 간교한 음모가로 몰려 권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쿠데타가 끝난 뒤, 라인하르트는 안네로제와의 대화에서 절연을 통고받고 일어선다. 그리고 로이엔탈에게 리히텐라데 공작은 자살, 여자와 아이들은 변경 유배, 열 살 이상의 남자는 모두 사형하라고 명령했다. 이때 "나를 쓰러뜨릴 만한 자신과 각오가 있다면 언제든 도전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후일 커다란 비극의 불씨가 되고 만다.

5. 사후 처리

제국력 488년 10월, 라인하르트는 작위를 공작으로 높이고 스스로 제국재상에 취임하여 정치와 군사 부문을 장악했다. 리히텐라데 일족은 모두 숙청당했으며 리히텐라데 공작의 측근 겔라흐 자작은 스스로 부재상 자리를 내려놓고 근신하여 화를 피했다.

그와 동시에 라인하르트 파 장성들도 승진했다.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오베르슈타인은 상급대장으로 승진했고, 켐프, 비텐펠트, 바렌, 메크링거, 루츠, 뮐러, 케슬러, 파렌하이트는 대장으로 승진했다. 사망한 키르히아이스는 제국원수에 추서되었으며 더 나아가 군무상서, 통수본부총장, 우주함대 사령장관, 제국군 최고사령관 대리, 제국재상 고문이라는 직책도 추서받았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본격적으로 은하제국의 개혁에 나섰다. 그를 위해 여태껏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매번 찬밥 신세이던 진보파를 적극적으로 등용했다. 칼 브라케는 라인하르트의 진의를 의심했으나, 오이겐 리히터는 설령 그가 독재를 원한다해도 자신들이 시민들의 의식을 고양시켜 자주적으로 만들면 그만이라면서 설득해 라인하르트의 밑에서 일하며 개혁을 시작했다.

공평한 형법 및 민법을 제정하고 세제를 개혁하며 문벌귀족들이 보유하던 광대한 정원을 농민에게 무상으로 지급하고 농노를 해방했다. 수많은 귀족들의 저택이 병원이나 복지시설로 평민에 개방되었으며 귀족들이 쌓아놓은 예술품들은 공공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급진 공화주의자나 테러범들을 제외한 사상범들은 모두 석방되었고 발매금지 처분을 받은 몇몇 신문이나 잡지의 재간도 허용되었다. 사회질서유지국은 폐지되었으며 국장 하이드리히 랑은 관사에 연금되어 오베르슈타인의 감시를 받았다. 귀족을 대상으로 한 특수 금융기관이 사라지고 대신 농노에게 영농자금을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농민금고'가 신설되었다. 이 개혁 정책에 제국 민중들은 라인하르트를 개혁자이자 해방자로 칭송했으며,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적폐가 청산되면서 은하제국의 국력은 끝없이 성장했다.

라인하르트의 개혁에 따라 5세기 동안 권력을 독점했던 문벌귀족들은 대부분 몰락했다. 그들은 반역자로 몰려 재산을 빼앗겼고, 그나마 남은 재산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분해야 했지만 약점을 잡혀서 헐값에 팔아야 했다. 부당한 현실(?)에 귀족들은 분통을 터트렸지만, 귀족체제에서 해방된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귀족들을 감시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반항은 기껏해야 일기장에 신 체제를 비난하는 글을 쓰는 것 밖에 없었다. 페잔과 동맹으로 망명한 귀족들도 재산을 모두 제국에 두고 온 탓에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만약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되었다면 문벌귀족들은 별다른 저항조차 못해보고 소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페잔 자치령이 귀족 잔당을 끌어모아 장대한 음모를 꾸미는데...

6. 평가

립슈타트 전역 이전까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문벌귀족들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20대 초반에 제국원수까지 오른 까닭은 자신의 무훈과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 덕분이었는데, 제국령 침공작전의 대실패로 자유행성동맹이 제국에 대해 공세로 나설 능력을 잃으면서 무훈을 세울 기회가 없어졌고 침공작전 직후 프리드리히 4세마저 죽는 바람에 더 지위를 높일 동력을 상실했다. 군부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실각할 수도 있는 위기였고, 세간에서도 라인하르트가 몰락할 거라고 예측했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당장 무력이 필요하던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과 손잡고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면서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겼다.[35] 리히텐라데는 공작으로 승격하고 재상에 취임, 라인하르트 본인은 후작 승격과 동시에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취임하면서 생각보다 굳건한 체제가 이루어졌고, 당시 문벌귀족의 수장이었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은 닭 쫒던 개 지붕 처다보는 격이 된 것. 이 때 이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문벌귀족 간의 대립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벌귀족들이 자신들의 장기인 권모술수를 버리고 전장에 나와버렸다.[36] 이들이 알아서 반란을 일으킨 덕분에 라인하르트는 "황제에게 칼을 겨눈 반란군을 토벌한다"는 정당한 대의명분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상급자들을 몰아내고 군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37] 그리고 군재가 없었던 귀족들은 라인하르트의 손에 모조리 몰락하고 쿠데타로 리히텐라데마저 제거해버림으로써 제국 내 반대파를 일거에 소탕할 수 있었다. 이후 라인하르트는 재국재상에 올라 제국의 실권자가 되었으며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어린 만큼 제국을 원하는 대로 요리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귀족들의 막대한 재산을 몰수하여 제국 재정을 윤택하게 했다. 이후 라인하르트는 제국을 개혁하여 제국 내 민심을 자신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골덴바움 왕조를 떠받들던 문벌귀족이라는 기둥뿌리가 뽑혀버린 사건이며, 로엔그람 왕조 건국의 밑거름이 된 사건이다.

제국 민중들은 유능한 군주를 새롭게 맞이하게 된 셈이지만, 이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일 때, 그러니까 개혁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높은 것들이 그놈이 그놈이지 뭐'라고 냉소적으로 보던 이들도 있었던 듯하다. 원작에서 가이에스부르크가 함락될 때, 수소동력차를 타고 철수, 아니 도주하던 한 부사관이 느긋하게 걸어가는 노병을 보고 안 피하냐고 보채는 장면이 나온다. 느긋하게 뭔가를 적으며 가던 그 노병은 난데없이 차량을 몰던 부사관의 계급을 물어본다. 어안이 벙벙해진 부사관이 상사라고 답변하자, "상사라. 그럼 2840 제국 마르크[38]군."이라고 중얼거리며 제국령의 어느 지점에 가도 돈을 받을 수 있다며 입금증명서를 건네주었다. 어이없어하며 "이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나? 오늘부터 세상이 뒤집힌단 말일세."이라고 말하는 상사에게 노병이 하는 말.
"오늘은 월급날이오. 난 총무과였고, 세상이 뒤집혀봤자 윗사람이 바뀌는 것 아뇨? 우리 같은 아랫것들은 먹고살아야 하고, 먹고살려면 월급을 받아야지. 그건 누가 지배해도 변함이 없는 거요."[39]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325

7. 둘러보기

립슈타트 전역의 에피소드
슈바르첸 관저 습격사건 알테너 회전 렌텐베르크 요새 공방전
키포이저 성역 회전 샨타우 성역 회전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1차 암살미수사건

[1] 키포이저 성역 회전 당시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이 이끈 함대 5만 척이 립슈타트 귀족연합군 전력의 30%였다는 부분을 근거로 계산한 수치.[2] 戰役. 국어사전에는 '전쟁'과 동의어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campaign의 번역으로 완전히 동의어는 아니다. 사전에는 '큰 전투를 중심으로 해서 갈라지는 하나의 작전적 단계'로 정의하며, 실제 전쟁사 학술 용어에서도 어떤 대전쟁에 포함되는 전쟁이란 뜻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2차대전 중 벌어졌던 주요 전쟁(예: 독소전쟁, 태평양 전쟁)에 해당한다.[3] 사실 궁정 암투로 죽어나간 아이들의 수가 단순히 유산 혹은 사산된 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베네뮌데 후작부인같은 예도 있고.[4] 사실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는 개조 루돌프 대제부터 아들을 두지 못해 외손자에게 제위를 물려준 전력이 있고, 직계가 아닌 방계가 제위를 계승한 사례도 많다 보니 이들 역시 계승권을 주장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5] 그렇지만 루돌프는 외손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물려준 것이지만 프리드리히 4세는 엄연히 직계이자 황태자의 아들인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있었다. 단지 모친의 신분이 낮았기 때문에 양 대귀족의 눈치를 보느라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을 뿐이다. 즉, 원래대로라면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즉위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6] 물론 보통의 경우였다면 제국의 흔한 왕위계승분쟁으로 끝날 수 있었다. 실제로 은하제국에선 황제가 바뀔 때마다 각종 궁정 음모가 판을 쳤고, 심지어 군사력까지 동원된 내전으로 폐위된 황제도 존재했다. 그러나 문벌귀족의 분열과 라인하르트를 필두로 한 신흥 군부층의 대두라는 예상 외의 요소가 합쳐지면서, 문자 그대로 거대한 제국이 절반으로 갈라져 싸우는 역사상 초유의 내전으로 비화되었다.[7] OVA에서는 가든파티로 나왔다.[8] OVA에서는 3,786명.[9] 자유행성동맹과의 포로교환 당시 페잔을 통해 엘 파실의 배신자 린치 소장을 동맹에 보냈다.[10] 물론 라인하르트는 이 전개를 미리 예상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11] 은하제국은 이미 자유행성동맹을 공식적으로 '반란군'이라 칭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칭이 중복되는 폐해를 막으려면 귀족연합군을 반란군으로 부를 수 없었고, 공문서에 기재할 다른 명칭이 필요했다.[12] 을지서적판에서는 반적군, 서울문화사판에서는 도적떼(...), 이타카판에서는 적도군이라고 번역되었다. 사실 관군의 반대되는 의미로 적군이라고 한 것이나 적군(敵軍), 혹은 적군(赤軍)과 헷갈릴 수 있어서 그런 듯하다.[13] 이렇게 참을성도 없고 전략전술의 기본조차 모르는 귀족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봐서, 동맹군과의 전쟁에 참여해온 무가 귀족 대부분은 중립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시로 무가 귀족의 필두라고 할 수 있는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가 있다.[14] 라인하르트측에서 9개 거점의 통신, 보급로를 차단해버려 거점을 고립시켜버리는 순간 브라운슈바이크의 구상은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게 된다.[15] 회랑의 전투에서 라인하르트가 양 웬리를 상대로 비슷한 전술을 시전하긴 하지만 이 때는 양 웬리를 낚을 미끼가 있었기 때문에 양 웬리를 끌어낼 수 있었지만, 립슈타트 전역의 경우 굳이 라인하르트가 9개의 요새에 꼴아박아줄 전략전술적 요소가 전혀 없다. 브라운슈바이크 자신이 미끼가 되어 준다면 모를까...[16] OVA에서는 불쾌해하는 장면은 없다. 오히려 메르카츠의 날카로운 지적에 공감을 한다.[17] 라인하르트는 오딘에 노이에 상수시, 원수부, 군무성, 슈바르첸 관저를 지키는 병력 3만 명만 남겨두었다.[18] DNT에서는 아예 자신이 참여하겠다고 했다.[19] 만약 두 사람에게 굳건한 신뢰가 있었다면 한 사람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남아 끝까지 라인하르트 군을 물고 늘어지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이에 가장 빠른 항로로 오딘을 점령하고 황제를 확보하여 라인하르트를 역적이라고 선언하게 될 수만 있다면 형세는 순식간에 뒤집어졌겠지만...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에게 그런 능력과 포용력이 있을 리 없느니, 이는 그냥 립슈타트 군을 둘로 쪼개버려서 각개격파하기 딱 좋게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20] 물론 슈타덴은 이것이 함정임을 직감했지만 워낙 젊은 귀족들이 통제되지 않아서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 좌익은 정면에서 우익은 우회히여 뒤에서 적 함대를 상대하면서 기뢰쪽으로 몰아넣는다는 작전을 세우고 좌익은 본인이 맡고 우익은 히르데스하임에게 맡겼다.[21] 다만 OVA쪽 묘사에 의하면 본인은 아니었겠으나 오해를 풀려는 행동이 아니라 누가봐도 브라운슈바이크를 손으로 처죽이려는(...) 행위로 밖에 안 보인다.[22] 이런 변경지역은 원래 문벌귀족들의 근거지고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도 이런 변경지역에서 보급을 받고 있었다.[23] 문제는 귀족연합군이 이 승리로 인해 정신줄을 놓아버렸다는것이다. 사실 이 승리는 그다지 큰 승리도 아니고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별 영향도 없었다. 젊은 귀족들은 이까짓 작은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라인하르트의 연설을 듣고 "샨터우를 잊은거냐!" 라며 분개해했는데 차라리 이때 졌다면 젊은 귀족들이 가이에스부르크 밖으로 나가는 바보짓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24] 심지어 전기 채찍을 병사에게 휘둘러 분노를 표출하던 귀족도 있었다.(...)[25] 앞서 분명히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메르카츠에게 명령권과 지휘권을 주겠다고 했음에도 이 약속은 별로 지켜지지 않았다.[26] 과거 지구에서 벌어졌던 13일 전쟁 이후, 민간인을 상대로 핵공격을 하는 행위는 보통 금기시되어 왔다. 솔직히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베스타란트 행성이 군사 거점도 아니고 그냥 농사나 짓는 농업 행성이었는데 단지 화가 났다는 이유만으로 핵공격을 가한다는 건 완전 미친소리다.[27] 그나마 주군의 조카가 살해당한 것을 이해한건지 아니면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는지 주동자 몇 명만 싸잡아 족치고 몇몇 함대로 위협하자는 타협책은 있었다. 그나마 이게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고 만일 브라운슈바이크가 조금만 더 이성이 있었다면 이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28] 다른건 다 참아도 민간인들에게 핵공격을 가한다는 정신나간 명령에 반발하여 도중 탈출했다.[29]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굳이 출진하지 않고 가이에스부르그 요새에서 버티고 시간만 끌었어도, 비록 불리하긴 했지만 승산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 만큼 베스타란트 사건은 귀족들에게도 충격이 적지 않았던 것.[30] OVA에서는 제1차 가이에서부르크 공방전에서만 해도 상당수의 귀족이 남아있었지만 베스터란트 사건 이후에는 정말 극소수의 귀족만이 남아있다.[31] 이 시점에서 대부분의 귀족들은 라인하르트에게 승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때부터 금발 애송이가 아닌 로엔그람 공이라고 높이기 시작했다.[32] 원작에서는 전원 자폭을 명령하던 귀족함장을 평민 출신 부사관이 말없이 블래스터를 헤드샷해 죽인다. 역시 귀족 출신인 부장도 반역죄라고 블래스터를 뽑으려했으나 그도 함장처럼 헤드샷당해 쓰러졌다.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에선 부사관이 "왜? 우리가 너희들같은 귀족놈들과 같이 죽어야 하는데? 이제 됐어! 죽으려면 너희들이나 죽어!"라고 말하며 부장도 쏴죽인다.[33] 물론 라인하르트는 이미 사전에 귀족들이 이런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주의해서 어그로를 끌었다.[34] 베스터란트 학살사건과 관련되어 브라운슈바이크의 명령으로 수감돼있던 상태에서 부하들의 도움으로 탈출하였다.[35] 프리드리히 4세가 적절한 시기에 죽어준 것도 이유의 하나인데, 당시 라인하르트는 동맹의 제국령 침공때문에 대부분의 군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상시라면 제아무리 라인하르트라도 그 정도의 군사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36] OVA에서는 능력상향을 먹은 덕도 있겠지만 극장판에서 뮈켄베르거는 플레겔에게 전투는 어림도 없으나 권모술수와 궁중암투에서는 쓸만하다고 말했다. 확실히 문벌귀족들은 수백년간 황실을 둘러싸고 치열한 궁중암투를 벌여왔기 때문에, 전쟁에서는 무능하지만, 권력투쟁에서는 라인하르트 못지않은 유능함을 보여줬을지도 모른다.[37] 이 점은 굳이 의제를 살해해서 고제에게 명분을 준 항우가 한 짓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38] 이 상사는 34080 제국 마르크 연봉을 받는 셈인데 이는 은하영웅전설에서 연봉이 나온 2명 중 한 명이다. 다른 하나는 하급 공무원으로 4만 제국마르크를 받는 키르히아이스의 아버지.[39] 실제로 은하제국에는 이미 흔하게 지방반란들이 있어왔고 카스트로프 동란처럼 반년이나 이어진 사례도 있었다. 노인쯤 되면 이런 일들에 익숙해졌을테고 그 때마다 중앙군이 지방군을 밟아버리고 특별히 달라지는 일이 없었으니 그리 생각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