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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f> | |||
출생 | 1443년 2월 5일 | ||
사보이아 공국 샹베리 | |||
사망 | 1497년 11월 7일 (향년 54세) | ||
사보이아 공국 샹베리 | |||
묘소 | 오트콩브 수도원 | ||
재위기간 |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 | ||
1496년 4월 16일 ~ 1497년 11월 7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c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루도비코 어머니 뤼지냥의 안 | |
배우자 | 부르봉의 마르그리트(1472년 결혼 / 1483년 사망) | ||
브로스의 클로드(1485년 결혼) | |||
자녀 | 루이사, 지롤라모, 필리베르토 2세, 카를로 2세, 루이지, 필리포, 아살로네, 조반니 아메데오, 필리베르타, 레나토(사생아) | ||
가문 | 사보이아 가문 | ||
종교 | 로마 가톨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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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2. 생애
사보이아 공작 루도비코와 안 드 뤼지냥(Anne de Lusignan 1418~1462)의 4남으로 어린 시절 피에몬테 출신 인문주의자들에게 교육받았고 무예에 출중했다. 브레스(Bresse) 지역[1]을 물려받았으나 곧 프랑스의 루이 11세에게 빼앗기고 '무토지자(이탈리아어: senza Terra, 프랑스어: sans terre)'로 불리며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생애 내내 프랑스의 영향력을 경계하여 형수 발루아의 욜랑드와 사사건건 맞붙었으나 정작 본인은 사보이아 공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장교로 활동했다. 1496년 조카손자 카를로 조반니 아메데오[2]가 자식없이 사망하면서 사보이아 공국을 물려받았으며, 장남 필리베르토와 조카손녀이자 전임인 카를로 조반니 아메데오의 누나 욜란다[3]를 결혼시켜서 부족한 정통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젊은 시절부터 영지를 빼앗기고 떠돌아다닌 여파로 골병이 들어 사보이아 공작이 된지 불과 1년 만에 사망했다.
3. 가족관계
이외에도 여러 사생아를 두었다. 그 사생아들 중 하나인 안토니아(Antonia di Savoia ?~1500)는 그리말디 가문의 모나코 경 장 2세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