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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8-03-05 20:20:02

나무위키:연습장/고은(시인)/사건사고

1. 유명 문학가 폄하
1.1. 이상 비판1.2. 만해 한용운 비판1.3. 서정주 비판
2. 친북적, 과격 민족주의적 발언3.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4. 성폭력 파문
4.1. 과거의 성추문 의혹과 가짜 고은 사건4.2. 이문열의 폭로4.3. 2017-2018년 미투 폭로4.4. 재평가 및 여론4.5. 미투 운동에 대한 지자체의 반응4.6. 해외언론을 통한 성폭력 혐의 부인

1. 유명 문학가 폄하

고은은 유명한 문학가를 많이 비판했는데, 다 같이 자신보다 학력이 높거나, 정치와 사상이 맞지 않았던 시인들이었던 점이다. 이상 평전, 한용운 평전, 미당 담론이 바로 그렇다.

1.1. 이상 비판

고은은 자신이 저술한 이상 평전에서 이상의 여성 편력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그에서 비롯된 시에 대해서 엄청난 비판을 가했다. 또 고은은 이상이 모던 보이적 용어를 파렴치하게 취득하였으며, 국문학적 소양의 부족에서 오는 혼란과 전문 용어 남용에 의한 자기도취를 일삼았다고 비판한다. #

1.2. 만해 한용운 비판

고은 씨가 ‘평전’이라는 이름 아래 만해의 불교정신과 독립운동과 문학세계를 사정없이 짓이기고 있음에 분노를 느껴야 했다. 고은 씨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만해는 시종일관 편협하고 이기주의적이며 최남선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영웅주의의 표본에 불과했다.

고은 씨는 먼저 만해의 독립정신에 대해 비꼬기 시작한다. 국권을 상실하고 민중이 처참하게 죽어가던 시대에 분연히 일어선 만해의 뜻이 고은 씨 앞에서는 단지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중략) 고은 씨의 논리대로 하자면 만해 등 서명을 했던 인물들은 장래가 없는 사람이나 교단의 임무가 없던 사람들이다.

고은 씨는 만해에 대한 기존의 연구결과를 완전히 무시하고 악의적으로 만해 스님을 왜곡하고 있다. 그럼 고은 씨는 왜 이렇게 평전이라는 이름 아래 만해를 철저히 짓밟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것은 고은 씨의 만해에 대한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단계까지 고은 씨의 행적은 만해와 닮아 있다. 출가했었다는 점도 그렇고, 문학을 했다는 점도 그렇고,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주력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한 사람은 한 때의 고통이 문화권력을 쥐는 계기가 되었지만, 한 사람은 일평생 고난의 세월을 걷다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이번에 고은 시인이 만해의 평전을 낸 것은 질투심의 발로다. 자신의 작품이 30~40대 만해가 썼던 작품에 못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에서 비롯된 것. 고은 시인이 2001년 미당 서정주가 타계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미당의 친일문제를 끄집어내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처럼 만해를 자신의 구미에 맞춰 난도질해 그의 사상과 문학세계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이는 의도로 해석된다.

-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 차장 # # # #

1.3. 서정주 비판

2. 친북적, 과격 민족주의적 발언

독재에 대항한다던 시인이 최악의 독재자를 옹호하다

북한에서 돌아온 후 고은 시인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현대사중 가장 축복 받은 역사의 절정이라고 평했다. 8,15 해방, 4.19 혁명, 광주항쟁, 6월항쟁을 종합한 감격이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인데, 김정일에 대해서는
"우리는 분단현실에서 김 위원장을 비판하고 부정의 대상으로만 삼아 왔다. 그런데 내가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보니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고, 말을 잘하고, 속에 담아 두지 않고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솔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매우 예술적인 취향을 지녔다. 시를 좋아하고 특히 영화 예술에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정치인을 만났다는 느낌보다는 어떤 예술가를 만난 느낌을 받았다."

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굳이 말 하지 않아도, 김정일의 실체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악한 비정한 독재자였으며, 북한 주민들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고, 수 많은 수용소를 설치하고 공개처형을 실시하는 등 학살을 자행한, 한국의 히틀러에 다름아니다. 이런 김정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 자체가 고은이 얼마나 북한 내부사정에 무지했으며 사람을 평가하는 안목 자체가 없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방북 당시 고은은 평양 목란관 만찬장에서 자신이 지은 즉흥시 '대동강 앞에서'를 낭독하고 김정일과 건배하며 김정일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또 같은 인터뷰에서 고은 시인은 뜬금없이 북한의 문화재가 미군의 융단 폭격으로 남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말하면서 6.25 때 남한을 위해 싸워준 미국을 비난했다.[2]

이어 평양에 대해서는 "부다페스트를 본따 민족 형식을 가미한 서울보다 나은 도시"라고 평했다. #

노무현 정권이 시작되고 나서도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갔다. 과거 고은 시인은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을 예찬하는 시를 쓴 적도 있었다. # 위에 나와 있듯이 고은이 이끌던 민예총은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보수 예술 단체인 한예총 보다 1인 기준으로 3배~4배 많은 지원을 받는 특혜를 누렸다.

2003년 한 인터뷰에서 고은 시인은 당시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던 대북송금특검법를 거론하며, 대북송금을 옹호하고 특검법을 비판했다. 그는 대북송금 특검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축소, 매장하고 오물을 퍼부으려는 행위라고 맹렬하게 비난했다.

또 고은 시인은 북핵문제는 미국 탓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고 시인은 "미국은 원자로를 건설해 주기로 하고 지키지도 않았으며, 제네바합의를 무효화시킨 미국은 기만적이다. 또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여 전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미제국주의는 전쟁을 시장화하고 있다. 신무기를 소비하여 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는 미국은 이라크 다음으로 북한을 공격하려 하고 있다. 지금은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정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등 미국을 제국주의라 부르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

2003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민예총'을 이끌며 이라크전 파병 반대 시위를 벌였다.[3] 당시 고은 시인은 "지금 지구는 오만한 침략전쟁으로 불모의 행성이 되고 있다"며 미국정부를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고은 시인의 반전메시지가 적힌 엽서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

2005년 7월 20일에는 100여명의 진보 문인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0년 이후로는 정치적 행보를 자제하며 조용하게 지낸 편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의식해서 정치적 행보에서 발을 빼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민예총' 지역 행사, 모임, 강연 등에 꾸준히 참여하며 회원들의 의식을 고취하는 강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11년 인터뷰에서 "자본주의의 타락으로 팍스아메리카나 체제가 마구 요동치고 있고 시장사회(자본주의)와 미국이 내리막 비탈길을 달리고 있다. 21세기 후반에는 중국 주도의 세계체제가 가동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미국자본주의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다시 한번 드러냄과 동시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

2000년대 초중반 당시 진보진영을 떠나서 민족주의적인 의식, 북한에 유화적인 풍조가 절정에 달했고, 또 오노 반칙 사건, 장갑차 사고, 이라크 전쟁 등으로 인해 전국민적으로 반미 분위기가 꽤 높았기에 2010년대 이후처럼 크게 문제시되지는 않았다가, 박왕자씨 피살 사건, 천안함,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반북 감정이 급상승하게 되면서 동시에 정권의 기조도 대북강경 노선으로 전환되었을 때에는 정파적 활동을 줄였다보니 대중들의 고은의 정치성향 인식은 단지 진보진영, 민족주의적 성향이라는 이미지에 국한되어왔다.

3.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노벨문학상의 계절이네요. 일전에 고은 선생님, 문재인 후보하고 소주 한잔 얼큰하게 하시더니 일갈. “보통 정치하는 사람들 똥갈보 같은데 이 사람은 숫처녀 그대로란 말이야!”
- 안도현, 2012년 10월 초 자신의 트위터에서 고은이 문재인을 숫처녀라 칭찬했다고 주장하며[4]

2016년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혼란한 가운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고은 시인의 이름이 올라왔다는 보도가 터졌다. SBS뉴스 보도자료 문재인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했다는 명목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도현이 2012년에 주장한 것과 달리, 본인은 문재인을 포함해서 정치인은 누구든지 지지를 한 적이 없다고 인터뷰에서 주장했다.SBS뉴스 보도자료

4. 성폭력 파문

4.1. 과거의 성추문 의혹과 가짜 고은 사건

그의 악이 번성하는 한 파렴치한 엽색(獵色)의 식단도 풍성했다. 자랑스레 휘젓고 다니는 색주가는 기본이었고 손쉽고 뒷말없는 유부녀는 속되게 표현해 간식이었다. 더욱 악의 섞어 말하자면 신선한 후식도 그 무렵에는 그에게는 흔했다. 시인의 허명에 조금했다가 화대도 없이 몇 달 침실봉사만 한 신출내기 여류시인이 있는가 하면, 뜻도 모르고 관중의 갈채에만 홀려 있다가 느닷없이 그의 침실로 끌려가 눈물과 후회 속의 아침을 맞는 얼치기 문학소녀가 있었고, 그 자신이 과장하는 시인이란 호칭에 눈부셔 옷 벗기는 줄도 모르다가 (중략) 놀라 때늦은 비명을 지르는 철없는 여대생도 있었다. - 사로잡힌 악령

희대의 가짜 고은 사건[5]
그에 대한 의혹과 논란은 이미 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6]

고은의 성폭력 의혹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미 그가 문단에 등단한 직후부터 고은의 성추문에 대한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60~70년대 동안 고은이 폭음을 하며 성폭력과 기행을 일삼은 탓에 일부 문인들이 그를 경찰에 고발하는 등 여러 차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당시 문단에서 널리 회자된 가짜 고은 사건이다. 고은은 자신의 성폭력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극구 부인하며 자신를 사칭한 '가짜 고은'의 짓이라고 말했다. 고은 본인의 말에 따르면 가짜 고은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1년이라고 한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가짜 고은'이 전국각지의 산중 사원에서 갖은 비행, 부녀농락, 협박, 사기, 가짜약혼 등을 저질러 중부서에서 수배중이나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다고 나오고 있다. # 가짜 고은의 악행은 갈수록 대담해져 갔다. 가짜 고은에게 '사기 결혼'을 당한 피해자도 생겨났다. 전국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짜 고은'이 나타나 추행과 기행을 일삼자 가짜 고은은 홍길동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고은은 1968년에 자신을 사칭한 '가짜 고은'을 검거했다고 주장했다. 고은은 자신이 직접 사복형사와 함께 종로 '백궁다방'에 있던 '가짜 고은'을 붙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악한 악행을 일삼던 '가짜 고은'은 처벌되지 않았다. '가짜 고은'이 '진짜 고은'에게 "고은이 부러워서, 고은처럼 되고 싶어서 고은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는 하소연을 했기 때문이다. '가짜 고은'은 이미 고은을 사칭하고 영문과 출신의 여대생과 결혼을 해서 홀어머니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는 것.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새사람이 되겠다고 반성하는 '가짜 고은' 앞에서 '진짜 고은'은 고발장을 찢은 후 그를 용서하고 풀어주었다고 한다. #1 #2 #3

그러나 검거된 후에도 '가짜(?) 고은'의 악행은 끊이지 않았다. 이에 진짜 고은은 '가짜 고은'이 한두 명이 아니라면서 자신의 유명함을 한탄했다.

이문열은 고은을 모델로 한 것으로 유명한 소설 사로잡힌 악령에서 이러한 고은의 해명을 빗대어, "해방뒤 이 나라에는 가짜 백작사건까지 있었지만 가짜 문인이 있었다는 말은 그의 연보나 자서전 이외에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거기다 그 소동이 있었다는 60년대 중반만 해도 그의 지명도는 전국적으로 가짜가 돌아다닐만큼 높지도 못했다. 그전에도 그 뒤에도 그보다 지명도 높은 사람이 수없이 많았는데 어째서 그들에게는 한번도 그같은 가짜 소동이 없고 그때만해도 그리 대중적이지 못하던 그에게만 집중적으로 가짜 소동이 일어난 것일까."고 꼬집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미 60년대부터 탈모가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된 볼품없는 외모[7]의 시인인 "고은이 부러워서, 고은처럼 되고 싶어서 고은 행세를 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가 힘들다.

고은의 성폭력 루머가 가장 악명을 떨친 시기는 70년대 초중반이었다. 결국 당시 고은이 몸담고 있던 순수 문학계 문인들은 고은의 행태를 보다 못해 그를 문학계에서 배척해 버리기 시작한다. 참다 못한 일부 문인들은 고은을 경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에 심각하게 위기 의식을 느낀 고은 시인은 자살 시도 행각을 벌이기도 했다. 북한산 계곡에서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으나 곧 지나가던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져 깨어났다. 다행히 그의 주머니 속에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던 탓에 행인들이 병원비를 지불하고 그를 입원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고은은 1974년 갑자기 저항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하며 저항시인으로 변모했고, 이어 74년 11월 진보 성향 문인들을 결집하여 국내 최초의 진보 성향 문인 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민족문학작가회의)'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하여 진보 문학계의 좌장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고은의 성폭력 루머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게 된다. 가짜 고은 사건은 이후 고은 시인의 따뜻한 인격을 보여주는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고은은 성추행 파문이 불거지기 1년전인 2017년 3월 TV에 출연하여 당시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아울러 문단 내 성폭력 사태에 대해 "슬픈 일"이라고 말하면서 "현대 초기에는 퇴폐적, 퇴행적 일탈을 한 문인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작가들도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기준을 갖춰야 한다"고 일침을 놓은 바 있다. #

4.2. 이문열의 폭로

1994년 소설가 이문열이 소설 사로잡힌 악령을 발표하여 문학계에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승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폭음을 일삼던 문인이었는데, 유명 원로 스님의 수제자라는 명성을 이용해 문화예술계의 고위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문학계의 중심인물로 군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주인공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여성 문학 지망생들을 농락하는 악마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가 지나친 악행을 일삼자 일부 문인들은 그를 문학계에서 배척하려고 시도한다. 이에 주인공은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에는 민주투사로 변모한다. 그리고 오히려 더욱 유명 인사가 되어 자신의 권력으로 예전보다 더 심한 악행을 일삼으며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바로 고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자 당시 고은이 좌장으로 있던 '민족문학작가회' 등을 비롯해 진보 계열 문인들이 집단으로 들고 일어나 이문열을 공격했다. 당시 진보 문인들은 민주투사 출신이며, 현재 진보 계열 문인들의 정신전 지주인 고은을 의도적으로 비방하고 있다며 이문열을 맹비난했다. 당시 고은은 김영삼 정권이 자신을 표적으로 삼아 음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맹공에 이문열 작가는 "특정인물을 상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나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자 자신의 출간 단편집에서 제외하기까지 했고 이 책에 대해 절판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때문에 이 작품은 1994년 출간된 중단편집 '아우와의 만남' 초판에서만 볼 수 있다. 이후 이문열은 진보 문인들에 의해 보수 문학인의 대표자로 낙인 찍히며 집중적인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후 이문열 작가는 절필하려고 생각하기도 하는 등 창작 활동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단다.

1994년, 고은의 명사 사냥, 이로 인한 승승장구, 그 뒤에 가려진 추악한 엽색행각을 비판하며 이문열의 사로잡힌 악령이 출판되었으나 이를 단순히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한 진보 문인을 매장시키려는 의도로 본 진보 문단 세력은, (당시 한겨레, 백낙청을 위시한 민족작가협의회 세력) 매우 극렬히 이문열을 매도하였으며 그를 비판하였다.

2018년 미투 운동에 최전선에 선 최영미 시인이 그의 시로 고은을 천하에 고발했을 때 많은 국민들이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것에 반해, 그 당시 훨씬 높은 수위로 강도높게 소설적 표현을 이용하여 고은을 비판한 것은 현재의 성추행 파문을 돌이킬 때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사로잡힌 악령 참조.

4.3. 2017-2018년 미투 폭로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 ”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최영미 시인의 투고 中

괴물, 드디어 떠오르다?[8]

최영미 시인은 2017년 12월 '괴물'라는 제목의 거의 실명 고발에 가까운 시를 발표했다. 시 '괴물'에서 젊은 여자만 보면 성폭력을 저지른다는 "En"시인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라는 구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은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말이 많았고 결국 시의 주인공 En이 고은인 것으로 밝혀졌다. #1 #2 #3 #4

최영미 시인은 그동안 네 명의 문학인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는데, 그 네 명 모두 고은이 창단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던 문인 단체인 '한국작가회의(구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이라고 밝혔다. # 최영미의 미투 이후 사회적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문학과 지성사' 설립자로 유명한 진보성향의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고은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혔다. '옛날부터 술좌석에서 시끄럽고 난잡스러웠다.', '너무 시시콜콜 다 드러내고 폭로하고 비난하면 세상이 좀 살벌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일거수일투족 조심하다 보면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싶다.' 라고 주장했다. #1 #2 김병익 뿐만 아니라 문단 내 성추행과 연루되었다고 거론되는 시인들이 고은을 옹호하는 한편 최영미를 비난하는 의견을 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2018년 2월 6일 JTBC는 고은 시인이 그동안 공공연하게 제기되어 왔던 문단 내 성폭력 문제의 주요 가해자라는 주장을 보도했다. 이후 파문과 의혹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한편 최영미 시인이 지칭한 네 명의 성추행 문학인들의 소속 단체인 '한국작가회의(구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은 채 아직 새 집행부가 인수인계도 받지 않았다며 4월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면서 입장 표명을 미루었다. #

이후 소속 회원인 이윤택까지 성폭력 논란에 휩싸이게 되자 '한국작가회의'는 사건이 터지진지 16일(2월 22일)만에야 고은, 이윤택 징계안 상정 및 처리에 대한 보도자료를 냈다. 이 징계 상정안은 3월 10일 이사회에서 통과여부가 확정될 방침이라고 한다. 이는 징계안이 가결되기 전에 고은이 직접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창업주인 고은을 징계하는 안에 대해 한국작가회의 내에서 반발이 상당하다고 한다. 작가회의 소속 한 여성 시인은 "고은 시인은 남자한테도 뽀뽀하는 천진한 분이고, 옛날 윤리와 지금의 윤리는 다른데 작은 흠으로 거장을 매장시키면 안 된다"며 작가회의 결정에 반발했고 한다. #

고은 시인은 성폭력 파문이 일어난 후 한 언론을 통해 “후배 문인을 격려하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라고 해명한 뒤, 더이상 어떠한 입장 표명도 일절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월 18일 고은 재단을 통해 수원시가 마련해준 광교산 자락의 주거 및 창작공간[9]을 올해 안에 떠나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곳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 것”이라는 계획만을 짧게 밝혔다 # # 그러나 고은 재단은 "퇴거 방침은 최근 불거진 성추행 의혹 논란과는 무관하다."라고 선을 그었다. #

2월 27일 새로운 미투가 폭로되었다. 2008년 4월 고은 시인은 지방의 한 대학 초청 강연회에 참석했다. 행사 후 당시 20대 여성 대학원생 3명과 30대 문인(미투 폭로 당사자)과 5명이 함께한 뒤풀이 성격의 술자리에서 고은 시인은 20대 여성 대학원생의 신체를 만지더니 급기야는 바지를 벗고 고은 시인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추태를 보였다고 한다. #

2000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술집에서는 고은 시인이 자신의 시집 출판 계약을 논하는 자리에서 중소출판사 여직원의 신체를 더듬었다고 한다. 고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여직원은 회사에 피해라도 갈까봐 저항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

고은과 가까운 일부 문인은 사실상 고은 시인의 추태를 간접적으로 돕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고은과의 술자리에 여성 제자만 불렀다고 한다. 여성을 같은 문인이 아니라 접대부로 취급하는 저급한 문화에서 비롯된 것. #

2012년 5월에도 자신의 신체를 노출했다는 사실이 추가 폭로되었다. 작가지망생 이모 씨(28)에 따르면 광주의 한 행사에 초청시인으로 초대받은 고은 시인은 행사 뒤풀이에서 테이블 위에 올라가 바지를 벗고 신체 일부분을 노출했다고 한다. # #

곧이어 나온 최영미 시인의 증언은 더욱 충격적이었는데, 1993년도 즈음 탑골공원 한 선술집에서 고은 시인이 6~7명의 남녀 문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성기를 주무르는 자위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의 발언이었는데, 황홀에 찬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내면서 자위를 즐기더니 "야 니들(20대 여성 문인들 포함)이 여기 만져 줘"라는 명령까지 했다라는 것이다 # 주변에 있던 남자 문인들은 말리기는커녕 희죽 웃으며 상황을 즐겼다고 한다. 술집에는 시인 일행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주변에 일반인 손님 예닐곱 명은 더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여자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아유 선생님두-”라고 했다고 한다.

한편 이 증언에 대해서 당시 선술집 주인인 한복희씨가 거짓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것 으로 안다." - #

고은 시인이 수없이 성희롱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위행위를 한 것을 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반박문이라고 나온 것이 오히려 고은 시인이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또 단순히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반박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유려한 필체와 화려한 수식어로 이루어져 있어서 대필 의혹까지 받고 있다. # 어차피 최영미가 아니더라도 고은의 성추행 및 성기 노출 증언이 여럿 나와 있기 때문에 비난을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4.4. 재평가 및 여론

국민학교 중퇴하고 불교교단에 몸담았다가 그 당시 유명한 스님 밑에서 세를 넓히는 기술을 연마하더니 시 좀 끄적이다가 명문대 영문과 출신 마누라를 얻고(어찌 얻었을고? 서세원의 성폭행 결혼방식이 통하던 세상 그 이전 세대였으니 ㅠㅠ) 이런저런 처세에 능하여 그 자리까지 꿰찬 한낱 기회주의자 사기꾼일 뿐~ 저런 변태새끼가 평생 누리고 살아왔다니 기막힐 따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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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존경받던 문학 원로에서 한 순간에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인식이 추락

현재 그 어느 곳에서도 여론과 인식이 매우 좋지 않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유사 자위행위를 하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성기를 만져달라고 요구하며, 노래방에서는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등 너무나도 충격적인 증언의 연속이라 사람 고은에 대한 평가는 더 나빠질 수도 없을 정도로 추락하였다. 게다가 말년에 노망이 들어 버젓이 저지른 행위들이라기보단, 이미 60년대부터 축적된 엽색행각이 말년에 이르러서까지 자제가 되지 않았음을 사람들이 깨달아 가기 시작하면서, 고은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랍다" "이토록 거대한 악이 지금까지 존경받으며 성장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평소 고은의 시에 아는 바가 전혀없었음에도, 이렇게까지 떠받들여지는 것이 이상하다 했는데, 그 주위사람들이 지금까지 떠받들여줘서 그런 것 아닌가? 도대체 이런 사람을 왜 그토록 찬양했는가? 어이없다" 말하며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소수의 지인들이나마 '작가의 도덕과 작품은 별개'라며[10]그를 옹호해 주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고 되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상황. 사실 고은의 평가가 완전 나락으로 떨어지는데는 이 지인들의 옹호가 말그대로 결정타를 날렸다고 할수 있다. 옹호해주겠다고 나선 인간들조차 "그 분이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말은 하나도 없고 '그때는 시대가 그랬다라거나' '그런 행위로 시인의 업적이 폄하되서는 안된다'는 소리 밖에 안나오면서 옹호자들조차 그런 일이 없었다고 도저히 말을 못할만큼 명명백백하게 그 짓을 했다는걸 역으로 입증해버렸기 때문. 남자한테도 뽀뽀할만큼 천진한 사람이라고 쉴드 친 누구 덕분에 동성성범죄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 된건 안유머

이로 인해 1994년에 이미 이를 세상에 폭로한 이문열이 재평가를 받고 있으며, [11] 그간 고은의 행태를 알고도 이를 묵인한 문단 권력의 추악한 협조자들에 대한 분노도 상승하고 있는 상황. 대중은 "아니 도대체 이를 알고도 묵인한 그들은 뭐하는 사람들임? 이게 과연 예술과 인생을 논하는 문학가들, 시인들이 할 일인가?" 하며 혀를 끌끌 차고있다.

4.5. 미투 운동에 대한 지자체의 반응

수원시는 2013년 8월 고은 시인에게 수원시 상광교동 광교산 자락 아래 주거·창작 공간으로 마련된 '문화향수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고은 시인은 수원시로부터 수도요금, 가스요금 등을 면제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 그 비용이 연 1,000만원에 상당한다고 보도되었다. 이제 이에 대해 광교산 주민들이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 보호법에 묶여 있는 지역에서 고은 시인에게만 특혜가 제공되고 반발하며 퇴거 집회를 열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시는 생계를 이어가려는 주민들에게 고발과 벌과금을 부과하면서 고은 시민에게는 혈세를 들여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은 시인의 성추문 파문이 발생하자 이찬열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수원시 갑) 등이 퇴거를 요구하는 등 수원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나 2월 18일 고은 재단이 1년 내로 퇴거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고 있다.

수원시는 올해 고은 시인 등단 60주년을 기념해 추진할 예정이었던 문학 행사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수원시가 고은재단과 함께 건립을 추진 중이던 '고은기념관' 설립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미 수원시는 고은문학관 부지로 팔달구 장안동 시유지를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염태영 수원 시장은 고은문학관 건립사업 벤치마킹을 위해 2017년 6월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페터 춤토르가 설계한 독일 쾰른의 콜롬바 박물관과 스위스 발스의 온천단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

한편 서울시는 2017년 11월 21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중 주요사업의 하나로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사) 3층에 고은 시인 기념관인 '만인의 방'을 개관했다. 그러나 1933년생인 고은 시인은 사실 3·1운동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뿐만 아니라 고은 시인은 3·1운동의 의의를 심각하게 폄훼한 인물이다. 고은은 만해 한용운이 개인적인 컴플렉스에서 3·1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주장했고, 당시 민족대표 33인장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폄하한 바 있었다. 서울시는 3억원의 예산을 들여 의욕적으로 '만인의 방'을 꾸미고 여기에 3.1운동 관련 유물과 기념물을 전시했다(...)

그러나 '만인의 방' 개관 두 달여 만에 고은 시인의 성폭력 파문이 발생하면서 이곳을 폐쇄하라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2월 11일에도 서울시는 철거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하지만 서울시도 내부적으로 상당히 난감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시민들의 지속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철거를 고려 중이다라고만 밝힐 뿐 계속 철거를 미루다가 급기야 고은 시인의 성기 노출 및 자위행위 폭로가 터지자 결국 고은 기념관인 '만인의 방'을 철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고은 시인의 고향인 군산시에서도 시민들의 당혹감과 충격이 이어졌다. 군산시민들은 원로이신 분이자 군산의 자랑이라 생각했는데 군산의 큰 어른이라는 분이 성추행을 했다는 것에 지역망신을 당한 기분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군산시에서는 수원시를 떠나는 고은 시인을 고향으로 모셔오자는 반응들이 있었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잠잠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 지역은 고은 시인이 태어난 고향으로 과거에 시인의 생가가 옥구군에 있었으며 1995년 군산시와 옥구군 통합 때 통합 군산시로 편입되어졌고 군산에서는 배우 김수미, 개그맨 박명수 등과 함께 고은 시인을 군산을 빛내는 유명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군산에 있는 은파호수공원에 고은 시인의 시비가 있으며 군산 벽화마을 벽화에도 고은 시인의 시문이 새겨져 있다.

군산시청에서는 직접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았으나 고은 시인의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시에서는 직접 이 문제를 개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태추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군산의 큰 어른이자 자랑스런 인물이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 때문에 시민들의 반응과 정서를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상당히 난감한 것으로 보인다.

4.6. 해외언론을 통한 성폭력 혐의 부인

3월 4일 고은 시인은 해외 언론을 통해 성명을 발표하여 자신의 성폭력 관련 행위를 부인했다. 영국 언론 가디언지는 영국 출판사인 블루덱스 북스(Bloodaxe Books)의 고은 담당자인 네일 아슬리를 통해 고은 시인의 성명을 입수하여 발표했다.

"성추행을 했다는 혐의에 대해 부인한다. 나는 나 자신과 부인에게 부끄러울 행동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시간이 흘러 논란이 수그러들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만 관련 사실과 맥락을 접하기 힘든 나의 해외 독자들을 위해 확실히 밝힌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계속 집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슬리는 “현재까지 한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한 사람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되어 있고,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른 고발자들의 진술들은 입증되지 않은 것들 뿐이다. 성추문 스캔들로 인한 그의 추락은 그가 한국 사회에서 누린 명사로서의 지위와 대중적 찬사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슬리는 또 “블러닥스 출판사는 여전히 고은 시인의 문학적 유산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블러닥스 출판사는 2012년부터 고은 시인의 시집을 출간하여 판매하고 있다.

아슬리는 현재 고은 시인이 종양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해 회복 중이라며, 최근의 수술과 그에게 가해진 공적 비난의 결과 인해 몸이 매우 약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 고은 시인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 어디인지는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고은 시인은 불과 며칠 전에도 수원 광교 자택 정원에 있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된 바 있다.

고은 시인의 반박 성명이 보도된 후 최영미 시인은 언론 기자들에게 "고은 시인이 남은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린 것 같다. (고은 시인이) 사과하고 참회하고 용서받아야 하는데 참 딱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SNS에 "제가 괴물에 대해 매체를 통해 한 말과 글은 사실입니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기구가 출범하면 나가서 상세히 밝히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
[1]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포함하는 통치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2] 만약 저 때 미군이 사정을 봐주면서 전쟁을 치렀다가는, 남한이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3]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에 소극적이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일단 여당의 견해를 반영하여 비전투부대의 비중을 절대적으로 높이되 친미적 외교부 관료들에게 힘을 더 싣어주긴 했다.[4] 2018년 현재는 수동 RT한 트윗들만 남아 있다.[5] 보통 가짜 xxx는 유명인을 상대로 그를 빙자하여 자행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은은 가짜 고은 설을 밀 정도로 그 당시에 유명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의 엽색행각을 면피할 요량으로 뻔뻔하게 저런 소문을 확대, 재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행위를 증오한 문단 인사들은 고은을 배척했으며, 한국 문단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노라고 이문열은 사로잡힌 악령에서 묘사했다.[6] 그의 행실을 직접 주위에서 본 문인들이 상당수였으며, 알 만한 사람을 안다라는 것이 몇 십년간 제대로 된 폭로 없이 이어져 왔다고 전한다.[7] 심지어 20세인 1953년 통영 미륵사에서 찍은 사진에서도 M자 탈모가 확연하다.[8] 최영미 시인의 말이 거짓 없이 사실이라면, 한국 문단의 수치로 기록될 정도의 파급력 있는 사건이다.[9] 입주 당시 광교역처럼, 광교입주민들의 반발에 시달린 바 있다.[10] 이러한 주장에서 비롯된 각종 발언 자체가 작가와 작품을 따로 떼어내어 작품의 질을 막론하고 작가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뜻에서 나온다. 후술하겠지만 옹호자 쪽에서조차 그의 도덕성에서만큼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11] 사로잡힌 악령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