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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20:19:31

황후화

<colbgcolor=#D9A858,#010101><colcolor=#562C12,#DDDDDD> 황후화 (2006)
滿城盡帶黃金甲
파일:황후화 국내 포스터.jpg
장르 드라마, 로맨스, 무협, 사극, 액션
감독 장예모
각본 장예모
원작 차오위 《뇌우》
제작 윌리엄 공, 장위평, 장예모
주연 주윤발, 공리, 주걸륜
촬영 자오샤오딩
음악 시게루 우메바야시
제작사
[[중국|]][[틀:국기|]][[틀:국기|]] 에드코 필름
배급사
[[중국|]][[틀:국기|]][[틀:국기|]] 베이징 뉴 픽처 필름

[[미국|]][[틀:국기|]][[틀:국기|]] 소니 픽처스 클래식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영화사 진진
개봉일
[[중국|]][[틀:국기|]][[틀:국기|]] 2006년 12월 14일

[[미국|]][[틀:국기|]][[틀:국기|]] 2007년 1월 12일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2007년 1월 25일, 2019년 12월 16일 (재개봉)
화면비 2.35 : 1
상영 시간 113분
제작비 약 $45,000,000
월드 박스오피스 $78,568,977
중국 박스오피스 $37,471,028
북미 박스오피스 $6,566,773
대한민국 총 관객 수 897,678명
상영 등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영등위_18세이상_2021.svg 청소년 관람불가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R등급 로고.svg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
3.1. 기3.2. 승3.3. 전3.4. 결
4. 역사적 모델5. 인위성 연출6. 잔인함7. 정치적 함의?8. 기타

[Clearfix]

1. 개요

황제, 황후, 그리고 왕자! 황금빛 궁궐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 반란!


주윤발, 공리, 주걸륜 주연의 중화사극 영화. 묘하게 포스터에서 대왕을 좌측에, 왕후를 중간에, 왕자를 우측에 넣었다.[1]

원제는 만성진대황금갑(满城尽带黄金甲). '성 안의 모두가 황금 갑옷을 둘렀네'라는 뜻으로, 황소의 난으로 유명한 당나라 말기의 반란지도자 황소가 지은 시구에서 따왔다.

영화의 원작은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극작가인 조우(曹禺, 1910~1996)의 희곡인 <뇌우(雷雨)>를 각색한 것이다. 뇌우는 원래 조우가 처음으로 발표한 현대희곡으로 민국시절 콩가루 재벌가의 왕자의 난을 다룬 작품이었으나, 장예모는 이를 사극으로 번안하여 영화화했다.

2. 등장인물

한국어 번역판 자막은 황제-황후라고 번역했지만 실제로 중국어 대사를 보면 대왕과 왕후라고 나온다.

3. 줄거리

3.1.

배경은 시기가 불분명한 중국의 어떤 왕조이다.[6] 궁궐은 전투에 나간 대왕[7]의 귀환 준비로 분주한데, 대왕은 전투를 마친 뒤 바로 궁으로 가지 않고 천복관역(天福官驛)에 머물러 함께 전투를 치른 둘째 아들 '원걸(元杰)'과 독대한다. 대왕은 원걸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국경지역에서 근무한 점을 이야기하며 '때가 되면 왕위는 네게 넘어갈 테니 감히 넘보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는 함께 궁으로 돌아간다.[8][9]

대왕은 왕후와 상당히 사이가 좋지 못 해서 전투에 나가기 전 태의(太醫, 왕을 모시는 어의) '장역유(蔣亦儒)'에게 왕후가 마시는 탕약에 은밀히 '어떤 약'을 섞도록 해두었다. 대왕의 신임을 받는 장태의는 대왕의 명을 받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태자궁의 궁녀가 된 자신의 딸 '장선(蔣嬋)'을 은밀히 태자와 이으려고 노력한다.[10] 왕후는 장태의가 몰래 섞은 약의 기운으로 굉장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중양절(重陽節)[11]을 지낸다는 이유로 금실로 국화 수를 놓고 있다.

궁에 돌아와 어머니 및 형제들과 만난 원걸은 여전히 대왕과 모후의 사이가 나쁜 것을 본다. 원걸은 대왕이 모후가 일부러 남긴 약을 문제 삼아 다음 날 누대에서의 식사 자리에서 '질서' 운운하면서까지 면박을 주고 아들들에게 모후가 약을 마실 때까지 꿇어앉아 있게 하는 등 약을 억지로 먹인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다.

식사 자리에서 대왕은 왕자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냐고 묻고, 대왕의 질문에 맏아들인 태자 원상(元祥)은 청주(靑州)로 나가길 원하고,[12] 셋째 아들 원성(元成)은 중양절에 자신이 직령관(궁궐 수비대장)을 맡기를 원한다. 그러나 결국 둘 다 거부당하고 차남 원걸이 중양절의 직령관으로 임명된다.[13]

3.2.

왕후는 자신을 따르는 자객에게 자신이 마시는 약에 대해 조사를 시켰고 마침내 그것이 서역의 초오두(草烏頭)[14]라는 걸 알게 된다.

왕후를 만나고 돌아가던 자객은 태자 원상 및 내시부의 인원들에게 붙잡혀 대왕과 독대한다. 자객의 정체는 한때 대왕의 연인이였고, 지금의 태자 원상까지 낳았으나 장태의의 아내가 된 원배부인(元配夫人). 그녀는 과거 도위(都尉)[15]에 불과했던 현재의 대왕이 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양(梁)나라의 공주와 혼인한 뒤 원배부인의 가문에 역모 혐의를 씌워 패가망신 시켜놓고 이제 와 멀쩡히 살아있는 자신의 초상을 모셔놓은 채 쑈하고 있는 것에 분개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왕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왕의 추궁에 '아들(원상)이 보고 싶어 왔다'고 둘러댄다. 하지만 대왕은 이미 알아차린 듯.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왕후는 원걸에게 대왕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약에 대한 진실을 은밀히 알렸다. 원걸은 부왕에게 반기를 들 수 없다고 말하나 시간이 되어 모후가 독약이나 다름 없는 탕약을 순순히 마셔야 하는 모습을 보고는 결국 그녀를 돕기로 맹세한다. 그리고 왕후는 여전히 사랑하는 원상에게 자신의 국화 수를 새겨넣은 중양절 의복을 주었으나 그는 완강히 거절하는 한편, 강하게 권하는 모후의 태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대왕은 느닷없이 장태의에게 숙주(肅州)자사[16] 겸 경거도위(輕車都尉)[17] 직을 내린 뒤 그 일가를 임지로 보냈는데[18], 장선이 보고 싶던 원상이 몰래 궁을 나와 장선을 만난다. 원상은 장선을 만나 잠자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왕후의 지시로 만 송이의 국화 수가 준비되었고, 오시랑(吳侍郞)[19]까지 여기에 함께 함을 깨닫는다.[20] 그러다 원배부인은 태자가 장선이 함께 있는 걸 보고 홧김에 태자에게 호통을 치는[21] 불경을 저질러버렸고 태자는 불쾌해하며 돌아간다. 장선 역시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태자를 쫒아 홀로 말을 타고 간다.

3.3.

대왕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장태의에게 자객들을 보내 그 일가를 습격하고, 궁으로 간 장선과 장태의의 희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원배부인 외에는 모두 살해당한다. 자객대는 원배부인을 추격했으나 도중에 왕후의 사주를 받은 군사들의 공격으로 놓치고 만다.[22] 숙주에서 장태의 일가가 공격을 받는 사이 원상은 왕후를 찾아가 무슨 짓을 벌이느냐고 따지다가 홧김에 '너를 죽이려고 그러는 거다'라고 소리친 왕후의 말에 충격을 받고는 칼로 가슴을 찔러 자해를 시도한다.

간신히 목숨은 건진 원상은 병상에서 왕후에게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고, 왕후가 나간 후 들어온 부왕이 '너희(왕후와 원상) 사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하자 두려워 왕후의 계획을 대왕에게 다 털어놓고 만다. 한편, 왕후의 상태는 초오두를 오래 복용한 탓에 너무 심각해져 히스테리와 발작으로 머리 장식을 꽂는 것조차 버거워 했다. 원걸은 모후를 찾아갔고 원상의 부상과 모후의 반응을 통해 계획이 발각됐음을 짐작했으나 모후는 태연하게 아래의 대사를 읇는다.
菊花都绣好了, 总得开一回
국화꽃이 다 수놓아졌으니, 어찌되든 한 번은 피어야지.

원걸은 알겠다면서 방을 나섰고, 왕후는 그런 원걸을 불러세운 뒤, 그의 의관을 매만지며 슬프고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보냈다.

중양절 행사가 거하게 시작되고 원걸은 계획대로 직령관의 권한으로 궁궐 내 병사들을 빼냈다. 때마침 궁궐에 당도한 장선과 원배부인은 궁궐 내에 숨어있던 자객들에 의해 죽을 뻔하다 다시 한 번 왕후를 따르는 병사들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 왕후의 환관을 따라 대왕 일가 앞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대왕한테 어떻게 자신한테 이럴 수 있냐며 따지지만, 대왕은 왕후 편에 붙지 말았어야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에 왕후는 주변인들에게 대왕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왕후는 원배부인이 원상의 생모임을 폭로했고, 원상과 장선은 자신들이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경악한다.[23] 장선은 큰 충격을 받아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지만[24] 얼마 가지도 못 하고 자객들의 사슬낫에 죽고, 그녀를 쫒아가던 원배부인 역시 딸의 죽음에 분노해 그녀를 죽인 자객들과 동귀어진하고 만다. 그러다 난입해오는 반란군의 군사들이 던진 창에 맞아버렸다. 왕후 편인 반란군이 역시 왕후 편인 원배부인을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니고 달아나는 환관들을 향해 무차별로 던진 창에 어쩌다 걸려버린 것이다.

마침내 대왕의 황금 갑옷을 입은 원걸이 왕실 친위대를 이끌고 전원 국화 수가 놓인 천을 목에 두른 채 황궁으로 진격해온다. 이에 자객들이 대항하지만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덤빈 놈들은 전멸해버린다. 황후가 갑자기 국화수를 목에 걸자 이미 원상의 고백을 통해 다 알고 있던 대왕이 '무슨 짓을 꾸미느냐'며 왕후를 조롱하려는 순간, 셋째 원성이 갑자기 칼로 태자를 뒤에서 찔러버리고 원성을 따르는 병사들이 나타난다.[25]

동생의 칼에 가슴이 꿰뚫린 원상은 왕후의 품에 안겨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미안하다'는 말[26]을 남기고 숨진다. 원성은 왕위를 내놓으라고 부왕을 협박하지만, 부왕은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동생이 형을 죽일 수 있냐며 대노한다.[27]

직후 숨어있던 대왕의 자객들이 습격하여 원성의 수하들은 허무하게 전원 사망. 원성을 따르는 병사들은 인원도 분대급이 안 되는 데다 원성과 키가 비슷할 정도로 새파랗게 어린 애들이 다수였다. 애당초 대왕이 궁궐 곳곳에 배치해둔 자객들과 병사들 수만 한 개 군단급 정도이니 머릿수부터 상대가 안 되었던 것. 아마 원성이 어린만큼 내부 중요인물만 장악하면 어째어째 끝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하필이면 같이 역모를 벌여도 (황후의 안배가 있었다지만) 만 단위의 병력을 지휘한 원걸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결말. 한마디로 뭔가 음모를 꾸미는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마무리는 철없는 어린애의 몸부림 정도로 그쳤다.

그럼에도 원성은 직접 칼을 부왕을 향해 휘두르지만 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다 대왕은 그 자신이 무예가 뛰어난 젊은 원걸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는 무인이라 여유롭게 제압해 버린 다음,[28] 분노한 대왕은 요대를 풀어 내리쳐 자신의 아들을 때려 죽여버린다.[29]

3.4.

그 동안 원걸은 군사를 이끌고 대기하고 있던 부왕의 군대를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대왕의 정예병인 자객대를 모두 몰살시키고 궁으로 진입까지 성공하고 대왕의 깃발까지 베어버리며 궁 내부 진입까지 시도했지만 이미 모든 계략을 파악한 대왕은 이미 입구에 군대를 배치해 공성탑을 밀어 퇴로를 차단하고 궁병들이 교대로 화살을 날려 반란군을 전멸시켰고[30] 원걸을 생포하고 붙잡혀온 왕후측 장수 및 대신들은 모두 처형당한다.[31] 궁인들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시체가 치워지고 핏물을 뺌으로써 전투의 흔적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워진다. 대왕은 원걸에게 사형을 면하고 덤으로 보위를 이어받는 대가로서 부왕을 배반한 모후에게 탕약을 스스로 갖다 바치라는 제안을 받는다. 즉, 원걸의 손으로 직접 모후를 죽이라는 것이다. 원걸은 모후에게 다가가 죄송하다고 하자 왕후는 자신을 위해 참혹하게 싸우다 피범벅이 된 자신의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모성애를 보여주는데 원걸은 옆에 있던 친위대의 칼을 빼앗아 들고는 목을 그어 자결해버린다.[32][33]

왕후는 오열하며 아들의 피가 뿌려진 약그릇을 올린 쟁반을 뒤집어버렸는데 약이 쏟아진 자리가 마치 염산이라도 맞은 듯 연기를 내며 부식되는 연출이 등장하고, 그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종결된다.[34] 결국 영화에서 나오는 대왕의 아들 셋은 모두 죽었다. 처음부터 대왕이 왕후를 죽이기로 결정했고 이제는 명분까지 갖춰진 이상, 왕후 역시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보통 마지막 연출 때문에 대왕이 마지막에 가져온 약이 부식성의 극약이라고 착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애초에 부식성을 가진 탕약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왕이 원걸에게 한 대사는 "이제부터 모후를 잘 돌보면서 매일 약을 먹게 해야 한다(从现在开始你每天要好好伺候你母后吃药)"이다. 즉, 대왕은 왕후가 친자식 손으로 매일 같이 초오두를 넣은 탕약을 먹어 끝내는 미치거나 혹은 죽어 버리는 최악의 처결을 내렸기 때문에 곧바로 죽어 버리는 탕약 같은 걸 내놓을 리 없었다. 원걸 또한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망칠 수 없어 결국 자결을 선택한 것이다.

4. 역사적 모델

이 영화는 원작 희곡이 1930년대 민국 재벌가의 왕자의 난을 다룬 현대극인 만큼 특정왕조를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희곡 내용을 최대한 비슷한 상황의 역사에 맞춰 번안한 것이다. 역사의 사건이나 나라를 배경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픽션성이 강한 작품이라 굳이 이런 부분까지 사실적 고증을 지킬 필요성은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영화 자막에 시기로 특정한 10세기로 볼 때는 당나라 멸망 후 여러 군벌들이 스스로를 황제로 자처하며 송이 건국될 때까지 중국이 여러 국가로 나뉘어있던 오대십국시대후당이 가장 유사하다.

실제로 후당 명종 이사원이 병에 걸렸을 때 이사원의 차남 이종영(李從榮)은 부황이 이미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제위를 욕심내어 난을 일으켜 궁으로 쳐들어 왔다가 진압되고 처형된다. 영화 시작 때 '오대십국시대 928년'이라는 자막이 등장하고 둘째 아들의 반란이라는 부분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극중 대왕의 모델이 후당의 명종 이사원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설정상 왕후가 '양나라의 공주'로 되어있고, 이사원은 후량을 멸망시킬 당시에 황제는 아니었지만 후량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부부간에 이런 불화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결말은 부자간 쿠데타로 왕조가 내분되면서 멸망을 암시하는데, 이는 겨우 건국 14년만에 골육상쟁으로 약화되었다가 요나라에게 망한 후당의 비극과도 일치한다. 또한 영화 속 장태의의 임지인 숙주(蘇州)는 실제로도 후당의 영역이었던 서쪽의 변방이었다.

다만 이사원의 아들들은 종(從)자를 항렬로 썼는데 대왕의 아들들은 '원(元)'자를 항렬로 쓰고 있다. 또한 극중의 나라는 칭제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칭제하지 않고 주변 강국의 번국을 자처하며 독립을 유지한 오월과도 유사하다. 극중 등장하는 궁궐이 상당히 자금성과 흡사하니[35] 말 그대로 모티브만 가져왔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예모의 영웅이나, 삼국: 무영자에서 그렇듯이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한 장예모판 사극 판타지로 보면 된다.

5. 인위성 연출

시각표현으로 접근하자면 동원한 인원도 어마어마하다.[36] 그러나 입이 딱 벌어지는 숫자의 스케일과는 별개로 군대가 군대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모습이 많다. 왕후의 군대는 반란군 주제에 보초 한 명 안 세워놔서 대왕의 친위대가 몰래 기어들어와 기습 한 번에 전멸한다.[37] 어디까지나 연출적 허용으로써 말도 안 된다는 걸 제작진 역시 알면서 그리 찍었겠지만, 숫자가 1만 이나 되는 반란군들이 병종은 창병뿐이고 그들의 무장은 창 한 자루뿐이다.[38] 그걸 투창처럼 마구 던져대는데, 수천 개의 창이 화살비 쏟아지듯 날아가는 그림이 아무리 근사해보일지라도 창 던지고 나서는 그냥 맨손으로 싸우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이후 전개되는 본격적인 전투도 대규모 병력이 맞붙어 싸우는 게 아니고 포위해놓고 성벽에 배치된 근왕군의 사수들이 활을 쏘아 죽인다. 반란군측은 방패수도 궁병도 없어서 방어도 반격도 안 되고 화살 맞아 픽픽 쓰러져나간다.

이러한 포위섬멸이 성립하기까지 과정도 역시 설득력이 궁핍한데, 반란군이 이미 안뜰에 절반이상 진출한 상태에서 근왕군은 내성문하고 궁전사이의 안뜰에 자동문처럼 공성탑을 배치해서 반란군의 진로를 차단하려 시도한다. 고립된 안뜰의 전후방은 좌우폭과 별 차이가 없으므로, 이 때 친위대와 반란군이 똑같은 속도로 이동해도 중간 부분에서 공성탑으로 틀어막는 일은 시간상으로도 거리상으로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란군은 창 한 자루만 들고 전력질주중인데 엄청나게 무거운 공성탑을 옮기는 친위대와는 이동속도에 엄청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즉 공성탑이고 뭐고 반란군은 지금까지 뛰어온 것처럼 계속 전진만 하더라도 저지선 중앙을 차폐도중 통과한 후 좌우로 산개해서 무거운 장비를 쓸데없이 잔뜩 들고 있는 친위대를 박살내야 정상이다. 피해는 여전히 크겠지만, 포위를 당하지 않으므로, 영화에서처럼 밀집당하여 화살에 전멸하는 인위적인 상황도 나올 수 없다. 즉 영화에 나온 공성탑 포위 대치장면이 완성되려면, 반란군은 제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때리고 있어야 한다. 실제 롱테이크로 찍으면 이 부분 시퀀스가 도저히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을 궁전 내에서 대왕이 셋째 아들 원성을 때려죽이는 장면을 잠깐 끼워서 어물쩡 넘어가 버렸다.

좌우지간 과잉 인공미, 극적 시각표현을 인위적으로 고조시키느라 연출의 개연성은 내다버린 물량공세 촬영이 찍어낸 근왕군의 반란군에 대한 일방적 학살은 다른 영화에선 느끼기 힘든 시원시원한 쾌감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영화에선 느끼기 힘든 허무감을 주기도 한다. 영화의 분위기도, 등장인물들도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저런 바보스러워보이는 군대와 전투 묘사나 극에 달한 과장 때문에 사람에 따라선 오히려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다만 위의 비판에 대한 변명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개 가장 흔하게 잘못 비판하는 경우가 뭐냐 하면 극중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시청자라는 전지적 시점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왕후와 2왕자가 동원한 병력은 금갑의 친위군(상당수 혹은 대부분)인데, 대개 이런 금갑 친위군은 왕궁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고 있고 따라서 왕궁에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거대 전력 집단이기에 왕궁 반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을 진압하거나 혹은 반대로 반란을 성공시키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던 3왕자도 친위군 지휘를 맡기를 원했던 것이고, 실제로도 대왕의 마지막 방패라 할 수 있는 비밀 경호대(갈고리 부대)가 반란을 일으킨 친위군에 맞서 싸우지만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금방 전멸당했던 것이다. 따라서 왕후와 2왕자가 무려 1만명에 달하는 친위군을 반란에 포섭하는데 성공한 이상, 대왕이 반란을 미리 눈치채고 대비하지 못했다면 반란이 그대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반면에 이런 친위군을 제압하기 위해 등장한 근왕군은 금갑이 아니고[39] 따라서 이는 원래 왕궁에 존재하는 친위군이 아닌 대왕이 다른 곳에서 은밀하게 불러온 정규 전투군이라고 생각해야 맞다. 비유하면, 갈고리 부대는 대통령 경호실 요원, 금갑의 친위군은 101 경비단, 은갑의 근왕군은 대왕이 은밀하게 불러온 수도경비사령부 휘하 정규 전투군 병력인 셈. 근왕군에 비해 반란군의 무장이 창 하나로 단순하고 빈약한 것도 왕궁 경비라는 친위군의 임무 특성상 무기고를 열어 전투용 중무장을 하려 하는 순간 대왕의 감시망에 포착되어 의심을 살 것이 분명하므로 평상시의 경무장 상태로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반란 상황으로 돌아가면, 이런 이유로 대왕의 비밀 경호대까지 전멸시킨 상황에서 2왕자와 친위군은 반란이 성공했다고 100 % 확신했을 것이다. 따라서 대왕이 세워놓은 깃발을 발견하고 다소 어리둥절 하기는 했지만 이것을 대왕이 주는 마지막 경고로 생각하지 못한 2왕자가 앞에 나아가 호기롭게 깃대를 베어버렸다. 하지만 난데없이 이곳에 있어서는 안되는 근왕군이 나타났다. 근왕군이 공성탑을 움직여 벽을 만드는 동안 친위군은 대체 뭐했냐라고 하는데,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친위군이 공성탑 라인을 돌파하면 그 뒤로 무엇이 자신들을 기다릴 줄 알고 덮어놓고 돌격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설사 공성탑 라인을 돌파한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밀하게 그리고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대왕을 무력화시키고 속전속결로 2왕자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왕후와 2왕자에게는 반란을 일으킬 대의명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왕이 무능하거나 혹은 폭군이라서 사회가 도탄에 빠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있었나? 아니다. 그렇다는 어떠한 묘사도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실이 공개되면 양자인 1왕자와 근친상간을 저지른 왕후는, 왕후를 독살하려고 한 대왕 못지 않게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게 뻔했다. 따라서 설사 2왕자와 친위군이 근왕군의 공성탑을 돌파한다해도 대왕이 왕궁에서 탈출해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데 성공하기만 해도 이번 반란은 결국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니 '이곳에 있어서는 안되는' 근왕군이 나타났을 때, 2왕자와 친위군이 집단 뇌정지에 빠졌고 그래서 공성탑 라인이 완성될 때까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해명이 가능하다. 물론 이를 세심하게 잘 그려내지 못한 연출력은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양쪽 성벽 위로 무수히 배치되어 있었던 근왕군 궁사들도 초반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여기에도 숨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만약 근왕군 궁사들의 존재가 일찍 공개되었다면? 공성탑 라인이 완성되면 길을 쉽게 뚫기가 어려운데 거기에 3 면에서 화살이 쏟아진다면, 아무리 집단 뇌정지에 빠진 2왕자와 친위군이라 해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몰살당한다는 것 정도는 본능적으로 이해했을 것이고 그럼 공성탑 라인이 완성되기 전에 죽기 살기로 돌파하기로 재빨리 결단을 내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근왕군 궁사들의 존재가 처음에는 숨겨졌고, 때문에 집단 뇌정지에 빠진 2왕자와 친위군은 즉시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가 공성탑 라인이 완성된 후에야 이를 돌파할 시도를 하게 되지만 그때도 여전히 근왕군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친위군을 몰살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적당히 압박을 가한 후에 항복을 받으려고 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공성탑 라인을 넘으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거공성탑 라인이 앞으로 전진하면서 친위군을 좁은 곳으로 몰아넣고 근왕군 궁사들이 등장해 3 면에서 화살을 쏟아붓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친위군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때는 결과를 뒤집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즉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처음에 근왕군 궁사들의 존재를 숨긴 것은 친위군을 철저히 몰살시키기 위해 심리전까지 활용한 것이고, 여기에 2왕자와 친위군이 말려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간에 소름끼칠 정도로 철두철미한 대왕[40]이 반란 계획을 미리 알고 대비한 이상 친위군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충분한 병력과 장비를 2 중 3 중으로 마련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친위군이 어떤 무장을 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공성탑 벽이 완성되기 전에 친위군이 돌격했다해도 그 뒤에 대기하고 있던 중무장한 막대한 병력의 근왕군이 양쪽에서 쌈싸먹으면서 결국 공성탑 라인 뒤로 도로 밀어냈을 것이고, 결국 공성탑 벽은 완성되었을 게 뻔한데다, 어차피 친위군은 전멸당한 운명이므로, 감독이 가장 극적이고 허무하게 몰살당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 현실적인 공성탑 라인 돌파 공방전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6. 잔인함

오체분시 같은 노골적으로 수위 높은 장면은 없지만 잔혹한 영화다.

전투 묘사는 공성탑으로 급갑의 병사들을 깔아뭉개고 수만의 금갑 병력을 가둬놓은 뒤 수만의 화살로 대량살상한다. 중양절 행사에 대비해 수많은 꽃화분으로 꾸며놓은 궁궐 바닥에 수천 명의 시체로 산을 쌓고 핏물이 시내를 이룬 성내를 또 수천의 내관이 달려들어 잠깐 사이에 시체들를 치우면서 피를 씻어내버리고 피로 얼룩진 카펫 위에 새로운 카펫을 깔고 다시 꽃화분으로 바닥을 빼곡하게 장식해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중양절을 축하하는 말을 내관이 읊는다. 소름이 끼칠 정도.

사실 중국, 대만, 홍콩의 무협물은 엄청 잔혹하여 한국에 들어오는 건 대부분 그런 장면들은 삭제된다.[41] 일단 동방불패 영화판만 보더라도 영호충의 동료들이 동방불패에게 무참하게 도륙당해서 시체가 널려있다. 이때문에 국내에선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으나 채널 CGV 방영분에선 추가적인 편집이 있었는지 15세 관람가로 내려갔다.

7. 정치적 함의?

경고했지 않느냐. 오직 내가 주는 것만 너의 것이지, 내가 주지 않은 것을 네가 빼앗을 순 없다고.

대왕이 두번이나 모반한 이왕자 원걸에게

당시 평론가들 중 일부는 본 영화를 보고 "중앙정권에 감히 덤비지 마라"라는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고 평론하기도 했다.[42] 대왕이 원걸에게 경고하는 위의 발언은 수미상관 기법으로 시작과 끝에서 두번이나 등장하며 반복되는 작의 주제를 일축하는 대사로서 그런 이해를 강하게 호소하고 있긴 하다. 만약 이런 정치적 함의가 사실이라면 영화 속에서 궁궐을 자금성과 비슷하게 묘사한 게 납득이 가기는 하다. 자금성의 주변은 현대 중국의 정치적 중심지이고, 자금성 옆 중난하이는 중국 주석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극중의 왕후측 군대가 황금색인데 이 색은 오행에 맞출 경우 '토', 즉, '흙'을 상징한다. 현 중화인민공화국은 오행상으로는 '화', 즉, '불'인데 흙은 불을 상생해주는 관계로 오행상생설에 입각하여 해석하면 오행이 '불'인 중화인민공화국을 계승할 정권은 오행이 '흙'이 된다. 오행설에 맞춰서 영화 정황을 감안해서 해석하자면 현 정권의 뒤를 이을 생각하지 마라는 관점은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영화개봉 당시부터 대만에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득세하고 있었다는 점을 볼 때 대만을 노린 정치적 함의가 있는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중국측에선 하기도 한다.

대왕이 중국 정부를 상징한다는 이런 시나리오적 수용은 폭군에 냉혈한이고 측근과 전처에게 논공과 처단을 분배하며 동시에 세자와 2왕자를 아끼는 한편, 사랑의 일환에서 모질게 대하는 대왕의 입체적인 위엄을 다른 각도로 평가하도록 만든다. 시나리오상의 왕실의 가장인 대왕은 철두철미한 마키아벨리즘적 철혈군주이나 그 주변과 가족까지도 시선을 확대하면 대왕의 위엄과 대비되는 그를 제외한 나머지 왕가의 졸렬함은 서로 어울려 배가되는 효과를 얻는다. 왕후는 의붓맏아들과 간통하고 가족애를 볼모잡힌 둘째아들은 우유부단한 모반을 종용받는 한편, 소외된 막내아들은 분별없이 조잡한 반역을 꾸미는 분수모르는 이들이 되는 것이다.[43]

국제적 거장이라 받는 평가 및 인정여부를 떠나서 감독 장예모는 영웅부터 진시황의 통일의지와 그에 설득당해 진시황 척살과 자주독립과 민족자결, 반통일의지로부터 발생하는 유혈의 불의를 깨닫고 죽음을 수용한 형가와 그로 대표되는 민족의식의 허망함을 논한바 있다.[44] 할리우드 문법을 모방한 상업 블록버스터 장성(2016)에선 어쩌면 제작국으로서 당연하다 할 수 있으나 이미 가시화된 미중패권경쟁의 초입에 들어서 중국에 만연한 천박한 내부단결용 국뽕과 중화우월주의를 대외적으로 희석해 설파하는 영상물의 일환이 아니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장예모와 장예모의 영화는 안티들의 비난 차원을 넘어서 한중갈등상 고대사 왜곡동북공정의 쟁점화 이래로 시기적으로 일치했던 영웅 이후 의혹섞인 시선과 무방비한 관람에의 주의요구를 피하지 못했다.

황후화는 영화 속 권력주체들이 그들에게 설정되는 범주여부에 따라 이해가능한 의미와 그 접근방식이 달라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중 대왕 자신이 중국 공산당과 중국 정부를 은유한다면 이는 대왕의 의지를 거역해 부도덕한 쾌락과 사사로운 정리와 알량한 권력욕으로 국가의 안녕을 해치고 멸망으로 몰아가는 도전세력들의 하찮은 허망함의 표현이 된다. 반면 이런 도전세력과 함께 대왕을 왕가라는 틀에 함께 귀속한다면 이 시나리오는 대왕이라는 정부를 옹호하는 프로파간다 영화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을 통제불능 무능집단으로 그린 우회비판의 의도를 내재하고 있다는 관객의 수용 역시도 가능한 범위에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의 다양함에서 허용되는 양면적 분석의 가능성은 이 황후화에서 감독의 진의를 분석하는데 각종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위의 얘기는 일전에 이곳에 적혀있었던 얘기를 좀 더 있어보이는 용어를 써가며 그럴듯하게 포장했을 뿐 여전히 허점 투성이인 뇌피셜에 불과하다.

애초에 철두철미한 마키아벨리즘적 철혈군주라는 말 한마디로 대왕의 행동이 다른 가족들의 행동에 비해서 비판받을 부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부터가 넌센스다. 마키아벨리즘에 환장한 마키아벨리 빠가 아닌 이상 지금 어느 누가 그런 주장에 동의한단 말인가? 또한 대왕은 약에 독이 있다는 것을 반쯤 눈치채고 약을 거부하는 왕후에게 아들 2왕자의 효심을 이용해서 약을 먹이는데, 설사 독살 행위 자체는 왕후의 불륜 행위에 대한 처벌이라고 쳐도 아들한테 어머니에게 독을 먹이게 하는 패륜 행위가 어떻게 순순히 납득이 된단 말인가? 또한 3왕자를 죽인 것 자체는 조잡한 반란 행위에 대한 처벌이라고 쳐도 대왕이 산발한 채 반쯤 광기에 물들어 제 손으로 아들을 직접 때려 죽이는 행위가 어떻게 순순히 납득이 된단 말인가? 참고로 우리나라 역사만 보더라도, 광해군 폐위의 가장 큰 명분은 '폐모살제' 였지만 광해군이 자기 손으로 동생을 직접 때려죽이지는 않았고 그 때문에 현재 광해군에게 폭군이라는 이미지는 거의 없는 반면, 사도세자는 비록 그 광증의 원인이 영조에게 있다는 옹호론은 있어도 자기 손으로 사람을 여럿 죽였기 때문에 분명한 광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만든 영조 또한 자기 손으로 직접 사도세자를 죽인 건 아니라서 사도세자가 그렇게 된 데애 대한 책임론은 있어도 폭군이나 광인의 이미지는 없다. 그만큼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혔냐, 그것도 자기 가족의 피를 묻혔냐 아니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3왕자가 어차피 죽을 죄(반역죄) 저질렀으니 아비가 자기 손으로 3왕자를 때려죽인들 그게 별 대수인가 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마키아벨리즘이 아니라 그냥 싸이코패스적인 합리화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도덕적인 흠결이 없는 사람을 고르라면 그건 대왕이 아니라 2왕자다. 반란 시도가 실패가 돌아간 후 대왕은 왕후에게 약을 먹이는 일에만 협조하면 2왕자의 죄를 용서하고 후계자 지위를 유지해 주겠다고[45] 회유했지만, 2왕자는 그냥 자결을 택했다. 그것만 보더라도 2왕자는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반란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일찌감치 대왕의 후계자로 인정받아[46]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왕위를 물려 받을 수 있는 입장이었음에도 어머니인 왕후의 곤경 때문에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반란에 동참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2왕자의 반란이 성공했다해도 반드시 2왕자가 대왕을 살해하는 패륜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근거도 없다. 하지만 그런 2왕자도 막장 왕실 가족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데, 앞에서 언급한 패륜 행위에다 어의와 어의의 처(딸까지 낳은 대왕의 전처)와 관련된 이슈도 있는 대왕이 대체 어떻게? 그러니까 그냥 쉽게 말해서 이 영화를 보고 그냥 막장 왕실 가족의 이야기로 대부분 이해하지, 훌륭한 마키아벨리즘 대왕과 나머지 막장 가족들의 이야기로 이해할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 것 같냐는 말이다.

게다가 '양면적 분석의 가능성' 이란 말은 우스꽝스럽기 까지 하다. 그전까지 황후화가 중국 공산당을 옹호하는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열심히 주장해놓고 이제와서는 태연하게 그 반대 가능성을 말한다. 위의 글을 쓴 사람은 과연 단 한 번이라도 프로파간다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가 옛날에 많이 제작했던 반공 영화도 결국 프로파간다 영화인데, 그 중에서 양면적 분석 가능성이 있는 영화가 대체 몇 개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반공 영화 중에서 겉으로는 공산당을 비판하는 듯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듯한 영화가 몇 개나 있냐고? 따라서 예전에 적혀있었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프로파간다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만든 사람부터 끌려가서 코렁탕 먹고 영화사는 풍비박산이 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는 존해할 수 있지만, 상반된 해석이 가능한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는데, 그런 얘기를 태연하게 한다는 것은 뇌피셜에 불과한 조악한 근거를 가지고 어떻게든 이 영화를 프로파간다 영화로 끼워맞추니까 발생하는 대참사인 것이다.

8. 기타



[1] 중국과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임금의 좌측에 2인자가, 우측에는 3인자를 놓았다. 좌우의 2, 3인자를 중국 수나라~당나라 시기에 상서좌복야, 상사우복야라고 불렀는데, 좌측이 우측보다 높은 서열이었기에 상서복야보다 상서복야가 더 높은 대우를 받았다. 상서좌우복야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2] 2010년대 들어 중국 영화에서 당국강을 이어 마오쩌둥역을 전담하고 있다.[3] 다만 대왕의 의중을 보든 형인 원상의 속앓이를 보든,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가만히만 있어도 형한테서 태자 자리를 넘겨받아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다. 본인도 이 사실은 잘 알고 있었으나 대왕이 자기를 어여삐 여기는 것과는 별개로 친모인 왕후를 죽이려고 현재진행형으로 독을 먹이고 있는지라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역모에 동참해야 했다.[4] 신삼국사마의역으로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5] 원배(元配)라는 단어는 '첫 아내'를 의미하는데 대체로 죽은 부인을 말할 때 사용된다. 사실 원배부인이라는 명칭은 왕후가 장태의의 부인의 정체를 밝힐 때 말고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는다.[6] 여러 배경을 볼 때, 오대십국시대 후당시기라고 추정된다.[7] 한국에서 영화관 상영시 자막 번역을 '황제'라고 했지만, 실제 극중에서는 '황제(皇帝)'가 아니라 '대왕(大王)'이라고 부른다(왕자들은 부왕(父王)이라고 부름). 마찬가지로 공리 역시 '황후'가 아니라 '왕후'(왕자들 입장에서는 '모후(母后)')이다.[8] 그래도 전장에 널 보내길 잘 했다고 흐뭇해하기도 했다.[9] 여기서 둘의 사이가 험악해보이긴 해도 어쨌든 대왕이 둘째인 원걸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반란을 일으킨 왕자를 살려둔 것으로 모자라 (험지이기는 해도) 군권을 다시 맡겼던 것이다. 후술될 첫째와 셋째의 상태를 생각하면 가장 재능이 있는 원걸은 대왕에게 있어 대체 불가능한 왕자나 마찬가지다.[10] 태자 원상과 장선은 작중 연인 사이로 나온다.[11] 동아시아 지역에서 매년 음력 9월 9일에 지내는 세시 명절. 이 시기는 국화가 만개하는 시기여서 사람들이 국화전, 국화주 등을 만들어 먹었다. 작중에서 중양절이 언급되고 국화가 많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12] 왕후는 대왕 몰래 의붓아들 원상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고, 때문에 원상은 모후를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상이 장선과 노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불 같이 화를 내고 그가 외방으로 가길 원한다는 말에 크게 동요하는 모습으로 원상에 대한 왕후의 비뚤어진 애정을 볼 수 있다.[13]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원걸은 반란을 일으켰던 왕자다. 그런 그에게 중앙의 군권을 다른 왕자들 다 제치고 줬을 정도면 왕이 최소한 원걸의 능력은 인정했단 것이다. 원걸이 정말로 죄를 뉘우친 건지 확인하고자 맡겼을 가능성도 있다. 이것도 어찌보면 왕 입장에선 재반란 시도의 위험부담을 지는거다. 그럼에도 왕이 원걸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줬다는 것부터가 원걸을 아직 신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4] 실제로도 쓰이는 약으로서 투구꽃 뿌리로 만든다. 보통 마비증세를 다스리기 위해 사용했으나 요동 지역에서는 이 독을 이용해 사냥을 하기도 했으며, 냄새가 없고 혀를 마비시키며 맛이 몹시 맵고 쓰며 성질이 뜨겁고 독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영화상에서는 하루에 반 돈씩 여러 달 복용하면 미쳐버린다는 설정이 붙었다.[15] 왕의 사위에게 붙혀주던 칭호[16] 쑤저우라고 발음된다. 오늘날의 간쑤성 주취안시에 위치해 있다. 조금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후한 13주 중 양주(凉州) 일대라고 보면 된다.[17] 일종의 명예의 의미로 주는 작위로써 일반적으로 청나라의 관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나라와 당나라 시기는 물론이고 고려에도 존재했다.[18] 이 때 처음으로 장태의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바로 장역유(蔣亦儒)이다.[19] 병부시랑(兵部侍郞)을 의미한다.[20] 국화 수가 봉기군의 표식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병부까지 대왕에 대한 반역에 가담했다는 의미가 된다.[21] 지금의 태자인 원상과 장선은 둘 다 원배부인이 낳았다. 즉, 이 둘의 관계는 이부남매끼리 이어지는 것이다.[22] 이때 하늘을 날라다니며 굉장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화살 공격에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인다.[23] 그런데 사실 과거 왕족이나 귀족들이 혈통 지킨답시고 근친상간을 하는 경우도 마냥 드물진 않았던걸 고려하면,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일지도 모른다. 중국은 주나라에서 종법을 정하고 유교 사상이 확립하면서 동일 성씨와는 결혼도 안 할 정도로 근친혼을 배척했다. 이종사촌 혹은 교차사촌(고종사촌/외사촌)과 결혼은 가능했으나 그나마도 성씨가 달라야 가능했다. 물론 해릉양왕처럼 아예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당대나 후대의 평가가 매우 나쁘다.[24] 정보력이 빠삭한 대왕도 태자와 장선의 관계는 몰랐는지 장선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고 태자가 멍하니 바라보자 당황하는 기색으로 태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장선이 뛰쳐나간 입구를 바라본다.[25] 중양절에 직령관으로 임명해 달라던 것이 원성이 모반을 꾸민다는 암시였다. 자신이 지휘할 수 있는 군사를 원했기에 왕실 호위대를 이끄는 직령관 자리를 달라고 한 것이다.[26] 당신의 계획을 누설해서(망쳐서) 미안하다, 당신의 사랑을 몰라줘서 미안하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등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27] 이걸 보면 얼핏 철혈군주로 보이던 대왕 역시 자기만의 도덕적 기준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8] 이게 어느 정도인가 하면, 원성이 휘두르는 칼을 여유롭게 피하다 반격으로 싸대기(...)를 날렸는데, 그 한방에 원성의 얼굴이 금세 시퍼렇게 멍이 들어버린다. 파워의 급이 다른 것이다.[29] 원성은 옷 속에 갑옷을 입어 만일에 대비해두었는데 그 갑옷이 황제만이 쓸 수 있는 황금색이었다. 이걸 보고 더 빡친 대왕은 요대로 갑옷의 보호를 받지 않는 부위, 즉, 머리를 후려쳐 죽였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온 몸이 다진 고기가 될 때까지 요대로 채찍질을 했고, 결국 고기떡이 되어 축 늘어져 죽어버렸다. 동생이 형을 죽이는건 안되지만 아비는 자식을 고기떡으로 만든다.[30] 대왕이 셋째 아들 때려잡고 별궁에서 나왔을 때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기껏해야 15-30분 정도. 1만 명의 친위대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간 것이다.[31] 끌려온 사람들 중에 금갑을 입은 장수들 외에 관복을 입은 사람들도 있다. 평상시 대왕의 통치에 불만이 많았거나 왕후가 포섭한 세력이었던 듯.[32] 이에 대왕은 음식을 집어먹고 있던 젓가락질을 멈췄다.[33] 대왕이 원걸로 하여금 직접 모후에게 약을 바치게 한 것은 아무래도 후계자가 이미 둘이나 죽어나가고 남은 하나도 반역으로 곧 처형되기 직전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왕통을 잇기 위해 아들의 손으로 모후를 죽게한 뒤 그 죄를 왕후에게 뒤집어 씌우고 원걸의 반역죄 자체는 덮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34] 후당의 몰락을 암시하는 부분으로 생각된다.[35] 카더라에 의하면 예산을 아끼기 위해 기존의 자금성 세트장을 활용했다고 한다.[36] 어느 정도 스케일이 있는 중국 사극의 특징으로 84부작 삼국지 또한 인민해방군을 동원했다.[37] 보초들은 원상이 연회를 베풀어준다면서 다 철수시켰다.[38] 왕후의 군사는 최소 1만 이상이다. 극중 왕후가 수를 놓는 국화를 1만 벌 이상 지으라고 명령했다는 게 언급된다.[39] 반란에 참여한 친위군은 국화 자수 천을 둘러 따로 피아식별을 했으므로, 근왕군이 사실은 반란에 참여하지 않고 여전히 대왕에게 충성하는 친위군인데 단지 피아 식별 때문에 금갑 대신 은갑을 착용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40] 왕후와 1왕자의 관계를 이미 다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명령에 따라 왕후를 장기간 은밀하게 중독시킨 태의와, 현재는 태의의 처가 되어 있는 자신의 전처를 한꺼번에 모두 죽여서 입막음을 하려고 했다. 따라서 과연 1왕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실토하지 않았다고 해서 1만명이나 동원되는 반란의 낌새를 대왕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41]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 적벽대전의 경우 기존의 중화권 무협물의 대규모 전투 장면들 중 상당히 순화된 축에 속한다. 그래도 일부 병사들이 몸의 일부를 불에 붙이는 자살공격과도 같은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지만… 대부분 중화권 무협영화에선 그러한 충격적인 전투 씬이 많이 묘사된다. 비슷한 때 개봉한 명장(영화)에서도 대사도 있는 조역이 대포의 직격을 코앞에서 맞아 산산조각나거나 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나온다.[42] 물론 후술되어있듯 반론도 있다.[43] 조강지처의 재혼남을 돌봐주고 의모와 상간한 패륜아(세자), 2번이나 모반한 둘째를 보존하는 동시에 친족살해한 셋째를 노해서 손수 쳐죽이는 등, 권력의 생리에 부합한 그의 외양과 별개로 영화 속 대왕의 행동은 상당부분 귀책사유가 자신에게 없거나 필요해서 하는 것이며 지극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간성 넘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대왕을 순수악역이 아니도록 하여 주요 비판의도가 이 인물에 있다는 설득력을 상당히 떨어뜨린다.[44] 영웅의 통일담론이 평화모색이 아니라 위선적 패권획득에 진의가 있다는 평가를 사는 이유로서 천하통일의 대의명분관 별개로 여기서 진시황은 언어말살까지 기도하는 극단성을 보유하고 있다.[45] 게다가 다른 왕자들이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대왕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남지 않았다.[46] 1왕자는 왕후와의 불륜도 불륜이지만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병약해서 군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고, 3왕자는 고작 친위대 병사 몇 명으로 허접한 반란 시도를 저지를 정도로, 정치적 식견도 없고 성미도 급하고 일을 철두철미하게 계획하는 능력도 떨어지는 등 애초에 왕좌에 오를 그릇이 못된다.[47] 중국에는 드라마의 제작편수가 워낙 많고, 유력 채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영화도 제작후 2-3년 후 개봉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그럼에도 늦긴 하다.[48] 환관들도 모두 무술을 하듯 자세를 취한다. 환관은 동아시아 국가 왕실에서 왕을 호위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조선시대 환관의 주요 임무중 하나가 변란시 왕을 업고 도망가는 거였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 멸망때 숭정제의 최후를 지켜준 사람도 환관이었다. 또한 청나라 강희제도 권신 구왈기야 오보이를 제압하는 친위 쿠데타 때 그 동안 키워온 친위부대를 투입하였는데, 이들이 환관이었다는 얘기도 전한다.[49] 한 번은 방심하는 사이에 던진 것인데 흘려서 피했고 다른 한 번은 손발을 제압당한 상황이었음에도 허리를 뒤로 꺾어 피해버린다.[50] 작중 시대는 당나라가 아닌 당나라 멸망 직후인 오대십국 후당 시대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