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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00:26:08

라이언 하워드/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라이언 하워드
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필라델피아 필리스
3.1. 마이너리그 시절3.2. 2004 시즌3.3. 2005 시즌3.4. 2006 시즌3.5. 2007 시즌3.6. 2008 시즌3.7. 2009 시즌3.8. 2010 시즌3.9. 2011 시즌3.10. 2012 시즌3.11. 2013 시즌3.12. 2014 시즌3.13. 2015 시즌3.14. 2016 시즌3.15. 은퇴
4. 연도별 기록

1. 개요

라이언 하워드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아마추어 시절 미주리 주립대학 4년동안 172경기 3할 3푼 5리 50홈런 183타점을 기록할만큼 내심 1라운드 지명도 기대할수 있을 정도의 유망주였지만 드래프트가 있던 2001년도[1]에 엄청난 부진에 빠지면서 결국 5라운드 전체 140위이라는 낮은 지명순위와 낮은 계약금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했다.

3.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external/baseballhotcorner.com/RyanHoward101.jpg

3.1. 마이너리그 시절

입단 후, 엄청난 파워툴과 배트스피드를 바탕으로 마이너리그에 빠르게 적응해가면서 싱글A,더블A,트리플A를 단계적으로 초토화시키고 그 비범한 장타력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되지만 좋지 않은 삼진 개수와 떨어지는 좌투수 대처능력으로 인해 메이저에 통용될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남아있었고 하물며 이때 필리스의 1루수가 그 짐 토미였기 때문에 메이저 콜업이 늦어지게 된다.[2][3]

3.2. 2004 시즌

2004년 9월 확장로스터에 포함되면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며 19경기에 출장하며 잠시 맛을 봤다.

3.3. 2005 시즌

2005년 토미가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못뛰게 되면서 하워드는 시즌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게 되고 88경기 타율 0.288 22홈런 63타점으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수상한다.[4]

3.4. 2006 시즌

이후 토미가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첫 풀타임을 뛰게 된 2006년엔 .313의 타율에 58홈런[5] 149타점 1.084 OPS라는 무지막지한 파워넘버를 기록하면서 내셔널리그 MVP에 선정되었다.[6] 이로써 칼 립켄 주니어에 이어 신인왕 수상 이듬해 MVP를 거머쥔 역대 2번째 선수가 되었다.[7] 덤으로 올스타전에 참가해 홈런 더비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고 풀타임 1년차에 마이크 슈미트가 보유하고 있던 프랜차이즈 단일시즌 최다홈런(48개) 기록을 갈아치웠다.

3.5. 2007 시즌

작년에 비해 성적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타/출/장 .268/.392/.584에 47홈런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3.6. 2008 시즌

2007년에 비해 성적이 좀 하락했지만 그래도 커리어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필리스의 주포로 활약했다.

3.7. 2009 시즌

기존에 랄프 카이너가 갖고 있던 최소 경기 200홈런 기록도 경신하고[8] 작년 시즌에 비해 성적이 반등하며 팀의 최고 주포로 활약했다. 이 2007~2009년 3시즌 동안 하워드의 타출장 슬래시라인은 .266/.363/.565로, 이 기간 동안의 성적을 평균치로 환산하면 155경기 47홈런 141타점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이 나온다. 물론 하워드답게 삼진도 많아서 3시즌 동안 평균 195개의 삼진을 당했으며, 2007년과 2008년엔 2년 연속으로 199삼진을 기록하며 그 위엄을 드높이기도 했다. 장타력이 워낙 대단했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3.8. 2010 시즌

2010년 4월엔 팀과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커버하는 5년 1억 2500만불의 초대형계약을 미리 체결하며 명실상부 메이저리그 최고연봉의 1루수로 등극하게 되었다. 리그에서 가장 강한 펀치력으로 홈런왕 타점왕의 타격을 가졌지만 좌투수 상대 능력이 좋지 않고 수비와 주루도 눈뜨고 못볼 정도로 꽝이라 심각한 오버페이가 껴있는 선수라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투고타저의 흐름 속에서 40홈런에 120~130타점 이상을 해줄 수 있는, 필리스에서 가장 많은 유니폼을 팔아제끼는 순혈 프랜차이즈 스타를 묶었다는 점에서는 그럭저럭 봐줄만 했다.

헌데 장기계약을 체결하자마자 페이스가 하락하면서 어째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타출장 .276/.353/.505 31홈런 108타점을 기록했는데, 물론 이정도 성적도 준수한 강타자 소리 들을 만한 수치지만 팬들이 바라는건 타자 친화구장인 CBP에서 마구마구 쏴주며 MVP를 다시 먹는 거였다. 연봉도 그런 기대치를 반영한 연봉이었고. 그나마 6~7월동안 버닝하면서 9할대 OPS를 찍고 올스타에도 뽑혔으나 8월에 부상으로 3주가량 쉬고 오더니 페이스가 추락하는 등 이미 몸상태에서도 불안요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3.9. 2011 시즌

그리고 대망의 2011년, 체이스 어틀리가 부상으로 골골대며 자신을 보호해주던 우산이 없어지자 신나게 풍기짓을 하면서 172K를 당했고 .253의 타율과 .835의 OPS에 33홈런 116타점을 찍으면서 어찌저찌 6년 연속 30홈런 100타점을 이어갔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못하긴 했어도 심각한 민폐까지는 아니었는데, 포스트시즌에 가서 대형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2011년 NLDS 5차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0 필라델피아 필리스라는, 크리스 카펜터로이 할러데이의 숨막히는 투수전 명승부가 이어졌는데, 9회말 2아웃 2볼 2스트라이크에서 브레이킹볼에 하워드의 방망이가 따라나왔다. 결과는 2루 땅볼이었고, 닉 푼토알버트 푸홀스에게 천천히 송구하며 경기가 종료되고 필리스는 그렇게 탈락하며 팬들은 혼란과 패닉에 빠졌다. 그러나 곧바로 더 큰 패닉이 찾아왔다. # 땅볼을 쳤던 하워드가 주루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라인 위에 쓰러져 누워버린 것. 부상은 척 보기에도 심각했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아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3.10. 2012 시즌

결국 재활에 힘쓰며 2012시즌 상반기를 거의 통째로 날렸고, 2012년 7월 6일 전격적으로 복귀가 결정되었다. 4번타자로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오른 첫 타석에서 2루타를 날리고 멀티히트 게임을 치르는 등 맹활약했지만 어틀리의 복귀전 때와 마찬가지로 팀은 패했다. 그리고 복귀 열흘만인 7월 16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원정에서 밀어치기로 좌측담장을 넘겨버리며 첫 홈런을 장식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를 앞둔 상황에 다시 발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2012시즌 최종성적은 71경기 .219 .295 .423 14홈런 56타점 99삼진.

애초에 시즌을 늦게 시작한만큼 7년 연속 30-100 달성은 일찌감치 좌절되었지만 71경기를 출장하면서 99개나 되는 삼진, 그러고서 타율이 2할 1푼대에 출루율이 3할도 넘기지 못했다. 특히 우투수 상대로는 .247 타율에 .784 OPS를 기록했지만 좌투수 상대로 멘도사 라인을 넘나드는 비율스탯 불균형이 가장 큰 문제인데 많은 팬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할 것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2012년 말 콜업되어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친 마이너리그 홈런왕이자 필리스에서 귀하디 귀한 우타빅뱃 1루수 다린 러프의 속성 좌익수 컨버젼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과거 짐 토미가 하워드를 마이너에서 썩도록 했듯이[9] 러프를 마이너에서 썩히게 될 것임이 기정사실화하며 팬들은 더욱 망연자실하였다.[10]

3.11. 2013 시즌

2013년 시즌, 5월 초까지는 1루수로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지만, 5월 말이 되면서 내려갈 성적은 내려가고 말았다. 한때는 알버트 푸홀스와 함께 내셔널리그를 양분하던 젊은 홈런왕이었는데 어느새 하워드의 성적은 DTD의 적용대상이 되고야 말았다. 타석에서의 삽질도 삽질이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상대팀 빠른 선수들이 노골적으로 1루 쪽으로 번트를 댈 때마다 번트 타구를 돌진하여 잡아내질 못하고 투수에게 맡긴 뒤 원래 2루수가 맡게 마련인 1루 베이스 커버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팬들은 답답한 것보다도 안쓰러워서 차마 두 눈 뜨고 야구 보지를 못하고 있다. 경기에서 빼자니 하워드에게 들이는 거금이 아깝고, 뉴욕 양키스약 좀 빨았는데도 야구 더럽게 못하는 노동자마냥 신나게 욕해보자니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필리스의 전성기를 연 선수라 계륵으로 보고있다.

그러던 7월 초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두고 무릎 염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는데, 수술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수술을 받게 되면 시즌은 당연히 마감. 필리스는 하워드 때문에 AAA에서 재능을 낭비하던 다린 러프를 콜업했다.

3.12. 2014 시즌

2014년에는 더욱 상태가 나빠져서 6할대의 OPS를 찍으며 수많은 팬들의 혈압을 높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발 롸드마냥 약이라도 빨아라... 잘하고 싶은 최소한의 의지라도 보여줘..." 같은 절망적인 마지막 부탁을 하고 있다. 이제 막 계약기간 반을 지나는 상황인데 벌써 방출설이 돌 정도.

결국 시즌 최종 153경기에 출전하며 건강하게 꾸준한 삽질로 190K를 기록, 2007년 이후 7년만에 삼진왕이라는 불명예를 겪였다. .223 .310 .380 23홈런 95타점을 기록.

3.13. 2015 시즌

2015년 스프링캠프에서 필리스 측은, 하워드를 어떻게든 트레이드시키기 위해 하워드의 연봉 60M 중 50M의 연봉을 보조하겠다라는 초강수를 띄웠다. 그간 하풍기의 활약에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 사실 더는 마이너에 있기 아까운 다린 러프의 자리를 만들려면 하워드를 정리해야 한다. 허나 시즌이 거의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데려가겠다고 입질하는 팀은 보일 기미가 없어 정규시즌 울며 겨자먹기로 끌고가게 됐다.

5월달에는 비교적 무난했지만 6월 월간 성적이 .189/.255/.356로 매우 부진하였고 이후 후반기 성적도 부진. 부상으로 9월 14일 이후 시즌 아웃 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 .229/.277/.443 23홈런 77타점. 이젠 워낙 못하다보니 이 성적을 부진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WAR는 작년에 이어 또 마이너스. 그리고 그의 연봉은 2,500만 달러로 메이저리그 전체 공동 3위. 필리스의 암덩어리가 되었다. 덤으로 시즌 후엔 페이튼 매닝 약물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라이언 짐머맨과 약물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 하워드 본인과 짐머맨은 약물을 복용했다고 뉴스를 낸 알 자지라 방송에 허위사실을 퍼트렸다며 소송을 준비. 메이저 사무국의 공식발표에 의하면 이 의혹은 전혀 근거없음이 드러났다.

3.14. 2016 시즌

계약 마지막 해인 2016년, 여전하다. 아니 더 나빠졌다. 전반기 기준으로 타율 .154에 출루율은 .214에 wRC+가 43. 즉 리그 평균급 선수의 43%의 생산력밖에 못 보여주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워드는 수비도 최악수준인 1루수다. 그나마 홈런은 12개에 IsoP는 .199를 기록하면서 파워툴 하나는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팀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그나마 묻히고 있다는게 위안이라면 위안. 이미 리빌딩 모드고, 결실을 보여가는 필리스가 재계약을 시도할리는 없다. 다린 러프는 결국 자리를 잡지 못해 전형적인 AAAA선수가 되어 대안으로 헌터 펜스를 팔고 데려온 유망주 토미 조셉을 올려 러프를 대신하며 차기 주전 1루수로 밀어줄 모습. 필리스 왕조의 공신들이던 지미 롤린스, 체이스 어틀리, 콜 해멀스는 이미 팀을 떠났으며, 그들을 대신해 필리스를 새로 이끌 선수들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이번 시즌은 그의 필리스에서 마지막이라는 의견에 팬들은 모두 공감 중. 필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점을 감안해도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먹튀라는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국 필리스 구단은 2017 시즌 팀 옵션 행사를 포기했고 이것으로 하워드는 영광과 흑역사를 모두 함께 했던 필리스 시절을 마무리했다.

이후 1루수 자리는 카를로스 산타나를 거쳐[11] 리스 호스킨스에게 돌아갔고, 토미 조셉 역시 산타나, 호스킨스에게 밀려 LG 트윈스로 이적해 다린 러프처럼 KBO리그 무대로 진입하게 되었으나 러프와 달리 KBO리그에서도 실패했다.

2017년 스프링캠프가 지나갈 때까지 새 팀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가, 현지시간 4월 6일에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마이너에서도 OPS 5할대에 허덕이다가 결국 현지시간으로 5월 8일에 지명할당 조치되었다. 이후 그대로 은퇴하는가 싶더니... 8월에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남은 시즌을 콜로라도 로키스 AAA에서 보냈다.

11월 말에는 필라델피아 이글스 NFL 경기에서 목격됐다.

3.15. 은퇴

지명할당된 이후 여전히 팀을 찾지 못했고 결국 2018년 9월 4일에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적은 '고마워요, 필리!' 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한때는 필리스 팬들에게 체이스 어틀리보다 더한 사랑을 받던 프랜차이즈 스타였건만, 그런 과거의 위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장기계약 기간동안 필리스 팬들은 버논 웰스를 바라보던 토론토 블루제이스 팬들의 심정에 공감을 느껴야 했다.[12]하워드 계약만 없었다면 자체생산 에이스 콜 해멀스의 트레이드설은 전혀 불거질 필요가 없거니와 지미 롤린스, 라이언 매드슨, 셰인 빅토리노라는 또다른 프랜차이즈 스타 3명을 쉽게 붙잡을 수 있었으며, 우타 빅뱃, 메이저 최고의 유망주였던 다린 러프는 하워드에 가로막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13] 팬들 입장에서는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선수.

그러나 말년의 부진으로 명예의 전당은 못 가게 됐지만 나름 원 클럽 프랜차이즈 스타인지라 영구 결번 가능성은 큰 편이다.

4. 연도별 기록

파일:MLB 로고.svg 라이언 하워드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4 PHI 19 42 11 5 0 2 5 5 0 2 13 .282 .333 .564 .897 0.4 0.3
2005 88 348 90 17 2 22 52 63 0 33 100 .288 .356 .567 .924 2.2 3.1
2006 159 704 182 25 1 58 104 149 0 108 181 .313 .425 .659 1.084 5.9 5.2
2007 144 648 142 26 0 47 94 136 1 107 199 .268 .392 .584 .976 3.1 2.9
2008 162 700 153 26 4 48 105 146 1 81 199 .251 .339 .543 .881 2.9 1.8
2009 160 703 172 37 4 45 105 141 8 75 186 .279 .360 .571 .931 4.5 3.8
2010 143 620 152 23 5 31 87 108 1 59 157 .276 .353 .505 .859 1.0 1.2
2011 152 644 141 30 1 33 81 116 1 75 172 .253 .346 .488 .835 1.6 1.2
2012 71 292 57 11 0 14 28 56 0 25 99 .219 .295 .423 .718 -0.8 -1.2
2013 80 317 76 20 2 11 34 43 0 23 95 .266 .319 .465 .784 0.6 0.5
2014 153 648 127 18 1 23 65 95 0 67 190 .223 .310 .380 .690 -0.2 -1.3
2015 129 503 106 29 1 23 53 77 0 27 138 .229 .277 .443 .720 -0.2 -1.6
2016 112 362 65 10 0 25 35 59 0 27 114 .196 .257 .453 .710 -1.0 -1.2
MLB 통산
(13시즌)
1572 6531 1475 277 21 382 848 1194 12 709 1843 .258 .343 .515 .859 19.8 14.7


[1] 조 마우어, 마크 테셰이라, 마크 프라이어, 데이빗 라이트 등이 지명된 2000년대 초반 최고의 드래프트로 꼽힌다. 2000년대에 이와 비슷한 수준의 드래프트는 2005년 뿐.[2] 이때 간간히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트레이드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데이브 리틀필드에 거절당했다.[3] 본인이 의도한 바는 절대 아니라지만 10년 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다린 러프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민폐짓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물론 토미가 본의 아니게 하워드의 앞길을 가로막은 건 순전히 토미 본인의 실력 덕이었고,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진 않았지만.(2003년 47홈런 131타점 2004년 42홈런 105타점) 참고로 하워드는 장기 계약 후 부상으로 기량이 급락했고 돈을 너무 많이 받아먹은 탓에 그 끔찍한 기량으로도 계속 주전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기에 결국 다린 러프는 하워드가 필리스를 떠나고 얼마 안돼서 LA 다저스로 트레이드 됐고 얼마 뒤에 곧바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그리고 삼성에서의 활약으로 2020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메이저리그에 복귀한다.[4] 특히 팀이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와일드카드 경쟁을 하던 시즌 막판 한달간 11홈런 27타점의 대활약은 백미. 하지만 결국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5] 역대 내셔널 리그 청정 좌타자 단일 시즌 홈런 1위 기록이다. 약쟁이를 포함하면 2001년에 73홈런을 친 배리 본즈가 그의 앞에 있다.[6] 이때 알버트 푸홀스가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지 못한 선수가 MVP를 받아서는 안된다."라고 하워드의 MVP 수상을 공개적으로 디스했지만 재밌게도 2008년엔 상황이 역전되어 하워드는 팀이 월드시리즈 제패, 푸홀스는 팀이 지구 4위에 그쳤는데도 불구하고 푸홀스가 하워드를 꺾고 MVP를 수상했다. 이때 푸홀스는 "전혀 놀랍지 않은 결과다. 모든 기록을 다 고려해야한다."라고 교묘하게 말을 바꿨다.[7] 역대 3번째 선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 4번째는 2015년 신인상, 2016년 MVP를 수상한 크리스 브라이언트. 하워드는 이들 중 유일하게 좌타자이다.[8] 2009년 7월 16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크리스 볼스테드를 상대로 기록했다.#[9] 사실 토미는 필리스에서 2년 연속 .270대에 40홈런을 치는 등, 마지막 해를 빼면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게다가 트레이드 요청으로 필리스를 떠난 뒤 성적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면 부상으로 인한 부진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해에 하워드는 88경기를 출장하며 신인왕을 타고 주전으로 바로 자리잡았다. 반면 장기계약 후의 하워드는 부상과 휴식으로 못 나오는 경기를 빼면 꾸역꾸역 나왔다. 결국에는 2할 초반의 수비 못하는 공갈포가 고정 출전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온 리그에 알려주는 사례가 되었다.[10] 이후 러프는 반쪽짜리 백업으로 전락했고, 결국 2017년에 한국 무대를 노크하며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한다. 그리고 KBO를 제패하며 이후 리그에 남을 수 없는 몸값이 되어버리자 2020년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복귀한다. 자이언츠에서는 플래툰으로 주로 기용됨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고타율을 기록했으며 홈런과 장타도 곧잘 날려대 주목을 받았다. 급기야는 2022년 NL동부 지구 1위를 사수하려는 뉴욕 메츠가 데드라인 직전 무려 J.D. 데이비스를 포함한 4명의 선수를 주고 러프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11] 산타나가 있었던 한 시즌 동안 호스킨스는 좌익수로 뛰었으나 눈이 썩는 수비력을 보이고 산타나가 트레이드된 후 1루로 돌아왔다.[12] 정작 웰스는 토론토에서는 돈값을 했고 역대급 먹튀가 된 건 LA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된 이후였다.[13] 단, 롤린스, 매드슨, 빅토리노는 몇 년 안 가 은퇴나 내리막 테크를 탔기에 만약 저 셋도 계속 필리스에 있었다면 리빌딩이 늦어져 암흑기가 더 길어져 하퍼라던가 리얼무도, 아리에타 등을 데려오는데 지장이 있었을거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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