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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76/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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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Т-76 «Плаву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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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냉전기
2.1. 헝가리 혁명2.2. 인도차이나 전쟁
2.2.1. 베트남 전쟁
2.2.1.1. 케산 전투2.2.1.2. 벤 헷 전투
2.2.2. 라오스 내전
2.2.2.1. 9번 국도 전투
2.3. 중동전쟁
2.3.1. 6일 전쟁2.3.2. 욤 키푸르 전쟁
2.3.2.1. 오르하 단지 전투
2.4. 프라하의 봄2.5. 에티오피아 내전2.6. 인도-파키스탄 전쟁
2.6.1.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2.6.1.1. 가리푸르 전투
2.7. 동티모르 침공2.8. 앙골라 내전2.9. 캄보디아-베트남 전쟁2.10. 이란-이라크 전쟁2.11. 걸프 전쟁
3. 현대전
3.1. 유고슬라비아 전쟁
3.1.1.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3.1.2. 열흘전쟁3.1.3. 보스니아 전쟁
3.2. 제1차 체첸 전쟁3.3. 제2차 체첸 전쟁3.4. 이라크 전쟁3.5. 아체 분쟁3.6. 2012년 말리 쿠데타

1. 개요

소련에서 냉전기 개발한 수륙양용경전차 PT-76의 실전 동원 목록 일람 문서.

해당 전차는 저렴한 가격에 세계 각지로 뿌려져 사용되었기에 냉전부터 현대전까지 끊임없이 각국에서 실전에 동원되었다.

2. 냉전기

2.1. 헝가리 혁명

파일:Soviet PT-76 in Budapest. 1956.webp
헝가리 혁명 진압에 투입된 소련 해군 보병대 소속 PT-76 "458번차"
PT-76의 첫 실전은 헝가리 혁명이었으며, 당시 소련군을 필두로 한 바르샤바 조약군이 진압 목적으로 투입시켰다.

2.2. 인도차이나 전쟁

2.2.1. 베트남 전쟁

파일:external/pds10.egloos.com/f0060489_48cdc1c39d6dc.jpg
베트남 전쟁 시기의 북베트남 육군 소속 PT-76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PT-76은 굉장한 활약을 펼쳤는데, 전차 운행이 불가능한 습지나 하천에서도 무리없이 기동 가능하고, 수륙양용이었기에 미군 및 남베트남군이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기습을 자주 가해 큰 성과를 올렸다고 한다.
2.2.1.1. 케산 전투
파일:e758305c8621a1bf47262b2316dfc1c5.jpg
랑 베이 전투 당시 북베트남 육군 소속 PT-76B 전차 소대와의 전투를 묘사한 일러스트
케산 전투의 시작을 알린 랑 베이 전투에서는 베트남 인민군이 선두에 6대의 PT-76를 내세워 라오스 근처의 랑 베이 특수부대 캠프를 초토화시키게 되는데, 당시 미군은 알보병인 줄만 알았던 월맹군이 전차를 운용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기지를 지키던 그린베레와 산악부족 몽타냐드들도 모든 게 열세였던 상황에서 전차 2대를 파괴하는 등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케산으로 후퇴해야 했는데, 전투 내내 베트남군이 전차를 대동하고 기습했다면서 계속 지원 요청을 했으나 이 소식을 들은 미 장성들이 "우리가 보고받은 바로는 베트남 측에는 그러한 지형에서 운용할 수 있는 전차가 없는 것으로 보이며, 야간에 장병들이 잘못 본 것으로 추정된다."라는 말로 어영부영하다가 반격시기를 놓친 것도 패배에 한 몫 했다.

이 랑 베이 전투에서 미군과 몽타냐드군이 패주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사유가, M72 LAW로 PT-76을 격파하는 것에 실패했던 것이 꼽히는데, 이 M72는 원래 전투 시기 주력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며, 106mm M40 무반동포로 3~4대 정도를 격파했지만, 포탄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M72를 집어든 것이었다.

또한, M72의 관통력으로는 충분히 PT-76을 격파 가능했지만, 당시 야간이라 정확히 차체 하단을 노리는 것이 불가능해 대충 보이는 실루엣에 조준하여 미군은 전면 상부의 경사장갑을 가격했는데, 몇몇 탄은 전면 파도막이를 들이받고 튕겨나갔다고 한다.

이후 전훈을 얻은 미군 측에서도 상부 경사장갑 탓에 자꾸 도탄이 나는 것을 본 이후부터는 M72로 PT-76의 측면을 가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2.2.1.2. 벤 헷 전투
파일:A PT-76 from the NVA 202nd Armored Regiment, destroyed by US M48 Pattons - March 3, 1969, Vietnam.webp
벤 헷 전투 당시 미군의 M48 패튼에 의해 격파된 베트남 인민군 산하 제202기갑연대 소속 PT-76B[1]
1969년 벤 헷 전투에서 M48 패튼 중대와 대결하기도 했는데, PT-76이 대전차 지뢰를 밟아 무력화된 와중에도 선두에 있던 소대장차에게 반격을 날려 탄약수와 조종수가 사망하였으며, 결과적으로는 월맹군 측에서 PT-76 2량을 손실하고 물러나긴 했지만 체급적으로 상대가 안되는 MBT를 만나 선제 공격을 당했는데도 이 정도로 피해를 주고 후퇴한 걸 보면 대활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2.2. 라오스 내전

파일:North Vietnamese soldiers and knocked out the PT-76 during the reflection of the South Vietnamese invasion of Laos,February-March 1971..jpg
라오스 내전 당시 격파된 베트남 인민군 소속 PT-76B
라오스 내전 당시에도 다수의 차량들이 베트남 인민군파테트라오 소속으로 투입되었다.
2.2.2.1. 9번 국도 전투
파일:2017-01-17-chiec-sao-2.jpg
9번 도로 전투 당시의 베트남 인민군 산하 제9전차중대 소속 PT-76B "555번차"
라오스 내전 중 벌어진 9번 국도 전투 당시, 베트남 인민군 소속의 PT-76B "555번차"가 대활약한 기록이 남아있다.

전투 시작 전, 555번차의 승무원은 제3공수여단사령부가 위치한 543고지와, 이 곳에 주둔 중인 1개 낙하산대대, 1개 포병대대, 1중대를 제압하는 임무를 하달 받았으며, 당시 555번차에 탑승하고 있던 승무원은 전차장 "응우옌반두옌", 탄약수 "당반도안", 조종수 "응우옌토앙" 총 3명이었다.

1971년 2월 25일 11시 30분, 제9전차중대는 출격 명령을 받고 555번차가 선두에서 중대를 이끌게 되었는데, 9중대가 진격하는 것을 본 라오스 왕국군 측에서는 포격 및 근접항공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이 때 전차장인 응우옌반두옌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전차포와 기관총을 사용하여 포병들을 제압하고 통신소로 돌진하였다.

이후 555번차는 공성전 끝에 543고지를 장악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전차장인 응우옌반두옌은 1급해방승리훈장을 수여받고, 조종수 응우옌토앙과 탄약수 당반도안은 2급해방승리훈장을 수여받았으며, 해당 "555번차"는 일명 "9번 국도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부여받았다.

2.3. 중동전쟁

2.3.1. 6일 전쟁

파일:Israeli_PT-71_6_day_war.jpg
6일 전쟁 당시의 이스라엘 방위군 노획 이집트 육군 소속 PT-76B
6일 전쟁 당시, 소수가 이집트군시리아군 소속으로 편제되어 투입되었으나 시나이 및 골란 고원에서 다수가 파괴되거나, 노획되었다.
이후 손상을 덜 입은 단차나, 멀쩡하게 노획된 단차를 이스라엘군이 운용하게 되었다.

2.3.2. 욤 키푸르 전쟁

파일:syriaPT-76.jpg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유기된 시리아 육군 소속 PT-76B
아랍연맹군이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수에즈 운하를 도하할 때 운하 가운데에 있는 비터 호를 건너는데 PT-76을 사용했고 일부는 시나이 반도 내륙까지 진출을 시도했지만 도중에 마주친 이스라엘군 전차에게 일방적으로 격파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깜짝 놀란 아랍연맹군은 다수의 PT-76을 버리고 도망쳐버렸으며,[2] 이 버려진 단차들은 이스라엘 방위군에게 노획당하여(...) 경전차 및 수륙양용전차 전력의 공백으로 골머리를 앓던 이스라엘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2.3.2.1. 오르하 단지 전투
파일:Israeli_PT-76_with_M60_Machine_gun.jpg
오르하 단지 전투 당시의 이스라엘 방위군 제14기갑여단 산하 제88대대 소속 PT-76B
욤 키푸르 전쟁 중 벌어졌던 오르하 단지 전투 당시, 이스라엘 방위군 산하 제88대대 소속의 PT-76들이 매우 분전한 기록이 남아있다.

직전 제88대대에서는 이집트군으로부터 도합 6량의 PT-76B를 노획하여 사용했는데, 이 시기 상술한 대대 전용 PT-76으로 개수하여 사용했으며, 수에즈 운하에서 이집트군과 전투를 치렀다.

전투 끝에 이집트군은 오르하 단지로 진입을 포기하고 후퇴하였으나, 이 당시 제88대대의 PT-76 중 1량이 완전 격파당했으며, 나머지 5량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2.4. 프라하의 봄

파일:w40vx5m.jpg
프라하의 봄 진압에 투입된 소련 육군 소속 PT-76
프라하의 봄 당시, 진압을 위해 소련을 위시로 한 바르샤바 조약군 소속으로 투입되었다.

2.5. 에티오피아 내전

파일:Etiopian_Civil_war_PT-76.jpg
에티오피아 내전 당시 투입된 소련 해군 보병대 소속 PT-76 "194번차"
1974년 벌어진 에티오피아 내전 당시, 내전에 개입한 소련 해군 보병대 소속으로 투입되었다.

2.6. 인도-파키스탄 전쟁

2.6.1.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파일:PT-76_in_DACCA_Road.jpg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다카 방면으로 이동 중인 인도 육군 소속 PT-76B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인도군의 각 부대에 대량으로 배치된 후 공격적으로 운용되어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71년 12월 9일 인도 제1기갑대대 D중대의 PT-76들과 파키스탄군의 건보트 3척이 다카 지역의 강에서 교전을 벌여 파키스탄군의 건보트 3척이 격침되었고 180여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동월 11일에는 파키스탄의 건보트 1척이 PT-76에 기관총 사격을 가해 교전이 벌어져 건보트는 침몰, 파키스탄군 83명이 전사하고 33명이 포로로 잡혔다.

동월 13-14일에는 제45기병연대 소속의 PT-76과 인도 제9보병사단이 바이탑(Bhaitab) 강을 도하하여 샴간즈(Syamganj)에 있는 선착장을 공격하자 파키스탄군은 진지를 포기하고 인도군에 항복했으며 파키스탄 제107여단 병력 3,700명을 포로로 잡았다.

제45기병연대의 A 중대는 마드후마티 강에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중인 파키스탄 9사단을 강북쪽에서부터 은밀히 도하하여 배후에서 기습하였고 50여명의 장교와 343명의 병사를 포로로 잡는 등의 대활약을 펼쳤다.
2.6.1.1. 가리푸르 전투
파일:The_devil_for_pak_chaffees.jpg
가리푸르 전투 당시의 인도 육군 소속 PT-76B "파키스탄 채피들을 위한 악마"
가리푸르 전투 당시 인도군 소속으로 다수의 PT-76B가 투입되어 M24 채피로 무장하고 있던 파키스탄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인도군 측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는데, 소유하고 있던 PT-76B 중 6량이 격파되는 피해를 입는 와중에도 분전하여 파키스탄군의 채피를 상대로 화력으로 압도하는 활약을 하였다.

2.7. 동티모르 침공

파일:East_timor_invasion_PT-76.jpg
동티모르 침공 당시의 인도네시아 해병여단 소속 PT-76B
1975년 12월 벌어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의 영토 확보 야욕으로 인해 벌어진 동티모르 침공 당시 다수의 차량들이 인도네시아 해병여단 소속으로 투입되었다.

2.8. 앙골라 내전

파일:South African Recces try to recover an Angolan PT-76 from this river during Operation Protea in 1981. They eventually destroyed it after being unable to recover it.jpg
프로티아 작전 당시 앙골라 인민해방군 소속 PT-76B를 구난 중인 남아프리카 공화국 방위군[3]
앙골라 내전 당시 앙골라 인민해방군, 쿠바군이 사용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이 노획하기도 했다.

2.9. 캄보디아-베트남 전쟁

파일:PT-76 light tanks of the Vietnamese Armor Crops during the withdrawal of the Vietnamese army from Cambodia, marking the end of the Cambodian Vietnamese war 1978-1989.jpg
캄보디아-베트남 전쟁 말기 캄보디아에서 철수하는 베트남 육군 소속 PT-76B
캄보디아-베트남 전쟁 당시 다수의 차량들이 베트남 육군 소속으로 투입되었다.

2.10. 이란-이라크 전쟁

파일:IRAQ_PT-76.jpg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의 이라크 육군 소속 PT-76B[4]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군이 주력으로 사용했다.

이라크군 소속의 PT-76의 활약상으로는, 1983년 2월 남부 티그리스강 유역에서 벌어졌던 "발 피질 작전"이 유명한데, 당시 이라크의 파키리 소장과 6기갑사단의 PT-76 전차들은 전답, 진탕, 수로, 하천 등으로 구성된 이 지역을 따라 올라오는 이란군의 건보트조디악들을 공격해 진출을 좌절시켰으며, 이 공로로 파키리 소장은 중장으로 진급해 후세인의 오른팔이 된다.

4년후 1987년 이란은 포기하지 않고 작전명 칼바라로 명명된 2차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고, 이라크군은 3/4/5/6/7 군단에서 차출된 합동 세력으로 이란군을 막아섰는데, 이 때 피해를 많이 본 이란군은 목표지점에 도달하자 작전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한 뒤 퇴각한다. 이 합동 군단은 훗날 공화국 수비대가 되었다.

2.11. 걸프 전쟁

파일:left-front-view-on-display-soviet-pt-76-light-amphibious-tank-11437a-1600.jpg
걸프 전쟁 당시의 이라크 육군 소속 PT-76B[5]
걸프 전쟁 당시 소량의 PT-76B가 이라크 육군 소속으로 투입되었으나 활약상은 불명으로, 1990년 12월 후반 ~ 1991년 1월 초에 이 중 1량이 미군에게 노획되어 전시되어 있는 사진이 2장 남아있다.

3. 현대전

3.1. 유고슬라비아 전쟁

3.1.1.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파일:Croatian_PT-76Bs.jpg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당시의 크로아티아 제8경보병여단 소속 PT-76B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당시 소수의 개체를 크로아티아군 측에서 사용하였다.

3.1.2. 열흘전쟁

파일:Slovenian_ten-day-war_PT-76s.jpg
열흘전쟁 당시의 슬로베니아 국토방위군 소속 PT-76
유고슬라비아 전쟁 와중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포하며 벌어진 통칭 "열흘전쟁" 당시 슬로베니아 국토방위군이 연방군으로부터 도합 8량을 탈취하여 운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해당 단차들은 전쟁 발발 10일 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휴전을 선언하며 물러난 뒤에도 운용되었다가 현재는 1량만이 남아 피브카 군사사 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3.1.3. 보스니아 전쟁

파일:Srpska_PT-76.jpg
보스니아 전쟁 당시 유기된 스릅스카 공화국 육군 소속 PT-76B
보스니아 전쟁 당시 다수의 차량들이 각 공화국 소속으로 동원되어 각지에서 전투를 치렀는데, 얇은 장갑과 제한적인 전투 사정 탓에 일선에서 사용되지 않고 보병지원용 차량으로 운용되거나, 혹은 자주포와 유사한 형태로 운용되었다고 한다.

3.2. 제1차 체첸 전쟁

파일:PT-76 in Grozny, Chechnya, 1995.webp
그로즈니 전투 당시의 러시아 연방 육군 산하 제59 특수목적연대 소속 PT-76B
제1차 체첸 전쟁 중 벌어진 그로즈니 전투 당시 총 9대의 차량들이 제59특수목적연대 소속으로 투입되었으며, 이 중 1량이 체첸 반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 1량은 세르게이 골루베프 중위가 지휘하는 차량이었고, 격파되기 전 RPG-7의 공격을 무려 두 번이나 견뎌냈고 적의 진지 3곳을 파괴했다.

러시아군의 조사에 의하면 철수하는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 골루베프 중위의 PT-76이 체첸 진지들을 향해 공격했다고 한다. 교전은 치열했고 두 번째 RPG-7에 의해 PT-76의 포신이 무력화되었는데, 그러자 골루베프 중위는 전차를 체첸 반군의 건물을 향해 돌진시켜 그 건물을 파괴했고 골루베프와 승무원 전원은 건물의 잔해에 깔려 사망했다고 한다.

러시아 정부는 골루베프 중위의 영웅적 행동을 치하하며 용기 훈장을 사후 수여했다.

3.3. 제2차 체첸 전쟁

파일:2차체첸전PT-76.jpg
제2차 체첸 전쟁 당시 투입된 러시아 연방 내무군 산하 제8독립여단 소속 PT-76B
제2차 체첸 전쟁에서도 투입되었다. 체첸 반군의 RPG-7으로부터 전차를 방어하기 위해 예비 궤도나 고무 패널과 같은 증가장갑을 부착했다.

3.4. 이라크 전쟁

파일:GRfF3hab0AIhmY6.jpg
이라크 전쟁 당시 격파된 이라크 육군 산하 PT-76B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투입되었으며 미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이 시기 PT-76을 개조한 임시 자주포도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전과는 불명.

3.5. 아체 분쟁

아체에서 경계 작전중인 인도네시아 해병대 소속 PT-76(M)[6]
인도네시아 아체 주에서 벌어졌던 분리독립 운동인 "아체 분쟁" 당시 인도네시아 해병여단 소속으로 투입되어 시가지 정찰 및 여러 임무에 동원된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 탓에 2005년 아체 분리주의자 측에서 결국 정부 측에 항복을 선언하였고, 이에 인도네시아 정부 또한 자치권을 보장하면서 큰 전투 없이 분쟁이 종결되었다고 한다.

3.6. 2012년 말리 쿠데타

파일:2012_Mali_coupdetat_PT-76.png
2012년 말리 쿠데타 당시 바마코 거리의 말리 육군 소속 PT-76
2012년 말리 쿠데타 당시 말리 육군 소속으로 PT-76 최소 1량 이상이 투입되었으며, 결국 아마두 투마니 투레 대통령을 축출하고 군부 정권이 자리잡으며 쿠데타는 성공으로 끝나게 되었다.


[1] 1969년 3월 3일 촬영된 사진이다.[2] 무려 40량이나 멀쩡한 PT-76들을 유기했다고 한다. 아랍연맹군이 이런 추태를 부리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 독립전쟁 시기부터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매우 심각한 수준.[3] 1981년 촬영된 사진인데, 결국 이 단차는 구난하는데 실패하여 회수를 방지하기 위해 자폭처리하였다고 한다.[4] 1988년 8월 8일 촬영된 사진이다.[5] 1991년 1월 1일에 촬영된 사진이다.[6] 2003년 3월 21일 촬영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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