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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9 01:39:10

차오위

파일:차오위.jpg
이름차오위(曹禺, 조우, Cáo Yǔ)
본명완자바오(萬家寶, 만가보)
출생1910년 9월 24일
톈진
사망1996년 12월 13일(향년 86세)
베이징
국적
[[청나라|]][[틀:국기|]][[틀:국기|]] →
[[중국|]][[틀:국기|]][[틀:국기|]]
민족한족
배우자정수(鄭秀), 방서(方瑞), 이옥여(李玉茹)
자녀장녀 만대(萬黛), 차녀 만소(萬昭), 3녀 만방(萬方), 4녀 만환(萬歡)
학력난카이중학 (졸업)
난카이대학 정치학과 (중퇴)
칭화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경력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중국희극가협회 부주석
중앙희극학원 부원장
베이징인민예술극원 원장
정당
1. 개요2. 탄생과 가정3. 생애4. 작품 특징5. 작품 목록6. 결혼과 자녀

1. 개요

중국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리는 중국의 극작가다.

근대극의 수법을 구사한 치밀한 구성과 심각한 내용으로 중국 근대극의 창시자로서 높이 평가되었다.

2. 탄생과 가정

1910년 톈진의 몰락한 봉건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만제운(萬際雲), 할아버지는 만계문(萬啓文)이다. 아버지 완더준(萬德尊, 만덕존)은 지방 관직을 지내다가 실의하여 귀향했으나, 1904년 일본에 유학해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여 군인이 되었으며, 중화민국 북양정부의 총통을 지내기도 했던 리위안훙(黎元洪)의 비서를 거쳐 중화민국 국민정부 육군 중장에 오르는 등, 재기에 성공했다.

만덕존은 첫째 부인 연씨(燕氏)와의 사이에서 딸 만가영(萬家瑛)과 아들 만가수(萬家修)를 낳았고, 연씨와 사별한 후 설씨(薛氏)와 재혼하여 만가보(차오위)를 낳았다. 설씨가 출산한 지 사흘 만에 산욕열로 사망하자, 만덕존은 설씨의 쌍둥이 여동생인 설영남(薛詠南)과 재혼했다. 설영남과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고, 차오위는 이모이자 계모인 설영남의 손에 자랐다.

3. 생애

차오위는 처음에 난카이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했지만 맞지 않아서 중퇴하고, 국립 칭화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유럽문학과 그리스 비극문학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본명으로 소설을 썼으며, 차오위라는 이름으로 1934년에 발표한 희곡 <뇌우> 4막으로 일약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 희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독립운동가였던 안미생[1]윈난성 쿤밍시의 국립 서남연합대학 법학원에 재학할 때 수녀 역으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던 유명 연극 작품이 되기도 했다.

그는 중국국립희극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1936년 <일출(日出)> 4막을 발표, 이어서 1937년에는 난징의 중국희극학회의 성립과 더불어 중심 인물로 활약했다. 그 해 탈옥수의 거친 애정문제를 소재로 한 <원야(原野)> 3막 및 1941년에는 <북경인> 등 모두 10회 이상의 상연 실적을 가진 문제작들을 발표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 해외에서 강의하고 있었으나, 대부분의 당시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중국국민당 대신 중국공산당을 지지했으며, 공산당의 신정권이 수립되자 귀국해 이에 동참한다. 본인이 신정권이 배척하는 지배계급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1952년부터 공장 노동을 자청하여 노동자의 삶을 체험하며 자기개조에 힘썼다.

그런 행보로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중국희극가협회 부주석, 중앙희극학원 부원장, 베이징인민예술극원 원장 등의 공직을 지냈다.

1961년에는 역사극 《단검편(胆劍篇)》(공동창작)을 발표한 뒤 《왕소군(王昭君)》의 창작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발생하자 《단검편》을 비롯한 그의 모든 작품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다시 복권되었으며, 그의 희곡은 현재 중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1996년 12월 13일, 86세에 장기질병으로 베이징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4. 작품 특징

그의 대표작 <소나기>[2]를 비롯하여 중국 상류층 사회의 패악을 여실히 고발한 <해돋이[日出]>(1936), 농민의 저항을 그려낸 <원야(原野)>(1937) 등은 모두 차오위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들은 차오위의 희곡 창작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특히 그의 처녀작인 <소나기>는 작품이 발표된 이후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희곡 혹은 연극으로서의 <소나기>가 지니고 있는 문학적 완성도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에서 간략히 살펴볼 수 있겠다. 첫째, 긴박하고 탄탄한 줄거리 전개를 통해 무대 효과를 극대화시켰고 또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둘째, 각 인물의 개성을 생생히 살려 기존의 평면적인 무대 예술을 넘어 극 자체의 입체성을 부여했다. 셋째, 등장인물 간의 복잡 다양한 갈등과 대립을 부각시켜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차오위의 희곡은 주제와 설정 등에서 꽤나 극명한 대립적 구도를 이루고 있고 비극적 결말로 끝나고 있다. 마치 하늘에서 급작스럽게 내리는 실제의 소나기처럼 차오위는 ‘소나기’의 상징적 의미를 통해 당시 봉건적이었던 사회의 억압과 핍박에 대해 분노와 저항을 숨김없이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5. 작품 목록

6. 결혼과 자녀

첫째 부인 정수에게서 장녀 만대와 차녀 만소를, 둘째 부인 방서에게서 3녀 만방과 4녀 만환을 낳았다.

셋째 부인 이옥여는 1924년 7월 베이징에서 태어난 경극 배우로, 2008년 7월 11일 상하이에서 사망할 때까지 연극예술분야 및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했다. 차오위와는 재혼으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딸 이리(李莉)와 이여여(李如茹)를 낳았다.
[1] 안중근 의사의 조카[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는 <뇌우>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