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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23:31:44

니코류

1. 개요2. 역사3. 상세4. 기술 형태
4.1. 토키타 오우마의 니코류(4의 니코류)
4.1.1. 응용기4.1.2. 오의
4.1.2.1. 수련 과정
4.2. 또다른 토키타 니코가 만든 기술
4.2.1. 고독장의 생존자들4.2.2. 개량 니코류(가칭)4.2.3. 벌레 니코류(6의 니코류)
4.2.3.1. 오의
4.3. 가오우 무카쿠의 독자 개량 니코류

1. 개요

二虎流.

켄간 아슈라켄간 오메가에 등장하는 무술. 창시자는 가오우 무카쿠

2. 역사

에도 시대나 혹은 그 위로 더 거슬러 올라가 전국시대. 당시 사무라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술이 있는데 그 이름은 가오우류. 가오우류는 여러 면에서 농민이나 위장한 암살자들보다 우위에 있는 무사와 영주들을 죽일 기습의 일격을 전제해 만들어졌다.

개발될 당시의 가오우류는 무술이라기보다는 단도 등의 소형 냉병기를 들고 행하는 암살기술에 가까웠으나 언제부턴가 무기가 아닌 주먹과 발로 상대를 공격하는 무예로서 변하게 된다. 그렇게 음지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가오우류는 1940년대. 가오우 무카쿠가 권원 시합에 출전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술유파로 발돋움하게 된다.

가오우 무카쿠는 모종의 이유로 권원 시합에서의 활약에 이어 안쪽으로 무대를 이동. 가오우류로 안쪽을 제압해 통일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30년에 달하는 분투에도 안쪽의 벽은 높았기에 통일은 요원하자, 생각을 바꾸게 된다.

암살기술의 성격이 강하게 남은 가오우류를 포기, 개조하고 괴완류의 협조를 얻어 니코류를 창시했다. 무카쿠가 개발한 니코류는 7인의 제자에게 이어졌으며, 사고로 인해 결별한 니코과 무카쿠에 의해 각자 진화를 거친다.

가오우 무카쿠가 등장하면서 진짜 역사가 나왔는데 사실 가오우류라는 건 그냥 시골에 묻혀있던 이름 없는 무기술[1]을 기반으로 가오우 무카쿠가 만들어낸 역사 날조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무카쿠가 워낙 강한지라 무기술을 무술로 개량해 하나의 유파로 일컬어지기 충분한 수준이 되었으며, 여기서 다른 유파와 교류하여[2] 한 번 더 개량을 거친 것이 지금의 니코류인 것. 정작 무카쿠는 토키타 니코(오우마의 스승)가 니코류를 단순히 무투술로 바꾸어 버렸다고 깠다.

켄간 오메가 253화에서 완전하게 니코류의 역사가 정립되었는데, 가오우 무카쿠가 본래 중국의 유명한 무술 집단이었던 '롱(龍) 일족'[3]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그들의 고유 유파인 '용가절기'에서 일본으로 도주한 후 이름없는 유파의 기술을 더해 완성된 것이 바로 '가오우류'. 여기서 다른 유파와 기술 교류를 통해 한번 더 개량한 것이 '니코류'고, 훗날 이를 계승한 토키타 니코들의 생존자인 '4의 니코류'와 '6의 니코류'로 분기된게 지금의 현황이었다. 용가절기를 습득하던 가오우 류우키는 기술 요령의 익숙함을 느끼고 코가와 함께 빠르게 습득해 나가게 된다.

3. 상세

켄간 아슈라토키타 오우마토키타 니코에게 배운 무술. 작중 초반에는 '니코류 오의-가불'의 부작용으로 인해 기술 대부분을 까먹고 있었으나 권원 절명 토너먼트에 들어가면서 기억을 되찾고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4] 자세한 내막은 켄간 아슈라 문서의 설정 니코류 참고.

조류, 화천, 금강, 수천의 네 가지 형태가 있고 각 형마다 특화된 분야와 활용법이 현저히 다르며, 상황에 따라 둘 이상의 형을 섞어 시너지를 낸다. 네 가지 형태가 있는만큼 타격과 그래플링 등 기술의 분야와 폭이 넓어 얼핏 종합격투기와도 비슷하지만[5] 전신의 힘의 흐름을 조종하는 것을 근간으로 삼고있어 종합격투기와는 확실히 다르다.[6] 또한 각 형에는 극의가 있는데, 위력적인 필살기가 아니라 심각한 부상이나 체력 소모 등 싸움을 이끌어 나가기 힘든 상황에서도 승리하기 위한 "비장의 수단"의 개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7] 때문에 무술로써는 특이한 편으로 대부분의 기술이 정해진 사용법과 형태가 없다. 그리고 니코류의 오의는 네 가지 형의 위쪽에 있는 비장의 기술이 아니라 반대인 그 안쪽에 존재하며, 네 가지 형을 한순간에 복합하여 사용해야 한다.[8]

이 외에도 니코류만의 기술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잡기[9]와 전투에 있어 요령이 될만한 것을 니코에게 전수받았다고 한다. 특히 몸 상태가 극한까지 몰렸을 때 버티기 위한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을 때 발동하는 자가포식[10]을 이용한 일명 '보조 배터리' 상태나, 중상을 입었어도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돕는 기술 등 갖가지 이름 없는 기술들이 존재한다.

본래는 토키타 오우마만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기술이었으나 이후 또다른 토키타 니코와 그 제자들의 등장으로 사용인원이 늘었다.[11] 그리고 니코류 자체가 0에서 창조한 무술이 아니다보니, 작중에 등장하는 무술가들 중 니코류와 별 연관이 없는 무술가들 사이에서도 니코류의 몇몇 기술과 비슷한 원리로 구사되는 기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2]

또한 창시자 가오우 무카쿠에 의하면 본래는 단검을 들고 행하는 무기술의 성격도 적잖이 있었는데[13] 오우마를 가르친 일명 '4'번 토키타 니코는 무기를 '상대하는 법'은 있었지만 '사용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다.[14]

4. 기술 형태

4.1. 토키타 오우마의 니코류(4의 니코류)

4.1.1. 응용기

4.1.2. 오의

4.1.2.1. 수련 과정

토키타 니코는 귀오가 어떤 종류인지, 전부 다 설명을 해준 후에 특훈에 들어갔다. 꼭 배우지 않아도 되니 하지 말자고 한 건 덤. 그러나 오우마는 니코의 기술을 전부 배우기를 원했기에 사제는 특훈을 시작한다. 습득 장소는 니코류의 성지 가키가하라 수해.

이곳에서 오우마의 팔다리에 10킬로짜리 족쇄를 채운 다음 자신에게 정타를 때릴 때까지 싸운다고 조건을 걸고 일주일 간 한없이 두들겨 팼다. 그것도 상대가 넘어지거나 하는 걸로 끝이 아니라, 일어날 힘조차 없을 때까지 때려눕히는 극한의 대련이었다. 제대로 된 휴식도, 식사도, 치료도 없었기에 오우마는 풀즙을 짜서 상처에 바르고, 벌레를 잡아먹으며 버텼다.

그러기를 며칠, 나흘 차에는 한계를 넘은 육체가 저력을 뿜어내어 평상시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고 아흐레 차에 오우마는 이제 자신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 이르어서야, 오우마는 니코가 바란 것이 죽을 힘을 다해서 격상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직감하고 마침내 한 방 먹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니코는 드디어 오우마가 오의를 쓰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깨우쳤다면서 자신도 족쇄를 풀고 마지막 대련에 임한다.

격상의 상대가 퍼붓는 공세에 몰린 오우마는 극한까지 다져진 감각으로 오의 귀오를 시전하면서 마침내 오의 습득에 성공한다.

이후 니코가 설명하길 극한 상황으로 육체와 정신을 몰아붙여서 감각을 각성시키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모든 체력을 고갈시켜서 완벽한 탈력을 성공시키고, 정면에서 받아낼 힘조차 남기지 않아 조류의 형으로 받아내는 선택지만을 남기고, 고민할 여유도 남기지 않아서 상대의 공격에만 비상식적 집중력을 발휘하게 해 귀오를 성공하게 만든 모양.

결과적으로는 성공했으나, 그 부작용으로 사제는 한동안 부상을 달고 살았고 이 틈을 노린 토키타 니코키류 세츠나의 내습으로 비극적으로 끝난다.

4.2. 또다른 토키타 니코가 만든 기술

토키타 오우마를 가르친 토키타 니코가 아닌 또다른 토키타 니코가 만든 기술들로 지극히 실험적인 기술들이 많으며 오우마나 키류 세츠나, 카노우 아기토, 루 티엔 등을 보면 강해지기 위해서는 제자를 실험대상으로 하는걸 주저하지 않는다. 강마, 신마 등 신체능력을 강화하는 도핑기는 전부 이 인간이 만든 기술.[34]

4.2.1. 고독장의 생존자들

벌레의 토키타 니코가 벌래 측의 협력으로 중국 대륙에서 4000명의 재능있는 아이들을 80명씩 나눠서 3개월 동안 가둬놓고 1명만 생존하도록 경쟁시켜서 살아남은 인원들에게 가르친 기술이다. 사용자는 루 티엔, 카노우 아기토.

4.2.2. 개량 니코류(가칭)

또다른 니코류의 전승자인 페이 왕팡이 사용한 니코류.[36] 기술의 형태가 토키타 오우마의 니코류와 전혀 달라서 힘으로 니코류 막는 걸 연습해 온 와카츠키 타케시가 타이밍을 간파하는데 애를 먹었다.

4.2.3. 벌레 니코류(6의 니코류)

벌레의 토키타 니코가 사용한 니코류.

4.2.3.1. 오의

4.3. 가오우 무카쿠의 독자 개량 니코류

가오우 무카쿠가 '안쪽'에서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니코류. 토키타 오우마는 처음 보는 자세라면서 경계했다


[1] 서적에서도 위의 언급한대로 자세를 낮추고 단도로 아래에서 위로 기습해 치명상을 입히는 것을 중점으로 기록되어 있었다.[2] 이로 인해 니코류에 있는 기술 중 다른 유파의 기술이 등장하기도 한다.[3] 본편에서 약 85년 전, 연결되는 자의 클론 생성에 대해 섭리가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기를 들었다 숙청되었다.[4] 정확히는 기본기와 몇 가지 응용기만 쓰다가 토너먼트가 진행되어가면서 더 많은 기술을 되찾고 폭주하는 키류 세츠나와 맞붙을 즈음 거의 전부를 회복했고, 쿠레 라이안과 싸우며 니코에게 배운 응용을 기억해 이후 최종오의인 귀오를 되찾았다.[5] 니코류 자체의 역사가 암살권인 가오우류에 한계를 느낀 가오우 무카쿠가 다른 유파의 도움을 받아 최종적으로 완성한 것인데 이는 어느 기술에든 대응하고자 점점 발전해나간 현대의 종합격투기와 비슷하다.[6] 오우마의 첫 등장에서도 코마다의 지르기를 잡고 힘을 역이용해 뼈를 탈구시키며 단순한 격투기들과는 차별화된 전법을 보여주었다.[7] 이 때문에 오우마의 스승인 니코가 만든 니코류는 그저 강한 기술이 아니라 각 상황에서 얼마니 올바른 선택을 하는 지에 대한 기술이라고 평한다.[8] 그러나 사실 이 '오의'에 대해서는 후에 밝혀진 내용들이 있었고, 이에 대하여 문서에 기술되어 있다.[9] 정신공간에서 자신이 본 격투가의 가상 모델과 겨루는 이미지 트레이닝 기술도 그 중 하나로, 리얼리티는 거의 현실과 동일하지만 가상 모델의 재현도는 오우마 본인이 오리지널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에 달렸다.[10] 영양이 부족한 상태에 빠진 생물이 스스로의 세포 안에 있는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일시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오우마는 오의 수련 중 가키가하라 수해에서 영양결핍에 가까운 기아 상태로 체내의 모든 열량을 전부 소모했는데 그때 짧은 시간동안 몸이 가벼워진 상태를 느꼈고, 니코에겐 애매하게 체력을 남길 바에야 차라리 전부 사용해 보조 배터리를 발동하는게 낫다고 조언받았다.[11] 확실히 니코류를 사용하는 캐릭터는 키류 세츠나와 카노우 아기토, 페이 왕팡 뿐이며, 나머지 제자들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무형만을 사용하는 루 티엔은 제외). 그리고 켄간 오메가에 이른 현재는 나루시마 코가가 오우마에게서 니코류 전승 제안을 받은 상황이며, 제안을 받기 전에도 오우마에게서 철쇄를 비롯하여 몇 가지 기술을 배웠다.[12] 과거에서 나오듯 용가절기에 이름없는 암살유파, 거기에 괴완류같은 현대까지 전해져내려오는 유파의 기술까지 받아들여 만든 것이 니코류다.[13] 실제로 7인의 니코들과 가오우 무카쿠도 상대를 죽이려고 맘먹을 때는 칼을 들었다. 가오우 류에도 적이 휘두르는 단검을 역으로 받아치는 기술이 있다.[14] 오우마의 말에 의하면 격투 위주로 특화되어 기술을 편성했기에 무기를 사용하는 법은 처음부터 상정하지 않았던 것이다.[15] 물론 사용자의 숙련도가 주인공보다 높았음을 감안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16] 다만 효율은 철지에 비해 많이 좋지 않아 오우마는 애초부터 생각해 본 적 없었다고 한다.[17] 전완근이 쥐가 나는 느낌인 듯.[18] 안 부러진 마냥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이 부러진 상태에서 어떻게든 주먹을 쥐어보려고 사용한 것에 가깝다. 작중에서도 포골을 이용, 부러진 손가락으로 주먹을 굳힌 뒤에는 아예 움직이질 않았다. 쿠로키 겐사이도 키류 세츠나에 의해 오른손 손가락이 부러졌을때 근육으로 되돌리는 등 비슷한 것을 사용했는데, 니코류가 괴완류와 기술 교류를 진행했다고 하니 두 유파의 기술 교류로 니코류에 편입된 기술로 보인다.[19] 다만 수룡맥을 본 라이안은 본래 살인기로 써야될 기술을 제압용으로 쓴 걸 간파하고 아쉬운 짓을 했다며 코스모가 탈출할 것을 예견했다.[20] 절명 토너먼트에선 이미 몇 번 사용장면을 본 코스모가 타이밍을 어긋나게 해 파훼했고 오메가에선 와카츠키가 후자를 죽어라 연습해서 파훼시켰다.[21] 연재지에선 천지(天地)로 오기되었으나 나중에 수정되었다.[22] 콘티에서는 스승과 비슷하게 뒤집어서 공중으로 날려버리는 형태였으나 좀 더 박력을 주기 위함인지 회전력을 그대로 땅바닥으로 쳐박아버리는 것으로 수정되어 경기장을 박살내는 연출로 변경되었다.[23] 참고로 이때 니코직선으로 날아오는 총알의 각도를 간파하고, 발사하는 순간 총알을 무려 손등 뼈로 밀어내어 튕겨냈다.[24] 때문에 권안을 지닌 야마시타의 눈에는 오우마의 움직임이 진짜 꼭두각시 인형처럼 괴상하게 보였다.[25] 즉, 가불(빙신)처럼 초인적인 상대를 이기기 위한 기술로 볼 수도 있다.[26] 타: 타격, 투: 던지기, 극: 꺾기, 교: 조르기[27] 체중이 200kg에 가까운 거구의 와카츠키가 링 코너에서 중앙부까지 날아갔다.[28] 마에가리. 가불의 일본식 표현.[29] 이후 점점 기억을 되찾으며 빙신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낸 후에도 가불이라는 이름 자체가 본인만의 아이덴티티가 되어 본인(과 오우마의 가불을 먼저 본 사람들)은 가불, 이미 빙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쿠로키, 벌레 일당 등) 빙신이라고 부른다.[30] 켄간 오메가에서 가오우 무카쿠의 말로는 '빙신'은 본래 80년 전 벌레에서 독립한 산하 조직인 '워왕'이 벌레에 군림한 자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쓰러트리기 위해 만든 비술이었다고 한다. 그게 니코류의 오의로 편입된 것이며 쿠레 일족의 하즈시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는 건 벌래 측 니코가 멋대로 핑계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31] 또다른 토키타 니코가 만든 기술로 밝혀지면서 이것 또한 니코류 기술임이 밝혀졌다. 오우마의 스승인 토키타 니코도 이 기술을 익혔는지는 불명이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는지 오우마가 가불로 폭주하자 바로 빙신임을 알아챈다.[32] 상술했듯이 오우마 본인이 켄간 아슈라에서 가불의 부작용으로 죽을 뻔했으니 더더욱 체감이 되었을 것이다. 오메가에서도 5초 이내로 쓴 뒤 "지금 생각하면 잘도 남발해댔구만." 하고 과거의 자신을 욕한다.[33] 아이러니하게도 토키타 오우마에게 가불을 주입한 6번 니코와 사용방식을 똑같이 사용한다. 차이점이라면 6번 니코는 실험체들을 이용해 가불의 단점을 차차 알아갔다면 오우마는 본인이 한 번 체험해보고 깨달았다.[34] 빙신은 오우마를 가르친 니코도 알고 있었다. 선대인 가오우 무가쿠가 만들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고 추측되었으며, 이후 주인공 일행이 무가쿠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정확히는 무가쿠 본인 또한 젊었을 적에 사용했었다.[35] 즉, 엄밀하게는 또다른 니코가 만든 기술은 아니다.[36] 오우마가 사용한 기술들도 사용하였으나 여기에서는 단독으로 사용한 기술들만 작성한 것이다.[37] 당장 손가락 공격력은 리히토의 레이저스 엣지에 비해 허접하고, 기술력은 아라시야마의 휘두르기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하찮은 잔기술에 불과하다.[38] 심장 박동이 너무 빨라 되려 그 소리가 구분이 안 되어서 오우마는 귀혼(하즈시)와 비슷하다 여겼고, 신마를 본 키류 세츠나는 오우마와 자신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썼다.[39] 물론 페이 본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와카츠키가 자신을 너무 몰아 붙이자 어쩔 수 없이 한계를 넘어서 사용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덕분에 와카츠키를 다운시켰지만 그 대가는 본인의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