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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3:00:10

군웅신

군신(한국 신화)에서 넘어옴
1. 개요2. 상세3. 목록

1. 개요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군웅신들.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는 동시에, 악한 귀신들로부터 인간과 좋은 신들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2. 상세

군웅신(群雄神)의 다른 이름인 군신(軍神)이라 하면 좁은 의미로 군사적인 분야에서 인간의 전쟁의 승패을 주관하고 참전한 장졸의 무운장구를 보장해 준다고 여겨졌던 신을 가리키지만, 단순히 장군이라 불리면서 악한 귀신들[1]로부터 지역민들의 제반 안전을 보장해준다고 여긴 신도 있다. 생전에 장군이었으나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도 장군신이라 불리는데, 이들은 단순히 좁은 의미에서 군신의 역할만 하지 않고 악한 귀신들이 초래하는 재앙으로부터 국가 또는 현지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수호신 역할도 하곤 했다. 김유신삼국유사에 미추왕의 무덤 앞에 찾아가서 "내가 살아생전에 나라와 왕실을 위해 싸웠고 지금 죽어서도 왕실과 백성을 생각해 그들을 지키고자 밤낮으로 애쓰는데, 이 나라에서는 죄도 없는 내 후손을 죽였으니 내가 억울해서 수호신 못 해먹겠습니다."라고 호소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군신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다.

이순신도 생전에도 탁월한 전략전술을 구사하며 왜군을 상대로 숱한 승전을 거둔 명장이지만 왜적을 모두 섬멸하겠다는 맹세를 끝내 완수하지 못하고 바다에서 죽어, 여수 영당굿에서 전쟁에서의 승리뿐 아니라 바다를 지켜주는 신이며 풍어(風魚)와 해상에서의 안전을 기원하기도 한다는 것이 그 사례. # 좁은 의미로 군신인 사람은 최영이 있는데, 최영은 최영 장군, 최일 장군이라고도 하며 인간을 수호하고 무당의 영험을 관장하는 신으로 간주된다. 사후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 무당들에 의해 신으로 봉안되었다고 한다. 오른손에 장군칼과 등에 활과 화살을 꼽고서 말을 타고 다닌다고 하는데, 조선 시대에도 둑제나 마조제 같은 군사 관련 국가제사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중요한 신으로 존중받았고, 특히 경상도 지역에 그의 사당이 집중적으로 지어졌을 정도로[2] 대표적인 군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각지에서 자체적으로 모신 군신 외에도 중국 도교나 불교의 영향으로 둑신이나 마조신, 파군성이나 사천왕을 군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신라 시대의 사천왕사는 군신에 대한 신앙이 불교(정확히는 밀교)적으로 발현된 것으로 고려 시대까지 외적이 쳐들어 오면 신불의 가호로 외적을 물리친다는 사상 아래 호국삼부경[3]을 강설하는 인왕도량이나 사천왕도량 같은 불교적 행사를 열기도 했다. 고려사 정가신전에는 나주 금성산 산신이 진도탐라로 들어가 반란을 일으킨 삼별초를 진압하는 데 신통력을 발휘해 도왔다고 해서 고려 조정에서 정녕공(定寧公)에 봉하고 해마다 녹을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4]

불교적 색채를 멀리하려 했던 조선시대에는 불교적인 도량 대신 중국 도교에서 유래한 둑제(纛祭)[5]나 마조제[6] 등이 군문에서 주로 행해졌는데, 고려 시대까지 무당들에게 맡겨 지내던 제사를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에서 대신 제사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때는 중국 도교에서 모시는 마조신이나 둑신, 고려 최영 등을 신으로 제사하기도 했고, 임진왜란 이후에 명나라 장졸들을 통해서 관우를 군신으로 모시는 신앙이 조선에 유입되기도 했다.

단오에서도 군웅굿을 지낸다.

3. 목록



[1] 여기서 악한 귀신이란 외적의 침략뿐 아니라 인간사에 악영향을 끼치는 질병이나 천재지변 등 온갖 재수들을 싸잡아서 귀신으로 치부한 것.[2] 아시다시피 일본과의 접경지이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 지역의 수군절도사가 자체적으로 병선 1백 척을 동원할 수 있도록 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요충지로 취급받았다.[3] 국가를 지키는 법을 부처가 강설한 내용을 담은, 흔히 알려진 호국불교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불경으로 금광명경과 인왕경 그리고 법화경을 말한다.[4] 물론 전투를 앞두고 안개가 자욱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자 지리산신에게 사람을 보내 '나라의 운명이 이번 전투에 달렸는데 신께서는 망신살 짓 하지 마시고 알아서 처신하시라.'고 해서 안개를 걷히게 만든 정지 같은 장군도 있었다.[5] 둑은 군기(軍旗)의 이름으로 왕이 장군에게 하사하는 도끼인 부월과 함께 군사권을 상징했다. 고려 충렬왕 이후 출정을 앞두고 둑기 앞에서 둑제를 지냈다. 현재 서울의 뚝섬이라는 지명도 둑제를 지내는 사당이 뚝섬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뚝섬에 있던 사당은 1924년 을축년 대홍수 때 쓸려가버려서 지금은 없다.# 중앙의 뚝섬 외에도 지방의 병영이나 수영에서도 자체적으로 둑제를 거행했는데 난중일기에도 1593년 2월 5일과 1594년 9월 9일, 1595년 9월 20일에 둑제를 지낸 기록이 보인다.군신이 군신에게 이 때문에 2015년 여수 거북선축제에서 둑제를 복원해 지내기도 했다.[6] 과 관련된 신들에게 지내는 제사로 말의 왕(王馬)를 뜻하는 마조(馬祖), 최초로 말을 기르고 그 기술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 사람인 선목(先牧), 처음으로 말을 탄 사람인 마사(馬社), 말을 해롭게 하는 신인 마보(馬步)로 나뉘는데 이들을 뭉뚱그려서 마조신이라고 부른 것. 전근대에, 심지어 화약무기가 발명되고 나서도 한동안은 말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7] 여담으로 동식물과 회화를 할수있으며 주위의 돌과 모래로 사나운 돌짐승을 만들 수 있고 적의 화살과 무기로 몸이 부셔져도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수있는 불사성 또한 가지고 있다고 구설로 전해진다.[8] 부군신은 주로 민간에서 모시던 신으로 인간의 성생활을 관장하고 부근신은 남성의 생식기를 상징하는 신이기는 한데... 딱히 구분은 하지않고 동일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