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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9 10:27:35

구선복

구선복
具善復
본관 능성 구씨
사초(士初)
출생 1718년(숙종 44)[1]
사망 1786년(정조 10) 12월 9일[2]
한성부
직업 무신
사인 거열형
죄명 상계군을 추대하려 함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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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후기의 무신. 상당한 권신으로 왕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권세를 누렸으나 정조 치세 당시 역모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역적 선복(善復)으로 말하면 인한[3]보다 더 심하여 손으로 찢어 죽이고 입으로 그 살점을 씹어먹는다는 것도 오히려 헐후(歇後)[4]한 말에 속한다. 매번 경연(經筵)에 오를 적마다 심장과 뼈가 모두 떨리니, 어찌 차마 하루라도 그 얼굴을 대하고 싶었겠는가마는, 그가 병권을 손수 쥐고 있고 그 무리들이 많아서 갑자기 처치할 수 없었으므로 다년간 괴로움을 참고 있다가 끝내 사단으로 인하여 법을 적용하였다. 전후 흉악한 역적들을 끝내 성토하고 처벌하지 못한 것은 실로 선조(先朝) 시대에 있었던 일이라서 말하기 곤란하기 때문이었는데 의리가 이로 인하여 어두워질까 나름대로 염려해 왔다."
정조실록 정조 16년 윤 4월 27일 기록 중. 정조 10년에 구선복이 처형된 6년 뒤에도 이런 수위로 되뇌는 것으로 정조의 구선복에 대한 증오심을 알 수 있다.

2. 생애

1718년(숙종 44)에 황해도 병마절도사(종2품)를 지낸 아버지 구성필(具聖弼)의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형 구선원(具善元)이 있었다.

1738년(영조 14) 식년시 생원시에 3등 31위로 입격한 뒤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총융사훈련대장 등을 역임하고, 최고 군사실력자로 병조판서·판의금부사가 되었다.

구선복은 원래부터 성격이 잔인무도하여 재직기간 중에 하인부터 조정 고관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욕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인심을 잃었다. 심지어 구선복은 임오화변 때 뒤주 속에 갇혀 있는 사도세자를 향해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플테니) 술을 주랴, 떡을 주랴?"라고 능멸하고 희롱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이부분은 사실이 아니란 설도 있다. 정확한 기록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만행을 일삼는 구선복이 장차 후세에 망할 거라고 입을 모았다.

당연하지만 임금인 영조는 물론 정조도 자신의 아버지를 욕보인 구선복을 싫어했고, 구선복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치가 떨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군권을 가진 권신이라 일단은 지켜 보면서 쳐낼 명분을 찾고 있었다. 이 명분은 엉뚱하게도 예순왕대비(정순왕후)가 흘렸다. 상계군 이담 문제로 왈가왈부하던 와중에 대비가 "(구선복네가) 점을 봤다느니 반정을 하겠다느니 하는 얘기했다던데 그거부터 시원하게 밝혀라!" 라고 하자 심문을 했다.

과연 구선복과 그 일당이 이담을 옹립할 정변을 계획하였고, 첫 대장은 다른 사람이었지만 이번 대장은 구선복이었고, 또 이전 대장이 운세가 좋은지 문양해[5]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조는 자신의 아들 문효세자가 죽자 자신의 조카인 상계군 담을 추대하려고 시도했다는 죄를 물었고, 구선복은 이로써 완전히 실각하고 만다.

1786년(정조 10) 양자 구이겸(具以謙)[6], 조카 구명겸(具明謙)과 함께 거열형을 당했다. 구선복이 역모로 처형당하면서 조선 초기 이래 대대로 고위직 무관을 역임한 능성 구씨 일가는 몰락하고 말았다.



[1] 출처: 《능성구씨족보》 구선복편.[2] 정조실록 22권, 정조 10년 12월 9일 무신 4번째 기사.[3] 정조가 역시 세손 시절부터 이를 갈던 홍인한을 말한다.[4] 뒤 끝에 붙은 말을 줄여 버림, 즉 여기서는 더 할 말이 많을 정도로 증오스럽다는 뜻이다.[5] 스스로를 신인의 제자라 칭하며 백성들을 혹세무민했다는 죄목으로 구선복이 죽기 전에 처형당했다.[6] 생부는 통덕랑(通德郞:정5품 문관의 품계) 행 공릉 참봉(恭陵參奉:종9품)을 지낸 구종엽(具宗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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