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8a9><colcolor=#fff> 파라과이 제29대 대통령 호세 엘리히오 아얄라 José Eligio Ayala | |
출생 | 1879년 12월 4일 |
파라과이 음부야페이(Mbuyapey) | |
사망 | 1930년 10월 24일 (향년 50세) |
파라과이 아순시온 | |
국적 | 파라과이 |
정당 | 자유당 |
재임기간 | 파라과이 제29대 대통령 |
1923년 4월 12일 ~ 1924년 3월 17일 제1차 1924년 8월 15일 ~ 1928년 8월 15일 제2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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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라과이의 29대 대통령이다.2. 생애
엔카르나시온 국립 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가 3학년을 마치고 아순시온 국립 대학교 법대로 편입했다. 졸업 후 국가기록원의 공문서 분류관 직으로 취직했다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법학과 사회학을 전공했고 1905년 12월 22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07년 검사가 되었고 1908년 자유당에 입당했다. 1910년 4월 22일에는 하원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리며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1911년, 독일로 유학을 가서 1920년 3월에 귀국했다. 1920년부터 1923년 4월까지 재무부 장관직을 역임하던 도중, 에우세비오 아얄라 대통령이 사임하자 임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1] 1924년 2월 3일, 차기 대선의 후보로 낙점되었고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서 3월 17일 임시 대통령직에서 사임하며 루이스 알베르토 리아르트 재무부 장관에게 이임하고 첫번째 임기를 마쳤다.이후 대선에서 승리하여 1924년 8월 15일, 이번엔 정식 대통령으로서 두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소농들의 재산을 보호하는 Creac 법안이 제정되었다. 연금관련 조항이 포함된 산재법도 제정했다. 1927년 7월 15일, 푸에르토피나스코(Puerto Pinasco)에서 3,000명의 노동자들의 시위가 발발했다. 노동시간 개선(12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과 노동시간당 임금 개선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사측 모두 응하지 않았다. 시위 주동자들은 자신들의 불만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경찰서와 시내 항구를 점거하겠다고 위협했다. 파라과이 정부는 군을 파견하여 진압했다. 시위는 1929년까지도 지속되었고, 대규모 해고와 탄압이 이어졌다. 정부는 언론 검열로 은폐했고 주동자 5명을 사형시켰다.
1928년 8월부터 1930년 10월까지 다시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1930년 10월 23일 저녁, 하녀이자 내연녀인 힐다 디에스(Hilda Diez)가 토마스 바레이로(Tomás Bareiro)라는 남자와 바람을 피는 것을 목격하고 총격전을 펼치다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다음날 오후 2시 15분 경 사망했다.
3. 기타
전임 대통령인 에우세비오 아얄라 대통령과는 성만 동일하지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1] 당시 부통령직이 공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