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8a9><colcolor=#fff> 파라과이 제31대 대통령 호세 파트리시오 구기아리 코르닐리오니 José Patricio Guggiari Corniglioni | |
출생 | 1884년 3월 17일 |
파라과이 아순시온 | |
사망 | 1957년 10월 30일 (향년 73세)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
국적 | 파라과이 |
정당 | 자유당 |
재임기간 | 파라과이 제31대 대통령 |
1928년 8월 15일 ~ 1932년 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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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라과이의 제31대 대통령이다. 최초로 탄핵당한 파라과이 대통령이기도 하다.2. 생애
1901년 아순시온 국립 대학교에서 문학과 공학사를 취득했다. 1910년엔 법학과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10년 사이에 형사고발과 후에 주 검찰총장직을 역임하였다. 1913-1920년과 1924-1928년까지 하원의원직을 역임했다. 1920년부터 1921년 11월까지는 내무부 장관직을 맡았다. 1924년 자유당에 입당했다.1928년 8월 15일, 파라과이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되었다. 부통령은 에밀리아노 곤살레스 나베로였다. 전임 대통령인 엘리히오 아얄라가 재무부 장관직을 맡았다. 같은 해 12월 5일, 라파엘 프랑코 소령으로 하여금 그란차코 지역에 있는 볼리비아 요새를 점령하게 했다. 하지만 아직 전쟁 준비가 덜 되어있던 파라과이는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1931년 10월 23일, 볼리비아와 그란차코 지역에서의 갈등에 대해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촉구하고자 대학생 시위가 발생했다.[1] 하지만 경찰은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고 8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의회는 구기아리를 탄핵하여 임기를 정지시키고 이 기간 동안 부통령인 나베로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이후 의회는 구기아리를 재판에 넘김으로써 구기아리는 정치적 재판을 받은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대통령이 되었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하여 남은 임기를 마쳤다. 이후 아르헨티나 망명과 귀국을 계속 반복하다가 아르헨티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1] 파라과이 공산당이 사주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