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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23:06:22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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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뉴델리
1954
마닐라
1958
도쿄
1962
자카르타
1966
방콕
<rowcolor=#373a3c> 6회 7회 8회 9회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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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방콕
1974
테헤란
1978
방콕
1982
뉴델리
1986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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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베이징
1994
히로시마
1998
방콕
2002
부산
2006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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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광저우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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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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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항저우
(연기)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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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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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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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방콕 아시안 게임
제6회 아시안 게임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VI Asian Games
Bangkok 1970
파일:attachment/51024002478.jpg
대회 기간 1970년 12월 9일 ~ 1970년 12월 20일
개최국
[[태국|]][[틀:국기|]][[틀:국기|]] / 방콕
참가국 18개국
참가 인원 2,400명
경기 종목 13개 종목 - 135개 세부 종목
개회 선언 라마 9세
태국 국왕
성화 점화 쁘리다 출라몬돌[1]
개·폐회식장 수파찰라사이 경기장
1. 개요2. 유치과정3. 메달 순위4. 여담

[clearfix]

1. 개요

1970년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6회 하계 아시안 게임이면서 2번 연속으로 개최된 유례가 없는 대회이다.

2. 유치과정

원래 이 대회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실론(현 스리랑카)도 유치 신청에 나섰지만 철회했다. 그런데 북한군사 도발 위협 및 경제개발 우선의 이유로 재정상의 문제가 발생하여 대한민국 측이 개최권을 반납하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의 재임기간 적극적인 서울 개발로 고가도로 건설, 시민아파트 건설, 세운상가 건설, 밤섬 폭파를 통한 여의도 확장, 한강 방조제 건설 등 각종 건설사업을 벌였는데, 이의 반대 급부로 재정이 아슬아슬했고 지하철 건설하기에 삽을 뜨기 힘든 상황에 아시안 게임까지 유치했다가 서울시가 파산할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2] 결정적으로 1968년 1월 1.21 사태가 발생하면서 북한의 테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대테러 비용으로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진짜로 개최했다가 중앙정부 재정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상황이었다.[3] 이는 선견지명 있는 조치였는데, 1972 뮌헨 올림픽에서 테러 참사가 발생했고 이후 올림픽 대테러 예산이 급증하여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개최했던 몬트리올이 파산하여 특별세 등을 통해 30년만에 빚을 메운 사례가 발생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측에서 개최권을 반납해버렸고 결국 이전 대회를 개최했던 태국 방콕억지로 떠안게 되었다. 원치도 않는데 한국의 개최권 반납으로 인해 억지로 한 도시가 아시안 게임을 두 번 개최를 하게 된 특이한 케이스. 물론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10개 국에서 개최비용을 보전해 주기는 했지만 너무 모자라서 태국에서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개최권 반납으로 벌금 20만 불을 지불하게 된다.[4]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당시 한국과 태국의 경제적인 격차가 크지 않았고 태국이 이때부터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에 있어서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던 시기였으며, 당시에는 태국도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을 하던 시절인지라 아주 어려웠던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로 경제상황이 어려웠을 때 치렀던 아시안 게임은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이다. 이후 이 같은 일은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의 개최 과정에서도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대한민국은 1986년에서야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게 된다. 이후로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였다.

3. 메달 순위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메달 집계
최종 집계
<rowcolor=#e8c84a,#ffffff> 순위 국가 메달 합계
1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 일본
74 47 23 144
2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 대한민국
18 13 23 54
3 [[태국|
파일:태국 국기.svg
]] 태국
9 17 13 39
4 [[이란|
파일:팔라비 왕조 국기.svg
]] 이란
9 7 7 23
5 [[인도|
파일:인도 국기.svg
]] 인도
6 9 10 25
6 [[이스라엘|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 이스라엘
6 6 5 17
7 [[말레이시아|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 말레이시아
5 1 7 13
8 [[미얀마|
파일:버마 연방 국기.svg
]] 버마
3 2 7 12
9 [[인도네시아|
파일:인도네시아 국기.svg
]] 인도네시아
2 5 13 20
10 [[스리랑카|
파일:스리랑카 국기.svg
]] 실론
2 2 0 4
11 [[필리핀|
파일:필리핀 국기.svg
]] 필리핀
1 9 12 22
12 [[대만|
파일:대만 국기.svg
]] 중화민국
1 5 12 18
13 [[파키스탄|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 파키스탄
1 2 7 10
14 [[싱가포르|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 싱가포르
0 6 9 15
15 [[크메르 공화국|
파일:크메르 공화국 국기.svg
]] 크메르 공화국
0 2 3 5
16 [[베트남 공화국|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 남베트남
0 0 2 2

4. 여담


[1] 당시 태국의 사이클 선수. 2010년 3월 28일 향년 6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2]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개최 과정에서 나왔던 잡음들이 1960년대 후반에 벌써 터졌다는 얘기이다.[3] 당시의 남북관계, 북한의 도발행위, 이런 것을 보면 오히려 김신조 사건이 일종의 반면교사였다. 만일 이런 사건이 없어도 예정대로 아시안 게임을 개최했다면 북한의 테러가 일어날 확률은 거의 99%였다. 당장 김신조 사건 이외에도 1960년대 말만 보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굵직한 대남 도발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4] 지금이야 큰 금액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대의 달러 가치와 소득 수준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물론 개최 비용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