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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조선 왕궁의 금천교. 위쪽 왼편 사진부터 오른쪽으로 경복궁 영제교, 창덕궁 금천교, 아랫쪽 왼편 사진부터 창경궁 옥천교, 덕수궁 금천교, 경희궁 금천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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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왕궁의 다리. 금천을 건너기 위해 세운 돌다리이다.금천은 풍수지리적인 이유[1]와 외부와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궁궐의 정문과 중문 사이에 둔 인공 개천이다. 물론 실제 궁궐과 외부의 경계는 궁문과 궁장이지만, 잡귀를 쫓아내고 또 외부인이 궁에 들어갈 때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는 의미로 금천을 상징적인 경계로 둔 것이다.
2. 이름
보통 '금천교'로 부르나, 이름이 따로 있는 다리들도 있다. 경복궁의 금천교는 '영제교(永濟橋)', 창경궁의 금천교는 '옥천교(玉川橋)'이다. 다만, 이 다리들도 보통명사인 금천교로 불리기는 했다.한자 표기도 다양했다. 《조선왕조실록》와 《승정원일기》을 보면, '錦川橋', '禁川橋', '金川橋'를 사용했다. 그 중 '錦川橋'는 주로 조선 전기 경복궁과 창덕궁의 금천교를 가리켰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명종 때 까지만 나왔고 《승정원일기》에서는 영조, 정조 시기에 7번 정도 나온 것이 전부이다. '禁川橋' 표기는 광해군 시기부터 보이며 이후 고종 때까지 사용하였다. '金川橋' 표기는 광해군과 효종 시기에 잠깐 쓰였으며 자주 사용하는 표기는 아니었다.
3. 목록
- 경복궁 영제교: 흥례문(중문)과 근정문(정전 정문) 사이에 있다.
- 창덕궁 금천교: 돈화문(정문)과 진선문(중문) 사이에 있다.
- 창경궁 옥천교: 홍화문(정문)과 명정문(정전 정문) 사이에 있다.
- 덕수궁 금천교: 대한문(정문)과 조원문(중문) 사이에 있다.
- 경희궁 금천교: 흥화문(정문)과 건명문(중문) 사이에 있다.
4. 구조
- 다리마다 세부적인 차이는 있으나, 큰틀에서는 대부분 모양이 비슷하다. 아랫 부분에 선단석을 놓고 그 위에 무지개 모양의 아치[2]를 2개 만들었다. 아치 사이 공간은 판축다짐으로 채워 몸체를 만들었고, 그 위에 박석이나 장대석으로 돌길을 놓은 모습이다. 다리 양 가장자리에는 돌 난간을 두었고, 난간과 몸체 일부에 해치, 거북, 천록 등 악귀를 막는 동물들과 연꽃봉오리 등을 조각했다.
5. 여담
- 현재 유일하게 자연수가 흐르는 금천은 창경궁 금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