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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24 11:18:51

하이델베르크 성


1. 개요2. 역사
2.1. 파손2.2. 복구
3. 구성
3.1. 하이델베르크 성의 정원3.2. 포도주 술통3.3. 독일 약국 박물관3.4. 알탄
4. 기타5. 둘러보기

1. 개요

파일:하이델베르크성.jpg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하이델베르크이며 유적지이다. 과거 팔츠 선제후국선제후들이 거주하는 왕궁의 입지였으며, 현재는 이 곳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랜드마크이기도 한다.

2. 역사

하이델베르크 성이 처음으로 언급된건 1225년, 바이에른 공국공작이자 라인의 궁정백 루트비히 1세(Ludwig der Kelheimer 1173~1231)가 보름스 주교 자르브뤼켄의 하인리히 2세(Heinrich II. von Saarbrücken ?~1234)로부터 이 성을 받았을 때이다. 1615년에 메리안의 Topographia Palatinatus Rheni에서는 16세기 종교 개혁 시기의 선제후 루트비히 5세를 가리켜 '새로운 성 한 채를 100년 넘게 짓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2.1. 파손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벌어진 30년 전쟁으로 팔츠 선제후국은 잿더미가 되었고, 성이 양쪽으로 공격을 받아 성이 파손되었다. 30년 전쟁 이후 성을 복구하고 있었으나 1689년과 1693년에 프랑스 왕국의 침공으로 벌어진 9년 전쟁으로 한번 더 파손되었다. 이후 요한 빌헬름은 아예 뒤셀도르프천도하여 하이델베르크는 아예 버려졌다. 이후에도 성을 복구하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1764년에 번개로 인해 화재가 일어나 성이 또 파손되고 말았다. 이후 팔츠계 비텔스바흐 가문바이에른 선제후국 상속, 1803년 제국대표회의 최종결의안에 따른 하이델베르크의 바덴 대공국 이관,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하이델베르크 성은 대중들의 시선에서 잊혀져갔다. 파손된 하이델베르크 성을 보고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성은 유럽을 뒤흔든 모든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왔으며, 지금은 그 무게로 무너져 내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2.2. 복구

1868년, 시인인 볼프강 뮐러 폰 쾨니히스뷘터(Wolfgang Müller von Königswinter)가 성의 원상복구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후 1868년에 성을 복구하기 위한 'Castle Field Office'가 설립되었다. 그렇게 하여 1890년에 성을 복구하는데에 성공했다. 그러면서 복구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의 논란을 종식시켰다. 복구된 곳은 프리드리히 건물로, 화재로 피해를 입은 부분이 재건되었다.

3. 구성

3.1. 하이델베르크 성의 정원

하이델베르크 성의 정원은 1616년 착공해 1619년 완공된 정원이다. 이 정원은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를 위해 정원을 만들 것을 주문하여 정원 건축가 살로몬이 설계하였다. 프리드리히 5세는 또한 아내를 위해 1615년, 하루 만에 엘리자베스 문을 세우기도 했다.

3.2. 포도주 술통

하이델베르크 성 지하에는 엄청나개 커다란 술통이 있다. 높이 약 7m, 폭 약 8.5m에다가 용량은 221726L 정도 된다. 이 술통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술통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술통 옆에 페르케오의 목상이 있다. 페르케오는 하루에 포도주 18L를 15년간 마셨지만 80세로 장수한 엄청난 술꾼이었다.

3.3. 독일 약국 박물관

이 하이델베르크 성 안에 있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1937년에 비영리를 목적으로 지어졌으며, 이 박물관에는 독일에서 쓰던 고대 부터 현재까지의 약들이 전시되어있다.

3.4. 알탄

이 곳은 하이델베르크 성의 발코니이다. 이곳에서는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데 성이 북향으로 지어져 마을이 사계절 내내 밝아보인다.

4. 기타

5. 둘러보기

하이델베르크 성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