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7:41:58
1. 개요2. 상세3. 관련 발언4. 관련 문서
[clearfix]"경제제일주의"는 경제적 성장을 최우선으로 삼는 정치적, 사회적 철학을 뜻한다. 2.1. 경제제일주의의 본질
-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단순화된 신념에 기초하며, 정치, 사회, 환경 등의 문제를 경제 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종종 GDP, GNP, 경제성장률 등의 수치적 지표에 집착하며 이를 국가 발전의 핵심 척도로 간주한다.
- 경제제일주의는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능력주의, 실적주의, 황금만능주의와 결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18~19세기 산업혁명은 경제제일주의의 기초를 마련했다. 생산 기술의 혁신과 대량 생산 체제는 국가의 경제력이 곧 군사력과 정치적 권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국, 프랑스 등 초기 산업화 국가들은 경제 성장을 통해 세계 시장을 지배했고, 이는 경제 우선주의 사고를 강화했다.1929년 대공황은 경제제일주의가 단순한 자유방임주의(capitalism)만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케인스주의가 등장하여 경제 성장을 위한 적극적인 정부 개입과 재정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경제제일주의는 국가 주도의 경제 계획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냉전(1947~1991) 기간 동안,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은 경제적 경쟁을 통해 체제 우위를 증명하려 했다. 미국의 마셜 플랜(1948)은 유럽 국가들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유지하도록 경제 지원을 통해 경제제일주의를 부추겼다. 소련 역시 5개년 경제 계획을 통해 중앙집권적 경제 성장을 추진하며 사회주의 경제제일주의를 실현하려 했다.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경제제일주의의 현대적 형태로 볼 수 있다. 시장 자율성을 강조하며, 경제 성과가 곧 국가 및 기업의 성공을 정의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제일주의가 확산되었다.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자유시장 경제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을 유도하는 정책을 강요했다.
2.3. 한국의 경제제일주의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는 경제제일주의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당시 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중화학공업 및 수출 중심 경제를 육성했다. 이로 인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동시에 빈부격차, 노동자 착취, 환경 파괴 등의 문제를 초래했다.한국 정부는 베트남 전쟁(1964~1975)에 파병하며 경제적 이익을 강조했다.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는 조건으로 군대를 지원했으며, 이를 통해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주요 인프라를 구축할 자금을 마련했다. 이는 경제제일주의적 사고가 외교 및 국방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다.1997년 IMF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제일주의의 한계를 드러냈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며, 경제제일주의가 더욱 강화된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이 시기의 열정페이, 비정규직 확산 등은 경제적 효율성 추구가 노동자 권리와 삶의 질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3. 관련 발언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클린턴 캠프가 사용한 캐치 프레이즈.
조지 H. W. 부시의 재선을 저지하고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결정적인 구호로 꼽힌다.
4.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