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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22:43:19

김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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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김운식
金雲植
파일:김운식.jpg
출생 1894년 12월 11일
전라남도 지도군 하의면 대리
(現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대리)
사망 1974년 2월 10일 (향년 79세)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본관 김해 김씨[1]
부모 아버지 김제호(金濟浩)
어머니 장대학(張大學)
형제 3남 중 차남
형 김구식(金九植)
동생 김용식(金勇植)
배우자 전처 김순례(金順禮)[2] (1960년 이혼)
후처 장수금(張守錦)[3] (1972년 사별)
자녀 장녀 김매월(金每月)
차녀 김용례(金容禮)
장남 김대봉(金大奉)
삼녀 김안례(金安禮)
차남 김대중(金大中)
삼남 김현광(金賢光)
사남 김현정(金賢正)
오남 김대의(金大義)
육남 김대현(金大賢)
사녀 김진찬(金眞贊)
오녀 김진현(金眞賢)

1. 개요2. 생애3. 가족4. 참고 항목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 시기의 하의도 부자이자 오위장과 통훈대부를 지낸 김제호의 아들이며 장수금의 재혼한 남편으로 본관은 김해이며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김대중의 부친이다.

2. 생애

이하 내용은 이 두개의 기사로 작성되었다.

일제강점기 시기,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의 이장을 지냈으나, 주민들의 편에 서서 하의도에서 배를 타고 목포, 광주, 서울을 오가며 소작쟁의운동을 주도했다.

김운식은 자신의 신념 때문에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일부러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다. 집에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우편으로 배달되긴 했으나 이는 구장(이장) 집인 까닭에 의무적으로 수령해야 하는 것이었을 뿐 그는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당시로서는 불온문건에 해당하는 조선 왕조의 계보도를 집안에 숨겨놓고 아들 김대중에게만 보여주며 설명하는 등 남몰래 조선사를 가르쳤다. 이 외에도 판소리에 조예가 깊어 <쑥대머리>를 즐겨 불렀다고 하며, 1930년대 당시 구하기 힘든 축음기를 하의도에서 최초로 구매하였다.

이후 아들 김대중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목포로 이주했다. 목포시 향동 목포대 1번지에 위치한 영신여관을 매입해 여관 주인이 되었다.

말년에는 정치인이 된 아들 김대중의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1974년 눈을 감았고 전남 신안군 하의면 선영에 안장되었다가, 1997년 대통령에 당선이 된 아들 김대중에 의해 하의면 선영에서 경기도 용인시 공원묘지로 이장이 되었다 전해진다.

3. 가족

4. 참고 항목



[1] 안경공파 13세손, 경파 19세손, 수로 69세손 ○식(○植) 항렬.[2] 광산 김씨 김관일(金貫一)의 차녀다. 다만 장인의 이름이 족보 이름과 일치하진 않는 듯하다.[3] 인동 장씨 장지숙(張之淑, ? ~ 1934)의 장녀로 아래로 장도산(張都産) 등 2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장도산은 장수금과 같이 조산을 했다.[4] 정치인이다.[5] 오빠 김홍민이 태어나고 177일 뒤에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