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10-14 13:35:22

군표

파일:attachment/JapM10rupees.jpg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버마에서 발행한 10루피 군표.
1. 개요2. 유사품3. 발행 목적4. 특징
4.1. 가치4.2. 발행량4.3. 변동성4.4. 환금성4.5. 조악성
5. 역사
5.1. 대한민국
6. 현금교환
6.1. 일반적인 교환6.2. 화폐 수집을 통한 교환
7. 관련 문서

1. 개요

軍票
Military note / Military currency / Military scrip
Military payment certificate[1] / Invasion money[2] / Occupation money[3]

군용수표(軍用手票)라고도 한다.[4] 군대의 주둔지, 주로 해외에 주둔하는 군대에서 통용되는 정부나 군대가 발행한 특수화폐이다. 국제관습법상 발행이 인정받는다.

군표가 표시하는 통화단위는 본국통화인 경우와 당해 외국통화(현지통화)인 경우가 있다. 점령군은 그 지역에서 징발권이 있으며, 그 대가의 지불에 자국의 통화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통화기준의 차이, 본국통화를 점령지로 대량수송하는 데 따르는 자국의 경제적인 영향, 위조 통화의 방지 등의 이유에서 군표를 사용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2. 유사품

똑같이 군표라고 불리긴 하지만 군대 내부에서 현금과 1:1등의 정상적인 교환과정을 거치고, 군대 내부에서만 사용되는 것은 군인카드라든지 현금카드라든지 칩이라든지 하는 방식으로 다르게 부르며,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군표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군대 내부에서 현금이 오고 갈 경우 벌어질 수 있는 도난사건이나 금전관련 문제를 막기 위한 것이므로 이용하는 사람이 요구할 경우 군대 내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 상태로 현금으로 환전해서 외출이나 외박시 직접 전해주기도 한다. 미국 해군의 경우, 함내 PX나 자판기, 기타 유료 복지 시설 이용 등을 하기 위해선 개인에게 지급되는 카드에 "Navy Cash"를 자신의 계좌에서 충전해 써야 한다.

실제로 기존 군표처럼 현금인 미국 달러를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까지 비싼 운송 및 호위비용을 지불하면서 운반하지 않아도 되고 군표처럼 별도의 지폐를 발행하지 않아도 되고 위조지폐를 막을 수 있으며 사용도 편리하다는 점에 착안해서 미국은 EZpay를 기반으로 해서 Navy Cash와 협업하는 이글 캐시(EagleCash)를 사용한다. 이글 캐시는 군표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므로 더 이상 군표를 발행할 이유가 사라졌다.

논산의 육군훈련소에서 쓰였던 액면가 1천 원짜리 PX이용권도 군표로 볼 수 있다. 해당 이용권은 나라사랑카드가 있어서 쓰이지 않게 되면서 이글 캐시가 보여줬던 길을 따라갔다.

3. 발행 목적

자국의 군대를 파병하여 주둔하고 있는 국가에서 필요한 군수물자를 조달하고 군 관계자에게 인건비를 지급하는 등의 경제적인 지불수단으로 사용된다.[5] 이는 군대를 파병한 본국과 주둔국의 화폐에 차별성을 두어 군운영을 위한 비용 일부를 주둔국 현지에서 해결함으로써 자국(본국)의 경제를 안정시키면서 외국에 주둔하는 군정경비를 충당하게 하는 고도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해서다.

쉽게 말해 종이쪼가리를 군대의 힘으로 강제로 돈으로 만들어 통용하게 하는 것이다.

4. 특징

군표는 특수화폐로 취급받지만 일반적인 화폐와는 차이가 매우 크다.

4.1. 가치

군표를 발행한 국가의 군사력으로 가치가 보증되는 것이 군표이므로 해당 군사력이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곳에서는 가치가 전혀 없다. 대체통용화폐로 흔히 사용되는 담배 1개피보다도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화폐는 군표와는 달리 국가의 국력, 위상, 경제력등을 기반으로 한 국가신용도를 기반으로 한 신용화폐이므로 외환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며 환율이 적용되므로 해당 국가 밖에서도 다른 화폐와의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가치를 인정받는다.

4.2. 발행량

군표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군비의 필요에 의해 발행하기 때문에 발행량이 많고 세세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덤으로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전문가도 얼마나 많은 종류의 군표가 발행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군표가 이런 증상이 심했다.

미국이 발행한 군표인 MPC처럼 품질이 안정되고 발행량도 엄격하게 규제되며 유효 기간 및 C-Day라고 부르는 환급일 겸 교환일이 있는 경우라도 국가의 재력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지 않고 미국 국방부가 발행하기 때문에 미국 재무부의 인장이 군표에 찍히지 않는다.

4.3. 변동성

국가의 경제력과는 달리 군사력과 군사적 점령 상태는 매우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군표의 가치 등락도 매우 심하다. 당연하게도 군표를 발행한 국가가 패전하면 그 순간 그냥 휴지 조각만도 못한 물건이 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군표를 소지한 것 자체가 신변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가치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당장 전쟁에 승리한 국가의 지배영역 안에서 전쟁에 패배한 국가가 발행한 군표를 소유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적국에게 음식이나 잠자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은 게 군표이므로 당연히 적과 협력한 부역자로 몰릴 수 있다. 그래서 발행 국가가 수세에 몰리면 군표의 가치가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이를 보여주는 예로 일본 패망 후 버마의 양곤에서 미군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이 있는데, 이는 일본 패망이 거의 확실해진 시점부터 일본군표를 받은 버마 민간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길바닥에 군표를 싹 다 내다버려 낙엽 내지는 휴지조각처럼 쌓인 것을 잘 보여준다.

이건 적국의 법정통화인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적국의 법정통화는 평화시에는 타국의 화폐를 보유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그나마 전쟁이 끝난 뒤 화폐 가치를 인정받을 수라도 있지만 군표는 이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4.4. 환금성

기본적으로 군표는 환금성이 매우 좋지 않다. 군표를 발행한 국가가 패전하면 기존 군표를 모조리 폐지 및 가치를 말소하는 것은 기본이 된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 제국은 1945년 9월 6일에 일본 제국 대장성(大蔵省)의 명의로 일본 제국이 발행한 모든 군표를 무효화한다고 발표했다.#1

설령 해당 국가가 승리했다 해도 군표를 좀 더 보편적인 통화나 현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대체로 군표란 당장에 필요한 군대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급하게 발행하는 것인데, 그 값을 치를 때에는 군대 입장에선 급한 불을 껐기 때문에 한없이 밍기적거리기 일쑤[6]이다. 더욱이 군사적으로 한 번 점령당했을 정도이니 점령 지역은 나중에도 발언권이 별로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군표의 교환 시기, 방법, 환율은 발행국 맘대로이다. 실제로도 미국이 발행한 군표인 MPC의 경우에는 1946년부터 1973년까지 15종류가 만들어졌고 13종류가 통용되었으나 주요 목적이 암시장 척결과 암달러 거래로 인한 불법 차익 환수였기 때문에 항상 교체일이나 환산일이 비밀로 지정되었으며 해당 일자에는 군인들이 기지 내부에 머물지 못하도록 해서 군인들이 암시장 상인을 도울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 당시 암시장 상인들이 종종 MPC로 저축한 돈을 모두 날리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초강대국이고 재정상태가 튼튼한 미국의 경우라고 해도 군표를 특정한 목적에 따라 제멋대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2

따라서 상황이 심각한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해당 군표를 폐지해서 휴지조각이 되거나, 설령 받더라도 본인 수령이 불가능한 수백 년 후에 받는 경우도 있다.[7]

4.5. 조악성

군표는 급하게 발행할 때가 많기 때문에 국가 공식 화폐와는 달리 수량을 세어가면서 세밀하게 발행하지 않을 때가 비일비재하다. 심하면 해당 지역을 점령한 군대의 일개 지휘관이 제멋대로 서명한 사인을 해당 국가에서 약탈한 화폐 비슷한 것에 덧붙여 인쇄했다고 군표랍시고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이런 것은 전쟁이 끝나서 발행한 국가가 승리해도 가짜라고 교환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이다. 나치 독일의 군표 중 일부가 이에 해당한다. 심지어 현지에서 약탈한 화폐에 나치당의 문장이 새겨진 도장만 찍어 놓고 군표로 사용한 일이 많았다.

당연하게도 이런 식의 조악한 군표는 민간인들에게도 군대가 약탈만 하긴 뭐하니까 대가랍시고 주는 종이쪼가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수준이었다. 그래서 죽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될수록 안 받으려고 하거나 일부러 빼앗길 물건을 파손하는 경우까지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용 문제를 완화하려고 군표를 통용되는 화폐와 비슷하게 도안하고 발행 및 유통을 나름대로 엄격하게 규제/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발상을 뒤집어서 기왕에 정성을 들이는 김에 점령한 지역의 원소유주인 국가의 위조화폐를 제조하여 뿌리기도 한다.

구별법은 군인이 군표를 줄 때 진짜 돈 주는 것처럼 액면가를 상세히 보면서 정확하게 주면 그나마 제대로 발행된 군표이며, 그냥 막 뿌리면 종이쪼가리라고 보면 된다. 물론 이것도 해당 군대의 상황에 따라 판단을 달리해야 한다. 동일한 시기에 발행된 군표라도 해당 군대가 승승장구할 때면 그나마의 가치라도 있지만 망조에 들었을 때면 가차 없이 종이쪼가리가 된다.

5. 역사

군표는 앞서 언급했듯이 다른 나라에 처들어가 약탈만 하면 문명국 군대가 아니라 도적떼나 다름 없으니 나름 대가랍시고 주는 종이쪼가리므로 그 특성상 군대가 자국에 있을 때는 사용할 일이 없다. 국내에 있을 때에는 세금이나 징발 같은 수단으로 합법적으로 민간의 재화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표는 군대가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나, 해당 군대의 공격을 외국에서 방어할 때 많이 사용된다. 그래서 1890년대와 1900년대를 전후하여 세계의 열강들이 약소국의 점거를 놓고 힘겨루기와 패권주의가 한창일 때 군표는 일본에서 세계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소련 등이 세계 곳곳에 주둔하면서 점령국에서 군표를 발행하여 사용하였다. 헤이그 특사로 유명한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서 영수증이나 화폐를 지불하지 않은 약탈을 금지하는 조약이 체결되어 그 대신에 군표를 나눠주는 일이 많아졌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군표를 많이 발행했다. 최초의 발행은 세이난 전쟁 당시에 반란군이었던 사이고 측이 군자금의 조달을 목적으로 발행한 사이고사쓰(西郷札)[8]이기 때문에 미승인국의 화폐 취급처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은 1894년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군표를 발행하여 청일전쟁 때 사용하였으며 이후에도 북으로는 러일전쟁과 남으로는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군표 발행은 194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특히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초 미얀마,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군표 발행이 최고조에 달해 지금까지 발행된 군표가 104종류에 이를 정도이었다.
일본군은 필리핀, 말레이시아(싱가포르 포함), 인도네시아, 버마(미얀마), 태평양 군도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금과 외국환, 현지화폐 등 쓸만한 경화(hard currency)를 몰수했다. 그 돈으로 군인들의 식량과 무기 조달에 사용했다.

그리고는 점령지에 새 통화를 발행했다. 필리핀에서는 페소, 말레시아에서는 달러, 인도네시아에선 굴덴, 버마에서는 루피, 오세아니아에선 파운드의 명칭이 붙은 현지 지폐를 발행해 현지에서 각각 통용했다. 이들 통화는 일본어로 대동아전쟁군표(大東亜戦争軍票)라 했다. 서구에서는 일본군이 동남아에서 발행한 군표를 일본 달러(Japanese Dollar)라 부른다.

일본은 동남아 점령지를 통치하기 위해 남방개발금고(南方開発金庫)를 설립했다. 본국에서 다방면의 전쟁비용을 지원할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현지 주둔군은 남방개발금고를 통해 현지 지폐를 발행해 전쟁 비용을 치렀다. 연합국의 반격으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남방개발금고의 지폐 발행량도 폭주했다. 1942년 발행량이 4억7,000만이었으나, 1945년 3월에 130억으로 늘어났다.

초기에 일부 동전을 발행했지만 전쟁물자가 궁핍해 지면서 일본은 금속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지폐만 찍어 냈다. 지폐 표면엔 영어로 되어 있지만, 발행처만은 대일본제국이라고 한자로 인쇄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발행된 일본 군표는 바나나 지폐(banana notes)라 불렸다. 10달러 지폐에 바나나 나무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침공 이전에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말레이 연합, 싱가포르, 브루네이, 북보르네오, 사라와크로 분리되어 영국의 통치를 받았는데, 영국은 싱가포르에서 발행한 스트레이츠 달러(Straits dollar)를 통용했다.

일본은 이들 지역을 통합해 바나나 지폐를 동시에 통용했다. 처음에는 100 스트레이츠 달러를 100 일본 달러로 교환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군은 대량으로 지폐를 찍어냈다. 1942년에 초기 100 일본 달러의 가치는 1943년 12월엔 385 달러로, 1944년 12월에 1,850 달러로 폭락했고, 전쟁 막바지인 1945년 8월 1일엔 1만500 달러로 폭락했다. 항복 직전인 1945년 8월 11일엔 9만5,000 달러로 떨어졌고, 항복 이후엔 말레이시아에서 발행한 일본 달러는 그나마 가치를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들도 이 군표를 화대로 받았다. 그러나 종잇장에 불과했다. 평소 위안소에 들르지 않았던 군인도 "죽음을 앞두고" 위안소를 찾고 군표를 뿌렸다는 기록이 흔하다.[9] 일제는 군표를 돈으로 환산해 주지도 않았다.

일본은 1945년에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패전국이 되어 군표발행이 중단되었으며, 1945년 9월 6일에 일본 제국 대장성(大蔵省)의 명의로 일본 제국이 발행한 모든 군표를 무효화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군표 역사는 종결된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일본군표에 대한 일본정부의 보상 내지 교환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연합군 점령하 일본에서 미군이 일본에 주둔함으로써 1946년부터 미군에 의한 "B"표시 군표가 일본 내에서 유통되었다. 이때 미군이 발행한 군표는 동일한 디자인으로 "A"표시와 "B"표시로 발행되어 군인 등의 물품구입이나 급여지급 등에 사용되었다. "A"표시와 "B"표시 군표는 100엔부터 10센(전)까지 모두 7종류가 발행되었다. 해당 군표는 미일지위협정에 의해 미국이 인가한 자만이 그 시설 및 구역 내에서 상호간의 거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통화대용의 종이표(미군표)이며(미일지위협정 20조), 일본정부는 인가되어 있지 않은 자가 미군표를 이용하는 거래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이 무렵 소련에서도 북한과 중국에서 사용할 군표를 제작하여 발행하였다. 1원, 5원, 10원, 100원의 군표를 디자인을 동일하게 발행하여 북한에서 사용하던 군표에는 한글로 "붉은군대사령부"로 되어 있고 중국에서 발행한 군표에는 한자로 "蘇聯紅軍司令部(소련홍군사령부)"로 기재하여 구별했다.
이외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등지의 식민지에서 군표를 발행하여 사용하였고 나치 독일도 군표를 발행하여 점령지에서 사용하였다. 나치 독일의 경우에는 군표의 정식 발행량이 일본만큼 다양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일본처럼 군표를 새로 인쇄해 발행하기보다는 점령지의 화폐에 대충 도장을 찍거나 군 지휘관의 서명만 적힌 것을 군표처럼 뿌려대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국가 간에 대규모 전쟁이 발생하지 않아서 군표발행도 감소되고 있는 추세이며, 군표발행이 많았던 일본은 1942년에, 미국은 1973년을 끝으로 군표발행이 없다. 미국이 최후까지 군표를 사용했던 곳은 대한민국으로 1973년 초에 파리 강화 협정으로 미군이 남베트남에서 철수한 후 1973년 가을에 대한민국에서 갑자기 C-Day라고 하는 마지막 환산일을 연 후에 모든 미군표는 폐지되었으며 환산일에 교환하지 않은 군표는 모두 휴지조각이 되었다.

5.1. 대한민국

한국에서는 미군 "A"표시 군표가 1945년 9월 9일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조선은행권과 함께 법정통화로 부여 받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화폐 단위는 원(圓)이었고 영어로는 엔으로 표기되었다. 100원, 10원, 5원, 1원, 50전으로 총 5개 권종이 발행되었다. 이후 1946년 7월 조선은행권만으로도 한국의 경제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을 판단한 미군에 의해 "A"표시 군표는 사용이 중지되었다.

또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 호주, 태국 등과 함께 대한민국에서도 자체적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을 위해 1969년부터 1970년대까지 4회에 걸쳐 군표 비슷한 것을 발행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구매권으로 당시 한국군은 미군표를 함께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부 병사가 한국에서 미국 달러를 가져다 암시장을 통해서 달러 액면가 이상의 많은 군표로 교환하고 군표를 미군 PX에서 사용하여 현물로 바꾸는 부정이 자주 발생하자[10] 구매권을 별도로 발행해 사용하고자 하는 미군표와 같은 가치의 구매권을 첨부해야지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발행 주체는 주월한국군사령부이며 발행된 권종은 5전, 10전, 25전, 50전, 1불, 5불, 10불, 20불로 총 8종이 발행되었다. 이 중 전에 해당하는 4개 권종은 4차 발행 때는 센트로 변경되어 발행되었다. 매 발행마다 디자인이 변경되었기 때문에 총 32종이 존재한다. 발행 수량이 극히 적어 좀처럼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 올 기회가 적다.

6. 현금교환

군표는 일반적으로 액면가에 따라서 해당 국가의 정식 화폐로 교환해 주는 일반적인 교환과 희귀 화폐로의 가치가 있어서 화폐 수집가들이 구입해서 현금화할 수 있는 화폐 수집을 통한 교환이 있다.

6.1. 일반적인 교환

정상적인 군표라면 대개 사용 기간이 엄격히 정해지고 교환 기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미국처럼 강대국의 군표이며 최근에 발행되었으며 환산일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군표가 아니라면 액면 가치는 제로다.

따라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21세기의 시점에서는 현금교환이 가능한 신용도 높은 군표는 전혀 없으며 제3세계의 국가들이 발행한 군표는 애초에 현금교환이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고 해도 미국 달러 같은 기축 통화로 교환이 불가능하거나 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래된 군표를 발견했는데, 이걸 발행국 정부의 화폐로 교환가능하다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으로 봐도 무방하다. 웃기는 것은 이런 사기를 친 사람이 2011년에도 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미 패전한지 오래된 일본군이 필리핀에서 유통한 군표를 가지고 사기를 쳤다는 것인데, 체포당한 후에도#1 뻔뻔하게도 항소까지 했다가#2 기각당하고 형이 확정되었다.

애초에 일본군표는 1945년 9월 6일에 일본 제국 대장성(大蔵省)의 명의로 일본 제국이 발행한 모든 군표를 무효화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에게 점령된 국가의 거주민들이 일본군표를 제시하면서 일본 정부에 지급을 요청해도 일본 정부는 1951년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일본군표에 대한 일본정부의 보상 내지 교환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절대로 교환 및 지급 신청에 응하지 않으며 재판도 거부한다. 미국도 1973년 가을에 최후의 교환일을 실시한 후 모든 미군표를 폐지했고 교환일에 현금으로 환전하지 않은 모든 미군표의 효력을 무효화했으므로 현금교환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일본군표건 미군군표건 간에 현금화 가능성은 전혀 없다.

6.2. 화폐 수집을 통한 교환

군표는 정부에서 화폐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지 민간 거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것도 이젠 오래된 물건이다 보니 오래된 화폐나 우표처럼 수집용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11] 따라서 외국의 밀리터리 샵 같은 곳에서 취급하기도 한다.

군표는 화폐만큼 많이 찍은 물건도 아니고 전쟁통에 발행되는 물건이다 보니 수량도 적고 보존도 힘들고, 위에서 다루었듯 당장에는 갖고 있는 게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 보니 버려버리는 경우도 많아 양이 매우 희소하다. 그렇기에 군표의 감정가만 본다면 액면가보다 가치가 있어서, 집에서 오래된 군표가 나왔다면 해당 군표 액면가의 최소 몇 배는 되는 가격의 감정을 받을 수 있으며, 발행량이 특히 적고 상태까지 좋으면 부르는 게 값이 될 수도 있다. 액면가 맨 위에 있는 10루피의 경우 오늘날 일본엔으로 15엔, 한화 150원 정도의 가치인데 수집가에게 판매하는 것에 성공하면 몇천 원에서 상태가 괜찮은 것들은 몇만 원까지 받을 수 있으니 액면가의 몇백 배까지 가치가 붙는 셈. 특히 일본군표 중에서는 도안에 바나나나무와 늘어진 다발 모양이 있는데 이것을 속칭 바나나 노트(Banana Note)라고 하며 말레이시아 10달러와 인도네시아 10굴덴의 가치는 이베이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10달러 정도가 기본가일 정도로 휴지조각 치고는 의외로 몸값이 좋다.

다만, 이렇게 고가에 거래되는 군표는 의외로 한정적이며 개인이 판매할 수 있는 수량도 적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1975년에 도쿄에서 열린 지폐 전시회장에서 방문객인 할머니가 매장 주인에게 군표 8장을 700엔이라는 헐값에 넘겼는데 그날 저녁에 열린 경매장에서 해당 군표가 330만 엔에 낙찰된 기록이 있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소련군의 만주 전략 공세 작전을 앞두고 소련과의 전투를 준비하던 일본군이 소련에서 쓸 군표를 시제품으로 약간 찍어냈다가 발행하지는 않고 바로 폐기한 것이라는 희귀품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면 환금성은 충분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화폐 수집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에러 화폐나 시제품만 만들어진 미발행 품목 같은 희귀품이 아닌 일반적인 군표는 가치가 낮으며 화폐의 품질도 아주 높아야 한다. 주화로 치면 프루프나 민트세트처럼 미사용이며 특수포장이 되어 있어야 거래가치가 높고 고가에 거래되며 조금만이라도 사용흔적이 있거나 하면 순식간에 C급 이하로 평가받으며 가치가 급전하락한다. 여기에 더해서 1장마다 화폐 수집 전문가의 검사 및 품질보증서가 붙어야 거래가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헐값에 넘기거나 아예 판매가 불가능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위의 경우를 살펴봐도 군표를 가진 할머니가 해당 군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뭔가 가치를 증명할 증명서도 없기에 매장 주인이 할머니에게 선심 쓰는 셈 치고 700엔을 주고 군표를 사들였던 것이다.

설령 본인이 군표를 비롯한 화폐 수집에 대해 통달하고 있다고 해도 잘 해봐야 십수 장 정도를 제값을 받고 판매할 수 있는 정도이지, 그 이상의 다량의 군표를 한번에 처리하기는 매우 힘들다. 앞서 언급한 군표 사기 사건에서는 군표 5만 장이 나왔는데 그걸 화폐 수집 분야에서 빠르게 판매한다는 것은 개인의 능력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종류의 수집분야는 구입자를 찾는 것부터가 난관에 부딪치며 경매에 출품하더라도 비싼 가격의 경매비용을 부담해야 때문에 대량판매는 아예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성과도 좋지 않다.

실제로 전당포 사나이들에 나오는 릭 해리슨이 고객들에게 감정가의 절반 수준으로 매입가를 후려치면서 항상 설명하는 내용이 우리도 해당 물건을 구입하는 손님을 찾아야 하고 물건이 파손되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장기간 비용을 지불하며 잘 보관해야 하며 경매에 내놓으면서 비용도 부담해야 하니 이 정도 금액밖에 손님에게 드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이며 실제로 그 말이 맞고 전당포가 구입한 물품을 처리하지 못해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전당포 같은 전문 경영자도 손해를 종종 보는 분야가 수집품 분야인 것이다.

따라서 본인이나 가족들이 소유한 군표 몇 장을 판매하는 정도는 괜찮고 환금성도 상당히 높지만 누군가가 다가와서 군표를 대량으로 보여주면서 화폐 수집가에게 잘 팔린다고 말하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절대로 피해야 한다.[12]

7. 관련 문서


[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베트남 전쟁 시기까지 미국이 발행한 군표 한정 명칭.[2] 일본 제국이 발행하여 점령지에 남발한 군표 한정 명칭.[3] 점령군이 발행하는 화폐라는 의미지만 나치 독일이 남발한 군표 명칭으로도 사용한다.[4] 한때 군용어음(軍用-)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으나, 1988년 표준어 규정에 의해 '군표'만 표준어로 인정되었다.[5] 일본군의 사례로 포로수용소에 갇힌 연합군 전쟁포로들을 온갖 노역에 동원한 후 보수랍시고 군표를 지급했다고 한다. 때로는 군표 대신 담배를 지급하기도 했지만 품질이 엉망이라서 대체통용화폐로도 쓰기가 곤란할 정도라 거부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6] 물론 점령국 군대가 중장기적으로 점령지의 민심을 관리하고자 한다면, 군표의 가치를 보장함으로써 점령지의 경제가 돌아가게끔 보장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건 점령 군대의 군사적/전략적 승리를 포함한 여러 조건이 다 맞아 들어가야만 가능한 일이다.[7] 군표는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가 스위스의 한 마을에게서 물자를 징발하고 써준 영수증을 184년 뒤에 이자 없이 당시 원금 액수인 7억만 그대로 후려쳐서 갚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자까지 치면 현재 가치로는 3000억인데 이걸 쉽사리 내줄 수 있는 금액도 아니다. 그나마 무시하지 않은 것은 청구자가 가난한 3세계 국가가 아니라 스위스의 마을인 덕이다.[8] 발행 당시부터 신용력이 부족해서 5엔, 10엔 등 고액권은 사이고 측이 무리해서 통용시키고 있었다. 반란군이 발행한 군표라 메이지 정부에 의해 압수, 폐기처분당했지만 극소수의 실물이 현존하기 때문에 일본 국내의 화폐수집가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이 군표를 다룬 단편소설로 문학계에 데뷔했다.[9] 후루하시, 2021:57[10] 한국 정부 입장에선 외화 벌러 참전했는데 외화가 유출되는 꼴이고, 주월미군 입장에서도 남베트남 시중에 달러가 직접 유통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군표를 발행하는 것인데 그 취지가 부정당하는 것이다.[11] 이는 군표라는 대상을 화폐로서가 아니라 재화의 일종으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2] 애초에 개인이 대량으로 군표를 보유할 정도면 해당 군표는 화폐 수집 시장에서 가치가 없을 정도의 휴지급 군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환금성이 높은 군표는 포켓몬 카드 게임의 고가품 포켓몬 카드처럼 별도의 케이스에 1장씩 넣어서 보관하기 때문에 돈다발의 형태처럼 대량으로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