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 던칸 타르가르옌 Duncan Targaryen | |
이름 | 던칸 타르가르옌(Duncan Targaryen) |
가문 | 타르가르옌 가문 |
생몰년 | 220(~224)AC ~ 259AC |
부모 | 아버지 아에곤 5세 어머니 베사 블랙우드 |
형제 | 남동생 재해리스 2세, 다에론 타르가르옌 |
여동생 샤에라 타르가르옌, 라엘레 타르가르옌 | |
배우자 | 올드스톤스의 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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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얼음과 불의 노래의 과거 인물. 아에곤 5세의 장남.2. 상세
어머니 검은 베사의 흑발흑안을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타르가르옌 왕조 출신으로는 특이하게 검은 눈과 흑발을 지녔다.[1] 그리고 그런 외양만큼이나 이름 역시 이질적인데, 가문 전통의 발리리아식 이름[2]이 아니라 아에곤 5세가 종자 시절에 섬겼던 기사 키 큰 던칸의 이름에서 따온 웨스테로스식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던칸의 이름을 지은 아버지인 아에곤 5세가 자신이 종자 시절에 모셨던 덩크(키 큰 던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3][4] 키 큰 던칸(7피트=213cm)에 비하면 키가 작았기 때문에 '키 작은' 던칸 왕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5]생전에 검술과 마상창술에 뛰어났다고 한다.
3. 생애
AC 220 ~ AC 사이에 태어났다.[6] 본래는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왕족으로서 살았으나 왕족들이 여러가지 일들로 줄줄이 죽어나간데 이어 친할아버지 마에카르 1세의 사후 마땅한 왕위 계승자가 남지 않게 되자[7] 던칸의 아버지 아에곤 5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곧 왕태자 직위인 드래곤스톤 공(Prince of Dragonstone)으로 책봉되었다.던칸의 아버지 아에곤 5세는 왕위에 오르자 귀족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평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자 했다. 이에 힘을 실어줄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아에곤 5세는 칠왕국의 유력한 대가문의 자제들과 자신의 자식들 중 넷을 237AC에 약혼시켰다. 던칸 역시 그 해에 바라테온 가문의 가주인 라이오넬 바라테온의 딸과 약혼하게 된다.[8]
그러나 리버랜드를 여행하던 도중 던칸은 평민이자 마녀라는 의혹이 있었던 올드스톤스의 제니와 사랑에 빠져 그녀와 비밀리에 결혼을 한다. 당연히 라이오넬의 딸과의 약혼은 일방적으로 파혼되고 만다. 아버지 아에곤 5세는 자신 역시 강제결혼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지만[9] 던칸의 비밀 결혼은 노발대발할 정도로 화를 내며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국왕, 소협의회, 그리고 하이 셉톤이 왕위를 포기하거나 제니를 포기하는 것 중에 고르라고 했을 때 던칸은 차라리
그러나 던칸이 왕위를 포기했든 말든 이미 일방적으로 약혼을 깨버린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부모인 아에곤 5세와 베사 왕비는 속이 상해도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지만 던칸의 약혼녀인 라이오넬 바라테온의 딸은 일방적인 파혼 통보에 비통해 했으며, 평민에게 밀려 고귀한 신분인 자신의 딸이 모욕적으로 파혼당했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분노한 라이오넬은 폭풍왕으로 즉위를 선언하며 스톰즈 엔드의 독립을 선포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은 다행히도 킹스가드인 키 큰 던칸 경이 왕실의 대전사로 나서 라이오넬 공과 치른 결투 재판에서 승리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이후 던칸의 막내 여동생인 라엘레 공주가 던칸 대신 라이오넬 공의 장남인 오르문드 바라테온과 약혼을 하게 되고, 이에 더해 사죄의 의미로 라이오넬과 그 부인의 시동 노릇을 하도록 스톰즈 엔드로 보내지게 된다. 던칸과 제니는 곧 궁정에 왕족으로 받아들여져 그럭저럭 존중을 받으며 살았다.
이후 수많은 마상시합에 출전한 모양인지 왕국 내에서 무술 실력으로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247AC에는 블랙헤이븐에서 개최된 마상시합에 참가해 작은 체구의 한 신비기사를 일격에 낙마시켰다. 기사의 면갑을 벗기고 보니 그는 고작 열 살 먹은 소년이었고, 던칸은 그 소년에게 '용맹한(the Bold)'이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소년의 정체는 훗날 명망 높은 기사가 되는 바리스탄 셀미. 6년 뒤 던칸은 킹스랜딩에서 개최된 마상시합에서 키 큰 던칸 경과 더불어 바리스탄에게 패했으며, 아에곤 5세는 그때 직접 바리스탄을 기사로 서임한다.
259AC에 서머홀의 비극으로 인해 아버지 아에곤 5세와 키 큰 던칸 경, 그리고 다른 친척들과 궁정의 사람들과 함께 사망한다. 그의 사후 아내인 제니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4. 기타
던칸과 제니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노래 '잠자리들의 왕자'가 전해진다. 참고로 이 올드스톤스의 제니의 친구가 하이 하트의 유령으로 보인다. 이 '제니의 친구'의 예언으로 인해 던칸의 조카인 아에리스와 라엘라는 서로와 결혼하게 된다.아홉 닢 왕들의 전쟁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고도 한다. 마엘리스 블랙파이어와 구인회가 웨스테로스를 침략하여 동생 재해리스 2세의 왕위를 노릴 생각이라는 소식을 듣자 던칸 왕자가 '요즘 왕위는 아홉 푼에 팔리나보군?'이라고 개드립을 쳤는데 이 말이 퍼진 것.
5. 평가
그의 행적을 살피자면 던칸은 자기 의지가 매우 확실한 사람인 것과는 별개로 군주나 귀족으로써 정치하기엔 매우 글러먹은 성격인 것은 확실하다. 군주나 귀족으로써 정치를 하려면 아무리 싫다고 해도 일단 다른 중요한 주변인들과의 약속을 자기 감정이나 고집대로 거스르면 안 된다. 원한을 사서 호되게 보복당할 우려가 크기 때문. 특히 칠왕국처럼 왕권이 약한 나라에서는 더더욱 하면 안되는 무리한 행동이다.실제로 제니에 대한 던칸의 무리한 고집은 결국 아에곤 5세의 우군이었던[11][12] 라이오넬을 극단적인 적대자로까지 만들며 보복당할 상황에까지 처하게 만들었다.
키 큰 던칸 경이 일단 결투 재판에서 라이오넬을 패배시키는 걸로 어느 정도 무력 진압이 되었고 아에곤 5세가 마침 아직 약혼을 하지 않았던 막내딸 라엘레를 라이오넬의 후계자인 그의 장남과 혼인시켜서, 꿩 대신 닭이란 식으로 타르가르옌과 바라테온 가문간의 사돈 만들기가 가능했고 라이오넬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순순히 아에곤 5세의 화해 제안을 받아들였던게 천만다행이었다. 던칸 왕자의 누이도 없고 키 큰 던칸 같은 인물도 없다면 일대 내란으로 커졌을 것이다.[13]
즉, 던칸은 정치적인 의미에서 어그로 탱커짓을 했는데도 여러모로 주변 빽과 운이 좋아서 잘 넘어간 재수 좋은 케이스다. 작중에서 던칸과 정말 놀라울 수준으로 비슷한 짓을 저질렀지만 그 결과를 피로 치른 아에리스 2세와 롭 스타크가 있기 때문이다.
롭 스타크 또한 던칸처럼 둘 다 사랑에 빠져서 원래 결혼할 여자보다도[14] 더 낮은 여자[15]를 택하느라 정치적인 목적으로 맺어진 정략혼을 거부했다. 당연히 둘의 이런 '지극히 사적인 이유에서' 진행된 일방적인 행동은 약혼자 가문에게 매우 무례하고 모욕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졌으며 반발을 불러냈다. 하지만 둘이 맞이한 약혼자 가문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라이오넬 바라테온과 바라테온 가문은 아예 대놓고 "그래, 너희들은 파혼하면 우린 반란하고 독립한다!"라며 타르가르옌 왕가를 상대로 매우 과격하게 반응했다가, 키 큰 던칸 경과 아에곤 5세의 재빠른 대처로 거기까지는 실패했고 아에곤 5세의 딸과 라이오넬의 장남이 결혼하면서 대충 화해하고 물러났다. 반면 프레이 가문은 일단 바라테온 가문과 달리 롭 앞에서 일단 대놓고 반발하진 않았으나 스타크 가문의 다른 적대 가문들[16]과 손잡고, 피의 결혼식이라는 기습적인 복수를 진행해 끝내 롭과 그의 지지자들까지 대부분 죽여버리면서 더욱 과격하게 반발하고 성공했다.[17]
이토록 차이나는 약혼자 가문들의 반응 덕에 던칸과 롭이 맞이한 결말도 전혀 달랐다. 던칸은 왕위계승을 포기하는 나름
던칸의 파혼과 라이오넬의 반란 이후 바라테온 가문은 몇 대[21]가 지나서 다시 아에리스 2세가 재위하던 시절의 타르가르옌 가문과 악연이 되고
[1] 아버지 아에곤 5세의 백부인 바엘로르 타르가르옌을 포함해 타르가르옌 왕가에서도 은발/백금발과 자안/짙은 벽안을 지니지 않은 자손들도 가끔 태어났다.[2] 타르가르옌 왕가는 전통적으로 발리리아인 이름을 대대로 물려주어 웨스테로스에서도 매우 이질적인 존재임을 자처해왔다.[3] 단순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수도 있다. 현실의 동양 왕조들도 왕족들은 특권층이었고, 귀족 등 다른 특권층은 모두 철폐된 조선에서도 왕은 피휘 등 여전히 특권을 누렸다.[4] 아니면 (웨스테로스 전통처럼) 그냥 자기 가문의 선조나 위인들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느라 발리리아식 이름을 계속 사용하게 되는 거고, 그럼 던칸은 그냥 아버지의 은인 이름을 가져다 붙인 거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5] 그런데 사실 이 키 큰 던칸 경의 이름도 아에곤 5세가 소년 시절 덩크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아에곤이 "덩크는 전혀 기사답지 않은 이름인데 혹시 본명은 던칸이냐"고 물어보자 이를 그럴듯하게 여긴 덩크가 그게 맞다고 급하게 둘러대면서(...) 얻은 이름인 것. 결국 실제로 던칸이라는 이름을 처음 가진 것은 던칸 왕자가 맞으며, 이름의 원 저작권자에게 돌아간 것이라 할 수 있다.[6] 부모가 AC 220에 결혼했고, AC 225 에 남동생인 재해리스 2세가 태어났으니 AC 220 말에서 AC 224 사이에 태어났을 것이다.[7] 아버지 아에곤 5세의 큰형 다에론 타르가르옌의 딸이자 던칸의 사촌 바엘라는 용들의 춤에서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의 사례로 여성의 계승을 암묵적으로 부정하고 있는데다 지적장애인이기까지 해서 탈락. 아에곤 5세의 둘째형이자 이미 죽은 아에리온 타르가르옌의 외동아들로 던칸의 또다른 사촌인 마에고르는 너무 어린데다가 광기가 심했던 아버지의 평판이 영 좋지 않았기에 또 탈락.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꺼리던 던칸의 아버지 아에곤 5세의 즉위를 막기 위해 귀족들이 밀던 아에곤의 셋째형 아에몬 타르가르옌은 마에스터의 의무를 포기하지 않고 아예 자진해서 장벽으로 떠나 밤의 경비대에 투신해버렸다.[8] 라이오넬은 키 큰 던칸 경과 아에곤 5세의 은인이기도 했고, 대협의회에서도 꾸준히 아에곤 5세를 지지해준 최측근인 심복이었다. 게다가 매우 강력한 대가문의 가주이기도 했으므로 그의 딸을 미래의 왕비으로 삼는 것은 여러모로 매우 적절한 정략결혼이었다. 이때 아에곤 5세의 차남 재해리스는 툴리 가문의 셀리아와, 장녀 샤에라는 티렐 가문의 루서와, 삼남 다에론은 레드와인 가문의 올레나와 약혼하게 됐다.[9] 하지만 아에곤 5세와 던칸의 상황은 아주 크게 달랐다. 아에곤 5세는 결혼 당시 왕위 계승권이 영 높지 않은 왕족이었고 상대는 비록 대가문은 아니지만 리버랜드의 유서 깊은 명가인 블랙우드 가문의 영애인 베사 블랙우드로 평민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원래 약혼 상대도 자기 친누나인 다엘라였으니 파혼을 해도 크게 논란이 될 여지도 없었다. 이에 반해 던칸은 왕위계승서열 1위에 약혼 상대는 대가문의 영애였다.[10] 잠자리(드래곤플라이)는 덩크(키 큰 던칸)가 아직 왕자이던 마에카르 1세에게 가신이 될 요구를 받을 때 근처에서 자유롭게 날아 다니는 드래곤플라이(잠자리)냐, 아니면 성 안의 드래곤(용)이냐를 선택할 때 처음으로 등장한 비유법이다. 던칸 왕자는 이런 비유법까지 물려 받았으며 소년 시절의 키 큰 던칸 경처럼 용 대신에 잠자리를 선택한 행적까지 동일하다.[11] 아에곤 5세는 왕권이 약한 나라의 왕족이었던 것에 더해 친백성/반귀족적인 면모를 보여 대부분의 귀족들 사이에서 밉보인 처지였다. 게다가 대회의에서도 아에곤을 지지한 대귀족은 라이오넬과 제롤드 라니스터 뿐이었을 정도였다. 이 둘은 아에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니[24] 아에곤 5세의 기반이 얼마나 약했는지를 알 수 있다.[12] 아에곤 5세의 지지기반이 얼마나 약했냐면 아예 즉위 말년에 드래곤 부활을 노리고 의식을 거행했다가 서머홀의 비극이란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아에곤 5세는 그만큼 당시 정치적으로 몰려서 절박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아에곤 5세가 정치적으로 절박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던칸을 비롯해 혼사 관련으로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자식들이었다.[13] 실제로 라이오넬은 일방적이고 무례한 파혼에 분노하여 아에곤의 정복 이전 스톰랜드의 칭호인 폭풍왕을 자칭하며 칠왕국에서의 독립을 선포하기까지 했다.[14] 던칸은 대영주 바라테온 가문의 가주인 라이오넬 바라테온의 딸, 롭은 프레이 가문의 가주 왈더 프레이의 딸 로슬린 프레이.[15] 던칸은 귀족도 아닌 평민인 올드스톤스의 제니와 사랑에 빠져 멋대로 결혼했다. 롭은 일단 귀족 출신이긴 해도 거의 몰락하다시피 영향력이 미미한 제인 웨스털링과의 결혼을 강행했고 드라마판에서는 아예 외국 귀족 출신인 탈리사 마에기르와 이어진다.[16] 라니스터 가문, 볼턴 가문[17] 단 양 쪽의 이후 상황은 많이 다른데, 바라테온의 경우 빠르게 갈등이 해결되며 실질적 피해는 별로 없었다보니 가문차원에서 별다른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어찌저찌 왕가와 혼사를 맺기도 했고.... 그러나 프레이 가문은 빡친 이유에 대해 독자들도 납득하지만 접대의 관습을 어긴 행위 때문에, 다른 의미에서 찍혔으며 스타크 가문 생존자인 아리아 스타크에게도 단단히 보복대상으로 찍혔기 때문에 가문의 미래가 영 좋지 않다.[18] 바라테온 가문이 던칸의 태도 때문에 반란 시도까지 한 것과 별개로 던칸을 반란 도중에 죽여버렸다거나 부상을 입혔다거나 암살시도라도 추가로 시도했다던가 하지는 않았으니.[19] 생각해보면 던칸은 라이오넬의 반란에서 큰 부상을 입었다던가 하는 언급도 없고, 왕위계승권을 내려놓은 것을 제외하면 그냥 궁정에서 부인과 함께 잘 살면서 마상시합에 출전해 명성을 드높이는 등 제법 편하고 좋은 인생을 살았다. 게다가 평민들은 둘의 사랑을 칭송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하는 등 던칸을 매우 좋아했다. 바라테온 가문의 사람들도 속내는 어쨌든 간에 던칸을 공개적으로 성토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반란이 진정된 이후 다시 타르가르옌 왕가에 충성을 바쳤다.[20] 피의 결혼식 때 롭의 지지세력도 많이 참여했는데 대부분은 이때 롭과 함께 몰살되었다. 살아남은 소수는 인질로 잡혀 프레이 가문이 북부를 협박하는데 이용당했다.[21] 햇수로 따지면 50년도 안된다. 그 사이에 오르문드/스테폰 바라테온/재해리스 2세가 모두 요절했기 때문에 이해당사자들은 확확 바뀌었지만.[22] 라에가르는 로버트 바라테온의 약혼녀였던 리안나 스타크와 이어졌다. 라에가르의 입장에선 예언의 달성과 연애혼이 섞인 부분이고 드라마판에서 둘은 정식으로 결혼했지만 엄연히 리안나의 정식 약혼자였던 로버트 입장에선 문자 그대로 일방적인 네토라레.[23] 그리고 작중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예언과 마법적인 요소 덕에 라에가르의 짓이 쉼없이 정당화되고 있지만 그런 건 독자들이나 작중의 미래인들이나 납득 가능한 근거이고, 오컬트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보면 라에가르가 벌인 짓도 던칸이나 롭이 한 짓과 비슷하게 구태여 만들어질 이유가 없을 강력한 정적을 괜히 만드는 미친 짓에 불과했다. 독자들도 대부분 라에가르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평한다. 게다가 이런 사태에서 당시 왕이었던 아에리스 2세는 아에곤 5세와 달리 로버트와 바라테온 가문을 달랠만한 대체제를 주는 조치조차 하지 않았다. 한 술 더 떠서 아에리스 2세는 리안나 납치사건 때문에 국왕령으로 온 브랜든 스타크를 비롯한 유력 귀족의 자제들을 인질로 삼아 아버지들까지 소환하고 함께 죽여버렸다. 대영주 가문들은 당연히 이 사건에 부정적으로 자극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사실상 타르가르옌 왕가의 선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