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막부 정이대장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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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 제10대 정이대장군 도쿠가와 이에하루 德川家治 | |
출생 | 1737년 6월 20일 |
사망 | 1786년 9월 17일 (향년 49세) |
신장 | 153.5cm[1] |
원호 | 슌메이인(浚明院) |
재임기간 | 1760년 ~ 1786년 (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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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에도 막부의 제10대 쇼군.2. 상세
제9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시게의 아들로 일찍이 영특한 재능을 보였다. 제8대 쇼군이자 중흥의 명군이었던 조부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아버지를 후계자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1760년 죽음이 임박한 아버지로부터 쇼군직을 물려받았는데 조선 통신사를 에도에서 영접한 마지막 쇼군이었다. 그는 다누마 오키쓰구를 로주로 임명했다.
총명했으나 그의 치세는 그렇게 훌륭하지 못했으니, 청나라에는 니오후루 허션이 있었고, 조선에는 홍국영이 있었다면 에도 막부에는 다누마 오키쓰구가 있었다.[2] 정사는 다누마에게 일임하고 본인은 그저 쇼기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정실부인은 히가시야마 덴노의 손녀 토모코였으나[3] 아들이 없었고, 측실 소생의 아들 도쿠가와 이에모토가 있었으나 18세로 요절해서 다음 쇼군직은 고산쿄(御三卿)[4] 중 하나인 히토츠바시(一橋) 가문 출신 조카 도쿠가와 이에나리에게 넘어갔다.
그의 재임 기간은 조선 영조 재위 말기, 정조 재위 전반과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