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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9:39

곽태휘/국가대표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곽태휘

1. 개요

곽태휘의 국가대표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2.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01년에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어 국가대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3년 대구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고 올림픽 대표로 여러 경기들을 뛰었지만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해 올림픽 무대를 밟지는 못했다. 고등학교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탓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족한 경험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왼쪽 눈(사실상 실명...)과 평발, 허리디스크, 어깨 근육 등 온몸이 종합병원이다보니 군대는 면제 판정을 받았다.[1]

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대한민국 대표 중앙수비수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긴 시간동안 성인 대표팀에서만 58경기를 출전한 베테랑이며, 월드컵과 아시안컵을 함께하는 등 오랫동안 대표팀의 후방을 지켜준 레전드 선수이다.

3.1. 허정무호

3.1.1. 2008년

2008년 허정무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본인이 지도했던 소속팀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월 칠레와의 친선 경기에서 대표팀에 데뷔하였다.
파일:external/image3.inews24.com/1202805055109_1.jpg 파일:external/s33.postimg.org/200802171840482234_1_tentama.jpg
A매치 첫 골을 기록한 투르크메니스탄전 동아시안컵 중국전 역전골 장면
2008년 2월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월드컵 3차 예선에서 헤딩 선제골을 넣어 대표팀 첫 골을 신고했으며 2008년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 추가시간 역전골을 집어넣으며 3-2 승리의 주인공이 되었다.[2] 대표팀에서는 세트 피스에서 득점 본능을 살려 '골 넣는 수비수' 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으나, 자책골을 종종 넣는 바람에 반대 의미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도 했다.[3]

국가대표 데뷔 이후 곧바로 소속팀 전남에서 왼쪽 발목 인대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날렸고, 2008년 10월 UAE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복귀하여 헤딩 추가골을 기록했지만 또다시 오른 무릎 전방 십자인대 부상을 당해 해당 시즌을 마감했다.

3.1.2. 2009년

오랜만에 11월 A매치 데이에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덴마크전엔 교체 출전 했지만, 세르비아전엔 출전하지 못했다.

3.1.3. 2010년

2010년 동아시안컵 부터 꾸준히 다시 소집 되었다. 3월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선 골을 기록했다.

이후 5월에 열린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도 소집되었고, 그의 능력을 높게 산 허정무 감독의 신임 아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파일:external/img.etoday.co.kr/20100531052810_joe613_1.jpg
월드컵 직전 불의의 부상으로 눈물을 삼키다
본선 직전 열린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왼무릎 내측인대 부분파열로 월드컵 출전이 불발되었다.[4]

3.2. 조광래호

3.2.1. 2010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부상에서 회복해 다시 국가대표에 소집된다.
3.2.1.1.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1 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
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조광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태하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서정원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 파일:브라질 국기.svg 알렉산드레 가마

결국 아시안컵 명단에 포함되며 월드컵에서의 아쉬움을 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첫경기인 바레인전, 83분 상대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퇴장당했다. 상대가 성공시켜 한골을 먹혔지만 2대1로 승리했다.

바레인전 레드카드의 여파로 2차전 호주전은 결장하였고, 3차전인 인도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했으나 전반 12분 인도에게 페널티킥을 내주고만다. 이 페널티킥 역시 먹혔지만 4대1로 승리했다.

이후 8강과 4강전은 벤치에서 대기하다가 3/4위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교체 출전한다.

3.2.2. 2011년

10월 7일 폴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주장으로 선발 출전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선수를 7명씩이나 교체하는 바람에 FIFA에서 규정하는 공식 교체 출전 횟수인 6명을 넘어버려서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다.

3.3. 최강희호

3.3.1. 2012년

최강희호 첫경기인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주장으로 선발되며 풀타임 출전한다.

3.3.2. 2013년

최강희 감독의 신임을 받아 국가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잡았다. 최종예선 마지막 전인 이란전에선 출전하지 못했지만,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3.4. 홍명보호 1기

3.4.1. 2013년

최강희 감독때와는 달리 주전 경쟁에서 실패하며 벤치에 있을 때가 많아졌다. 9월 크로아티아전 한경기만 출전했다.

3.4.2. 2014년

1월 전지훈련과 3월 그리스전에도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며 그대로 국가대표와 멀어지나 했지만, 월드컵 직전 평가전 명단에 포함되며, 경기도 출전했다.
3.4.2.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 정성룡 · 2 김창수 · 3 윤석영 · 4 곽태휘 · 5 김영권 · 6 황석호 · 7 김보경 · 8 하대성
9 손흥민 · 10 박주영 · 11 이근호 · 12 이용 · 13 구자철
C
· 14 한국영 · 15 박종우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신욱 · 19 지동원 · 20 홍정호 · 21 김승규 · 22 박주호 · 23 이범영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태영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건하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안툰 두 샤트니에 · 파일:일본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이케다 세이고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봉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는 대표로 선발은 되었으나, 홍명보 감독의 취임 이후 올림픽 대표 시절부터 적극 중용되던 홍정호-김영권 라인에 밀려[5] 단 1경기도 뛰지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이동국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 쪽도 정말 불운한 선수.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인터뷰를 가졌으며, 당시 선수들에게 부족한 건 리더십이 아니라 투혼이라고 밝혔다. 또한 홍명보의 아이들 설에 대해 홍명보의 아이들이 아닌 선수들이 대표팀의 분위기에 섞이기 어려웠을 거라고 소신있게 의견을 밝혔다.

3.5. 슈틸리케호

3.5.1. 2014년

슈틸리케호 체제에서도 꾸준히 발탁되고 있다.
3.5.1.1.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1 정성룡 · 2 김창수 · 3 김진수 · 4 김주영 · 5 곽태휘 · 6 박주호 · 7 손흥민 · 8 김민우
9 조영철 · 10 남태희 · 11 이근호 · 12 한교원 · 13 구자철 · 14 한국영 · 15 이명주 · 16 기성용
C

17 이청용 · 18 이정협 · 19 김영권 · 20 장현수 · 21 김승규 · 22 차두리 · 23 김진현
파일:독일 국기.svg 울리 슈틸리케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건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신태용·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카를로스 아르무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봉수

2015 AFC 아시안컵 명단에 선발되었다. 당초에는 김주영, 김영권, 장현수에 밀려 백업 수비수로 있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김주영이 부상당하고, 장현수의 불안한 수비 및 카드 트러블 관리를 해야해서 조 1위를 경쟁해야 하는 호주와의 경기에 출장이 불가능하자 김영권과 함께 선발로 출전했다.
파일:external/www3.pictures.zimbio.com/Kwak+Tae+Hwi+Kim+Yong+Gwon+Australia+v+Korea+lKfIEc9hPvfl.jpg
그리고 풍부한 경험으로 김영권을 커맨드하며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며 무실점에 크게 기여했다. 이 경기에서도 김영권이 실수가 아예 안 나온 것은 아니나 김영권보다 경험이 많은 곽태휘가 옆에서 수비라인을 지휘하고, 제공권과 대인 마크까지 담당하면서 불안하던 김영권의 수비를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돌려놓는데 기여하면서 탄탄한 수비를 해냈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 4강 이라크전에서도 수비진을 이끌며 전경기 무실점 승리에 일조했다.

그리고 결승전 0:1로 뒤진 상황에서 교체 가능한 공격수 자원조차 없는[6] 상황이 닥치자 최전방 공격수를 자청했고, 슈틸리케 감독은 이를 받아들이고 도박수를 던진다. 이정협과 김주영을 교체하며 김주영을 원래 곽태휘의 자리에, 그리고 곽태휘는 이정협의 자리에 들어간다. 그리고 호주의 장신 수비진과 경합을 벌이다가 마침내 손흥민의 인저리 타임 극적인 동점골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대회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아시안컵 베스트 11에도 선정되며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국가대표 경력에 영광스러운 이력을 한줄 추가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img.mbn.co.kr/006170675015.jpg
34세의 나이에 대표팀의 중심이 되다
곽태휘로서는 아시안컵은 그간의 오명과 불운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데에 성공한 본인에게는 만족스러운 대회였을 것이다. 아시안컵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곽태휘만 나오면 축구팬들은 불안해하고 신뢰하지 못했었는데, 곽태휘 또한 몇 차례의 큰 실수나 불안한 수비를 보여주며 불안감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작 리그에서는 그러한 모습은 거의 없었고 전남, 울산 시절에는 항상 수비진의 리더로 팀의 주장으로 활약하면서 안정적으로 수비를 하여 대표팀에서의 모습을 의아해하는 K리그 팬들도 많았다. 아시안컵 기간 그의 활약상은 그가 항상 불안하고 수비를 못하는 선수가 아니었음을, 팀 전술을 알맞게 맞추고 선수의 적절한 기용과 조합에 따라서 전력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지난 브라질 월드컵 이후 180도 달라진 대표팀과 함께 좋은 예가 되었다.

3.5.2. 2015년

아시안컵 이후로도 꾸준히 슈틸리케호에 선발되어 주전으로 출전 중이다.

3.5.3. 2016년

슈틸리케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을 대비해 젊은 선수들 위주로 꾸리면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줄 20대 후반, 30대 고참선수 일부를 섞는데 대표적인 선수가 곽태휘와 정성룡. 현 대표팀 수비 라인에서 곽태휘의 존재감은 상당한데 2016년 6월 유럽 원정 2연전에서 그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수비진의 무게감이 매우 달랐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한편 곽태휘는 축구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체력과 기량이 남아있는 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출전도 노리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월드컵 진출이 가능할까?

그러나 2016년 들어서 급격한 노쇠화를 드러내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중동에서 다시 K리그로 복귀한 2016년 중순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는데, 예전부터 고질적인 약점인 느린 발과 민첩성이 노쇠화와 겹치는 바람에 대표팀과 소속팀인 서울에서도 구멍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3.5.4. 2017년

2017년 6월 카타르와의 최종예선 경기에선 베테랑으로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수비에서 장현수와 함께 무너지면서 패배에 한 몫을 단단히 하게 되어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에 본의아닌 쐐기를 박게 되었다. 당시 FC 서울 팬 팟캐스트 '전격 서울사람들'에서도 이에 대해 "소속팀에서도 이미 벤치인 선수를 대체 왜 국대에 데려가서 굳이 욕을 먹이냐"며 기용 자체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슈틸리케 경질 이후 소방수 후임으로 들어온 신태용 감독은 이란-우즈벡과의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에서 기존멤버들중 발빠른 파이터형 수비수인 김주영과 프로 2년차에 불과했던 신예 김민재를 전격 선발하면서, 예상대로 폼이 이미 안좋을대로 안좋았던 곽태휘는 선발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김영권장현수가 2연전 이후 신태용 체제에서 꾸준히 중용되고, 신예 김민재가 대표팀에 빠르게 안착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때를 기점으로 점점 대표팀에서 잊혀지게 되었고, 그렇게 본인의 대표팀 경력을 2017년 6월을 끝으로 끝내게 되었다.


[1] 아마 올림픽 전 받은 군면제와 눈 문제도 탈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듯.[2] 당시 골장면에서 곽태휘는 전방으로 침투하여 골을 기록했는데 이때 득점 직전 패스를 받는 위치가 사실 오프사이드였는데 주심은 그냥 넘어갔다. 약간 행운이 섞인 골이라고 할 수 있다.[3] 사실 자책골 관련 문제는 시력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4] 강민수가 대신 들어갔다.[5] 다만 곽태휘 본인도 월드컵 바로 직전의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가나 공격수들에게 수차례 뚫리며 대패에 일조했기 때문에 솔직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 당시 부상과 많아진 나이로 인해 폼이 떨어진 것을 감안해야 한다.[6] 유일한 최전방 공격수 이정협은 완전히 방전되어 뛸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나갔고, 조영철은 중앙 공격수로 쓰기엔 함량 미달임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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