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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17:51:26

고행석

파일:/image/020/2008/10/04/200810040183.jpg

1. 개요2. 생애3. 주요 작품4. 주요 캐릭터

1. 개요

高幸錫

한국만화가.

구영탄[1][2] 시리즈를 만들어낸 전설적 만화가이자, 한국 만화계의 원로 중 하나로 8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KBS에서 애니화한 뒤 일요일에 방영해 준 <마법사의 아들 코리>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고행석 작가 홈페이지

2. 생애

1948년 전라남도 여수시 출생. 식객의 만화가 허영만과는 1살 차이고 동향 출신으로 허영만의 권유로 만화가가 되었다고도 하지만 한국의 만화가 18인을 보면 되레 허영만이 만화가로 알려진 걸 보고 라이벌로 여기며 만화가를 홀로 꿈꿨다고 다르게 나온다. 같은 동네 출신인 하승남과도 알지 의문.

위 사진을 보면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에는 덩치가 제법 있고 얼굴이 험상궂어서 사람들이 피해다녔다고 한다. 성격은 좀 소심한 면이 있는데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다니는 게 더 컴플렉스였다고. 게다가 아버지는 목재 공장을 하면서 그럭저럭 먹고 살만했기에 아들인 그에게 공장을 이어받길 바랐는데 아들이 와서 "아버지, 저 만화가 할래요~~" 이러자 아버지가 정말 뒤로 자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어린 시절 그에게 리어카로 목재를 가득 싣고 일부러 막노동을 호되게 시켰다고 한다. 지쳐서 만화책 볼 시간도 없게 하고 잔생각을 못하게 하고자, 오죽하면 아버지 지인들이 "어허~ 고사장! 아직 어린데 저건 너무 심하게 부려먹는 거 아닌가?"라고 기겁했을 정도로 엄청 일을 시켰다고 한다. 덕분에 젊은 시절에는 제법 근육이 붙어서 공교롭게도 저 컴플렉스에 기여했다고(...). 그렇게 나이 스물 넘고 군대 가서 제대하고 돌아와서도 아버지는 목재 공장일을 하도록 권유했는데 허영만이 만화가로 데뷔한 걸 보고 그는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만화가가 되려고 했지만 20대 중반에 문하생이 되려니까 자리도 없었다. 겨우 이름없는 만화가의 문하생 자리를 얻었지만 고생만 실컷 하고 온갖 잡일이나 시키며 돈도 못 받고 도무지 도움이 못돼 그 만화가에게 욕하고 때려치고 나와 고향에 갔다가 다시 만화가를 꿈꾸며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여전히 서울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막노동판에서 별 일을 다했다. 물론 만화가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부유하진 않아도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게 될 테지만 만화가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고향에는 일절 연락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 쓴다는 걸 불효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만화가로선 도저히 성공하지 못한다고 불안해 했는데 때마침 박기준 화백이 새 문하생을 뽑는다는 정보를 듣고 이걸 기회로 삼고자 노력했다.

당시 문하생들은 돈도 못 받는 게 흔했지만[3] 박기준은 성공한 만화가로서 드물게 돈을 꼬박 내줬고 작품만 다하면 휴일 및 자유시간이 보장되어서 문하생 경쟁이 심했다고 한다. 응시할 작품을 다 그렸지만 외모가 험상궂어 보여 도무지 자신이 없어 대신 아우에게 연락하여 작품을 가지고 가서 보내게 했다. 박기준 화백이 이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문하생으로 채용했는데 정작 고행석과 아우가 와서 사정을 설명했다고 한다. 박기준은 회고에서 유순하게 생긴 젊은이가 작품을 내서 마음에 들어 오라고 했더니만 그 젊은이와 함께 꽤 무섭게 생긴 젊은이가 같이 오더니만 사정을 설명했다고... 하지만 박기준은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덕분에 박기준 화백과 지금도 연락하면서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여기에서 7년 동안 문하생으로 있다가 1980년 독립하여 데뷔한다. 하지만 데뷔작은 가까스로 대본소 업체에 작품을 내게 되었지만 원고까지 넘기고 난 걸 보니 엉망으로 편집하여 너무나도 한이 맺혀 울면서 집에서 술마시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비까지 보태서 만화를 내기로 계약했는데 제목이 "먼 데서 왔어요"였다. 그런데 이걸 본 대본소 업체 간부가 제목이 별로 안 웃기니 웃긴 걸로 확 드러나게 바꾸자고 권하여 나온 게 요절복통 불청객인데 1983년에 낸 이 작품이 성공하면서 비로소 알려지게 된다.

1권이 나올 당시 45만원을 받았는데 2권은 55만원, 3권은 65만원 갈수록 계약금이 올라갔다고 한다. 이 당시, 어린 딸이 통닭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이 만화가 성공하여 받은 계약금으로 통닭을 가득 사와서 집에서 식구들과 같이 먹으면서 울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주로 불청객 시리즈로 통칭되는 작품으로, 구영탄이라고 하는 뭔가 겉으로 보기엔 현실부적응자같은 모습의 주인공이 여주인공 박은하가 있는 사회 공동체에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 그 사회에서 불청객 취급을 받으며 외면당하고 특히 박은하에게 구박받지만, 점점 드러나는 구영탄의 엄청난 능력과 그의 선량한 성격에 의해 그 사회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고 박은하도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당시의 주류였던 이현세박봉성의,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 끝에 세상의 승리자가 되어 부와 명예 , 사랑을 모두 쟁취한다는 냉혹한 세계관의 작품과 굉장히 대조되며, 현실도피적이긴 하지만 독자에게 희망을 주는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더불어 이 분 작품이 이런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작가 자신이 가난했던 시절과 같이 고통스러운 몸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불치병인 말초혈관 폐색증이란 병을 앓고 있는데 심하면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 다행히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게 발작이 일어나면 다리가 잘려나가는 느낌이 찾아오는데 아픈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러워 비명지르고 아예 거품을 물면서 기절하여 병원에 실려가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나마 어릴 적부터 목재 공장에서 목재들을 손수 리어카에 싣고 힘껏 일하며 키운 근육과 몸으로 겨우 극복했다고 한다.

이 병은 치료방법도 없기에 그나마 은행잎을 재료로 하는 약으로 안정제를 쓰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은 안정적으로 수익도 들어오니까 문제없지만 가난하던 시절에는 밥먹을 돈도 없었기에 약 살 돈이 없어서 이를 악물고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리면 만화를 그리다 보니, 자신의 작품에서 이런 느낌이 들어가게 그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 때문인지, 가끔씩 그려낸 진지한 작품에서의 가난과 모진 현실에 대한 묘사가 섬뜩하게 리얼하다.[4]

고행석 본인의 이름으로 나온 작품이 300개가 넘는다. 작품 1개당 보통 20-30권 정도 되는 걸 감안한다면 정말로 작품이 많은 작가다. 작품이 많은 이유는 80-90년대, 작가의 인기가 한창일 때의 우리나라 만화계의 대본소시스템 때문이다. 작품의 질보다는 양을 위해서, 작가의 작업실에 100여명의 팀원이 모여서 인물, 배경, 스토리 등을 따로따로 맡아 하면서, 그리고 가끔은 주인공도 작가 본인이 아닌 문하생이 그려가면서, 매달 30권이 넘는 책을 그려냈던 것이다. 대본소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대여점에서는 국내작가의 작품보다는 일본만화의 번역본을 훨씬 더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게다가 웹툰이 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에는 작가의 지명도와 더불어 작품의 완성도를 많이 중시하는 업계 특성상,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만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경우가 가끔 있다.[5][6][7]

참고로 그의 밑에서 스토리를 짜다가 독립해 성공한(?) 인물이 바로 김성모라고 하지만 정작, 고행석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선생님께 여쭤보니 지금 만화가로 활동하시는 김성모 작가님이 저희 스토리 작가로 일한 적은 없다고 하시네요.'라고 밝혔다. 아마 무명시절 짧게 한두 편 정도만 참여한 것을 김성모가 부풀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침착맨의 초대석에서 말하길, 당시 규모가 있던 고행석 화실에 2부리그같은 부 그룹이 있었고 여기서 스토리를 썼다고 한다.

최신작들의 화풍은 디지털 작업을 하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스포츠 조선에 15년만에 연재했던 " 커브 "는 이미 2000년대 중순에 나와 완결된 작품이다. 덕분에 박찬오, 도모 히데오 같은 많이 듣던 옛 현역들이 나온다.

2016년 11월 1일 네이버 웹툰 '한국만화 거장전' 릴레이 기획에서 20번째 에피소드를 자전적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보기 위에 서술된 이야기가 고행석 본인의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 다만 여길 보면 알겠지만 웹툰 연재를 시도하려고 해도 번번히 실패하고 있으며 신작 소식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대본소도 박살나고 연재만화잡지도 별로 없는 상황이라 웹툰 연재마저도 안되어 아쉬움을 작품 속에 그렸다.

2021년 그의 작품 대부분이 무툰에서 리메이크되어 있다.

3. 주요 작품

4. 주요 캐릭터


[1] 이현세오혜성처럼 20세기 한국 만화계 레전드 시리즈이다. 1990년대 일밤의 리즈 시절 당시 최고의 인기 개그맨 이휘재가 막간 토크 시간(당시는 이런 시점에 대본 없이 애드립으로 1분에서 2분 정도 진행자끼리 이야기를 하게 하는 연출이 일반적이었다)에 만화 얘기가 나오자 청소년기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만화로 구영탄 시리즈를 언급했고, 이를 안 본 이경규가 "그래요"라며 무시하며 넘어간 적이 있었다. 문제는 당시도 구영탄 시리즈 만화는 연재 중이었다는 것이다.[2] 의외로 쿵쿵따 시리즈에서도 언급이 되었는데 당시에 출연했던 패널이 "구" 로 시작해야하는 단어를 언급하려다가 생각치도 못하게 "구영탄!"을 언급했는데 잠시 멍하니 정적이 흐르다가 벌칙단들에게 벌칙을 당하면서도 나중에는 구영탄 캐릭터의 이미지가 뜨면서 반쯤은 억울한 벌칙을 당한 셈이 되었다(......)[3] 그냥 도제같이 기술 습득이라는 태도로 돈은 커녕 재워주고 밥이나 주면 된다는 인식이 많던 시절이다. 심지어 집안일이나 이삿짐 나르기까지 무상봉사시키는 것도 흔했다. 때론 문하생이 연습한 그림이나 줄거리 설정을 억지로 빼앗아가는 것도 흔했다. 신일숙이 문하생 시절, 구상했던 줄거리와 그림을 이렇게 억지로 빼앗기고 이를 갈며 독립했고 자신은 문하생에게 이런 짓 안한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무직이 욕먹는 게 한국만화계 병폐를 비난한다며 여러 글을 쓰며 이런 점을 신나게 비난하더니만 , 정작 자신이 일본에서 화실을 차리고 문하생들에게 똑같이 대하며 내로남불이라고 욕먹는 점이다.[4] 이런 작품에서는 매개체로 통닭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무명작가 시절 통닭을 먹고싶어 하던 딸아이에게 사주지 못했던 슬픈 경험을 토대로 한 듯하다.[5] 그렇다고 마냥 대본소에서만 고정적으로 작품을 낸 것은 아니고 소년만화 잡지에도 나름 연재를 하기도 했다.압도적으로 대본소 작품 혹은 성인극화가 많아서 단지 묻힐 뿐.[6] 같은 대본소 시스템 시기의 유명작가 중에, 허영만의 경우는 80년대 말, 대본소 시스템을 거부하고 소수의 인원만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그리고 스토리 작가의 이름을 작품에 공동명시하기 시작하면서 (박하)(김세영을 넣기도 하지만, 이 작자는 나중에 강영환과 수익 분배 문제에서 스토리 작가인 자신이 그림을 다 그린 것처럼 만들면서 결국 이전 관행을 재방송했다.) 나중에 대여점 시스템에서도 앞서나가는 작가가 되었다, 웹툰에서도 인기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들이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실력으로 웹툰이 아닌 다른 업계, 이를 테면 신문연재 등에 대한 꾸준한 요청이 있다. 고행석보다 나이가 더 많은 원로작가임에도 다양한 장르에 대한 꾸준한 시도와 자료수집을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7] 이현세도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작가로 꼽을 때도 있지만, 이현세의 경우는, 1997년부터 10년을 끌었던 천국의 신화 의 청소년 유해판정 관련 법정 논쟁을 무시할 수 없다. 그 기간 동안 사실상 작가 활동을 못했으니, 시대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2015년 웹툰에 천국의 신화 재연재를 시작했으나, 이번에는 역사왜곡으로 또 논란에 휘말렸다. 자세한 내용은, 천국의 신화/논란 참조.[8] 구만수는 운명을 맹신하는 바람에 완전히 망하고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박은하와 반 친구들은 운명을 부정하지만 결국 정해진 운명에 농락당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9] 그것도 마치 갑부인 것처럼 해당 식당에서 제일 비싼 요리를 엄청 많이 시킨 뒤 다 먹고 그 특유의 질풍같은 동작으로 도망친다.[10] 이 거위가 낳은 알을 먹으면 수명이 1년 연장되는데 그 연장된 수명기간 동안에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11] 거위의 원래 주인도 아니다. 다른 도둑한테서 노략질한 것이다.[12] 이 작품에서 쓰는 이름이 엄청 길다. '말라가시 우리 겐트 시포티아 세빌로비치 카나리아 코코넛'.[13] 박은하 일당이 자기를 이용하려고 접근했단 걸 알면서도 자기 어깨를 아작내가면서 받은 돈 1억원을 모두 넘겨줬다.[14] 조폭이 등장하지 않는 얼마 안 되는 후기 작품. NANA처럼 밴드를 소재로 다뤘다.[15] 경마를 다룬 작품인데 김성모의 999.9 마신처럼 상당히 경마 연구를 열심히 했다. 후기작 중 얼마 안되는 명작.[16] 없는 게 나은 녀석들 - 세차장 알바를 하지만 손님차로 카 레이싱을 하는 바람에 손님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는 인물, 불청객과 귀인 - 너무 무능해서 구걸로 먹고 사는 거지 등[17] "사각의 불청객"에서는 은하의 오빠로 나왔다. 그래서 은하의 이름이 '마은하' 가 됐다. 또한 구영탄 대신 박은하와 맺어지기도 했는데 다만 이 쪽은 아예 처음부터 구영탄과 박은하의 접점이 전혀 없는 경우였다.[18] 박은하가 작품 초반에 죽거나 악녀로 등장할 때.[19] 구영탄은 노총각 시인이고, 동창생들이 삼식이, 동구, 장치섭, 오동구 등이다. 박민과 김수미도 동창생인데, 학생일 때 둘이 눈이 맞아서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다소 어린 은하와 커플이 될 뻔했던 영탄은 상견례 자리에서 박민과 김수미, 심지어 다른 동창들에게까지, "친구의 딸과 결혼하려 한 놈" 이라는 욕을 먹고 결혼을 포기한다.[20] 하지만 친아버지는 아니고 길을 잃은 아이를 키운 것이다. 지옥훈련을 각오하고 무인도로 가던 길에 집을 잃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 고아원에서 힘들게 자랐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자기가 직접 키우기로 하고 무인도로 데려간다. 이 작품에서도 구영탄의 친아버지는 구만수이다. 집에 찾아왔던 김당한이 술김에 '구만수 속 좀 타봐라' 라는 마음으로 잠깐 데리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죽는 바람에 장뒤석이 영탄의 친아버지가 죽었다고 오해한 것이다.[21] 김당한은 전설의 야구왕에서 구영탄의 라이벌로 나오는 김훈의 아버지이다. 야구선수인데 성적이 안 좋아져서 2군으로 떨어지자 감독인 구만수에게 화를 내러 갔던 것이다. 자기를 따라나오는 철없는 영탄을 2-3일 데리고 있다가 돌려보낼 생각이었는데, 사고를 당한 것이다. 김당한의 아내는 구만수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어린 아들에게 특수훈련을 시켜서 뛰어난 야구선수가 되어 구만수에게 보복하려고 한다.[22] 던지고 나면 기절한다(…). 구영탄도 똑같은 속도로 던질 수 있는데 장뒤섭과 달리 거의 무제한으로 던질 수 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나중에 나오는데 알고 보니 먼 우주에 있는 쌍둥이 자리 용사의 기운을 타고 나서라고. 덧붙이자면 다른 작품인 가짜 불청객의 구영탄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작품에선 혈통빨 그런 거 없이 그냥 가능한 걸로 나온다.[23] 호쾌한 캐릭터로 자주 등장하나 만약 악역일 경우 최종 보스가 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