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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리 로이스터가 2008년 시즌을 종료하고 팀을 첫 가을야구에 진출 성공을 했는데, "8888577의 탈출은 로이스터 감독의 공"이다 라고 주장하는 의견과 "전임 감독의 유산을 물려받았고 과대평가 된 것이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2. 선수단 구성에 대한 논란
2.1. 부정 : 선수빨이 컸다.
환상론은 그저 몇몇 선수들이 중심타선에서 미쳐주고(08년 조성환과 카림 가르시아, 09년 홍성흔) 전임 강병철 감독이 오만 욕을 다 먹어가면서 키운 선수들(ex. 김주찬, 이인구, 강민호, 장원준, 강영식 등)이 우연히 로이스터 감독 시기에 잠재력이 폭발하고 2군에서 정영기 전 2군 감독이 키운 선수들이 시기적절하게(김이슬, 김민성, 장성우, 박정준) 백업해줘 가능했던 것일 뿐이란 주장이 요지.롯데는 8888577 선수단 그대로 이어 받지 않았다. 애초 암흑기 초창기에 있던 멤버들 상당수는 백인천, 양상문이 내치거나 박살냈다.(조경환, 노승욱 등) 2군의 산실이자 돌풍의 주역들이 자란 상동 야구장은 07년 10월 완공되었고 08, 09년 4강을 이끈 멤버들은 용병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임 강병철 감독과 정영기 2군 감독에게 중용되거나 그의 코칭을 받은 인물들이다. 투수의 경우 강영식은 삼성에서 트레이드 되어 중용되었고 장원준은 박동수 코치[1]아래 에이스 수업을 받았다. 김이슬은 07년 초반 쏠쏠하다가 부상으로 이탈, 조정훈은 양상문때 너무 성급하게 굴려진 탓에 쓸수 없었다. 또한 강병철 감독 떠나고 로이스터 부임 이후 오히려 퇴보한 선수도 여럿이다.
사실 08시즌 갑자기 튀어나와서 팀 분위기까지 다 잡아주는 리딩히터급 선수 조성환과, 당 시즌 같이 강림해서 타점왕을 얻어먹은 카림 가르시아도 없었고, 10승급 투수 송승준도 07 시즌 다 끝나가면서야 들어왔다. 거기다 07 시즌 김주찬은 소집해제 떨어진 다음 첫 시즌을 소화했으니 당연히 기대하기 힘들었
당시 롯데의 주축 선수들은 상당히 젊은 편에 속했고, 매년 기량도 상승하는 추세에 있었기 때문에 로이스터 부임 전부터 '언젠가 터질 팀'이라는 기대도 분명 있었다. 참고로 로이스터의 전임인 강병철 감독은 한화나 SK 감독 시절에도 성적은 좋지 않지만 리빌딩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두 팀 모두 강병철감독이 물러난 뒤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었다. 로이스터 사단의 주전들 역시 상당수는 양상문-강병철 감독 시절부터 계획적으로 길러지던 선수들이며, 일부는 강병철의 양아들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팀 전체의 스탯을 보아도 김무관 코치 부임 이후 팀타격은 06년부터 매년 급상승일로에 있었다. 야구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퍼텐 폭발을 이끌어 낸 로이스터의 공로는 당연히 평가받을 수 있지만, 02년 히딩크에 비유하면서 암흑기 팀을 혼자 힘으로 하드캐리한 백마탄 왕자님 취급하는 것은 명백히 과한 것이다.
4월부터 돌풍을 일으켰던 2008년 당시, 로이스터는 시범경기 개막 1달 전에야 입국했다. 한국야구와 인연이 전혀 없었고, 2월이 되어서야 팀을 맡은 감독이 노피어 한마디로 4월부터 팀을 환골탈태 시켰다면 (1) 로이스터가 정말 신급 명장이거나 (2) 감독보다 선수빨이 크거나 중 하나 일 것이다. 로이스터가 정말 신급이었다면 한국야구를 알아가고 본인의 야구가 팀에 녹아들어 갈수록 팀성적은 더 좋아졌어야 하는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08년도 초에만 반짝하고 중반이후는 4월만큼의 위력이 나오지 않았으며, 09-10년은 홍성흔이 영입되는 등의 전력 보강에도 불구하고 08년보다 한단계 낮은 4위를 기록했다. 09-10년 선수단 구성을 보면 [2] 선수들에 비해 팀성적이 좋았다고는 결코 얘기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선수들을 양승호 감독이 그대로 운용한 11롯데가 3위(정규시즌 2위)로 성적이 더 좋았고, 12년에는 무려 이대호를 빼놓고도 4위+포시승리 를 기록했다.
2.2. 옹호 : 선수단 구성면에서 07년 멤버와 차이가 없었다.
우선 상기의 부정 파트 서술은 팩트마저 일정 부분 왜곡하고 있다. 송승준이 07시즌 끝날때야 합류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시즌 초반인 5월에 합류하였고, 로이스터의 합류 또한 2월이 아닌 2007년 11월 계약 및 상견례 후 팀 합류 시기 또한 1월초로 전지훈련 이전이었다. 더불어 08년 4월 반짝한 이후로는 그만큼의 위력이 안 나왔다고 하는데 실상은 이 시즌 후반기에 팀 역사상 최다연승인 11연승을 기록했다. 09-10년 홍성흔을 영입하는 전력보강에도 순위는 떨어졌다고 하였으나, 이 시기에 1선발 손민한이 부상으로 골골대다 아예 개점휴업한것을 비롯한 전력상 마이너스 또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선수단 구성면에서 반박의 요지는 그럼 왜 이전엔 포텐이 안 터졌냐는 주장. 애시당초에 이 롯데 자이언츠라는 팀이 2년 전까지 8888577을 찍던 그 선수들 거의 그대로 내려왔는데, 단순히 운 좋게 그때 포텐이 터졌을 뿐이다, 운이 좋을 뿐이라는 건 지나친 폄하라는 것. 운도 실력이다. 왜 이전엔 운이 없었냐.
또한 포텐이 터진 것이 단순히 운이라고만 봐야 하는가? 애초에 선수의 발굴과 육성도 코칭스태프의 영역이다. 그 많던 선수들이 "우연히" 로이스터의 영입과 겹칠 때 "동시에" 포텐이 터졌다고만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야구는 결국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쳐내는 스포츠다. 유기적인 움직임이 있는 축구, 농구와 다르게 야구는 한 타자, 한 타자가 딱딱 끊어지는 정형화된 스포츠이며, 특히 같은 선수들이라도 전술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기가 되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1~9번 타순 짜놓으면 1회고 4회고 크게 다를 게 없는, 다시 말해 경기 중 감독의 영향이 극도로 제한되는 스포츠이다. 감독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 봐야 투수교체나 대타 작전, 히트앤드런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경기가 시작되면 경기 결과는 대부분 선수 개인의 기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프리킥, 코너킥과 같은 세트 피스, 역습 전술과 같이 같은 선수로도 수많은 전략을 짜낼 수 있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결국 마운드에 있는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쳐야 하는데, 여기에 과연 감독이 개입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가? 코칭스태프가 번트 작전 같은 것을 낸다 해도, 2사 2,3루 같은 상황에서는 그냥 타자가 잘 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감독이 투수의 마음을 읽고 어떤 공을 노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대타 작전 같은 경우도 말이 좋아 작전이지, 사실 웬만한 주전급 선수는 이미 경기에 출장했을 확률이 높다. 2할 5푼 타자를 왜 대타로 내냐고 말해도 3할 타자가 휴식 차원이 아닌 다음에야 왜 벤치에서 쉬고 있겠는가?
실제로도 역대 KBO 우승팀을 보면 선수단 면면이 화려하지 않은 팀이 어디 있던가? 특히 '왕조'라고 불리는 팀들은 항상 역대급이라고 불리는 선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런 감독들도 선수빨이라고 비난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좋지 않은 선수들을 가지고 우승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다. 무엇보다 다른 팀 감독들도 바보가 아닌데, 당연히 좋은 선수를 가진 팀이 유리할 수밖에. 그리고 좋은 선수진을 가지고도 팀을 말아먹는 감독은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 얼마든지 있다. 좋은 선수를 가지고 좋은 성적을 낸다면 그게 바로 명장이며, 나쁜 선수를 가지고 좋은 성적을 내는 건 망상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좋은 선수를 키워내는 것 또한 코칭스태프의 역량이다. 로이스터 시절 주전들이 떠난 양승호 감독 이후부터 롯데는 다시 암흑기에 빠지고 조원우 감독 시절에야 겨우 준플레이오프 진출 1회에 그쳤는데, 우연히 로이스터 감독 시절에 포텐이 터졌다가 로이스터 감독이 나가자마자 우연히 포텐 터지는 유망주가 딱 끊겼다는 게 말이 되는가?
반박글에서 선수단을 그대로 물려 받지 않았다고 언급했지만 2002~2006년과 비교하는 것보다 2007년 시즌과 비교해야 된다.
2007년 야수진 주전은 강민호, 이대호, 박현승, 정보명, 이원석, 정수근, 이승화, 로베르토 페레즈, 김주찬, 이인구 정도가 된다. 투수진은 손민한, 송승준, 최향남, 장원준, 이상목, 염종석, 임경완, 강영식,조정훈, 배장호, 카브레라, 최대성 정도가 레귤러인데
2008년 야수진은 강민호, 이대호, 박현승, 조성환, 박기혁, 가르시아, 김주찬, 정수근, 이인구 정도며, 투수진은 손민한, 장원준, 조정훈, 이용훈, 송승준, 배장호, 최향남, 임경완, 염종석, 강영식, 코르테스 정도로 요약할수 있는데 이중에 로이스터때 추가된 선수는 소집해제된 조성환과 용병으로 온 가르시아, 코르테스 정도다.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2007년 롯데에 있던 선수들이다. 조성환이 이시기 들어와서 이정도 활약을 할수 있던것은 개인의 능력도 있지만 감독, 코치의 지도도 마땅히 포함 되는 것이다. 선수의 활약이 감독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SK 왕조를 이끌었던 김성근이나 해태 왕조를 이끌었던 김응룡도 비슷한 소리를 들어야한다.
결국 비슷한 선수단으로 전시즌 7위를 했고, 다음 시즌 3위를 기록한 것은 마땅히 칭찬받아야지 강병철 이전 선수단을 거론하면서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용병이 잘들어 왔네, 팀의 구심점이 들어왔네 운운하는건 "로이스터가 이뤄낸 344는 운빨이다."라고 주장하는 것, 그 이상이하도 아니다.
3. 선수 기용에 대한 논란
3.1. 부정 : 선수 기용폭이 극단적으로 좁다.
로이스터 매직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의 또다른 주장은 선수 기용폭이 극단적으로 좁다는 것이다. 미국 마이너리그와 한국 2군은 차이가 극심한데[3] 자기가 조금이라도 아는 선수들 위주로 쓰는 것.- 이원석은 이대호 3루로 자리 빼앗긴 전반기 내내 벤치 데우다 후반기 실책 한번하고 기회박탈. 그리고는 두산 베어스로 가서 주전 3루수가 됐다.
- 이인구는 정수근이 사고쳐서 빠진 다음에야 활약.
- 차기 3번 타자감으로 기대를 모았던 박정준은 09년 반짝한 후 묻혔다.
- 군필 황성용과 2군 리그에서 손꼽히는 거포인 오장훈은 확장 엔트리때 대타로나 보일 전망이다.
- 김민성이 급 부상한건 박기혁이 체력저하로 완전히 방전된 다음이었다. 김민성과 박정준은 결국 넥센 히어로즈로 갔다.
- 장성우와 최기문은 강민호가 한 시즌 1000이닝 넘게 출전하고 WBC까지 뛴후 팔이 부러진 다음에야 기회를 잡았다. 이후 최기문이 은퇴하고 장성우가 군대로
끌려가면서 두산에서 용덕한을 영입한 후에야 강민호가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 대학리그 최고 3루수였던 전준우는 변변한 기회도 잡지 못한 채 수비부담이 가장 심한 중견수로 몇번 기용되다 벤치를 데웠다.
물론 1군에게 믿음을 주는것도 중요하겠지만 1군 선수들이 부상이나 체력저하로 쓰러진 다음에야 2군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건 문제가 아닐까? 아무 변화 없는 철밥통 코치진도 문제지만 무리한 운용으로 주전 선수들에게는 과중한 부담과 부상을 후보 선수들에게는 출전기회 박탈로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날려버리며 비밀번호 찍으며 축적한 성장 동력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로이스터 본인이 데려온 페르난도 아로요도 문제가 없진 않았다.
로이스터의 가장 큰 책임은 4강에서 허무하게 탈락했거나 우승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근시안적 운용으로 팀의 성장동력을 날려버린데 있다.
또한, 로이스터를 지지하는 사람들 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고집을 부릴 때가 종종 있었다.
- 2008년 임경완을 마무리로 낙점하고 주구장창 등판시켰다. 문제는 임경완이 마무리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등판할 때 마다 난타당했던 것. 어지간하면 마무리를 바꿔줄법도 한데 임경완이 임작가라는 별명을 얻고 멘탈이 풍비박산 나도록까지 "마무리는 임경완"이라며 밀어부쳤다. 09년 이후 중간계투에서 임천사 모드로 돌아온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아쉬운 대목. 마무리 임경완의 블론으로 이기는 경기들을 날려먹은 팀성적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작가 이미지가 굳어져서 멘탈이 황폐화 되었던 선수 본인이었다.[4]
- 로이스터 재임기간 내내 이대호는 거의 3루수에 고정되었고, 대호터널은 메워지지 않았고 내야수비는 고질병이 되었으며, 박기혁은 언제나 고통받았다. 롯데가 공격력 강화를 위해 이대호를 3루로 밀어낼만큼 대단한 1루수가 있었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박종윤이 나오거나 외야수인 김주찬이 내려오는 식.
- 폭풍스윙으로 장단점이 명확한 가르시아는 슬럼프를 많이 타곤 했다. 방망이에 공이 맞아나갈때는 담장너머로 쭉쭉 넘어갔지만 한 번 안맞으면 슬럼프가 한참 길어지고 타석에 들어서기만 해도 '삼진당하겠구나' 를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수준. 그러나 슬럼프 기간에 가르시아가 쉬는 일은 결단코 없었고, 중심타선에서 찬스 상황에 들어서서 폭풍삼진을 시전하도록 그냥 놔두었다. 가르시아의 개인 성적도 골글을 수상한 08년을 제외하면, 09년과 10년은 타율이 2할 5-6푼대에 그치며 흔한 공갈포 수준이었다. 로이스터의 과도한 고집이 아니었다면 팀성적은 물론이고 개인으로도 비율스탯이 저만큼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믿음의 야구라고 포장하기에는 팀도 선수도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3.2. 옹호 : 편파기용? 그냥 실력이 없어서다.
우선 2군 활약하는 선수들을 왜 쓰지 않았냐고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로이스터를 둘러싸고 있는 무능한 철밥통 코치진들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야구 경험이 전혀 없는 로이스터 입장에서 기존 코치들이 추천한 몇명 위주로 운영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5] 이재곤, 김수완도 2군에서 방치되다가 로이스터가 우연한 기회에 보고 직접 올린 것이다. 2008년 이성득해설이 주구장창 주장했던 조정훈은 불펜투수감이다라고 했지만 로이스터는 조정훈의 2군 경기 투구수까지 정해주면서 직접 관리를 했다. 그외에도 주전급 대신에 잘한다 싶은 손아섭, 문규현, 박종윤등을 기용한것도 로이스터였다. 2008년 로이스터가 전시즌과 다르게 1.5군을 기용했다는 기사.그리고 2009시즌, 초반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을 겪으며 -13까지 내려간 일화만 봐도 알수있듯이 롯데 자이언츠 2군과 백업은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원석을 내보낸건 아쉬운 판단이었지만 이원석도 2009년 커리어 하이를 찍은 이후로는 두산에서조차 준레귤러로 뛰고 있다.[6][7] 단순히 이적 후 성적만 보더라도 보상선수로 내준 이원석 보다, 홍성흔이 4년간 보여준 모습이 압도적이다.[8] 단순히 실책만으로 주전을 기용 하지 않았다는 소리도 어불 성설인게, 2010년 롯데는 실책수가 리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주전 선수는 교체되지 않았다. 이원석이 주전으로 뛰지 못한건 2008년에 3루수로 전향했던 이대호에 비해 "실력이 부족해서"이지 선수를 편파적으로 기용한 게 절대 아니다. 경기중 본헤드 플레이를 했던 김주찬을 질책성 교체로 뺀 경기후 인터뷰에서 "빼고 싶어 뺐다"며 김주찬의 본헤드 플레이가 맘에 안들어서 뺐다고 언급했지만 여전히 주전으로 기용했던 것만 봐도 로이스터가 선수가 실력이 되는데 본인이 싫어서 기용을 안했다는건 말이 안된다.
위에서 언급된 일화들을 보자면 지나치게 까내리려고 뻥튀기 해놓은 게 많다.
- 이인구를 쓰지 않고 정수근이 빠지니까 그제서야 썼다는 주장 : 그냥 이인구가 주전감이 아니었던거다. 로이스터가 편파적으로 기용했다? 그럼 양승호는 기회를 그에게 줬나? 2011년에 몇번 기용하다 2012년에는 단 2경기 출장했고 그후 선수생활 그만뒀다. 그 기회를 줬다는 2009년에도 오히려 사람들이 이승화와 정수근을 찾을 정도로 아쉬운 성적을 보여주었다. 다음 해에 딱 5경기 출장한 것이 이런 이유. 그리고 이인구는 따지고 보면 좋은 활약을 보인 2008년에 풀타임을 뛴 것도 아니었다. 정수근이 사고치기 전만 해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굳이 이인구를 쓸 이유가 없었던거다. 로이스터가 떠나고 양승호가 부임한 2011년에도 확실한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는 것은 주전으로 뛰기엔 실력이 부족하다는 거다.
- 차기 3번 타자감으로 기대를 모았던 박정준은 09년 반짝한 후 묻혔다? : 선수가 반짝 묻힌걸 감독 탓 하는 것도 웃기지만 선수의 실력이 1군에서 안 먹힌거다 2010년 이후 넥센, NC에서의 성적을 보고 와라.
- 군필 황성용과 2군 리그에서 손꼽히는 거포인 오장훈은 확장 엔트리때 대타로나 보일 전망 : 황성용은 2011년 잠깐 주전급으로 기용되다 2015년 현재까지도 김문호,김민하등에게 밀려 1군 엔트리에서 보이지 않고 있고, 오장훈은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지만 그곳에서도 2군 본즈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감독들도 안쓰고, 다른팀 가서도 2군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선수들인데 이것도 해당 감독들의 근시안적인 경기 운용인가?
- 김민성이 급 부상한건 박기혁이 체력저하로 완전히 방전된 다음이었다. 김민성과 박정준은 결국 넥센 히어로즈로 갔다. : 당시 박기혁은 전시즌 골든 글러브 수상,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 유격수로 선발된 리그 S급 유격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백업 유격수를 쓴다? 어떤 정신나간 감독이 주전 유격수를 놔두고 백업 유격수를 쓴단 말인가. 김상수가 나가리 될때까지 유격수로 기용한 류중일도 근안시적인 경기운영을 하는 감독인가? 통합 4연패 감독이? 그리고 당시 김민성은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신인이었다. 조금 잘한다고 경험이 부족한 신인선수를 무조건 주전으로 출장시키는 감독이 어디있는가? 그것도 확고한 주전이 있는 상태에서?
- 장성우와 최기문은 강민호가 한 시즌 1000이닝 넘게 출전하고 WBC까지 뛴후 팔이 부러진 다음에야 기회를 잡았다. 이후 최기문이 은퇴하고 장성우가 군대로
끌려가면서 두산에서 용덕한을 영입한 후에야 강민호가 휴식다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 장성우, 최기문은 강민호의 팔꿈치 부상이후 로테이션으로 꾸준히 등장했다.[9]
- 대학리그 최고 3루수였던 전준우는 변변한 기회도 잡지 못한 채 수비부담이 가장 심한 중견수로 몇번 기용되다 벤치를 데웠다? : 이 비판에서 가장 웃긴건 전준우는 중견수로 포텐이 터졌고 전준우 본인도 양승호가 3루로 기용했을때 3루보다 외야가 편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준우도 김민성과 마찬가지로 1군에 데뷔한지 얼마 안되는 신인이었다.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게 로이스터가 기회를 몇 번 줬지만 영 아닌 모습을 보여서 중견수로 전향한거다. 신인선수가 프로에서 수비문제를 보이거나 다른 선수들이 더 잘해서 포지션을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10]
또한 양승호가 오고나서 박진환이 "(영어를 쓰는 로이스터와는) 소통되지 않아서 못뛰었는데 소통 되는 감독이 와서 기쁘다"라고 했으나 결국 양승호 감독 2년 내내 1군 무대 밟지도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백업 멤버들이 1군에서 못뛴건 백인천 처럼 로이스터 개인의 호불호 때문이 아닌 실력이 안돼서 못뛴거다.[11]
극단적으로 말하면 로이스터 재임 시기에 로이스터가 외면했던 선수 중에 이원석[12]을 제외하면 성공한 선수는 없다.
4. 투수 혹사논란
4.1. 부정 : 어쨌든지 투수혹사를 했다.
투수들을 쥐어짠다는 점에 대해서 옹호론자들은 로이스터 감독이 조범현, 김시진 감독과 함께 가장 적게 혹사시킨 축이라고 반론하는데, 중요한건 혹사를 시킨다는 것 그 자체이지 누가 누가 더 혹사를 많이 시켰냐는 병림픽이 아니다. 그리고 롯데가 투수진, 특히 계투진이 튼튼한 팀이 아니고 자원도 부족하다는걸 고려하면 더더욱.08년 126경기중 62경기, 거의 2경기당 한번 출전했던 강영식은 이후 스터프를 상실한 채 수술대에 올랐으며[13] 작은 체격과 느린 구속으로 좌완 원포인트 이상은 힘들었던 김이슬은 우타, 좌타 가리지 않고
불펜 투수 혹사는 단순히 많이 던진걸로 결정되지 않는다. 매일 던지는 연투(09년 강영식은 3일 연투도 빈번했다.), 불펜에서의 피칭, 그리고 단기간에 지나치게 집중적으로 던지지는 않는가? 로이스터 식 투수운용을 살펴보면 여럿에게 분배하지 않고 단기간에 한둘의 투수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건 단순히 많이 던지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다.
4.2. 옹호 : 투수혹사논란은 물타기다.
관련 글로이스터가 투수혹사를 했다는 의견이 있는데 강영식의 팔꿈치의 뼛조각 제거 수술은 2009시즌 종료후에 받았으며 이게 2008년의 여파라고 이야기하는 기사나 관계자들은 없다. 오히려 2009년에 선발진이 모두 나가리되는 바람에 사도스키, 송승준, 장원준을 제외하고 모두 선발로 한번씩 서봤을 만큼 선발진이 부실한 상황이라 마산경기에서 선발 등판하기도 했던 팀 사정때문에 무리해서 팔꿈치 수술을 받은거 라고 보는 게 무방하다.
또한 2008년 이용훈이 수술후 복귀전에서는 본인이 더 던질수 있다고 이야기 했음에도 절대 안된다며 강제로 내려보냈고 이후에 이용훈이 "로이스터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전 작년에 망가졌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이야기 할정도로 배려를 많이 한 감독이었다. 팀보다 선수를 먼저 생각하는 감독이 로이스터 감독이었고[14] 팀의 불펜에 비상이 걸려서 조정훈을 끌어다 써야하는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때도 무리하지 않고 철저하게 선발 수업을 시킨 것도 로이스터였다.2008년 기사 그 결과가 2009년의 에이스 조정훈이었다. 김이슬 같은 경우는 '그 무리했다던 08년에 소화한 이닝수가 단 8이닝이다.[15]
[1] 롯데 코치에서 물러난 뒤 마산용마고 감독을 역임했다.[2] 지금의 롯데가 그 때의 선수단을 회복하려면 당장 FA로 강민호, 황재균, 김주찬, 장원준을 사오고 조성환을 복귀시켜야 한다. 3위를 기록한 2017년 롯데가 4위를 기록한 09-10 롯데보다 좋아진 건 불펜 밖에 없다.[3] 로이스터 감독 본인은 다른 팀들의 운영을 보고 08년 시즌 종료후에야 한국 2군의 정확한 성격을 알았다고 한다. 미국 마이너리그와 한국 2군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알려주지 못한 롯데 프런트와 코치진의 책임이다.[4] 임경완은 04년 홀드왕 출신으로 롯데불펜의 핵심인물이었다. 00년대 후반부터 10년대 초까지 누적성적으로, 롯데불펜에서 임경완보다 더 많은 공헌을 한 불펜 투수는 없다. 그럼에도 임경완은 끝내 작가의 이미지를 벗는 데 실패했다.[5] 히딩크 감독 성공의 1등공신은 바로 이용수 기술위원장이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대학, 실업, 프로를 총망라해서 선수들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유망주들의 경기를 직접 관전할 수 있게 주선했다. 물론 테스트와 최종선발은 전적으로 히딩크가 했지만, 그 선택의 폭을 넒혀준게 이용수위원장이다. 어느 종목이든 다양한 선수들을 알길이 없는 외국인 감독에겐 이런 지원이 필수적하다.[6] 12,13,14시즌은 3루수중 가장 많이 나왔지만2014시즌까지 최주환 등과 주전 싸움을 하고 있다.[7] 허나, 두산의 야수진 뎁스를 생각해보면 준레귤러는 당연하다.[8] 압도적이긴 하였으나 롯데 내야 뎁스의 옅어짐은 막을 수 없었다.[9] 참고로 포수는 전담 포수를 제외한다면 주전급 포수를 바꾸지 않는 게 원칙이다. 거기다 장성우 고평가는 예전부터 있어 왔지만 막상 선발로 나올때 강민호보다 좋은 모습을 보였나? 그것도 아니다. 용덕한이 트레이드로 온후에는 용덕한에게 조차 밀렸다. 최기문은 나이와 더불어 풀타임 소화능력도 되지 않기 때문에 주전으로 쓸래야 쓸수도 없었고.(더불어 최기문은 소녀어깨로 유명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데 장성우는 당시 1군에 올라오고 풀타임을 치르는 첫 시즌이었다. 강민호도 데뷔 2년차때 주전으로 풀타임을 뛰기는 했지만 수비에서는 좋은 소리 못들었고 타격도 2할 5푼대로 별로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만큼 공수에서 주전급으로 완전히 자리 잡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10] 원래 포수였다가 수비문제로 중견수로 전향한 이택근이나 블래스 신드롬때문에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김주찬이 대표적인 예.[11] 정확히 말하면 2011시즌 시즌 개막전부터 11경기에서 8푼 치고나서 바로 2군에 쳐박히다가, 2012시즌 이후 방출되었다.[12] 두산과 삼성 두 팀에서 주전 3루수를 먹었다.[13] 물론 08년 이후 스터프를 상실한 채 수술대에 올랐다는 그 강영식이 2015년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 해 50경기를 넘게 던졌으며, 로이스터 재임기 3년간 합계 160이닝도 안 던졌다는 사실은 이 비난자들에게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14] 한 예로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어서 팀을 떠난 최향남에게 마이너리그 팀을 소개시켜준 사람도 로이스터 감독이었다.[15] 1타자씩만 상대하고 내려왔다 해도 최대 24경기 등판한 건데, 그마저도 13경기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