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4 22:30:30

디도(카르타고)

{{{+1 {{{#fff 페니키아 · 카르타고 {{{#000 관련 문서}}}}}}}}}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CCC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f0e68c><colcolor=#000> 역사 시칠리아 전쟁 | 포에니 전쟁
정치 왕정공화정
사법 · 치안 신성 기병대
도시국가 바알벡 | 비블로스 | 시돈 | 우티카 | 티레
경제 셰켈
문화 페니키아어 | 페니키아 문자
신화 바알 | 아세라
지리 가나안
인물 디도(카르타고) | 한니발 바르카 | 한노 }}}}}}}}}}}}}}}
파일:palazzo-doria-pamphilj-didone-big.jpg

1. 개요2. 고대 역사서에서3.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4.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5. 기타

[clearfix]

1. 개요

Dido[1]

고대 카르타고를 건국한 전설적인 여왕이다. 엘리사(Elissa)라고도 하며, 어원은 '방랑자'. 남매로는 오빠 퓌그말리온, 여동생 안나(안나 페렌나)가 있다. 또, 아이네이스에서 언급된 머리색은 금발이다.[2]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에서 발견된 기원전 9-8세기의 페니키아어 기록이 새겨진 유물인 노라 스톤(Nora Stone)에서 그녀의 남매 퓌그말리온(페니키아어로는 '푸메이야톤/푸메이야탄 Pumayyaton/Pūmayyātān') 왕이 언급된다는 것과 그녀의 조부/할아버지인 두로의 왕 바알-에셀 2세(Baal-Eser II, 기원전 846-841년)가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 샬만에세르 3세(Shalmaneser III, 기원전 858-824년)의 기록에서 그에게 조공을 바친 것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디도 역시도 역사적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디도가 장렬한 최후를 맞은 이후로는 카르타고에서 신격화되어 여신으로 숭배받았지만, 카르타고 멸망 한참 후에 각색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걸쳐 아이네이아스에게 버림받는 비참한 여인이라는 이미지도 추가되었다.

아이네이아스와의 사랑 이야기로 유명하나, 이는 아이네이스에서의 창작으로,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 아이네이아스의 시대인 트로이 전쟁 시대는 카르타고가 세워진 시기보다 300년 이상 과거 시점이라 포에니 전쟁을 설명하기 위한 창작으로 볼 수 있다.

튀니지에서는 단군 할아버지 격에 있는 인물로 시조로 취급된다. 물론 카르타고 초창기 당시에는 카르타고 말고 다른 나라들도 있었다는 기록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들 나라들에 대한 기록이 부실한 데다가, 어쨌든 카르타고가 이 당시에 큰 세를 떨쳤던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근현대에 튀니지 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 튀니지의 독립운동가들은 디도를 튀니지의 상징으로 내세웠으며, 튀니지 여성들을 관용적으로 디도의 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레바논인들이 디도가 페니키아에서 왔으니 우리나라 위인이라고 으스대는 경우도 종종있기는 한다.

2. 고대 역사서에서

디도는 튀로스의 공주로 태어났고, 용모가 빼어났다고 한다. 부왕이 죽자 남매인 퓌그말리온과 공동으로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사람들은 퓌그말리온만 왕으로 받아들였고, 퓌그말리온이 디도의 남편 쉬카이오스의 재물을 탐내 그를 살해하자 위협을 느낀 디도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북아프리카로 피신했다.

지금의 튀니지에 해당하는 지역에 도착해 그곳의 토착 세력의 왕 이아르바스(Iarbas)에게 소 한 마리의 가죽이 덮일 정도의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디도는 '도형들 중 원이 제일 넓은 도형이다.'라는 수학 원리를 이용해 소가죽을 실처럼 잘게 잘라 원 모양이로 이어서 성채 하나를 쌓을 정도의 땅을 얻고는 여기에 카르타고를 건설했다. 디도의 카르타고가 번영하자 토착 세력의 왕 이아르바스(Iarbas)는 디도에게 구혼하면서 결혼을 거절하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협박했고, 전 남편을 위해 수절하고 있던 디도는 자결했다.

3.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는 전 남편 쉬카이오스를 위해 수절하고 있었으나, 방랑하다 카르타고에 닿은 아이네이아스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졌고 왕홀을 내주며 카르타고를 함께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아이네이아스가 기력 좀 채웠다고(혹은 남고 싶어했지만 어서 나서라는 신들[3]의 독촉을 받고)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떠나려고 하자, 아이네이아스와 트로이 망명 용사들의 힘을 빌어 사방에 둘러싸인 적들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당신을 받아들인 나는 이제 어떤 핑계도 남지 않았고 오히려 그 동안 청혼을 거절해 온 원한만 남긴 자들+튀로스의 오빠에게 둘러싸였다."며 애원한다.

그럼에도 아이네이아스가 무시하고 떠나자 나의 자손과 당신의 자손은 적이 될 것이라 저주했으며, 이 말대로 훗날 로마카르타고가 싸우게 되는 포에니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4]

디도는 차라리 아이네이아스와 함께 떠날까 등 수많은 고민을 하지만 혼자서는 결코 제대로 된 부인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데다, 간신히 정착한 백성들에게 다시 떠나자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답을 찾지 못하고, 그러다가 아이네이아스가 끝내 떠나자 화장용 장작을 쌓고 아이네이아스가 준 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저승에서 아이네이아스와 만나지만 그를 손절하고 쉬카이오스에게 위로를 받는다.

베르길리우스아이네이스를 저술하면서 로마와 격렬하게 대립했던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정복을 적당히 섞고, 거기에 당대 아우구스투스가 다시 카르타고 경영을 손댄 것까지 고려해 멀쩡히 수절하려고 자진한 디도가 아이네이아스에게서 버려져 자진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들였다고 할 수 있다.

4.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서영수 작가 체제의 첫 권인 19권 말미에서부터 등장한다.

19권 말미에서 카르타고의 건국 설화와 아이네이아스와의 첫 대면, 에로스의 화살을 맞는 장면까지 등장하며 20권 초반에서는 아이네이아스에 대한 짝사랑을 시작으로 여동생 안나와의 아이네이아스의 사랑 심리로 인한 괴로움을 털어놓기도 한다.[5] 이튿날, 사냥을 나온 디도는 폭풍우를 피하려다 동굴에서 아이네이아스에게 사귀자고 고백하며 청혼까지 냅다 박지만 아이네이아스로부터 결혼까지는 거절당한다.[6] 아이네이아스도 고민 끝에 디도에게 결혼 제안을 받아들여 답프로포즈를 할 생각이었으나, 제우스헤르메스의 독촉으로 결국 결혼을 앞두고 이별하게 된다. 디도가 울면서 붙잡아봤지만 아이네이아스도 떠나는데 불편하고 안타까운 모양.

안나의 부축 이후 아이네이아스와의 이별이 확정되자 깊은 슬픔에 빠지고 아이네이아스의 칼과 옷을 들고는 장작 위에 올라간다.[7] 결국 칼을 빼들고 "나를 버리고 떠난 아이네이아스를 저주한다!"며 자살함과 동시에 불바다에 휩싸이고 만다.[8]

이후 시빌레 에피소드에서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나러 간 아이네이아스와 재회한다. 그러나 생전 아이네이아스에 대한 원한이 여전히 남아있었는지, 아이네이아스가 먼저 알아보고 용서해 달라며 울면서 애원했지만 디도는 아무 대답조차 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마치 생전에 디도가 아이네이아스에게 카르타고를 떠나지 말라며 붙잡을 때의 모습과 데자뷰인 셈. 디도가 사라지자 손을 뻗으며 흐느껴 우는 아이네이아스의 모습이 비극적이면서도 어찌보면 자업자득이다.

5. 기타



[1] '사랑받는 자'를 뜻하는 다윗과 같은 뜻과 같은 어근을 가진 이름으로, 사실상 같은 이름이다.[2] 그녀(디도)는 해안과 포구가 노 젓는 자라고는 한 명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세 번 네 번 자신의 고운 가슴을 손으로 치고 금발을 쥐어뜯으며 외쳤다. (천병희 역, 587 ~ 589행)[3] 제우스가 보낸 헤르메스.[4] 이 저주는 결국 로마에 의해 카르타고가 멸망하면서 디도의 패배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먼 훗날 카르타고인의 후예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로마의 황제가 되면서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디도의 복수는 성공했다.[5] 이는 사별한 전 남편 쉬카이오스 때문. 다른 남자와 결코 재혼 따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6] 아이네이아스는 그 전까지만 해도 디도에게 존대했으나 그녀의 고백을 받고 연인 사이가 된 이후 반말을 한다. 물론 디도는 연인 사이 이후에도 아이네이아스에게 존대한다.[7] 이때부터 슬픔에서 화가 매우 나 있는 모습이 되었다.[8] 다만 죽기 일보 직전 정신을 잃어가는 모습으로 등장 종료되며 직접 죽은 모습은 묘사하지 않고 장작 위 그림자로만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