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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4:56:22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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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8E5A6><colcolor=#000> 잉글랜드 왕국 헨리 3세의 왕비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Éléonore de Provence
파일:Eleanor_of_Provence.jpg
19세기 상상화
이름 프랑스어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Éléonore de Provence)
영어 프로벤스의 엘리너
(Eleanor of Provence)
출생 1223년
프랑스 왕국 엑상프로방스
사망 1291년 6월 24일 또는 6월 25일
잉글랜드 왕국 윌트셔 에임즈버리
배우자 헨리 3세 (1236년 결혼 / 1272년 사망)
자녀 에드워드 1세, 마거릿, 베아트리스, 에드먼드, 캐서린
아버지 프로방스 백작 레몽 베랑게르 4세
어머니 사보이아의 베아트리스
형제 마르그리트, 상시, 베아트리스
종교 가톨릭 (세례명:엘레오노라)

1. 개요2. 생애3. 가족
3.1. 자녀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헨리 3세의 왕비이자 에드워드 1세의 모후. 프랑스 왕국 귀족 출신으로, 프랑스의 왕비 마르가레트의 동생이다.

잉글랜드의 외국인 왕비 혐오의 도화선 격이 된 인물이다.

2. 생애

1223년에 엑상프로방스에서 아라곤 왕국 국왕의 후손인 프로방스 백작 레몽 베렝제 4세와 사보이아의 베아트리스의 차녀로 태어났다.

언니 마르그리트가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와 결혼하면서 집안의 격이 높아졌고 그 영향으로 본인도 1236년 1월, 12살의 나이에 16살 연상의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와 결혼[1]했다. 엘레오노르는 검은 눈의 미인이었고 남편에게 충실했으며 헨리 3세도 어린 왕비와 그 친정 식구들을 잘 대해주었다.

엘레오노르는 국민들의 미움을 받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외척 세력 문제였다. 엘레오노르는 시집을 오면서 수많은 친정 식구[2]들을 데려왔다. 그들은 헨리 3세에게서 특권을 부여받아 권세가 높아졌고 잉글랜드에 발붙여 잉글랜드 귀족처럼 행세하고 다녔다. 또한 엘레오노르는 우유부단한 남편의 정치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헨리 3세가 런던에 없을 때는 섭정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외국인 왕비의 정치 개입은 잉글랜드 귀족들의 불만을 샀다. 엘레오노르가 마차를 타고 궁 밖에 나오면 사람들은 쫓아가서 돌이나 썩은 야채를 던지며 대놓고 왕비를 욕했다.

내전이 일어났을 때 엘레오노르는 모국인 프로방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엘레오노르는 강력한 친정 세력과 정치적 수완을 이용해 남편을 도와 내전을 유리하게 이끄는 데 기여했다.

1272년에 남편이 사망한 후에는 손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유시인들의 시와 문학작품들을 즐기면서 지냈다.

말년에는 솔즈베리의 에임즈베리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사망한 후 그곳에 묻혔다.

3. 가족

3.1.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남 에드워드 1세
(Edward I)
1239년 6월 17일 / 6월 18일 1307년 7월 7일 카스티야의 레오노르[3]
슬하 3남 5녀[4]
프랑스의 마르그리트[5]
슬하 2남
1녀 스코틀랜드의 왕비 마거릿
(Margaret, Queen of Scots)
1240년 9월 29일 1275년 2월 26일 알렉산더 3세
슬하 2남 1녀[6]
2녀 리치몬드 백작부인 베아트리스
(Beatrice, Countess of Richmond)
1242년 6월 25일 1275년 3월 24일 브로타뉴 공작 얀 2세
슬하 3남 3녀
2남 랭커스터 백작 에드먼드
(Edmund, Earl of Lancaster)
1245년 1월 16일 1296년 6월 5일 아블린 드 프로즈
아르투아의 블랑카
슬하 2남
3녀 잉글랜드의 캐서린
(Katherine of England)
1253년 11월 25일 1257년 5월 3일

처음 결혼했을 때는 너무 어렸기에 아이를 낳지 못해 불임 의혹을 받기도 했다. 16살에 장남 에드워드 1세를 시작으로 여러 아이를 낳아 헨리 3세와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두었다. 그중 장남 에드워드를 가장 사랑했으며 수도원에 들어간 뒤에도 에드워드와는 계속 연락을 취했다. 둘째 마거릿은 스코틀랜드의 국왕 알락산더 3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었다.


[1] 여담으로 셋째 딸 산치아는 엘레오노르의 남편 헨리 3세의 남동생 리처드와 막내 베아트릭스는 마르그리트의 남편 루이 9세의 동생 카를루와 혼인하는 겹사돈이 되었다.[2] 특히 외가인 사보이아 가문. 대표적으로 피에트로 2세는 그녀의 외삼촌이었는데 젊은 시절 헨리 3세 밑에서 활약했다.[3] 페르난도 3세의 장녀이다.[4] 에드워드 2세 등.[5] 필리프 3세의 차녀이다.[6] 노르웨이의 왕비 마르그레테 등