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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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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KIM SOO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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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네 반찬 수미산장


1. 개요2. 데뷔 초3. 전원일기4. 사망
4.1. 추모 및 반응
4.1.1. 정치권4.1.2. 연예계

1. 개요

김수미의 생애에 대해 다룬 문서.

2. 데뷔 초

파일:20181202001232578_1.jpg
데뷔 초에는 나탈리 우드를 닮았다고 평가되던 이국적이고 개성있는 미모를 자랑했으나 당시 선호되던 스타일은 아니어서 데뷔 후 10년간 주연을 별로 맡지 못하고 조연배우 생활을 하였다.[1]

그러다가 1980년에 첫 방영되고 국민 드라마가 된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할로 일약 대스타가 된다. 일용엄니로 얻은 인기 덕분에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도 하게 되는데, 1982년~1985년까지 MBC '오늘의 요리'라는 프로그램[2]을, 1987년~1989년까지 MBC '토요일 정보 총집합'을 진행하였다.[3] 이때의 경험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김수미 본인의 이름을 내건 예능 프로그램들을 여러 개씩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3. 전원일기

1980년부터 방영한 국민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으로 무려 22년 동안 열연했다. 처음 촬영할 당시 겨우 31세의 나이에 시골 할머니 연기를 했고, 아들 '일용이' 역의 박은수보다도 나이가 어렸다. 그래서 아들보다 나이 어린 엄마였던 것이다.[4] 제작진으로부터 《전원일기》에 출연은 통보는 받았으나 어떤 역할이라고 구체적인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대기실에서 만난 선배 박은수가 "야, 너랑 나랑 한 집에 산다." 그러길래 "어머, 선배님. 그럼 우리 부부예요?"라고 물었더니 "네가 우리 엄마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이도 더 위인데다 방송사 직속 선배인 박은수와 연기하는 게 좀 불편했으나 차츰 적응이 된 뒤에는 연기할 때는 신나게 '일용이 너 이눔 시키' 하고 혼내다가 그날 촬영이 끝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린 뒤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나중에는 박은수 선배도 적응이 돼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일용엄니 역을 맡은 배우가 연하의 후배 김수미라는 것을 알게 된 박은수는 처음에는 ‘저 여자의 얼굴이 어떻게 할머니가 될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당시 김수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데다 조그맣고 아주 어려보이는 외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첫 녹화 후 소위 대박을 치게 된다.

사실, 그녀는 일용엄니 배역을 하기 싫어서 3개월 동안 제주도로 도망간 적도 있다. 이 여파가 엄청나서 전원일기 PD는 촬영에 복귀하지 않으면 일용네 식구들을 극에서 아예 제외해버리겠다고 했음에도 맘대로 하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은심' 역의 김혜자가 나서서 "다른 출연자들은 이것을 직장으로 생각하는데 너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너 하나 때문에 박은수(아들 역)와 김혜정(며느리 역)의 밥줄을 끊을 셈이냐?"고 말하자, 정신이 번쩍 든 김수미는 다시 출연하겠다고 PD에게 전화를 하고 돌아갔다. #

그리고 김수미는 전원일기와 1985년 10월부터 1986년 4월까지 방영되었던 주말연속극 남자의 계절에서 최명길의 친정엄마 역할로 1986년에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조연 캐릭터인데도 최초로 연기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존재감이 매우 강한 캐릭터였던 것이다. 지금도 조연 캐릭터가 연기대상을 수상 받은 사례는 나문희와 김수미 두 명밖에 없다. 그 당시 일용엄니에 대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진짜 할머니인가 아닌가 갑론을박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김수미가 일용엄니 배역을 실감나게 잘해서 할아버지들이 방송국으로 팬레터를 엄청나게 보내서 받았다고 한다.

4. 사망

2024년 10월 25일 아침, 자택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했다. # # 향년 75세. 빈소는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사흘 뒤인 10월 27일에 진행된다. 유족의 요청으로 장례는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

그녀는 2024년 5월부터 피로 누적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한양대학교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특히 2024년 9월 8일날 홈쇼핑에 직접 출연했을 당시 건강 악화설이 나왔으나 본인은 이를 부인한 바 있다. #

사인은 고혈당 쇼크[5]로, 경찰 조사에서 혈당 수치가 500mg/dL[6]이 넘게 나왔다고 한다. 그녀는 14년 동안 출연했던 뮤지컬 '친정엄마'의 제작사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작년부터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했고, 최근 소송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 이러한 스트레스는 컨디션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7]

불과 한 달 전까지 방송 활동을 이어가던 그녀의 사망 소식에 대중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8] 그녀의 빈소가 차려진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의 공식 사이트는 사망 당일 추모 물결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게다가 생일이 고작 하루 지난 뒤에 사망한지라 더욱 안타깝다는 반응이 있다.

10월 27일 발인이 엄수됐다. 김수미를 어머니로 부르며 따랐던 정준하, 장동민, 윤정수 등이 관을 함께 나눠들면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으며,# 특히 김수미를 시어머니로 모시며 "엄마"라고 불렀던 며느리 서효림은 운구차 앞에서 통곡을 했다. 발인이 엄수된 이후 화장을 거쳐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용인공원 아너스톤에 안치되었다.

4.1. 추모 및 반응

4.1.1. 정치권

4.1.2. 연예계


[1] 보다 더 화려한 미모를 가졌던 MBC 입사 동기 김영애와 한 기수 선배인 김자옥, 양정화,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였으나 KBS를 거쳐 MBC에서 주로 활동한 이효춘에게 밀렸다. 신인 탤런트임에도 늘 뻣뻣한 자세로 일관하여, 장관 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2] 단순한 요리 프로그램이 아니라 당시 아침방송계의 본좌였다. 《뽀뽀뽀》가 8시 30분에 끝나고 9시부터 오늘의 요리를 방영한 뒤 9시 30분 뉴스로 이어지는 것이 당시 MBC의 필승 편성패턴이었다. 특히 컬러방송이 개시되고 생생한 음식 모습을 TV로 보여주는데다가, 요리학원에 가서 수강료를 내고 배우거나 엄마나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아야 하는 각종 요리들을 TV만 보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주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최후반부에 김혜영이 진행할 때까지 거의 10여 년을 롱런했다.[3] 이 프로그램은 지금의 《VJ특공대》, 《생생정보통》이랑 비슷하지만 컴퓨터 7대를 가지고 시청자들이 전화를 하면 컴퓨터를 통해 상담사가 각종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에서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해서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PC통신이 막 생겨서 보급이 덜 되던 때였다. 《놀러와》에서 푼 썰에 따르면, 생방송 중 실수 때문에 잘렸다고 한다. 당시 환경 의학 전문가이던 사촌오빠가 미국에서 와서 방송 전날 둘이 술을 거하게 마셨는데, 알고보니 그 오빠가 본인이 진행하던 쇼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어 "~교수입니다"라고 소개하던 도중 웃음이 터져버려 그냥 나와버렸다고 하며 이후 후속 프로그램은 "여러분의 토요일"이었다.[4] 박은수는 1945년생(공식 프로필상으로 1947년생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1945년생이라고 한다)에 MBC 제1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3기로 입사한 김수미보다 2기수 위에 나이도 4살(공식 프로필상으로는 2살) 많다. 《전원일기》 방영 당시 쇼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원일기》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밝힐 때 "일용이가 일용엄니보다 2살이 많다."라는 자막까지 덧붙여서 나왔다. 당시에는 원로 배우들이 극히 드물어서 40대, 심하면 20대 후반~30대 젊은 배우들도 노인으로 분장하고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1960년대 중반 여운계는 불과 24살 때 할머니 역을 맡았다. 다만 분장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 얼굴만 보면 30대 청년으로 보이는 편이다.[5] '고혈당 쇼크'라는 공식적인 병명은 없다. 정황상 고혈당증에 의해 유발된 급성 합병증(당뇨병성 케톤산증, 고삼투압성 고혈당 증후군)이나 고혈당성 뇌병증, 또는 그에 동반된 여러 합병증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6] 500mg/dL 이상은 일반적 당뇨병 환자에서 나타나기 힘든 극도로 높은 수치로,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가 영구적으로 사멸해 혈당 조절 능력이 완전히, 영구히 상실된 1형 당뇨병(인슐린 의존성 당뇨병, 췌도부전)에서 식사 이후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참고로 당뇨는 공복혈당 기준 126mg/dĹ, 식사 후 2시간 혈당 200mg/dL부터 질병으로 진단 받고 극심한 당뇨로 보는 기준조차 250mg/dL이다. 일반적인 혈당계에서는 400mg/dL 이상을 표시하지 못하고 High로만 표시한다는 점에서, 500mg/dL은 심각하게 높은 수치로 볼 수 있다.[7] 실제로 강한 만성 스트레스는 염증 인자인 IL-6의 활성을 높이고 높은 코르티솔 수치까지 동반해 인슐린 저항성을 심화시킨다.[8] 과거 김수미는 집사부일체에서 집사부일체 멤버들에게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서 자신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고 웃으며 보내줬으면 한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러기에는 이별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영정사진 역시 집사부일체에서 찍은 사진이 아닌 김수미가 출연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김수미 단독 포스터가 영정사진으로 활용되었다.[9] 같은 군산 출신이기도 하다. 김수미는 신흥동, 김관영 지사는 회현면 출신.[10] 김수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전원일기는 경기도 북부 교외지역을 배경으로 했는데, 배경에 걸맞게 현재의 양주시, 양평군, 남양주시 일대를 오가며 촬영했다. 특히 양평군은 강하면, 양평읍, 양서면 3곳에서 촬영을 했으며, 특히 양서면은 1998년부터 2002년 종영 때까지 함께했다.[11] 김수미는 MBC 3기 공채 탤런트, 유인촌은 6기 공채 탤런트 출신이다.[12] 김수미가 울산광역시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13] 2, 3, 4탄 한정[14] 가문의 영광 시리즈에서 신현준과 형제관계로 나왔다.[15] 전원일기부터 호흡을 맞춰온 각별한 사이로, 가문의 영광 시리즈 3탄인 가문의 부활에서 김수미의 남편 역으로 나왔다. 또 고인의 마지막 TV 출연작인 회장님네 사람들을 2년여간 함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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