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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53535><colcolor=#fff> 힙합플레이야 | HIPHOPPLAYA | |
이름 | HIPHOPPLAYA |
설립일 | 2000년 8월 18일 |
설립자 | 김용준 |
본사 |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11길 31, 5층 501호 |
링크 | [1] [2] [3] [4] [5]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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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IPHOPPLAYA는 2000년 8월 18일에 김용준이 설립한 힙합 매거진 사이트이자 법인 회사이다. 한 때 초기 힙합플레이야의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멤버들인 김대형[7], 서혜정[8]도 합류하여 힙합플레이야가 커져 나갔다.김용준은 윈엠프(winamp)라는 미디어 플레이어에 외국 힙합 음악을 틀고 보는데 슬랭 표현인 'playa'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고 하며 느낌이 좋았다고 한다.[9] 그것을 계기로 '힙합플레이야'라고 이름을 지었고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로고도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김용준은 한창 닷컴버블이 일던 시절, 그의 전공인 서강대학교 컴퓨터공학과인 것을 활용하여 대학교 3학년 시절 힙합플레이야를 만들었다. 지금 많은 커뮤니티가 홍보 글에 대해 피곤해져 적대시 되는 것과는 달리, 당시의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무엇인가를 홍보하더라도 잘 받아주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자신이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며 여러 곳에 가서 홍보도 꽤 했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는 그냥 재미로 만들었으나, 조PD가 그의 손에 20만원을 쥐어주고 자신의 사이트에 홍보를 부탁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계속되니 이것이 돈이 될 수도 있구나 생각을 하며 사업을 시작해나갔다고 한다. 자신도 이것이 20년 동안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국내 존재하는 한국 힙합 사이트 중 가장 역사가 길다.
사실상 현재 존재하는 한국 힙합 씬의 판을 깔아준 단체 중 하나이며, 그 중 제일 기여도가 크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한국에서 힙합 문화가 시장으로 커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최초의 사례로 불릴만하다. 힙합 앨범 쇼핑몰[10], 힙합플레이야 페스티벌, MC 인터뷰, 힙합을 사랑하는 힙합 리스너들이 모여 대화할 수 있는 공간 마련, 한 때는 한국 힙합 여론을 엿볼 수 있는 굉장히 컸던 힙합 커뮤니티를 운영했고 또 다른 것도 운영하고 있는 역사 등을 거치며 살아남았으며 현재 진행 중이다.
줄여서 '힙플'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2. 상세
국내 힙합 매거진 사이트 중 가장 큰 규모와 역사를 자랑한다. 국내에서 발매되는 거의 모든 힙합 앨범의 소식을 접할 수 있으며, 사이트의 역사가 긴 만큼 뮤지션들의 인터뷰도 꽤나 방대하게 보유하고 있다.[11] 스토어에선 각종 힙합 CD와 의류 등을 판매하며 공연 예매 구매 지원, 몇몇 뮤지션들은 앨범을 힙합플레이야에서 독점 판매하기도 했었고, 2019년에는 이런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짐이 이유인지 공연 예매와 스토어는 닫았음을 알렸다.커뮤니티 기능도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 데다 사이트의 규모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지는 힙합LE나 진입 장벽이 너무 낮아 쓸모 있는 정보는 거의 없는 디시인사이드 힙합 갤러리에 비해 신규 회원들이 적당히 활동하기에 좋은 곳. 커뮤니티가 가장 활발했던 2000년대 후반에는 네임드 어그로꾼들과 뻘글이 많았던 시기였고 그 후에는 점차 수그러들었지만 최근 쇼미더머니와 여성 회원들이 유입되면서 성비가 균형을 잡게 되어 성격은 예전보다 유해진 편이였다. 하지만 2022년 기준으로는 게시판 글은 올라오나 전보다 처참한 수준이다. 마켓 게시판과 오픈마이크 게시판 정도만 활발한 편이다.
게다가 2015년 말에 나타난 새로운 게시판
지금은 음악 게시판으로 통합했지만, 옛날 게시판 중 '국내음악 게시판'이 상당한 악명(?)을 떨쳤던 곳이었는데, 온갖 주제로 키보드 배틀이 난무했던 곳으로 여기는 하루도 평화로웠던 적이 정말 많지 않았다. 2010년 중반에는 이런 부분들이 대부분 힙합엘이 국내 게시판으로 넘어갔지만 당시에는 좀 민감한 주제로 글이 올라오면 몇 십개의 댓글은 기본이였으며, 몇 백개가 되는 댓글의 글도 꽤 있었다. 오죽하면 버벌진트가 '무명'과 '누명'이라는 앨범이 만들어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곳이다. 2022년 기준으로 아직도 힙합플레이야 오픈마이크 게시판이나, 힙합엘이 음악 게시판이나 자신의 음악을 업로드하는 아티스트가 있긴 하지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으로 여러가지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져서 화력이 예전보다 화끈하지 않다.
사실 힙합플레이야의 성장에는 힙합플레이야에서 진행했던 '힙플라디오'[14]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뮤지션들이 직접 DJ를 맡아서[15] 최신곡이나 최근 힙합계 뉴스 등을 알려주고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나와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당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 리스너들의 좋은 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 2002년 첫방 당시에는 한 명의 진행자가 계속 방송을 하는 형식이었다가 휴지기 이후 2005년에 재개국하면서 요일별로 DJ가 바뀌는 시스템이 되었다.[16] 몇 번의 휴지기와 재개국을 반복하다 2014년에 비프리와 허클베리피가 진행을 맡아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었는데 2015년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2016년부턴 넉살과 던밀스가 황치와 넉치라는 이름으로 진행을 맡게 되었다. 최근에는 몽구스 크루의 ELO와 지구인(리듬파워)이 몽구스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진행했었다.
또한, 자체적으로 공연인 '힙합플레이야 쇼'를 여러번 기획했다. 초기에는 위에 언급한 힙플라디오 진행자들이 모여서 하는 특집 공연 같은 형식이었는데, 점차 자리잡으면서 자주 개최되었다. 드물긴 하지만 요즘도 간간히 진행되곤 하는 중. 한때 힙플 스토어에서 음반을 다량 주문하면 이 공연 DVD가 딸려왔었다. 또 힙합플레이야쇼와 별개로 'Fresh Live'라는 이름의 공연을 주최하기도 했는데, 매주 정기적으로 열리는 힙합 공연을 표방했다. Fresh Live는 생각보다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버벌진트의 크루로 잘 알려진 오버클래스가 이 Fresh Live 공연에서 같은 날 공연을 했던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하여 결성된 크루이기에 오버클래스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 음반 배급 업무도 진행하고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아직 음반시장이 완전히 죽은 상태는 아니었기에 기획사가 없는 인디 규모의 힙합 음반은 물량이 적다는 이유로 기존 배급사에서 취급해주지 않아 발매가 힘들었는데 힙합플레이야에서 음반 배급을 진행하면서 인디 뮤지션들도 1000장, 더 작게는 몇백장 규모의 음반을 발매해 배급할 수 있었다.[17] 힙합플레이야의 이름으로 배급을 하다가 '제뉴인 뮤직'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음반 배급을 하고 있다. 하지만 힙플스토어가 2019년 12월 11일부로 폐쇄가 결정되어 모든 상품이 품절된 상태가 되었고, 2019년 12월 31일 폐쇄되었다.
힙합플레이야의 또 하나의 특징은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자신이 직접 쓰고 녹음한 곡을 올리는 '자작 녹음 게시판'인데, 이 게시판을 통해 아마추어 뮤지션들끼리 교류도 하고,
3. 사건사고
2018년 11월 24일 KT 아현지사 화재 사태로 인해 KT 서버를 기반으로 운영하던 사이트가 서버가 터지는 바람에 접속이 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었다. 한동안 사이트 접속이 되지 않았다가 현재는 11월 19일자 백업본을 통해 사이트가 복구 된 상태지만 19일 이후에 올려진 글들 절반이 날아간 상태다.인터페이스 개편 후 과거와는 이용자 수가 현저히 줄어든 상태.
4. 논란
2019년 래퍼 염따의 폭로로 힙합플레이야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졌다.[19]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UV Cypher 출연 당시 출연료를 주지 않으려 했고, 고깃값이라도 달라는 염따의 하소연에 "4명분의 몫으로 겨우 15만 원을 주었다"고 한다.[20] 또 내일의 숙취 역시 페이 없이 출연했다고 밝혔다. 현재 여론의 대부분은 힙플 측의 처사를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후 해당 싸이퍼 영상 댓글에서 힙플측은 염따와 분쟁을 잘 풀었다고 하며 싸이퍼 출연료는 염따를 포함한 4명의 아티스트에게 각각 20만원, 세금 제외해서 19만 3천원이 지급되었다고 밝혔다.
2023년 8월 12일 힙합플레이야가 2023년 페스티벌에서 비프리의 앨범 Korean Dream의 커버를 티셔츠에 찍자 비프리는 인스타로 왜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이러냐고 인스타에 올렸다. 답변이 가관인 게 Stoneship인 석찬우 대표에게 말했다고 하자 석찬우 대표는 인스타로 Korean Dream의 유통은 자신의 회사가 아니라고 했으며 게다가 전혀 상관없는 딥플로우의 앨범 양화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고 한다. 비프리가 이것에 대한 증거도 올린 건 덤이다. 게다가 티셔츠 판매에 대한 얘기는 한 인스타 유저가 페스티벌에 직접 갔는데 49000원에 팔았다는 댓글을 달자 그것에 대해 해당 아티스트들의 허락을 받고 50%는 아티스트 몫이라고 해명하자 정작 비프리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비프리가 이걸 알게 된 건 그 인스타 유저의 댓글에 대한 해명을 통해서다. 오죽했으면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거냐고 답변을 한다. 비프리의 말대로 Korean Dream의 저작권은 비프리에게 있으며 힙합앨이 유저들 역시 너무 정상적으로 타당한 항의라서 비프리를 지지하고 힙합플레이야는 여전하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5. 페스티벌
자세한 내용은 힙합플레이야 페스티벌 문서 참고하십시오.6. 여담
2018년부터 주기적으로 힙게와 자게에 벗방, 성인 취향 웹툰 플랫폼 등 부적절한 광고가 올라오고 있다. 운영진이 아무리 조치를 취해도 꾸준히 올라오다보니 유저들도 해탈해서 아예 광고를 패러디한 유머글(...)을 쓰는 유저도 있다.김용준이 출연한 OG힙합, 매콤한라디오의 특집 힙합플레이야 35:10에 의하면 하루 제일 많이 들어온 회원수는 5만여명 이라고 한다.
힙합엘이에서 죽은 곳이라며 너무 평화롭다고 종종 까이곤 한다.
2020년 12월부터 힙합 관련 짧은 밈 영상을 찰지게 번역하는 힙플밈 채널을 개설하였고 2022년 6월부터 "후드에서 살아남기" 시리즈가 유행을 타게 되면서 10월쯤부터 힙합플레이야 본 채널 구독자 수를 넘어서게 되었다.
[1] 스텍플레이야[2] 힙플 가사 해석[3] 힙플밈[4] 힙플리 HIPHOPPLAYA Playlist[5] HIPHOPPLAYA Clips[6] HIPHOPPLAYA Lyric Video[7] 소울컴퍼니 출신인 키비, 마이노스, 라임어택 등이 설립했던 레이블 '스탠다트 뮤직'의 실무자로 잠시 힙플을 떠났다가 스탠다트 뮤직이 해체되면서 힙플로 돌아왔다.[8] 서혜정은 힙플라디오 유엠씨 때 작가 역할을 맡았었다.[9] 초기에는 이 이름이 촌스럽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10] 현재는 문을 닫았다[11] 마치 한국힙합의 박물관이다.[12] 설립자 김용준은 더욱 깨끗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서 게시판 관리자들과 욕 등 부적절한 활동을 하는 회원들에 경고를 주며 빡세게 관리를 하였다고 밝혔는데, 그게 커뮤니티에 부정적으로 일어날지 몰랐다고 힙합플레이야 20주년 기념으로 출연한 매콤한 라디오를 통해 밝혔다.[13] 물론 힙합플레이야와 힙합LE를 동시에 하는 이들도 많았다[14] 초창기에는 'Hipple People Radio'로 불렸으나 나중엔 'Hiphopplaya Radio'로 불렸다. 둘 다 줄여서 '힙플라디오' 혹은 'hpradio'라고 불렸다.[15] UMC/UW, 데프콘, TBNY, Ill Skillz 등이 개국 이후 라디오 진행을 맡았다. UMC/UW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16] 이때 진행을 맡았던 뮤지션으로는 김디지, Young GM(現 비즈니즈), N-son(現 시진), 아이삭 스쿼브, 넋업샨, 마이노스, DJ SKIP, 엘큐, 대팔, 정기고, 각나그네 등이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진행자 교체가 왕왕 있었다. 가리온의 나찰도 4주간 특집 방송으로 DJ를 맡은 적이 있다.[17] 리드머를 운영하는 인플래닛 역시 비슷한 업무를 진행했다. 거기다 음반 시장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면서 몇 만장 단위 이하는 취급하지 않던 대형 배급사들도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음반 배급에 뛰어들기도 했다. 소울컴퍼니에서 발매되던 음반을 CJ E&M에서 배급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18] 산이는 San, 블랙넛은 김콤비와 MC기형아, 테이크원은 BABO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도넛맨은 비프리가 열었던 컴퍼티션 이전엔 랩네임이 딱히 없었다.[19] 염따가 이러한 폭로 영상을 게시한 이유는, 그가 그렇게 무보수로 힙플의 콘텐츠에 여러 번 출연했지만, 정작 힙플 페스티벌에 부르지 않았기 때문. 현재 힙합씬에서의 그의 인지도나 위치를 생각해보면 의아한 부분이긴 하다.[20] 이후에 그 관계자는 벤츠를 타고 홀연히 떠나버렸다고 한다.[21] 가사가 '돈'이다. '돈 돈 돈 돈돈돈 돈돈~' 거리다가 마지막에 '제네 놈은 끝까지 돈 돈 돈돈돈돈'이다.[22] 정확히는 15÷4인 37500짜리 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