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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07 03:27:02

가자파티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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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야밤사
सूर्यवंश
파일:Indian_Empire_of_Gajapati_map.svg.png
카필렌드라 데바 치하의 가자파티 제국
1434년 ~ 1541년
수도 쿠타크
공용어 오디야어[1]
산스크리트어[2]
기타 인도 언어들
종교 힌두교
성립이전 동강가 왕조
멸망이후 보이 왕조
바흐마니 술탄국
골콘다 술탄국
벵골 술탄국

1. 개요2. 역사
2.1. 배경2.2. 건국과 전성기2.3. 쇠퇴와 멸망

[clearfix]

1. 개요

가자파티 왕조(ଗଜପତି ସାମ୍ରାଜ୍ୟ), 혹은 수리야밤샤(सूर्यवंश)[3]는 오늘날 인도의 오디샤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중세 인도의 힌두 왕조이다.

2. 역사

2.1. 배경

오늘날 오디샤 지역은 고대에는 '칼링가'라는 지명으로 불렸으며 북인도와 남인도의 영향을 고루 받아들였고, 또한 해안과 접해있어 외부와의 교류 및 무역이 편리하였으며 덕분에 문화와 경제가 매우 발달한 곳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다른 세력으로부터의 위협에 쉽게 노출될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칼링가 지역은 남인도 세력에게는 북인도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였고,[4] 북인도와 중인도 세력에게는 남인도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지역이었으므로 셀수 없이 많은 침략을 받았다. 특히 기원전 3세기경 마우리아 왕조아소카 왕이 이곳을 탐내어 쳐들어왔다가 전쟁의 참혹함을 깨닫고 불교로 개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가자파티 제국의 성립 이전에 칼링가 지역은 오디샤인의 토착 왕국이었던 동강가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동강가 왕조는 찰루키아 왕조촐라 제국 등과 힘겹게 싸우면서 독립을 지켜나갔으나, 1264년에 나라심하데바 1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기나긴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며 1358년에는 투글루크 왕조가 이끄는 델리 술탄국 군대의 침공을 받아 조공국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동강가 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던 '미친 왕' 바누데바 4세는 폭정을 일삼다가 1425년에 급사하였다. 이후 왕위가 공석이 된 상태에서 재상이었던 카필렌드라 데바가 왕위를 찬탈하여 새롭게 왕조를 개창하니, 이것이 바로 가자파티 제국의 시작이다.

2.2. 건국과 전성기

카필렌드라 데바가 왕위에 오를 무렵, 칼링가 지역 주변에는 야심만만한 외부 세력들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오디샤 지역을 위협하던 대표적인 세력으로는 자운푸르 술탄국, 바흐마니 술탄국, 벵골 술탄국 등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 칼링가 자체의 힘만으로는 이겨내기가 몹시 힘들었다. 심지어 같은 힌두 왕조였던 비자야나가라 제국이나 레디 왕조[5] 등도 남부의 심하찰람 산맥까지 점령하면서 칼링가 지역을 호시탐탐 노렸다.

카필렌드라 데바는 외부의 침입에 맞서기 전에 우선 내부를 안정시키는 데 집중하였다. 몇년에 걸쳐 반란을 진압하고 개혁정책을 실시한 카필렌드라 데바는 때마침 쳐들어온 자운푸르 군대와 벵골 군대를 잇달아 물리쳤으며, 자신이 임명한 재상 고피나스 마하파트라와 함께 주변 세력와 남인도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정벌을 시작한다.

1444년부터 본격적인 원정에 착수한 카필렌드라 데바의 첫번째 목표는 남인도의 비자야나가라 제국과 레디 왕조였다. 당시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데바 라야 2세의 치하에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자운푸르 술탄국의 병력이 가자파티 왕조의 북부 지역을 침공하는 일이 일어난다. 양면전선을 우려한 카필렌드라는 남인도에 대한 원정은 잠시 중단하고, 북부의 위협부터 제거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해에 자운푸르 군대를 대파한 카필렌드라는 2년 뒤인 1446년에 재차 남인도 원정을 재개한다. 이때는 이미 데바 라야 2세가 사망한 뒤였고 비자야나가라 군대도 별볼일 없었기 때문에, 가자파티 군대는 손쉽게 레디 왕조의 수도인 콘바디두를 점령했고 얼마 안있어 완전히 남부를 평정하게 된다. 카필렌드라는 신하였던 가나데바를 봉신 군주로 임명하고, 아들 함비라 데바를 남부 총독으로 봉하여 두명에게 이 지역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1447년, 가자파티 왕조의 팽창을 두려워한 벵골 술탄국이 다시한번 쳐들어왔으나 고피나스 마하파트라가 이끄는 가자파티 군대에게 격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카필렌드라는 여세를 몰아 벵골 본토를 침공, 당시 벵골 술탄이었던 나시르 웃딘 마흐무드 샤를 격파하고 벵골 술탄국을 조공국으로 만들었다. 이 정벌로 인해 카필렌드라는 '가우다 왕국의 왕'이라는 칭호를 겸하였고, 벵골 서남부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이후 혼란스럽던 당시 중부 인도의 상황에 개입한 카필렌드라는 말와를 정벌하고 마후르와 비다르 요새를 그들로부터 빼앗아 왔으며, 데칸의 강자였던 바흐마니 술탄국을 침공하여 텔랑가나 일부를 점령한다.[6]

1450년대 후반, 카필렌드라 데바는 관심을 다시 남쪽으로 돌려 아들 함비라 데바에게 비자야나가라 제국과 바흐마니 술탄국의 정복을 명한다. 함비라 데바는 비자야나가라 제국의 수도인 비자야나가르를 성공적으로 함락시키고 당시 황제였던 말리카르주나 라야에게 매년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하였다. 또한 함비라 데바 휘하의 장군이었던 타마부팔라는 1460년경에 우다야기리와 찬드라기리를 정복하고 이 지역에 요새를 건설하여 가자파티 제국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였다. 스리랑감 사원 비문에 따르면, 힘비라 데바는 남쪽의 트리치나팔리, 탄자우르, 아르콧까지 정복한 후 진격을 멈췄다고 한다. 이때의 가자파티 제국은 북쪽으로는 갠지스강 하구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남인도 중부의 티루치라팔리까지, 동쪽으로는 벵골 남서부에서 서쪽으로는 동고츠산맥까지 이르는, 당대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힌두제국이었다.[7]

2.3. 쇠퇴와 멸망

그러나 급격한 확장은 곧 주변세력들의 강력한 견제를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카필렌드라 데바 사후, 뒤를 이은 푸루쇼타마 데바시기에 가자파티 왕조는 비자야나가르 제국과 골콘다 술탄국의 동시침공을 받아 남부 영토 대부분을 잃어버린다. 또한 북부에서도 벵골 술탄국이 다시금 세력을 회복하여 가자파티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16세기 초가 되면 가자파티 왕조의 영토는 칼링가 지역에만 국한되게 되었다.

가자파티 제국의 세번째 황제였던 프라타파루드라 데바는 종교에만 심취하던 인물이었다. 그의 치세에 외세의 침공과 영토 상실은 더욱 심각해졌으며 제국의 영토는 나날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는 정치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채로 문학을 장려하고 사원을 짓는데 몰두하였다. 그의 사후 유약한 왕들이 잇달아 즉위하였는데, 이들 역시 정치를 개판으로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를 보다못한 신하 고빈다 비디야하라가 1541년 왕위를 찬탈하고 보이 왕조를 개창하면서 가자파티 제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 궁정어, 문학어[2] 종교어[3] '태양 왕조'라는 뜻으로, 고대 힌두신화에서 유래한 왕조명이다. 그 유명한 전륜성왕의 시조가 바로 이 왕조 출신이다.[4] 촐라 제국이 이길을 통해서 벵골로 쳐들어갔다.[5] 오디샤 바로 밑에 위치해있던 토착 왕조였다. 존속기간은 1325년~1448년.[6] 카필렌드라 데바는 이후 1461년에 카카티야 왕조와 연합하여 또다시 바흐마니 술탄국을 패배시켰으나, 자운푸르 술탄국이 갑작스럽게 칼링가를 침공해오자 급히 회군해야 했다. 그로써는 데칸 지역을 정복할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었다.[7] 위 지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