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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의 북벽 # |
<colbgcolor=#005fa1><colcolor=#fff> K2 Mount Godwin-Austen | |||
K2 남벽의 모습 | |||
높이 | 8,611m (28251.31 ft) / 세계 2위봉 | ||
언어별 명칭 | 영어 | Mount Godwin-Austen (고드윈오스턴산) Mount Qogir(Chogori) (초고리산) | |
중국어 | 乔戈里峰 (Qiáogēlǐ fēng) | ||
지형학적 상대높이 | 4,017m | ||
모체 봉우리 | 에베레스트 (명목상)[1] | ||
위치한 국가 | [[파키스탄| ]][[틀:국기| ]][[틀:국기|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
산맥 | 카라코람 산맥 | ||
최초 등정 | 1954년 아킬레 콤파뇨니 (Achille Compagnoni, 이탈리아) 리노 라체델리 (Lino Lacedelli, 이탈리아) | ||
동계 초등정 | 2021년 니르말 님스 푸르자 (Nirmal Nims Purja, 네팔) 외 10명[2] | ||
역대 등정 횟수 | 284회 (8,000m급 14좌 중 8위)[3] | ||
등반 중 사망률 | 종합 | 23.24% (8,000m급 14좌 중 2위) | |
1990년대 이전 | 41% (8,000m급 14좌 중 3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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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2 또는 고드윈오스턴산(Mount Godwin-Austen)은 에베레스트산 다음 가는 세계 제2의 고봉으로, 파키스탄 북부와 중국 서부에 걸친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한 해발 8,611m의 산이다. 카라코람 산맥의 최고봉이자 파키스탄의 최고봉이기도 하며, 8,000m 14좌 중 등반 사망률 2위를 기록[4]하고 있어 가장 등반하기 어려운 산 가운데 하나로도 꼽힌다. 그래서 K2는 'Savage Mountain', 안나푸르나는 'Silent Killer'라는 별명이 생겼다.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 주와 중국 신장 카슈가르지구 타슈쿠르간 타지크 자치현 사이 경계에 걸쳐 있으며, 인도 또한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5] 1861년에 영국인 헨리 고드윈 오스턴이 발토로 빙하를 발견한 후 처음으로 K2에 접근한 업적을 기려 '고드윈 오스턴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초 등정은 1954년 7월 31일에 아르디토 데시오의 이탈리아 등정팀이 이루었다.
2. 명칭
오늘날 가장 널리 불리는 이름인 K2는 풀이하자면 '카라코람-2', 곧 '카라코람 산맥 측량점 2호'라는 뜻으로 1856년에 영국령 인도 측량사 토머스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카라코람의 고봉을 바라본 순서대로 K1, K2, K3, K4, K5라고 지정하면서 처음 보고되었다. 원래는 코드네임에 불과했으나, 1858년 카슈미르의 측량국에 의해 높이가 정확하게 측정되어 세계 제2의 고봉으로 확인되었고, 두 번째 측량점이라는 뜻의 '2'와 세계 제2의 고봉이라는 뜻의 '2'가 겹치므로 그대로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당시 영국왕립지리학회는 이러한 '이상한' 명칭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이 산을 탐험한 영국인 탐험가 헨리 고드윈오스턴(Henry H. Godwin-Austen)의 이름을 따서 고드윈오스턴산이라 부르기도 하나, 널리 쓰이지 않는다. 발견 당시의 기준으로도 새로 측량된 산에는 현지 이름을 쓰는 게 원칙이었으나[6] K2는 K1 마셔브룸, K3 가셔브룸4, K4 가셔브룸2, K5 가셔브룸1과 달리 현지인들도 영국 탐사대가 올 때까지 그동안 이 산의 존재를 몰라서 토착지명이라고 할 만한 명칭이 없었기 때문이다.[7] 참고로 바로 이웃에 있는 봉우리인 브로드피크[8]가 K3로 불렸던 이유 또한 K2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K3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었던 것이다.
전술됐듯이 원래부터 이렇다 할 현지 명칭이 없었던 산이기 때문에 지금은 현지인들도 K2를 현지 언어인 발티어로 음차한 Ketu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현재는 이 산의 이름을 넘어서 아예 발티어로 높고 거대한 산 전반을 일컫는 외래 신조어로 의미가 확장되는 중이라고 한다.[9]
3. 등반
단순히 높이로만 보면 고봉계의 콩라인이기는 하지만 가장 등정하기 어려운 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에서야 네팔인 세르파 10명이 최초로 동계 등반에 성공했으며, 동벽 및 북벽 루트는 등반 기술이 발달한 현재까지도 아무도 완등한 적이 없다.[10]산은 잘 빠진 피라미드의 형태로, 다른 8,000m급 산들보다 훨씬 경사가 급하여 다른 거봉들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험하다. 게다가 다른 8,000m 거봉들과 달리 주변에 이웃 거봉들이 없어 산맥의 강한 바람이 바로 정면으로 불어오는 데다[11] 이 바람이 산을 타고 오르면서 엄청난 구름과 눈보라를 일으킨다. # 위의 사진에서도 맑은 날인데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이 영상을 보면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문서 위 사진들은 멀리서 찍어서 맑아 보이므로 체감이 안 될 뿐, 산을 등정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온 하늘을 가려서 보이지도 않고 햇빛이 투과를 못하거나 난반사까지 일어나 시야확보도 되지 않는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8천 m 거봉들 중에서도 가장 등정 성공률이 낮으며(30%대) 등정 과정에서 죽어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K2가 Kill2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최초 등정 시도 후 52년만에 등정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참고로 에베레스트의 등정 성공에 걸린 기간은 약 29년이다.
최초의 등반 시도는 영국인 오스카 에컨스타인과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에 의해 1902년에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5차례 도전하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1902년 최초 시도 이후 1909년, 1938년, 1939년, 1953년 등반한 시도도 모두 다 실패했다.# 최초의 등정시도부터 52년 후인 1954년 이탈리아의 콤파뇨니와 라체델리가 Abruzzi Spur를 통해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하였다.[12] 더 황당한 것은 초등 이후 23년 동안 그 누구도 등정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며 이후 1977년 요시자와 이치로가 이끈 일본 원정대가 Abruzzi Spur를 통해 2번째 등정에 성공했는데 이들은 짐꾼들을 무려 1,500명 넘게 동원했다고 한다.[13] 게다가 등반대원만 52명이어서 이들의 등반을 '공성(siege)전술'이라고도 한다.[14] 이후 1978년 미국 등반대가 북동릉(Northeast ridge)에 신루트를 개척하면서 3번째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한다. 2017년 기준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은 4,500명이 넘는데 비해 1954년 초등 이후 K2 정상에 오른 사람은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306명뿐이다. 인류 역사에서 겨우 300여 명 남짓한 인원만이 K2 정상에 서 본 것이다. 등반 중 사망한 사람만 84명인데 이들 대부분은 하산 중에 사망했다.[15]
봄이나 가을이 아닌 계절에 산을 오르는건 자살행위이며, 특히 겨울에는 악명 높은 칼바람과 구름, 낮은 온도 때문에 등정 자체가 불가능했다.[16] 아무리 남아시아에 있는 산이라지만 K2의 위도는 북위 35도 52분으로 상당히 북쪽에 위치해 있다. 북위 35도 20분에 위치한 지리산보다도 높은 위도며 14좌 중 낭가파르바트와 함께 겨울에 등정된 적이 없는 봉우리였다가 2016년 2월 26일 시모네 모로를 포함한 3인의 다국적 등반대가 낭가파르바트의 동계 초등에 성공하면서 2020년까지도 유일한 동계 미등봉 상태였다. 여름에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등정이 거의 불가능한데 1997년 가을 이후 2000년 봄까지 단 한명도 등정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기사에 의하면 2002, 2003, 2005년에는 날씨 때문에 단 한 명도 등정을 시도하지 못했다고 한다.[17]
등반하기 가장 어렵다는 K2답게 기록적으로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시즌이 몇 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86년인데 1986년 8월 초순 동안 심한 폭풍으로 클라이머 13명이 사망했다. 그래서 이것을 1986 K2 등반사고(1986 K2 disaster)라고 한다. 두번째는 1995년 8월 중순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세번째가 가장 끔찍한데 2008년 8월 1일에는 한국 등반대 3명을 포함해서 하루 동안에만 무려 1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 이건 K2를 등정하는 이들의 75%가 선택하는 Abruzzi route의 정상 부근에 있는 세락(Serac, 빙하가 쪼개져 생긴 얼음 덩어리)이 더워진 날씨로 무너져 내린 탓이 크다. 당시 사망한 등반자들에게는 참 불행했던 것이, 무너진 세락은 지난 54년간 딱 세 번 무너졌는데 하필 그 세 번째가 2008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1월 16일, 네팔인 셰르파 10명으로 이루어진 산악팀이 동계 초등에 성공하면서 14좌 동계 등정이 완료되었다. 링크 2020년 겨울 시즌에는 4개 팀, 60여명의 등반대가 등정을 시도했었기에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였다. 링크1 링크2 결국 이들 중 몇몇은 등반 도중 사망했지만 니르말 님스 푸르자,[18] 다와 텐지 셰르파, 밍마 G 다와 템바 셰르파, 펨 치리 셰르파, 밍마 데이비드 셰르파, 밍마 텐지 셰르파, 겔제 셰르파 등으로 구성된 네팔 등반팀이 동계 초등에 성공했다.기사[19] 이들의 등반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K2의 전체 등반 루트는 다음과 같다.
아래의 사진은 K2의 남쪽 사면에 있는 등반 루트들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등반 루트들은 남쪽에 있다. 일반적으로 북쪽인 중국 방면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북쪽 루트들이 너무 어려운 탓이다. 게다가 북쪽으로 접근하면 샥스감강을 건너서 가야 하는데, 강이 범람하는 경우 건널 방법이 없는 데다가 강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서 강을 건너는 일도 제법 위험하다고 한다.
위의 사진에서 1번 또는 루트 F는 가장 많은 등반대가 시도하는 Abruzzi Spur(South-East Ridge, 남동릉)로서 다음 사진과 같이 구성되었다.
위에서 Serac 부분을 가까이서 찍은 사진. 원본(크게 보기)
K2 등반의 75%는 Abruzzi Spur 루트로 시도한다. 아마데오 1세의 삼남인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Abruzzo) 지방의 공작이었던 루이지 아메데오(Luigi Amedeo)가 1909년 이 루트를 통해 처음으로 등정을 시도했기 때문에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참고 이 코스는 사진과 같이 House Chimney - Black Pyramid - Shoulder - Bottleneck - Serac의 순서로 되어 있다. House Chimney는 100 m에 달하는 수직절벽이다. 이 코스에서 고도 8,350m 지점에 있는 Bottleneck이 가장 어렵고 사망자도 그만큼 많이 나오는 구간이다. 2008년 8월 1일 하루 동안 등반객 11명이 사망한 지점도 Bottleneck이다. 위의 두 번째 사진에서 보면 Bottleneck의 바로 위에 눈이 뭉쳐져 얼어버린 Serac이 있는데 이게 무너지면 대형사고가 난다. 실제 아래에 있는 터키 등반팀의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Serac 밑을 지날 때 가장 아찔해 보인다. 이곳의 기온은 영하 30도 정도인데 온도가 더 올라가면 Serac이 녹기 시작하면서 더 위험해진다. 기온이 올라가서 Serac 바로 밑에 있는 바위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참고 그래도 Serac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뿐이어서 정상까지는 평이하다.[20]
2번 또는 루트 E는 남남동벽 루트(Cesen 루트 또는 바스크 루트)로서 이 루트는 1994년 스페인-바스크 등반팀에 의해 개척되었다. 이 루트는 K2의 남쪽에 있으며 Black Pyramid를 피해가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루트로 알려져 있다. 이 루트를 따라가면 Abruzzi Spur의 2/3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일본의 등반가 야마노이 야스시가 2000년에 이 루트를 단독, 그것도 무산소로 개척 등반하였다.[21] 최초의 K2 단독 등반이며 일본 산악사에서 단연 최고로 뽑히는 기록이다.[22] 2000년 대한민국 영호남 K2 원정대도 이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 #[23] 2007년 김창호 대장과 김진태 대원은 부산산악연맹 등반팀 소속으로 이 루트로, 그것도 무산소로 성공했다. # 이들의 등반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되었다.유튜브 링크 원래 여러 등반대가 K2 겨울 등정의 후보 중 하나로 이 루트를 선택했지만 너무 가팔라서 캠프를 만들 곳도 없고 눈이 없이 바위만 있으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동계 등정에서 이 루트로 성공한 적이 없다.
3번 또는 루트 D는 소위 벽 루트, 그 중 남벽 루트로서 북쪽 마루(North Ridge) 또는 북동릉(NorthEast Ridge)과 더불어 개척된 루트 중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 루트를 등정하려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1986년 폴란드인 예지 쿠쿠츠카[24]와 타데우시 피오트로프스키[25]에 의해 초등되었다. 이 루트는 위의 사진에서처럼 남서봉 루트(C)의 첫번째 부분에서 갈라지면서 시작한다. 이 루트는 "하키 스틱"이라 불리는 도랑을 지나서 완전히 노출된 수직 절벽을 따라 올라간다. 위의 사진들에서 보면 루트 중간 이후부터는 수직 절벽이다. 이 루트를 따라가면 정상 300m 전에 Abruzzi Spur와 만나는데, 그 직전에 굴곡이 없는 평평한 수직 절벽을 지나가야 한다. 이 루트는 심한 눈사태로 인해 매우 위험하고 등반도 까다로워서 1986년 쿠쿠츠카와 피오트로프스키의 초등 이후 아직까지 재등된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루트를 폴란드인 두 명만이 등반했다 하여 '폴리시 라인'(Polish line)이라고도 부른다.
루트 B는 서벽(West Face) 루트로서 2007년 빅토르 코즐로프가 이끄는 11명의 러시아 등반팀이 무산소로 등정을 시도해서 안드레 마리에프와 바딤 포포비치가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26] K2 서벽이 어려운 이유는 K2에 불어닥치는 살인적인 바람이 서풍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팀은 이 업적으로 황금피켈상을 수상했으며 이 루트는 러시안 다이렉트로 명명되었다. 다만 알파인 등반이 아니어서 비난당했다. 결국 프랑스에서 수상하는 황금피켈상은 수상하지 못했고, 러시아에서 자체적으로 황금피켈상을 만들어서 수상하였다.[27] 이후 현재까지 재등된 적이 없다.
4번 또는 루트 C는 남서봉(매직 라인) 루트로서 경사가 급한 곳이고 대부분이 빙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눈사태가 빈발한다. 1986년 폴란드-슬로바키아 등반팀에 의해 처음으로 개척되었다. 두번째 등정시도는 2004년 스페인 등반가 조르디 코로미나스(Jordi Corominas)가 하였다. 이들이 등반한 과정도 영상 기록으로 남았다.# 전설적인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조차도 1979년 처음 시도한 이후로 예측불가능한 눈사태 때문에 '자살 코스'라고 부르며 곧장 포기하고 Abruzzi Spur로 등정했다.
5번은 서쪽 마루,서벽 루트로서 1997년 일본 등반대가 개척한 루트이다. 역시 영상기록이 있다. # [28]
6번 또는 루트 A는 서쪽 마루(West Ridge) 또는 남서릉(South-West Ridge) 루트로서 1981년 마츠우라 테우로가 이끄는 일본 등반팀에 의해 개척되었다. 등반대 소속인 일본의 오오타니 에이호와 파키스탄의 나지르 사비르가 정상 정복에 성공한다. 다른 루트들의 베이스캠프는 발토르 빙하에 있는데 이 루트의 베이스캠프는 네그로토 빙하에 있다.
7번(위의 두번째 이미지에서 루트 C)은 북서마루(NorthWest Ridge) 루트로서 끝에서 북쪽마루 루트와 만나게 된다. 1982년 야누시 쿠르차브(Janusz Kurczab)가 이끄는 대규모 폴란드 등반대가 중국측의 허가 없이 등정을 시도했다가 8200 m에서 발각되는 바람에 강제 하산 명령을 받고 그대로 하산했다. 이후 1991년 프랑스 등반팀의 크리스토프 베깅과 피에르 프호핏이 개척하였다. 이들은 북서릉을 따라 올라가다 북서벽을 대각선으로 횡단한 후 일본등반팀이 개척한 North Ridge 루트를 통해 정상에 도달했다. 이들의 등반은 새롭게 개척한 루트는 없었지만 루트 상단 부분에서 고정 루프나 캠프 없이 순수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했기에 대단한 업적으로 칭송받는다.
8번은 북서벽(NorthWest Face) 루트로서 1990년 우에키 토마지가 이끄는 일본 등반대에 의해 처음 개척되었다. 이 루트는 중국 쪽 K2 빙하에서 시작한다. 이후 북서 마루를 따라 오르다가 북서벽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북쪽마루 루트를 따라 정상까지 이른다. 다른 루트와는 다르게 이 루트는 다른 루트를 거쳐가는 횡단이 많아서 "King Traverse"(왕 횡단) 루트라고 한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이 루프는 7번 북서마루 루트와 시작점만 다르고 중간 이후부터는 서로 같은 루트를 따라간다.
9번(위의 첫번째 이미지에서 빨간선, 두번째 이미지에서 D)은 북쪽마루(North Ridge) 루트인데 Abruzzi Spur의 정반대편에 있다. 이 루트는 K2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이며 히말라야 8,000 m 14좌의 등반 루트 중에서도 미등정 루트를 제외하고 가장 어렵다는 평을 받는다. 이 루트는 등반 자체도 힘들지만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과정에서 중국쪽에서 접근해서 샥스감 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것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렵다고 한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산 아래에서 찍어서 이 루트의 경사가 그나마 완만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경사각이 70도가 넘는 수직 절벽이다. 게다가 루트 자체가 능선이기 때문에 캠프를 설치하기도 어렵고 설치해도 2명이 눕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가령 이 정도 경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루트에는 8,450 m 지점에 장애물이 있어서 7,800 m 지점부터 북벽으로 우회해야 한다. 1982년 신카이 이사오와 코니시 마사츠고가 이끄는 일본 등반대가 처음으로, 그것도 무산소로 등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등정에 성공한 5명 중 야나기사와 유키히로는 하산 중에 추락사했다.[29] 이후 1990년 그렉 차일드[30] 외 2명의 등반팀이 앞서 일본등반팀이 만들어 놓은 로프를 이용해서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에 성공했다. 이후 2011년 오스트리아 여자 산악인이 게를린데 칼텐브루너는 이 루트로 7번째 도전만에 무산소로 K2 정상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히말라야 8,000 m 14좌 모두를 무산소로 등정한 첫 여자가 되었다. 영상 기사[31]
10번(위의 두번째 이미지에서 루트 E)은 북동마루(NorthEast Ridge) 루트로서 이 루트를 따라가면 7,700 m 지점에서 Abruzzi Spur와 만나게 된다. 이 루트는 말 그대로 능선을 따라가는 데 능선이 너무 뾰족해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다고 한다. # 1975년 쿠르차브가 이끄는 폴란드 등반대에 의해 개척되었으나 등정 중 사고와 건강 이상[32]으로 이들은 등정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후 1978년 제임스 위태커를 등반대장으로 하는 미국등반대[33]가 등정에 성공했는데 이건 세 번째로 성공한 K2 등정이며 미국 최초의 K2 등정이었다. 또한 처음으로 정상을 밟았던 루이스 라인하드(Lewis Reinhard)는 최초로 무산소로 등정한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 설명된 등반 루트와 등반팀에 대한 소개 영상이다.
벽 루트들은 그야말로 넘사벽. 등정 루트에 대한 위의 설명에서도 보듯이 대부분의 루트는 능선(ridge) 또는 바위돌출부(spur, rib)를 따라간다. 이건 눈사태가 나면 위험해서 눈이 쌓여 있는 곳을 피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등반대들 중 75% 정도가 Abruzzi Spur를 선택하는 이유는 Abruzzi Spur가 K2의 등반 루트 중에서 눈이 가장 적은 루트며 그리고 앞서 설명한 대부분의 등반 루트가 위험한 이유는 눈사태 때문이다. 그런데 K2에서 능선이나 spur를 제외한 벽들은 3,000 m가 넘는 수직 절벽이며 거기에 눈까지 뭉쳤다. 때문에 등정된 루트는 남벽과 서벽뿐이고 각각 초등 이후 재등된 적이 없다.
남벽은 쿠쿠츠카만이 성공했으며, 서벽(루트 B)은 2007년 러시아 팀이 초등하였다. 남벽(3번 또는 루트 D)과 서벽 루트(루트 B) 모두 재등된 적이 없다.
체코 출신 등반가 요세프 라콘차이(Josef Rakoncaj)는 K2 정상에 각기 다른 루트로 두 번이나 올랐는데 한 번은 1983년 이탈리아 등반팀과 함께 북쪽마루 루트로, 1986년 폴란드 등반팀과 함께 Abruzzi Spur 루트로 정상에 올랐다.
K2의 정상에 오른 첫 여자는 폴란드 출신으로 1986년 등정에 성공한 반다 루트키에비츠(Wanda Rutkiewicz)다.[34] 세 명의 여성 등반대, 폴란드의 반다, 영국의 줄리 튤리스, 프랑스의 릴리앙 바하르가 정상에 오른 최초의 여자들이 되었지만 불행히도 줄리와 릴리앙은 하산 중 사망했다.
K2의 정상에 오른 최고령자는 스페인의 카를로스 소리아 폰탄(Carlos Soria Fontán)으로 65세에 정상에 올랐다.
폴란드 사람들이 유독 K2와 인연이 깊다. 앞서도 설명되어 있지만 폴란드 등반대는 1977년 북동마루 루트를 새롭게 개척하였고 1986년에는 2개의 신루트(매직 라인 루트와 남벽 루트)를 개척했다. K2를 등정한 최초의 여성 등반가도 폴란드 사람이며 남벽 루트를 개척한 쿠쿠츠카도 폴란드 사람이고 2018년 최초로 K2에서 스키로 하산한 사람도 폴란드 사람이다. 폴란드인들의 등반 루트를 모아 놓은 맵이다.
한국 등반대는 1986년 8월 대한산악연맹에서 진행한 K2 원정대의 장봉완 부대장과 김창선, 장병호 대원이 Abruzzi Spur 루트로 한국인 최초로, 국가순서로는 세계 11번째로 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이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원정 1년 뒤인 1987년 김병준 대장에 의해 <K2, 죽음을 부르는 산>이란 책으로 세상에 나와 있다.[35] 1994년에는 두번째로 마산산악동지회가 등정을 시도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실패했다. 1999년에는 전남연맹팀이 한국등반대로는 세 번째 등정을 시도했지만 역시 폭설과 강풍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2000년에는 네번째로 도전한 이성원 대장이 이끄는 영호남 합동 원정대가 남남동릉 루트로 두번째로 등정에 성공한다. 바로 이어서 김위영 대장이 이끄는 한국산악회 대구지부팀이 Abruzzi Spur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으며 유한규 대장이 이끄는 한국합동대(엄홍길 포함)가 Abruzzi Spur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 2000년에는 한국에서만 3개 등반팀이 등정에 성공했다. 2000년에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동국대 등반팀이 마지막으로 등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듬해 2001년 Abruzzi Spur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
2018년 혼자서 7일 동안 정상까지 무산소로 등반을 한 뒤, 스키를 타고 7시간 만에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온 사람이 있다. 스키 하산에 성공한 사람은 안드셰이 바르기엘(Andrzej Bargiel)라는 폴란드 사람으로 다른 8,000 m 14좌인 시샤팡마와 마나슬루를 먼저 성공한 뒤 K2에 도전했다고 한다. 미리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을 분석해서 하산 경로를 결정했다고 한다. 등정 후 스키로 하산하는 과정에서도 동생이 드론으로 얻은 영상을 지켜보면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 무전기로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이 지령을 받으면서 내려 왔다. 영상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이냐면 2009 미셸 페이트, 2010년 프레드릭 에릭손은 스키로 하산을 시도하다 추락사했고 그 후에 도전한 3명은 중도에 포기했으며 이 중 한 명은 하산 도중 사망할 뻔했다. 여기에 더해 K2와 브로드피크에 등정한 후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 온 사람도 있다. 영상1 영상2
석양이 만들어 낸 K2의 산 그림자. K2 정상에서 석양을 등지고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으로 가셔브룸이 보인다.
2012년에 촬영된 실감나는 등정 영상이다. 시간이 없다면 26:00부터 보면 된다.
구글 어스를 통해 우리도 가상으로 등정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2004년 스페인 등반팀의 남서봉(Magic Line) 루트 등정 영상이다.
3.1. 북벽
위의 이미지는 이 페이지의 맨 위에 있는 K2의 북벽 사진에 루트를 추가한 것으로서, 북쪽 등반 경로들을 보여준다. 두 번째 이미지는 K2의 북서측에 있는 등반루트를 보여 준다. 참고로 K2의 북벽은 중국쪽에 있어서 중국측에서 바라본 것이다. 첫 번째 이미지에서 북동릉(North-East Ridge)과 북서릉(North-West Ridge)이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이다. 위 이미지에서 North Pillar와 NNE Pillar 사이에 위치한 부분이 바로 K2 북벽이다.[36]
아직까지 등정된 적은 물론, 애당초 시도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안나푸르나와 로체의 남벽과 비교해도 넘사벽으로,[37] 현재까지 하계 및 동계를 막론하고 등정 성공은커녕 시도 자체를 자살행위로 여긴다.[38] #
8,000m 14좌 중 등반하기 쉬운 편인 가셔브룸 II의 경우, 실질적인 등반의 시작점인 캠프1에서 정상까지 2,000m 남짓이고 경사도 완만하다. 하지만 K2 북벽은 경사도 거의 수직에 가깝고, 바닥부터 정상까지 거리만 가셔브룸 II의 2배인 4,000m이다.
더 큰 문제는 높이 그 자체보다도 4,000m가 넘는 높이에도 능선이나 돌출부가 아예 없으며, 바닥부터 정상까지 눈으로 덮여 있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절벽 중간까지 눈이 얼어 붙은 구간이 있어 걸핏하면 눈사태가 나는 데다, 루트 정상 부근에도 눈이 뭉친 세락(serac)이 있는데 만에 하나 무너지면 눈사태가 나서 극히 위험해진다. 비유하자면 루트 자체가 그냥 벽도 아니고 폭탄이 지천에 깔린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수준이다.
K2 북벽을 정복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산은 정복한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지만, 정상급 산악인들조차도 이 북벽만큼은 도저히 답이 안 보여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수준으로 명실상부한 지구 산악의 끝판왕이다. 등정에 성공한다면 산악인, 탐험가 역사에 전설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다.
3.2. 동벽
K2 특유의 살인적인 서풍의 영향이 거의 없어서 등정 자체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진 않다. 하지만 아래 사진이 K2의 동벽을 보여 주듯이, 루트 시작부터 정상까지 눈 덩어리가 뭉쳐서 바위가 노출된 부분이 별로 없다. 즉, 능선이나 돌출부가 별로 없다.어찌어찌 등반 경로를 찾는다 해도 자주 눈사태가 일어나는 편이다. 이렇게 루트가 눈으로 뒤덮이면 여름에 눈이 녹아서 눈사태가 빈발하므로 여름이 더 위험하다. K2는 겨울 등반을 거의 하지 않으므로 여름에 등반대가 몰리는데, 이런 이유로 동벽 등반은 여름에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여름보다 겨울에 눈덩어리가 얼어 붙어버리는 바람에 눈사태 위험이 없어져서 등반할 때 덜 위험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유로 2002년 2월에는 전설적인 산악인 보이체크 쿠르티카와 단독 등반의 대가인 야스시 야마노이가 동벽 등반을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실패했고, 현재까지 여름이건 겨울이건 동벽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
4. 에베레스트와의 비교
에베레스트 역시 상당히 위험하기는 하지만 상징성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또 그만큼 많이 코스가 개발되었다. 그래서 아마추어 지역 산악회나 대학 산악회에서 자주 등정하고 또 심심치 않게 성공한다.하지만 K2 등정은 세계 등반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상급 프로 산악인들도 일단 목숨을 내걸고 시도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도전할 만한 사람들 중 24% 가량이 산행 도중에 사망한다. 그만큼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운 루트가 즐비하며, 전문 산악인들조차 등정하기 매우 어려운 산이라고 평가받는다. 안나푸르나보다 사망률이 많이 낮아보이지만, K2는 겨울 등반을 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동벽과 북벽 루트로 정상에 오른 산악인은 현재까지 단 1명도 없다는 걸 고려할 때 그 두 가지 경우의 수까지 합치면 사망률은 K2가 압도적으로 올라간다.
K2가 에베레스트보다 사실은 더 높다는 떡밥은 유명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일단 이 떡밥의 시초는 1986년에 나온 발표로 오류 때문에 곧바로 정정되었다. 기존에 측정된 값이 잘못된 지오이드[39]를 썼기 때문에 틀렸다느니 하는 루머도 있는데, 지오이드 측정을 아무리 잘못 했어도 전 세계를 통틀어 지오이드가 찌그러진 정도는 200 m를 못 넘는다. (구글 어스로 확인해 볼 수도 있다) 지오이드 보정된 GPS 측정에서는 K2와 에베레스트의 높이 모두 알려진 높이에서 10 m 안팎을 오르내리는데 이는 GPS 자체의 오차에 가까운 수준이다.
5. 미디어에서 등장
K2를 등정하면서 생기는 일을 그려낸 내용의 영화가 두 편 있다. 하나는 1991년작 K2, 다른 하나는 2000년작 버티칼 리미트이다. 그리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폭풍우 봉우리에 K3로 패러디되어 나왔다.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K(케이)' 또한 일본에 돌아가지 못하고 파키스탄에 남아있는 일본인 산악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로 높은 산에 본좌급으로 어렵다는 네임드(?)이기 때문인지, 힐클라임을 주제로 한 소설/만화인 고고한 사람의 최종보스로 나오기도 했다. 사실 알파인 스타일로 K2 벽 루트를 등정한 사람은 역사상 쿠쿠츠카가 유일하기 때문에 이 정도 대접이 이상하지 않다.
전희절창 심포기어 GX에서는 1화 초반에 주인공들이 인명구조를 위해 불가피하게 중간 30m 가량을 날려버렸고, 이 때문에 높이가 세계 3위로 강등 되었다.
NHK 다큐멘터리 지구대기행 5편 '거대산맥의 탄생'에서 등장한다. 판구조론 설명이 주된 내용이다. 높이로는 콩라인이라 중간부터 등장하지만 타이틀곡은 자기 명의로 되었다. 곡명도 심플하게 'K2'. 작곡가로 유명한 요시카와 요이치로가 만든, 산의 웅장함을 잘 표현한 명곡이다. 지구대기행은 학습만화 버전으로도 발간된적이 있는데, 여기서도 에베레스트보다 K2가 더 높을지 모른다 라며 상단에 언급된 루머를 잠깐 언급되기도 하였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외전 코믹스 Mobile Suit Gundam: MS Generation에 자쿠 II를 이용하여 K2봉을 등정하는 산악인 이야기가 있다. 링크[40] 우주이민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K2봉을 오르다가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은, 이후 지온공국군의 모빌슈트 조종사가 되었으나, 부대를 탈주한 뒤 자쿠 II를 이용하여 K2봉을 등정한다, 하지만 정상을 눈앞에 두고 눈사태를 만나 자쿠 II는 파손당하고, 주인공은 조난당한 그 자리에서 옛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친구의 시신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히말라야 산맥을 정찰하던 지구연방군의 정찰기 승무원들과 사진을 촬영하던 종군기자는 그 사실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그들의 마지막 대화를 스쳐 지나가는 환청으로 듣지만 끝내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돌아간다.
동키콩 컨트리 3에서 설산이 있는데 이름이 K3로 영락없이 K2를 패러디한 네이밍이다.
미디어는 아니지만 뜬금없게도 수학분야에서 이 산과 관련된 이름이 하나 등장하는데, 프랑스의 수학자 앙드레 베유 (André Weil)는 1958년의 자신의 저서에서 정의한 수학 공간에 K3 곡면 (K3 surface)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이 이름은 세 명의 수학자인 고다이라 구니히코(Kunihiko Kodaira), 에른스트 쿰머(Ernst Kummer), 에리히 켈러(Erich Kähler)와 카슈미르에 있는 K2의 아름다움을 기리고자 지었다' 라고 적었다.링크 (오늘날 이 K3 곡면은 수학 중 대수기하학에서 중요하게 연구되는 분야 중 하나이다.)
프로그래밍 언어 코틀린 버전 2.0 에 도입될 새 컴파일러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마도 Kotlin + 2.0 에서 따온 듯.
6. 여담
폴란드군은 대한민국에서 수입한 K2 전차와 엮어서 K2 봉우리 해발 8611M/K2 흑표 최대 사거리 8000M라는 모병 광고를 한적 있다. #[1] 에베레스트는 지형학적으로 붙어있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통합 최고봉이기 때문에 그 대륙에 위치한 모든 산의 모체 봉우리로 정의된다. 현실적으로는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두 봉우리가 주종관계라고 보기는 어렵고, K2는 대신 카라코람 산맥 및 우르두 지역에 위치한 모든 봉우리의 모체로 간주된다.[2] 니르말 님스 푸르자, 다와 텐지 셰르파, 밍마 G 다와 템바 셰르파, 펨 치리 셰르파, 밍마 데이비드 셰르파, 밍마 텐지 셰르파, 님스다이 푸르자, 겔제 셰르파 등[3] 전 세계 2위봉과 카라코룸 산맥의 모체 봉우리라는 상징성 때문에 등정 시도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지만 인류 역사상 300명도 안되는 인원만이 정상을 밟아봤다.[4] 사망률 1위는 안나푸르나산이다.[5] K2 정상을 기준으로 동서방향으로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K2의 아래쪽 반만 파키스탄의 영토라는 점이다. 거기에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과 인도는 카슈미르에서 서로 영토 분쟁 중이기 때문에 K2가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지 애매하다.[6] 에베레스트의 사례가 너무 유명해서 영국인들이 온 세계 산에 죄다 자기들 방식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에베레스트가 특수한 사례이고 대부분은 현지 명칭대로 불렀다. 당시에도 영국 정부가 공식적인 정책으로 '토착지명 보존'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7] K2는 마셔브룸이나 가셔브룸 산군과 달리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육안으로 보이지 않고, 발토르 빙하 때문에 걸어서 접근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영국 측량사들이 오기 전까지는 현지에서도 그 존재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이 산의 현지 명칭으로 알려진 '초고리'는 발티어로 그냥 '큰 산'이라는 뜻인 일반명사일 뿐, 태산 같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는 현지인들에게는 여전히 원래 명칭인 '사가르마타'/'초모랑마'라고 불리지만, K2는 현지인들에게도 K2를 음차한 Ketu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8] 여기는 다른 데보다 순전히 바람 때문에 눈사태가 너무 자주 일어나서 오르는 족족 죽어난다고 악명이 높다. 그래서 K2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 도전이 K2보다 50년쯤 늦어 1954년에 되었다. K2 초등 도전은 1902년. 대신 브로드피크의 최초 등정 성공은 3년만인 1957년이다.[9] 우리로 치면 중국의 산 이름이 아니라 '높고 거대한 산'을 일컫는 대명사로 쓰이는 경우의 태산을 생각하면 대충 비슷하다.[10] 북벽 루트는 아예 시도된 적도 없다.[11] 에베레스트만 해도 남쪽으로 로체, 북쪽으로 눕체 등 위성봉이 바람막이를 형성한다.[12] K2 초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13] K2 베이스캠프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스콜리에서 짐꾼들을 동원해서 열흘 남짓 가야 하는데 짐꾼 1인당 25 kg만 허용된다. 그래서 6t 정도 장비를 가지고 가는 일반적인 등반팀은 짐꾼 180 ~ 200명 정도 동원한다. 짐꾼들의 하루 일당은 6천원 정도인데, 한 번 짐꾼 노릇을 해서 얻는 돈으로 이들은 6개월 정도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영상[14] 공성전술 또는 공성등산은 1950년대 이후 유행한 등산방법이다. 이 방법은 루트에 고정 로프를 설치하고 루트 곳곳에 캠프를 설치한 후 고정 로프를 따라 베이스캠프와 캠프 사이를 왕복하면서 캠프에 음식과 장비를 가져다 놓는 것이다. 이 방법은 힐러리와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때 사용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많은 수의 셰르파가 필요하며 전문적으로 캠프로 짐만 나르는 등반대원을 별도로 데리고 가기도 한다. 그만큼 등반비용이 엄청 많이 든다. 이 방법에서는 캠프에 식량과 장비가 넉넉하고 수시로 베이스캠프에서 식량과 장비가 보급되기 때문에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캠프에서 오랫동안 대기하거나 캠프들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고소 적응이 되고 날씨만 허락한다면 등반 경험이 많은 셰르파 꽁무니만 따라가도 정상에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지난 2000년대부터 유행하던 히말라야 상업등반은 이 방식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알파인 스타일인데 셰르파 없이 소수의 등반대가 음식과 장비를 직접 가지고 올라가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최단시간에 공략하기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셰르파 없이 음식 약간과 최소한의 장비만 지니고 간다.[15] 다른 8,000m급 고봉들과 비교해도 K2는 압도적으로 날씨가 변화무쌍한데다 60 ~ 70 km/h 강풍과 영하 30 ~ 40도에 달하는 혹한도 다른 산에 비해 극악하기로 유명하다. 아무리 등반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그리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날씨가 좋았다고 해도 하산 중에 악천후를 만나면 강풍과 저온, 눈보라로 인한 시야상실을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사망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산악인들도 K2는 하늘이 허락해야만 오를 수 있는 산이라고 한다.[16] 보통 K2 베이스캠프에는 숙식을 위해 텐트를 설치하는데 겨울에는 눈이 하도 많이 오는 바람에 이글루를 만들어 놓는다.[17] 보통 베이스캠프에서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는데 초여름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두 달 동안 기다리다 날씨가 좋아지지 않아서 캠프1에 가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18] 1983년생 네팔의 산악인으로서 구르카로 복무했었다. 구르카 복무 이후 2012년부터 등반을 시작했는데 2019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히말라야 8천 m 14좌를 완등함으로써 전후무후한 대기록을 만들어낸다.[19] 이들의 성공이 놀라운 것은 개별적인 팀으로 출발한 각 등반대가 모두 모일 때까지 정상 10 m 아래에서 네팔 국가를 부르면서 기다렸다는 점이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마지막 10명이 다 채워지자 그들은 동시에 정상에 올랐다. 기사[20] Bottleneck은 8200~8300 m 지점에 있는데 8,000 m 이상 고도가 되면 인간의 몸이 shut down되기 시작한다. 8,000 m 이상에서 1시간 이상 머무르면 폐부종이나 뇌부종이 발생할 확률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체력이 고갈되고 고산병 때문에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구간이다.[21] 등반가들에게 8천 m 이상의 등정에서 산소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로 치부된다. 8천 m 등반에서 산소를 사용하는 것은 무산소로 3,500 m를 등반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참고로 에베레스트 등반시 거쳐가는 루클라 공항의 고도가 2,850 m이고 등반 허가증을 검사하는 남체 바자르 바로 위에 있는 샹보체 이착륙장의 고도가 3,780 m이다.[22] 야마노이 야스시는 단독등반 전문가로 1992년 아마다블람 서벽 동계 시즌 단독 초등에 성공한 뒤 1993년 가셔브룸Ⅳ봉 동벽 단독등정, 1994년 초오유 남서벽를 신루트로 47시간 만에 단독등정, 1996년 마칼루 서벽과 가우리상카 북벽 단독 등정, 1998년 쿠슘캉구루 동벽을 21시간 만에 신루트 단독초등을 이루었다.[23] 2000년에는 순서대로 영호남 합동 원정대, 한국산악회 대구지부팀, 한국합동대의 3개 팀 14명이 등정하여 K2 등반사상 1개국 한 시즌 최다 등정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영호남 K2 원정대의 박정헌·한왕용 대원이 한국 최초로 K2 무산소 등정 기록을 세웠다. 특히 영호남 K2 원정대의 윤치원과 강연룡 대원은 1999년 가셔브룸 IV의 북서마루를 등반한 이후 바로 다음해에 이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24] 폴란드 국적 산악인으로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히말라야 14좌를 두 번째로 완등하였으며, 8천 m급 봉우리에 루트 8개와 동계 초등정 4회라는 위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메스너보다도 쿠쿠츠카를 더 높이 평가한다. 1989년 로체 남벽에서 자일이 끊어져 추락사했다. 향년 41세.[25] 피오트로프스키는 초등 후 하산 도중에 사망했다.[26] 코즐로프가 이끄는 등반팀은 2005년에도 에베레스트 북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할 정도로 베테랑들이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등반팀은 서구와는 다른 방식의 캡슐 스타일로 등반하는데 이는 등반코치가 포함된 4~5명의 팀으로 진행하는 고난도 암벽 등반이다.링크[27] 서구 산악인들과 동구권 산악인들이 앙숙이란 이유도 있다.[28] 영상 제목은 K2 서벽 도전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 등반 루트를 보면 서쪽마루/서벽 루트이다. 이 영상을 보다 보면 북벽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이 있다.[29] 야나기사와는 K2 등정 후 하산 중에 사망한 첫 사람이다.[30] K2와 동등 또는 그 이상으로 등반하기 어렵다고 평가받는 가셔브룸IV의 북서마루(NorthWest Ridge) 루트를 최초로 개척한 사람이다. 거기에 더해서 계절을 막론하고 K2 동벽 등반 시도를 자살행위라고 경고했다.[31] 이 분은 2010년 스키로 하산을 시도했던 프레드릭 에릭손(Fredrik Ericsson)과 함께 등정을 시도했지만 에릭손이 1,000 m를 추락해서 사망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등정을 포기한 적이 있다.[32] 고산병 증상으로서 팔과 다리가 마비되고 기억과 감각이 혼란스러워지는데 정맥혈전증으로 진단된다.[33] K2에 도전하는 미국의 다섯 번째 등반대였다.[34] 1975년에 여자만 모인 등반대를 꾸려서 가셔브룸III 첫 등정에 성공했다. 1986년 K2 정상에 오른 첫 여자였다. 1978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첫 유럽 여자이자 세계적으로는 세 번째 여자가 되었다. 1992년 칸첸중가 등정 중 북서벽 정상 바로 밑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실종되었고 아직까지도 시신을 찾지 못했다.[35] 당시 K2에는 9개국에서 온 12개 원정대가 몰려 있었고, 등정 후 하산길에 악천후를 만나면서 7개국 원정대 대원과 셰르파 등 총 18명이 목숨을 잃었다(1986 K2 disaster).[36] 북벽 루트에서는 아무리 많은 셰르파들을 데리고 가봐야 캠프를 만들 곳이 없다. 단독등반을 하더라도 낭가파르바트처럼 절벽에 붙어서 자야 한다. 참고 때문에 북벽을 등정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공성전술, 즉 여러 캠프를 만들어 캠프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없고, 소수인원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도전하는 러시아식 캡슐 스타일로 시도해야 한다.[37] 두 벽 루트 모두 상당히 까다로운 루트다. 특히 로체 남벽은 여기에 등정 성공 기록조차 없다. 하지만 그런 로체 남벽조차도 등정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38] K2뿐만 아니라 여러 고산들의 북벽은 전통적으로 등반이 어렵기로 유명하다. 아예 고유명사화한 아이거 북벽이 대표적이다. 등산 브랜드 노스페이스도 말 그대로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하프 돔의 북벽을 가리킨다.[39] Geoid. 해발 0미터의 기준이 되는 타원체에 가까운 삼차원 도형.[40] 우리나라에서는 정식 발매는 되지 않았고, 1995년 경에 해적판으로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