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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7-10-07 13:05:49

노벨문학상/한국인 수상


1. 한국인 수상: 왜 아직 없는가?2. 주장 1
2.1. 반론
3. 주장 2
3.1. 반론3.2. 대안 2-13.3. 대안 2-23.4. 대안 2-3
4. 주장 35. 주장 4
5.1. 대안
6. 주장 57. 주장 68. 주장 79. 종합

1. 한국인 수상: 왜 아직 없는가?

대한민국에선 아직 수상자가 없다보니 문학 관련 기사만 나오면 으레 노벨문학상과 관련짓곤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세계 도서 박람회가 열리면 '도서 박람회가 열린 나라에서 몇 년 안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경우가 많다'라든가. 시인 고은이 매년 후보에는 오르기 때문에[1] 해마다 시상식날만 되면 기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고은은 이로 인해 받는 엄청난 중압감 때문인지 떨어질 때마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 떡밥에 대해 제기되는 몇 가지 주장들과 반론들을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2. 주장 1

아직 한국의 문학작품들이 해외에 많이 선보이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한국은 지리적ㆍ역사적으로 서양 국가에 인지도가 낮았고, 따라서 한국의 텍스트가 서구권에 번역되는 일도 적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며,[2] 여기에 기본적으로 한국어 사용자가 밀집되어있는 한국의 한국인은 인구수가 기껏해야 5천만 밖에 안 되어 서양 언어권 국가보다 인구가 적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텍스트 번역 사례가 적으니 번역계의 노하우나 문학적 성숙도 기대하기 힘들고, 좋은 작품이 번역될 확률도 극히 낮아진다.

또 작품은 "번역하면 끝"이 아니다.산 넘어 산 책 역시 상품이기에 마케팅이 있어야 하는데 라이선스를 수입하는 해외 출판사의 입장으로서는 소비자들이 익숙한 국가의 서적을 들여오려하지 웬 생뚱맞은 국가의 책을 갖고오려 하지 않는다. 결국 소규모 해외 출판사들만이 틈새 시장을 노리고 라이선스를 가지고 오는데, 소규모 출판사는 대규모 출판사보다 마케팅에서 밀린다. 그리고 이런 소규모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노벨문학상 선정위원의 귀에까지 들어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2.1. 반론

이미 해외에 소개된 수가 결코 적지 않으며 좋은 작품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피터 현이 《월간조선》에 연재한 회고록에 의하면 80년대 전두환의 사업 중의 하나가 본인이 정권 잡는 동안 한국인의 노벨상 최초 수상이었다.[3] 그래서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되는 문학상에 도전하였고 당시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국가주도로 번역에 투입되었다.

비록 질은 대단히 낮았고 대부분 재미교포 2세대 교육용이거나 한국대사관 창고에서 썩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쨌거나 지난 수십년간 한국 문학계에서 질보단 양을 택하며 온갖 국가에 라이선스를 팔아넘긴 경우는 많다. 고은은 25작품이 영미판으로 번역되었고 이문열은 33작품이 번역되었다. 신경숙의 작품은 30개국 이상에서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다수의 문단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이 영미판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한국 문학이 외국에 많이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3. 주장 2

한국어 → 외국어 번역 문화가 성숙되지 않았으며, 한국어는 영어로 번역하기 어렵다.

역시 맞는 말이다. 번역은 문학 소통에 있어서 절대불가결한 입장을 차지한다. 실제로 해외 소개된 고은의 작품은 66종이지만 수준 높은 번역은 10%에 그친다는 평가다. 게다가 일본의 가와바타가 《설국》으로 문학상을 받았던 데는 미국인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든스티커의 공이 절대적이었으며, 일본 원전보다 영역본이 낫다는 평까지 받았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손꼽히는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 역시 프랑스 번역가인 유수프 브리오니가 꾸준히 프랑스어권에 소개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문제는 가장 공급이 좋은 한국인 출신의 한영 소설 번역자라 하더라도 보통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지는 않는 것이다. 영어를 이해하여 국어로 옮겨 쓸 수는 있어도 국어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영어의 소설로 옮기는 것은 거의 영어권의 작가 만큼이나 고도의 영문학 소양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환경(문법 및 독해 위주의 영어 수업, 국어는 한국어로 유일, 영어권 인구수 극소, 이웃 국가 중 영어권 국가 전무, 유사이래 원어민 수준의 영어권 인구수가 사회에서 큰 비율을 차지한 적 없음 등등)에서는 이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4]

더불어 한국어 원어민과 영어 원어민이 상대의 언어를 배울 때에도 장벽이 있다. 한국어와 영어의 문법의 차이, 언어가 형성되어온 정서의 차이 등으로 인해 영어 원어민은 한국어 학습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한국어는 학습 난이도가 그 무시무시한아랍어, 일본어와 함께 세손가락안에 꼽힌다.[5] 한국은 근 백년간 영어 관련 활동을 통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영→한 번역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한→영 번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어 원어민은 원작 수준의 영어 작문에 어려움을 겪고, 영어 원어민은 한국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결국 번역 작업이 생기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은 되는 번역을 만들기 위해선 영→한 때처럼 평범한 번역자에게도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극소수의 영어 및 한국어 모두를 섭렵한 재능있는 번역자에게 작업을 의뢰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이를 찾기란 힘들뿐더러 페이도 높고 소수가 대부분의 작업을 맡아서 할 수밖에 없으니 시간도 오래 걸리며 번역된 텍스트 수도 적어질 수 밖에 없다.

3.1. 반론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정서의 부재가 문제다.

번역이 안 되서 노벨상을 못 받는다는 주장은 아주 전형적인 근거없는 자국 우월주의다. 언어 이전에 정서가 있다.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정서가 있다. 그런 보편적인 정서에 감동을 주지 않고서 어떻게 세계적인 대문호가 존재하겠는가? 물론 《홍루몽》 같이 자국 내에서만 극도로 찬양받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한국문학은 한국 대중이 좋아하는가? 아니면 소수 교양인이 좋아하는가? 둘 다 아니다. 오직 그걸로 생계 유지하는 밥그릇 종사자들만 좋아할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 문학은 고유하다기보단 폐쇄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자폐적 자화자찬과 같다. 그리고 앞질러 말한 헤밍웨이도 영어권 외에 어떤 언어로 번역하든간에 보편적인 감동을 준다. 한국어 텍스트가 영어권에 소개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살펴본다면 저 작품도 영어권 내에서만 인정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정서와 관습이 고유하다면 번역으로 옮기기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표현력을 지닌 셰익스피어 희곡도 마찬가지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다.[6] 500년 전 봉건적 관습을 이야기했는데도 말이다!

쉬운 말로 된 좋은 작품이 한국어라서 번역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애초에 노벨상을 탈 만큼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일 뿐이다. 다른말로 못써서그런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일제 강점기만 거슬러올라가도 이해하지 못할 생소한 생소한 어휘가 굉장히 많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면 내용 자체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이다. 우리도 우리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적 상황이 벌어진다. 결론적으로는 문학이 시대와 문화권 내에서의 한낱 유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애당초 원작자의 느낌과 생각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한국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어휘가 너무 다양해서 '노르스름하다'는 표현을 영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기에 노벨상을 못탄다는 얘기는 결국 자기위로와 변명에 불과하다. 반대로 따져보자면, Crimson이라는 단어를 보통 우리는 '진홍색'이라고 표현하는데 과연 정말로 진홍색이라는 번역이 Crimson에 대해 영어원어민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3.2. 대안 2-1

쉬운 말로 적은 수만 출판하면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비교적 쉬운 말로 적은 작품을 출판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이 있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 같은 작가는 문장이 화려해서 찬사받은 게 아니다. 언어적 기교로 수상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만 이것은 문학과 번역에 대해 무지에서 나온 잘못된 주장으로, 문학의 번역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문장이 화려하다거나 복잡한 부분 보다는 각 언어만의 고유한 정서를 담은 단어, 즉 타 언어에는 없는 단어나 타국에는 없는 관습을 옮겨오는 것이 주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쉬운말로 된 좋은 작품이 모두 잘 번역되었다면 세상 어느 언어의 문학인들 묻힐리가 없다.

또한 상술했듯 온갖 악조건들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기본적으로 한국 문단의 힘이 세계 주류 문단에서 소리를 못 내고, 창작되는 작품 수가 적고, 소개되는 작품 수도 적고, 번역자 수도 적고, 최소한의 수준이 되는 역자도 부족하고, 작품을 받아주는 출판사도 적고, 그나마 그 출판사도 영세한데 이런데에서 세계 정상권 문학 수준에 닿는 주제의식, 사유, 통찰이 담긴 작품이 질좋게 뽑힌뒤 입소문이 탈 확률이 몇이나 될까?

3.3. 대안 2-2

작가가 처음부터 영어로 쓰면 된다?

같은 동양권에 무라카미 하루키 같이 영어로 저술하는 사람이 있는고로 충분히 시도 가능한 방법이며, 번역이 없어도 된다는 점에서 각광받을 만할 방법이다. 게다가 독자 수도 훨씬 많으니.[7] 다만 한국은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전술한 하루키나 러시아 출신이지만 영어로 글을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체코 출신이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밀란 쿤데라 같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뛰어난 작품을 남긴 문인들이 있지만, 대부분 "언어적 버프"를 적어도 하나는 받는 유리한 환경이었다. 반면 한국과 영어의 언어 간 장벽이나 한국 내 영어 교육의 현실, 한국문단의 능력을 고려해 볼 때 아시아에 속한 '한국인' 가운데 영미권 작가와 최소한 견줄 수 있는 수준의 문학 작품을 쓸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그리고 조금 벗어나서 위의 보편적 정서 항목이나 아래의 인문학적 가치 항목과 연관지어서 예상을 해 보자면 자기나라 말로, 자기나라 국민들의 공감조차 얻지 못하는 작가들이 남의 나라 말로 잘도 가치있는 작품을 내겠다.

3.4. 대안 2-3

다른 언어로 하면 가능성이 있는가?

영어에 비해 국내에서 쉽게 배울 수 있으며 교류도 많고 영어(및 타 외국어)와 상호 번역되는 텍스트의 양과 질, 국제적 위상에서 차원이 다른 일본어나 중국어, 하다못해 한자로 저술하면 되지 않겠냐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프랑스어 같이 영어 말고도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가 여럿 있다지만, 국내에서는 전부 영어보다 익히기 훨씬 녹록지 않은 환경이기에 해당 언어를 전공이라도 하거나, 하다못해 해당 언어권에서 오래 살아서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고려할 수도 없다.

4. 주장 3

한국문학이 충분한 인문학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사실 소개에서도 나오듯 노벨문학상은 인문학적인 상이기에 작가들이 화두로 던지는 사회문제와 인간문제가 얼마나 세계적 영향이 있는가와 밀접하게 관계된다.# 아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수상 이유와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절대적인 진리를 회의하고 숨겨진 상대적 진리를 찾는 것, 전통적 역사를 회의하고 밀려난 또다른 역사나 찢겨나간 개인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 경계를 허물고 해체하는 것, 말하자면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부를 조명하는 것이 요즘 세계 문학의 화두"라며 "특히 추리소설적 기법을 쓴 작품이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출처

5. 주장 4

우리 문학의 세계 인지도와 관심이 높지 않다

5.1. 대안

정부 차원에서 서구권 학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 부분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괜히 모 도박사이트에서 이상한 장난질하는 것보다 서구의 학자들을 한국 편으로 포섭할 수 있는 장기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학계에 권위를 인정받은 저명한 교수나 평론가중에서 "한국문학은 이런 것이다"라고 대변해줄 수 있는 친한파가 있다면 꽤 도움이 될 것이다.

6. 주장 5

한국인의 문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저조하기 때문에 한국 문학이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파일:vpwZZjn.jpg

7. 주장 6

한국문학은 독창성보다는 '모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못한다

특히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전가의 보도만 우려먹기 좋아하는 멍청이들 때문에 더더욱.

8. 주장 7

작가들에게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주지 못하므로 문학이 제대로 발달할 수 없다

9. 종합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의 주목을 끌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주장과 반론을 통틀어 보자면, 가장 큰 문제는 한국 문학이 세계에서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다. 한국 문학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증가한다면 자연히 국민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도 늘며, 문학의 발달은 쉽게 따라오게 된다. 한→영 번역의 질 향상은 그 다음이다.

노벨상은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지원과 투자를 바탕으로 꾸준히 한국 문학을 성장시킨다면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노벨문학상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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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벨상 후보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매년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서 순위권에 들었다는 것. 노벨상 항목 참조.[2] 한국의 해외 이미지는 극히 소수의 분야에 편중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소수만이 메이저 분야이고 이 분야들은 문학과는 별반 관련이 없다. K-POP, 삼성전자LG전자로 대표되는 하드웨어 전자 제품, 조선업 등.[3] 그가 꿈꾸던 최초의 노벨상 수상 한국인이 바로 전두환의 정적이었고 전두환과 투쟁한 공로가 인정된 사람이라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4] 대학수학능력시험영어 과목에서 영어 교수들이 직접 텍스트를 만들거나 한국인이 만든 영어 텍스트를 가져오지 않고 미국의 영자 텍스트를 가져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5] 한국어 문서 참조.[6] 적어도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다! 게다가 여전히 현대의 관객과 독자들은 햄릿의 고뇌에 공감할 수 있고 오델로의 몰락에 연민을 느낄 수 있다. 심각하면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로 보이기 까지 하는 한국의 몇몇 문학들과는 달리.[7] 영어 원어민만 3억을 넘긴다![8] 참고로 본인이 언어 공부에 특별한 노력을 추가로 들인다든가 (단순히 어학연수 가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버프 없이 이것만 맹신한다면 잘 해 봤자 원어민 고등학생조차 못 따라잡는다.[9] 사족으로 그런 작품들은 '일제의 잔재 청산'이라는 명분 하에 대부분 폐기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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