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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02:32:53

가르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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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80000><colcolor=#fff> 가르멜 산의 지극히 거룩한 동정 마리아의 수도회
Ordo Fratrum Beatissimae Mariae Virginis de Monte Carmelo
Order of the Brothers of the Blessed Virgin Mary of Mount Carmel
파일:2b08fab1039d4c743bc6e0e72d39a2d2--faith-bible-spiritual-life.jpg
약칭 Ocarm,Carmelitae
형태 탁발수도회
기원 12세기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communitysmiling2.jpg
1. 개요2. 상세3.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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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틴어: Ordo Fratrum Beatissimae Mariae Virginis de Monte Carmelo
영어: Order of the Brothers of the Blessed Virgin Mary of Mount Carmel, Carmelites

Carmelitae
O.Carm.
Zelo zelatus sum pro Domino Deo exercituum
나는 만군의 주 하느님을 향한 열정에 불탔노라.

가르멜은 지중해 연안 갈릴래아 지방에 있는 해발 546 m짜리 산의 이름으로, '비옥한 땅, 포도밭'이라는 뜻이다.

이 산의 이름을 딴 「가르멜 산의 지극히 거룩한 동정 마리아수도회」(Ordo Fratrum Beatissimæ Virginis Mariæ de Monte Carmelo, Order of the Brothers of the Blessed Virgin Mary of Mount Carmel)는 엄률관상수도회로서 구약성경의 대예언자 엘리야에게 기원을 둔다.

2. 상세

가르멜 수도회는 특정한 창설자가 없다. 가르멜산에 은수자들이 각각 모여들어 살던 것이 가르멜 수도회 조직으로 이어졌다. 이 들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역사적 연관이 없지만 구약성경에서 가르멜산과 관련되어 언급되는 엘리야를 상징적인 수도회의 비조로 받들었다.

교회와 사회가 분열로 혼탁했던 12세기 때는 은수생활과 성지순례로 자신의 죄를 씻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당수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소원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생활하고 활동했던 지역을 방문해 자신의 남은 생애를 고독과 청빈, 무욕의 삶을 살려고 애썼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당시 성지순례와 탈환을 위해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고 십자군들은 팔레스타인까지 이르렀는데 이때 일부 사람들은 가르멜산에 남아 은수자 생활을 시작했다.

수도회의 모습을 갖춘 최초의 공동체는 1150년경 엘리야와 그의 후예들이 살았던 엘리야 샘 근처에 엘리야의 정신대로 살던 성 벨톨드(Belthold)와 그 주위에 모인 일단의 은수자들이 자신들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고 스스로를 「가르멜 산의 지극히 거룩한 동정 마리아의 형제들」이라고 지칭하면서 시작됐다.

1210년 원장 성 부로까르도가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성 알베르토에게 규칙을 요청했고 작성된 회칙은 1226년 교황 호노리오 3세와 1245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게 인준을 받았다.

그러나 사라센족의 침입을 피해 가르멜산의 은수자들이 유럽으로 이주해간 때부터 수도회는 새 국면을 맞았다. 유럽의 생활양식에 순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당시의 총장 성 시몬 스톡은 가르멜 수도회를 다른 탁발수도회에 가깝게 바꾸어놓았다.

이렇게 남자 가르멜 수도자들이 하나의 조직된 공동체로 체계가 잡혀갈 무렵 신심 깊은 여자들도 함께 모여 공동생활을 해나가다가 1452년 수도회의 부흥에 큰 역할을 한 총장 복자 요한 소렛이 허가함으로써 여자 가르멜회가 탄생했다.

그러나 유럽을 휩쓴 페스트 때문에 당시 거의 모든 수도회가 겪었던 바와 같이 가르멜 수도회도 기강이 크게 흔들렸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수도회 주변 지역으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도 있게 되었다.[1] 이때 가톨릭에서는 매우 유명한 성녀 예수의 데레사[2] 성녀가 완전한 기도와 고행의 개혁수도회를 창설해 교회쇄신의 전기를 마련하는 한편 끊임없는 묵상기도를 통해 신비신학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데레사 수녀는 당시 가르멜 수도회가 극기생활이 등한시할 적에 주변에서 심하게 반대받음에도 불구하고 가르멜 수녀원을 완전한 가난이라는 본래의 엄격함으로 개혁하였다.

데레사 수녀는 끊임없는 묵상기도를 통해 탈혼과 환시를 경험하면서 1562년 초기 가르멜회의 엄격성을 부활시킨 개혁가르멜회인 「맨발의 가르멜수녀회」를 창했다. 1568년에는 십자가의 요한과 만나 「맨발의 가르멜 남자수도회」를 창설하는 등 20년 동안 스페인 전역을 여행하면서 남녀 수도원 17곳을 설립했다.

이로써 현재 전세계에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개혁을 따르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와 개혁 이전의 규칙을 따르는 「완화 가르멜 수도회」가 함께 있는데 한국에 있는 모든 남녀 수도회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에 속한다.

가르멜 수도회는 현재 전세계 126개국에 850여 개 남녀 가르멜 수도원이 있는 국제 수도회로 수녀 1만 1,657명과 수사 4,051명이 있다. 가르멜 정신으로 살고자 하는 여러 활동수도회와 가르멜 영성을 세상 한가운데서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많은 3회원들이 가르멜의 영적 가족으로 유대를 이룬다.

3. 한국에서


가르멜의 관상과 침묵, 기도의 전통은 1939년 프랑스에서 온 가르멜 수녀 3명이 서울 혜화동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국인들에게 전해졌다. 수녀들에 의해 처음으로 한반도로 진출한 가르멜회원들은 일제강점기6.25 전쟁을 거치면서 기도와 출판활동을 하면서 함께 성장해왔고, 미사에 쓰이는 제병도 가르멜회 수녀들이 제작하고 있다.

가르멜회 수녀들이 제병을 만드는 과정
서울 가르멜 수녀원은 1955년 부산 가르멜을, 1975년 대전 가르멜을 분가시켰으며, 1980년에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분가시켰다. 대구 가르멜 수녀원은 1962년 오스트리아에서 진출한 가르멜 수녀들에 의해 창립됐으며, 부산 가르멜 수녀원은 1984년 경상남도 고성군 가르멜 수녀원을, 대전 가르멜 수녀원은 1987년 충청북도 충주시 가르멜 수녀원을 각각 창립 분가시켰다. 1997년 대구 가르멜 수녀원이 경상북도 상주시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 분가하면서 현재 한국에는 모두 8개의 가르멜 수녀원이 있다.

이와 함께 남자 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중반 프랑스 아비뇽 아끼텐 관구에 입회해 양성받은 한국인 성소자 3명과 이탈리아 베네치아 관구 요아킴 귀조 신부가 1974년 7월 입국하고 같은 해 9월 8일 창립 미사를 거행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2001년 한국 지부에서 준관구로, 2009년 관구로 승격됐다. 총평의회는 관구 승격과 동시에 한국 관구에 중국 선교를 일임, 다른 나라에 가르멜 영성을 전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 관구 소속으로 서울 명륜동에 위치한 관구 본부 수도원을 비롯해 인천·마산·광주·성주·LA·대만 신주 등지에 7개 수도원이 있으며, 종신서원자 47명과 유기서원자 5명, 수련자 1명, 청원자 3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48년 프랑스인 앙투안 공베르 신부에 의해 한국 가르멜재속회가 발족됐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잠시 중단됐고 1968년에서야 가르멜회 총장으로부터 인준을 받아 정식 가르멜3회를 발족했다. 이후 전국 곳곳에서 가르멜재속회가 창립됐고 1991년에는 한국 가르멜 재속연합회가 창립됐다. 현재 한국에는 3천여명 이상의 재속회원들이 있으며, 미국 LA, 뉴욕, 워싱턴 DC에서도 재속회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1년 10월 가르멜회의 정순택 베드로 주교가 대주교 승품과 동시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동년 12월 8일 주교좌에 착좌하였다. 한국 가르멜회 수도자로서는 최초의 주교이자, 천주교 서울대교구로서는 최초의 수도회 출신의 교구장이 된다.


[1] 이를 악용해 2인 1조로 민가에 침입해서 주변 여성들을 겁탈하는 수사들도 있었다. fuck 항목에 수록된 시 Flen Flyys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2] 아빌라의 데레사라고도 하고, 소화(小花) 데레사와 구분하여 대(大) 데레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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