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8a9><colcolor=#fff> 파라과이 제9대 대통령 후안 베르나르디노 카바예로 데아냐스코 이 멜가레호 Juan Bernardino Caballero de Añasco y Melgarejo | |
출생 | 1839년 5월 20일 |
파라과이 이비키(Ybycuí) | |
사망 | 1912년 2월 26일 (향년 72세) |
파라과이 아순시온 | |
국적 | 파라과이 |
정당 | 콜로라도당 |
임기 | 파라과이 제9대 대통령 |
1880년 9월 4일 ~ 1886년 11월 25일 | |
복무 | 파라과이 육군 |
1864년 ~ 19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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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라과이의 제9대 대통령.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친 첫번째 대통령이기도 하다.
2. 생애
1864년 파라과이 군대에 입대하여 파라과이 전쟁에 참전했다.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의 신임을 얻으며 기병부대 장군까지 진급했다. 1870년 4월 8일, 세로코라 전투[1] 이후 브라질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1871년 5월 석방되었다. 포로 기간 동안 친브라질 세력으로 돌아섰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아순시온으로 돌아와 칸디도 바레이로가 이끄는 로페스 지지파(Lopizta)의 일원으로 1873년 3월과 6월 반란과 1874년 1월 반란으로 영향력을 키우며 살바도르 호베야노스 정부의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877년 4월 12일, 후안 바티스타 힐 대통령이 살해당하자, 정치적 동맹인 칸디도 바레이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도록 도왔다. 1880년 9월, 바레이로 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하자 곧바로 쿠데타를 일으켜 제9대 대통령이 되었다.[2]
임기 중인 1881년 6월 파라과이 은행이 창설되었다. 국가 이민국도 설치되었다. 자금 마련을 위해 로페스 가문과 국가 소유의 토지 대부분을 매각시켰었다.
카바예로는 1886년 대통령 선거를 조작하여 그의 동맹인 파트리시오 에스코바르가 승리하도록 도왔다. 이에 대응하여 그의 정적들은 자유당을 창당하였고, 2달 후 카바예로는 집권여당인 콜로라도당을 창당하였다. 1887년부터 1904년까지 파라과이 상원의원직을 역임했고 1894년부터 1902년까지는 상원의장을 겸임했다.
이후에도 장군 겸 콜로라도당 대표로 계속 남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1902년 1월, 쿠데타를 일으켜 에밀리오 아세발 정부를 전복시키고 후안 안토니오 에스쿠라를 차차기 대통령으로 임명시키는데 중심 역할을 했으며 1912년 2월 26일에 사망할 때까지 당대표를 맡았다.[3]
3. 여담
파라과이 500과라니 주화의 인물이다.[1] 로페스 대통령이 전사한 전투이다.[2] 본래라면 부통령인 아돌포 사기에르가 승계해야 했지만 군부에 의해 사임하고 카바예로가 대통령이 되었다.[3] 후임 당대표는 페드로 파블로 페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