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8a9><colcolor=#fff> 파라과이 제44대 대통령 후안 카를로스 마리아 와스모시 몬티 Juan Carlos María Wasmosy Monti | |
출생 | 1938년 12월 15일 ([age(1938-12-15)]세) |
파라과이 아순시온 | |
국적 | 파라과이 |
정당 | 콜로라도당 |
임기 | 제44대 대통령 |
1993년 8월 15일 ~ 1998년 8월 15일 | |
배우자 | 마리아 테레시아 카라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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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라과이 제44대 대통령이자 39년만에 나온 문민 정부이다.2. 생애
헝가리계 파라과이인이며 1828년 브라질로 이민 온 집안의 후손이다. 본래 Vámosy라는 성씨가 파라과이에 정착한 후, 스페인어식인 Wasmosy로 바뀌었다. 아순시온 국립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1962년 토목 엔지니어로서 회사를 설립하고 이타이푸 댐 건설 수주를 따넨 컨소시움의 대표이기도 했다.1993년 5월 9일에 열린 대선에서 39.9%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1] 하지만 로드리게스 전 대통령의 개입이 있기도 했다. 취임 연설에서 전임 정부의 자유 무역 정책을 이어서 수행하고 교통, 건강, 교육 분야에서 증가하는 문제에 대처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와스모시는 정당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콜로라도당은 총선에서 상하 양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지만 야권이 연합하며 과반수를 차지했고 군부는 와스모시에 비협조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리노 세자르 오비에도 장군과의 갈등은 쿠데타 발발 직전까지 이어졌다.[2] 결국 오비에도 장군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으로 협의를 보며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파라과이 국민들은 대통령이 공갈에 굴복했다고 비난하며 격분했다. 하루 만에 오비에도의 장관직을 사임시키며 여론을 잠재웠다.
2002년 와스모시는 대통령 재임 중 공금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보석과 가택 연금으로 감형되었다.
1995년 상반기와 1997년 상반기에 메르코수르 회장을 겸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